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어느 사회에서나 양극화(兩極化)란 말을 자주 사용하고 있다. 양극이란 지구의 북극과 남극을 뜻하는 말로, 지리적으로 서로 간격이 최대로 벌어져 있는 두 개의 집단을 가르친다. 말하자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지배 세력과 피지배 세력간의 차이를 말한다. 이런 차이는 반드시 계급분화가 일어나 갈등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 특히 경제에서 나타나는 양극화는 실로 고등수학보다 풀기 어려운 문제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쌀 직불제 사건은 기득권 층이 방조한 사기 사건이다.

지난해 한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 하나가 터졌다. 쌀 직불제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쌀 직불제란 "정부가 쌀 농사를 짓는 농민에게 보상차원에서 지원금을 주는 제도"를 말한다. 이 제도는 1995년 제정 공포된 세계 무역기구(WTO)협정 이행에 따라 우리 정부가 도입한 것이다. 농가 소득과 쌀 생산의 안정을 목적으로 도입된 쌀 직불금제도가 온갖 편법과 불법으로 가진 자들이 농민의 몫을 빼앗아 간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농림수산 식품위원회가 최근 공개한 감사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6년 직불금을 받은 99만8000여 명 가운데 무려 17만3947명이 실제 농사를 짓지 않고도 1683억 원의 직불금을 타 갔다고 했다. 이는 전체 직불금 1조6191억 원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허위로 수령한 자들 가운데 회사원이 9만9981명으로 가장 많았고, 공무원도 무려 4만421명이나 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의 세금으로 마련한 직불금이 투기 목적으로 농지를 소유한 것도 모자라 가진 자들의 호주머니를 불리는 데 쓰였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직불금을 눈먼돈으로 알고 빼먹은 부당 수령자도 문제지만 실제 수령자가 누구인지 제대로 파악지도 않고 국고를 덥석 집어주는 허술한 정부의 관리체계가 더 큰 문제라고 생각된다. 농식품부는 또 부당하게 수령한 직불금을 적발하고도 제대로 회수하지도 못했다. 엉뚱하게 국고를 낭비한 것도 모자라 잘못 가지고 간 것을 알고도 되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금번 쌀 직불금 사건은 가난한 농민들의 몫을 빼돌린 고위 공직자들과 공무원, 그리고 한국 전역을 땅 투기지역으로 만들었던 소위 기득권 층이 만들어 낸 국가적인 사기 사건이라 할 만하다. 우루과이 라운드 이후 정부가 100조원이나 되는 천문학적인 농업지원금을 퍼붓고도 한국 농업이 경쟁력을 갖지 못하고 악화된 것은 정부를 포함 기득권 층의 부도덕함이 만들어낸 분배의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요셉이 제시한 20대 80의 분배 원리

한국사 통론 186p에 보면 "과거 한국사회 귀족이나 양반들이 노비를 부려 농사를 직영하기도 했지만 소작을 했을 때는 수확량의 1/2을 받았다"라고 적고 있다. 이런 소작(小作)제도는 조선시대이전부터 이루어 졌으며, 오늘날의 소작제도의 근간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지주와 소작인의 소작료 비율은 50대 50이었으며, 풍년이나 흉년에 따라 소작비율은 다소 증감되었다.

이와 달리 애굽의 총리였던 요셉은 국가를 대표해서 소작인에 해당하는 당시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은 분배 방식(소작비율)을 제안했다.

"추수의 오분의 일을 바로에게 상납하고 오분의 사는 너희가 취하여 전지의 종자도 삼고 너희의 양식도 삼고 너희 집 사람과 어린 아이의 양식도 삼으라"(창47:24)라고 했다.

즉 요셉은 지주와 소작인에 대한 분배 비율을 20대 80으로 정했다. 이러한 분배방식에 대해 당시 백성들은 크게 만족했다. 랍비, 삼손 라파엘 허쉬는 요셉이 바로와 백성의 몫을 20대 80으로 배분한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땅의 주인인 바로에게 소작인의 몫을, 백성들에게는 지주의 몫을 분배한 것은 백성들을 노예로 만들지 않고 소작인이 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했다.

