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찬수
고신대학, 동 대학원 졸업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풀러신학대학원 졸업
군목 대위 예편
서울노회장
현 푸른초장교회 담임목사
땅 위에서 우리 고신교단 총회(운영위원회)가 개최 될 때마다 긴급 뉴스를 듣는다. 개혁주의의 후예라고 자신만만하게 자부하고 있는 고신 교단의 이 긴급 뉴스는 아마 하나님의 나라 신문들에도 일제히 보도되지 않을까? 그도 그럴 것이 우리 교단은 특별히 “성경대로”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 성경에 철저하게 바탕을 두고 주님을 믿고 있는 자들이 개혁주의자들이요, 그 개혁주의의 후예들이 우리 고신교단이라고 자부하고 있기 때문에 천국의 신문들도 우리 교단에 관심이 많을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근래에 총회 유지재단이 하나님의 자리를 찬탈하려고 한다는 긴급 뉴스가 들려오는 것 같아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글을 쓰는 필자에게 ‘어떻게 그러한 말을 할 수 있느냐’면서, ‘이것은 신성 모독’이라며 ‘벌을 주어야 한다’고 노발대발 하시는 분들도 분명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결코 노발대발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총회 유지재단에 들지 않는 교회의 목사는 노회장 등을 비롯한 직분을 받지 못하도록 결정했다는 뉴스는 하나님의 왕위를 찬탈하려는 것과 사실상 같은 것이라는 것을 교권 등을 솔직히 다 내려놓고, 진실하게 며칠을 기도 한 후, 그리고 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마음을 비우고서 읽고 난 후 생각해 보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총회유지재단 가입과 연관한 여러 가지 주장의 당위성은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 예수님을 정죄하던 사람들도 그들의 당위성에대한 논리는 너무도 풍부하게 많았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논리적 당위성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성경에서 뭐라 말씀하고 있으며, 개혁주의 원리에 맞느냐 맞지 않느냐의 문제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일이다.


최근 총회유지재단이 만병통치약처럼 추앙 받게 된 당위성들이 많이 있겠지만, 그 중 솔직하게 말한다면 자리에 대한 어느 정도의 미련도 작용했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지만, 이 문제는 내면의 문제이기에 당위성으로 나타내기는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고, 외형적으로 누구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문제는 교회 분열에 대한 우려와 교회 재산을 보호한다는 명분도 단단히 한 몫을 했을 것임에 분명할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종교개혁자들이 주장하고 목숨을 걸었던 가장 중요한 원칙이 무엇인지 다시 되새겨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 원칙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질문부터 해 보아야 한다. ‘왜 우리교단이 WCC에 가입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해 보라. 그러면 자연히 해답은 나올 것이다. WCC에서는 교회 연합에 대한 기본 원리를 외형적 단합에 있다고 본 것이다. 그들은 개혁주의 교회가 우리의 교리와 신앙을 양보하고, 외형적인 연합에 적극 참여할 것을 주장한다. 오늘날 지상교회의 분열은 이 권면에 따르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며, 이것은 전적으로 외형적인 연합에 따르지 않는 개혁주의 교회들의 책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의 외형적인 단합의 주장은 로마 가톨릭의 주장과 비슷하다.


개혁주의 운동은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왕으로 높임을 받으시고, 그의 말씀만이 절대적인 권위로 받아들여지는 교회를 위한 운동이었다. 이를 통한 연합이 진정하고 완전한 연합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는 외형적인 연합은 필연적으로 정치화 할 수밖에 없고, 교권주의자들에 의해 좌지우지 될 수밖에 없으며, 그 결과는 더 철저한 내면적인 분열로 치달을 수밖에 없을 뿐만 아니라, 지금껏 교회역사가 보여준 비참함으로 끝난다는 사실은 너무도 분명한 일이다. 그러므로 그 어떤 무엇도 왕의 자리를 넘보아서는 안 된다.


왜 유지재단 가입 등의 외형적인 것에 그토록 미련을 두고 있는가? 아니 미련을 넘어서서 총회유지재단이 만병통치약처럼 그것에 매달리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가? 진정 개혁주의 정신의 쇠퇴 내지는 자신감의 상실, 혹은 영적 지도력 상실로 인해 오는 것은 아니기를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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