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령의 강림으로 시작된 신약 교회의 역사가 2,000년이 된다. 교회는 그 긴 세월동안 세계도처에서 많은 박해와 시련을 견뎌 왔다. 이단들의 도전과 타 종교와 세상 정치적 권력의 위협과 무수한 박해를 통과해 왔다. 그렇다면 교회가 소멸하지 않고 지금까지 존재하게 된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물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진리의 말씀 위에 세워진 하나님의 교회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섭리로 지속가능한 일이었다. 거기에다 교회가 가진 정체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말씀에 근거하여 확립된, 교회를 지탱하고 있는 진리를 말한다.

그런데 최근에 타 종교 지도자의 별세(선종)와 관련하여, 기독교의 근간을 흔드는 말들이 기독교 지도자를 통해 나왔다. “로마 천주교가 큰 집”이라는 발언, 로마 천주교 신부에게 “우리의 선한 목자여, 우리 위해 기도해주옵소서”라는 고백을 한 것이다. 이는 외교적 수사(修辭), 문학적 표현이란 변명으로 끝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발언의 당사자는 최소한도 교계의 중추적인 지도급에 있는 분들이기에 그 심각성이 있다. 몰라서 그랬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고, 알면서도 조문(弔問)하는 자리이기에, 상대편을 높여주기 위해서라는 말도 궁색한 변명으로 밖에 달리 이해하기 어렵다.

한국교회의 위기를 말하는 분들이 있다. 그 위기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삶으로 실천하지 못하는 윤리적 문제, 또 하나는 자기를 지탱하며 세워주는 종교적 정체성을 모르는 교리의 문제이다. 최근에 한국교회에서 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전자(前者)일 것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타 종교 지도자를 조문하는 상황에서 교회의 정체성을 흔드는 말이 튀어 나왔으니 어이없는 일이다. 많은 국민들의 추모를 받은 그 지도자가 속한 종교에 대한 국민적 정서에 편승하여, 단수(段數) 높은 발언으로, 그 종교와 우리 기독교가 서로 무관하지 않다는 의미로 표현한 것일까?

타 종교를 말하기는 조심스럽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그 종교에 의해서, 말씀대로 믿고자 했던 기독교인들이 받은 심한 박해는 필설로 다 표현키 어렵고, 성경 내용과 다른 이교적인 교리와 폭거 때문에 종교개혁이 일어난 것은 모두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성경 말씀으로 돌아가고, 그 종교개혁의 정신으로, 살아가자는 것이 오늘날의 기독교(개신교)가 아닌가.

그런데 하필이면 그 종교와의 역사적, 교리적 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한국교회에서 상당한 위치에 있는 지도자에게서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이 나오게 된 것은 대단히 우려스러운 일이다. 수 백 만에 이르는 종교개혁자와 순교자들의 흘린 피를 욕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도 그 해명을 들어야 하는 부분이라고 본다.

교회는 사람에 의해서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구속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과 성령의 역사 속에서 이뤄지며,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지 않으면 내 치실 수도 있다는 것이 성경의 교훈이다. 말을 잘못하여 실패한 사람들의 사례들은 성경에 많다.

한국교회는 어느 때보다도 교회가 지상에서 갖는 시대적 사명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지도자들의 행동, 말, 표현 모두가 하나님의 뜻을 대변하는 웅변이어야 하므로 조심해야 한다. 하나님의 교회를 염려케 하는 것은 외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내부의 철저한 신앙적 삶, 그리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독교에 대한 분명한 정체성이 확고하지 않으면 교회가 위기를 맞게 된다.

다시 말하거니와 교회의 문제는 환경의 문제이거나 외부의 도전이 아니라 지도자들의 문제이며, 진리에 기초한 신앙고백이 아니거나, 고백되어진 대로의 삶이 아닌 것에 가장 큰 원인이 있다. 인생은 짧으나 주님의 교회는 영원하다는 진리를 안다면, 교계 지도자들은 요한처럼 ‘나는 쇠하여도 주님은 흥해야 한다’는 겸손한 고백적 삶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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