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규칙성 모델에 기반한 이성적인 신 개념은 변덕스러운 실재를 설명하지 못해
- 이성적인 신 개념은 신의 자유를 제한
- 이성적인 신 개념은 신의 인격을 말살
- 신의 존재와 종교를 온전히 보전하는 방법으로서 "변덕"

규칙성의 모델: 이성적 신

    앞서 살펴본 세계를 규칙성에서 이해한 모델은 이성적인 신 개념으로 이어진다. 모든 실재가 철저하게 규칙에 의거해서 작동하기 때문에, 세계를 다스리는 신 역시 세계를 구동하는 규칙성의 창조자로 그려진다. 규칙성의 모델이 그려내는 신은 불변하는 규칙에 따라서 다스리기에 합리적이고 이성적 존재이다. 신의 통치에 감정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따라서 신은 변덕을 부리지 않는다. 불규칙성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이러한 규칙성의 모델에 의해서 그려진 신이 다스리는 세계에서도 불규칙성은 발견된다. 이 세상의 모든 사건이 현재 인간이 발견한 규칙성에 의해서 설명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계를 관찰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불규칙성과 임의성은 인식론적 오류의 탓으로 돌린다. 궁극적으로 모든 실재는 내재된 규칙에 따라서 발생하고 사멸하지만, 인간의 인식의 한계 때문에 실재를 구동하는 궁극적인 규칙성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성적인 신의 개념에 적용한다면, 철저하게 법과 규칙에 따른 신의 이성적인 통치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반면에 변덕스러운 신의 모델이 그려내는 세계상에서 임의적이고 불규칙적인 사건들은 우주의 역사에 터닝 포인트로 간주된다. 법과 규칙에 환원되지 않는 사건들은 새로운 세계의 시작을 알리는 대격변인 것이다. 즉, 신의 자유로운 개입을 위한 공간이 열린 것이다. 신은 더 이상규칙적이고 이성적인 것에 대해 얽매이지 않는다. 신은 자신의 자유에 따라 변덕스럽게 행동한다. 한 번 정해진 법과 규칙대로 영원히 세상을 다스리지 않는다. 신의 마음의 변화에 따라서 이 세계는 출렁이게 된다. 변덕스러운 신의 모델은 불규칙적이고 임의적인 사건을 설명할 수 있다. 인간의 인식의 한계의 탓으로 돌리는 대신에 신의 자유로 불가해한 실재를 설명해낸다. 

    이처럼 만일 세계의 모든 사건이 규칙성으로 환원될 수 없다면, 변덕스러운 신 모델을 버리는 것은 실재를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틀을 버리는 것이다. 규칙성의 모델에 근거한 이성적인 신은 실제로 규칙성이 없는 임의적이고 돌발적인 사건들을 설명하지 못한다. 신은 자신이 정한 법과 규칙에서 벗어나 변덕스럽게 행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규칙성 모델에 근거한 이성적 신은 세계를 설명하는데 분명한 한계를 드러낸다.  

 

(사진: https://lawhimsy.com)
(사진: https://lawhimsy.com)

 

규칙성 모델: 유신론적 세계관 함락

    규칙성 모델과 이성적인 신 개념은 모든 실재를 포괄하려는 성향이 있다. 하나의 법칙 또는 신의 특정한 선한 인격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시도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도는 일상적인 것에 대해서는 휼륭하게 설명해낸다. 그러나 규범 바깥에 있는 사건들에 대해서는 사각지대를 만들어 낸다. 실재를 설명하지 못하는 세계관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쁀만 아니라 변덕의 부족은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규칙성과 이성에 환원되지 않는 모든 사건은 이성적인 신의 통치를 벗어난 사건이거나, 이성적인 신의 통치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사건이 된다. 비 이성적인 것들을 통제하지 못하는 무력한 신이 되든지, 아니면 비 이성적인 것들을 허락한 비 도덕적인 신이 되든지 양자택일로 몰리게 된다. 즉, 변덕의 부족은 유신론적 세계관의 함락을 의미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변덕의 부족은 신의 자유를 제한한다. 신은 자신이 초기에 설정한 법과 규칙에 얽매이는 존재다. 법과 규칙을 설정한 순간부터, 신은 더 이상 세계를 주관하지 않는다. 자신이 설정한 법과 규칙이 세계를 주관한다. 신이 적극적으로 개입할 여지가 없다. 즉, 세계를 통치하는 신은 신이라는 인격체가 아니라 비인격적인 법과 규칙인 것이다. 신은 자신이 설정한 법과 규칙에 얽매이는 존재이거나, 이 세상에 손을 떼어버린 이신론적인 존재가 되든지 양자택일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사건을 통해서 더 이상 신의 인격을 파악할 수 없다. 왜냐하면 비인격적인 법과 규칙에 의해서 구동되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신의 인격은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다. 신은 비인격적인 존재로 파악되거나, 베일에 가려지게 된다. 결국 인간이 알 수 있는 것은 신이 설정한 법과 규칙일 뿐, 신 그 자체에 대해서 알 수 없게 된다. 신에 대한 계시는 존재하지 않는다. 신이 설정한 법과 규칙에 대한 계시만 존재할 뿐이다. 변덕의 부족은 유신론적 세계관의 함락을 야기할 뿐만 아니라, 신에게서 자유를 박탈한다. 나아가서 신과 인간 사이의 가교를 끊어버리고 만다. 

