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복음주의자 감리교 선교사들에 의하여 선교활동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동시에 미국에서는 복음주의 대각성운동이 일어나 선교에 대한 새로운 열정을 쏟게 되었다. 18세기 말부터 19세기의 미국은 서부개척, 남북전쟁, 자본주의 발전에 의하여 근대 국가로서 통일을 이르게 되었다. 이에 따라 청교도적인 신정정치는 이미 과거로 퇴쇠하고 많은 사람들은 계몽사조나 공리주의에 친근감을 느껴 종교적 무관심, 불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여기에 충격을 받고 방향을 전환하려고 시도한 것이 대각성운동이었다.

대각성운동이란 모든 세속화에 대한 복음주의 운동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섭리와 지배의 질서 중에서 인간에 관심을 가졌고, 전적 타락에 의한 죄책을 강조하면서 그리스도에 의하여 죄로부터 구원을 얻는다는 엄격한 윤리를 주장하였다. 이들은 기독교의 복음을 더 널리 해외에 확장시키고, 죄의 함정에 빠졌던 이교도를 회심시켜 인도하고, 그 곳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활동을 하나님의 사역으로 믿고, 선교사들은 하나님의 사역을 위하여 이 일에 적극 참여한다는 선민의식과 사명감을 불태우며 해외로 파송되었다. 이 당시에 일본에서 활동하던 선교사들은 대부분 대각성운동을 전개하던 사람들이었다. 미국의 19세기 후반에 대각성운동의 대표적인 설교가는 무디 목사(D.L.Moody:1837-1899)이었다.

무디 목사는 예수의 구원과 하나님의 사랑을 역설하였고, 죄인들의 회개와 구원에 대한 복음을 외쳤다. 또 구원을 결단하고 예수를 영접한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보장되고, 그것에 의해 개인 구원뿐만 아니라 사회의 문제까지 해결된다고 호소하였다.

일본에서 활약한 순복음파 지도자들 중에는 무디 목사의 감화와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많았다. 일본의 선교의 역사는 1549년 8월 15일에 카토릭 계통의 선교사인 프란시스코 자비에루가 가고시마(鹿児島)에 상륙한지 458년이 되었다. 또한 개신교에서는 1859년에 미국의 감독교회와 장로교회 및 개혁파 교회의 선교사들이 상륙하여 선교가 시작된지 148년이 흘렸다. 2004년도 기독교 연감 통계에 의하면 카토릭 계통의 교회는 1,027(전도소39 포함)이며, 교직자는 1,716명이며, 신자수는 477,624명에 이른다.

개신교 계통의 교회는 8,156(전도소73 포함)이며, 목회자10,035명이며, 신도수는 642,969명에 이른다. 전체 신도수는 교직자를 포함하여 1,132,344으로 일본 전체 인구에 비하여 0,887% 정도이다.

일본 기독교의 성장률은 종전 이후부터 지금까지 1%선을 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기독교가 일본에 전래되어 458년의 세월이 흘렸고,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3,000여명의 선교사들이 헌신하였지만 1%선을 넘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임을 기억해야 한다.

일본인들은 서구 문명을 쉽게 받아들이고 자기의 것으로 소화하여 토착화하는데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만은 자기들의 것으로 소화하지 못하고, 항상 거리감을 두고 있는 신비한 나라이기도 하다. 기독교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뚜렷한 이유는 없지만 단지 일본인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일본인들의 종교관은 신앙의 태도로 보기보다 민족정신과 결부되어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일본에는 800만의 온갖 잡신들이 우굴거리고 있다. 이것은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이 다 신이 될 수 있다는 범신사상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인에게 유일 신관을 이해시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이러한 일본인들을 위한 새로운 선교 전략과 더불어 성령의 뜨거운 역사를 기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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