일본 홋카이도 대학 사카가미 교수진이 개미에 대하여 연구한 결과를 발표했다. "개미는 보통 하루 6시간 일하지만 그 중 50퍼센트 이상은 하루 종일 빈둥대면서 놀며, 나머지 20퍼센트도 그저 분주히 왔다갔다할 뿐이며 일하는 개미는 겨우 20퍼센트에 불과하다."라고 했다. 결국 20 퍼센트 개미가 나머지 80퍼센트를 먹여 살린다는 결론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교수진이 개미를 통해 발견한 것은 "나태한 80퍼센트는 모두 제거해야 될 대상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야 할 공동체"라고 결론을 내린 바 있다.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배우는 분배의 원리

전국에 흩어져 있던 농민들이 걸핏하면 국회나 광장으로 몰려가 데모를 하거나 자신들이 땀흘려 지은 농산물을 쌓아놓고 불지르는 모습은 어느 듯 익숙한 풍경이 되고 말았다. 이런 유사한 행동은 일찍이 유럽사회에서도 있었다. 유럽 귀족사회와 기득권 층이 오래도록 농민들을 착취하므로 치른 대가와 희생이 얼마나 컸는지 알았기에 지금 유럽의 농촌은 도시보다 훨씬 더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유럽에서 농부가 되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절차와 자격을 구비해야 하는 것은 물론 농부가 되었을 때 각종 혜택은 그야말로 최고다.

일찍이 유럽은 1215년 영국의 존 왕에 의해 발표된 대헌장(Magna Carta Libertatum) "의회가 만든 법에 의하지 않고 왕 마음대로 사람을 가두거나 세금을 거두지 못한다."라는 규정이 있었지만 오래 동안 분배원리가 잘못 적용되어 왔다. 그 결과 빈부의 격심한 차이는 물론 엄청난 전쟁과 혁명을 유발시켰다.

1524년 독일 농민전쟁이나, 1789년 프랑스 혁명은 소유와 분배의 불균형에서 비롯됐다. 독일 농민전쟁은 각종 세금과 과중한 부역, 지대증액 등으로 억압당한 농민들이 영주들에 대하여 일어난 봉기였지만 무려 10여만 농민들이 희생되었음에도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당시 영주들은 한창 바쁜 농번기에 일하고 있는 농민들에게 일손을 멈추게 하고 자신의 부인들이 실을 감기 위해 달팽이 껍데기를 모아 오라고 할 정도로 태평스런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프랑스 혁명 또한 봉건적 신분제도의 모순과 함께 토지 소유의 심한 불균형에서 비롯됐다. 당시 프랑스 인구의 2퍼센트 밖에 되지 않는 귀족과 성직자들이 전체 토지의 40퍼센트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나머지 98퍼센트의 평민들이 60퍼센트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귀족과 성직자들은 면세 혜택은 물론 농민으로부터 높은 지대를 받으며 실질적인 특권을 누렸다. 특권 계층과 평민 사이의 불균형은 결국 프랑스 혁명을 불러온 것이다.

이 같은 시련을 겪어왔던 유럽은 자연히 약자의 분배에 대하여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오늘의 사회보장제도나 노동정책은 이런 뼈아픈 과정을 통해 등장된 산물이다. 유럽의 노사관계나 사회제도는 다같이 배 안에 탄 일원으로 간주하여 많이 가진 자가 적게 가진 자를 책임져야 한다는 경제 논리를 펴고 있다. 마치 일하는 개미가 놀고 있는 개미의 몫까지 감당해야 하는 것과 같이 말이다.

적어도 유럽사회에서 분배 시스템은 개미 사회에서와 마찬가지로 미덕의 범위를 넘어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그 의무는 바로 세금과 직결되어 있다. 유럽의 세금은 가히 살인적이라 할만하다. 미국과 일본의 국민 세금부담률은 대략 30퍼센트 미만으로 유럽보다 별로 높지 않다. 한국은 이보다 미치지 못한 수준이다. 영국의 국민 세금부담률은 36퍼센트, 복지국가 전형인 노르웨이와 덴마크는 무려 각각 45, 49.6퍼센트에 달한다. 벌어들인 돈의 절반을 세금과 사회보장비로 낸다는 얘기다.

분배,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 앞서 농민과의 분배문제로 값비싼 대가와 희생을 치른 유럽의 실패를 직시해야 할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토지법을 만들어 분배의 원리를 제시한 요셉의 농민정책을 배운다면 적어도 우리나라의 쌀 직불제와 같은 사고는 없을 것이다. 이마저도 할 수 없다면 최소한 개미에게라도 가서 배워야 할 것이다.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잠6:7)


- 필자 / 김학우[kmadrid@hanmail.net]
- 스페인 마드리드 사랑의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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