 

(사진: https://duranno.com/)
(사진: https://duranno.com/)

 

신이 신일 수 있기 위하여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규칙성의 모델이 그려내는 신의 이성적인 인격은 결국 인간의 기준에서 바라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바라보기에 법과 규칙대로 다스리는 존재가 이성적이라고 규정한 것 뿐이다. 신은 인간이 생각하는 합리성의 기준을 벗어나지 못한 존재로 전락한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존재를 신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인간의 합리성이 빚어낸 우상이라고 부르는 것이 합당하다. 인간의 합리성이 상상해낼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인간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신의 변덕 역시 인간적인 기준에서 비쳐진 것이다. 인간의 합리성을 기준으로 해서 바라볼 때,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 그리고 규칙에서 벗어나는 신의 행위들이 변덕으로 비쳐지는 것이다. 어쩌면 신의 변덕은 인간적 기준이 아니라 신의 기준에서는 궁극적인 이성적 통치와 신적인 규칙성에 부합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인간의 눈에만 변덕으로 보이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통치일 수도 있다. 인간의 도덕과 합리성을 넘어선 초합리적인 신의 통치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처럼 인간의 합리성과 규칙에 위배될 때가 있어야만 신은 비로소 신일 수 있다. 신은 인간적인 도덕과 합리성의 범주에서 벗어날 때도 있어야만 신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설정한 법과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변덕을 부릴 수 있어야만 궁극적으로 자유로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떤 것에도 구애 받지 않는 신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인지 범위 안에서 이해되지 않는 행위를 해야만 신이다.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 인간이 파악할 수 있는 규칙성 범주 내에서 모든 것이 설명되는 존재는 신일 수 없다. 초월적인 면을 가지지 못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발적인 결론에 이르게 된다. 변덕(인간의 기준에서 보기에 변덕)이 없으면 신은 신일 수 없다. 변덕이 없는 신은 가장 이상적인 인간 그 이상의 존재일 수 없다.

 

결론: 스토리텔링

    두 주간에 걸쳐서 변덕스러운 신의 모델의 필요성을 살펴보았다. 변덕은 표현이 거칠 뿐, 신의 자유를 의미하는 말이다. 이러한 변덕스러운 신과 그가 일으키는 돌발적인 사건은 스토리텔링에 의해서만 지속될 수 있다. 변덕스러운 신이 일으키는 돌발적이고 임의적인 사건은 과학적, 물리적 설명으로 불가능한 지점이다. 또한 이성적인 신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다. 따라서 과학적, 이성적 설명의 방법이 아닌 새로운 방법론이 등장해야 한다. 과학적, 이성적 설명이 불가능한 지점에 스토리텔링이 들어온다. 서사의 형식으로 돌발적이고 임의적인 선택, 자유로운 결정에 의한 사건을 설명한다. 종교는 서사 없이 존재할 수 없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설명으로 지탱될 수 없는 사상체계라는 것이다. 따라서 변덕스러운 신의 모델은 종교가 지속될 수 있는 장르인 스토리텔링을 위한 공간을 마련한다. 다음과 같은 마지막 문장으로 본고를 마무리하려 한다. 변덕(인간의 기준에서 변덕) 없이는 신도 종교도 존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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