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상원의원이 '아메리칸드림 상징'으로 추천한 파독 광부·간호사의 아들 "젊은이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 주고파…공정·세심한 판사될 것"

(시카고=연합뉴스) 김현 통신원 = "큰 꿈을 갖고 목표를 세워 열심히 노력하면 여러분도 이룰 수 있습니다. 인생은 '직선'으로 그릴 수 없죠.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고. 넘어지더라도 멈추지 말고 다시 도전하세요. 삶은 놀라운 기쁨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시카고 연방법원 집무실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 하는 존 리 판사(시카고=연합뉴스) 김현 통신원 = 존 리 판사가 시카고 연방법원 집무실에서 19일(현지시간) 연합뉴스와 만나 이야기하고 있다. 2022.9.20. chicagorho@yna.co.kr
시카고 연방법원 집무실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 하는 존 리 판사(시카고=연합뉴스) 김현 통신원 = 존 리 판사가 시카고 연방법원 집무실에서 19일(현지시간) 연합뉴스와 만나 이야기하고 있다. 2022.9.20. chicagorho@yna.co.kr

미국 연방 제7 항소법원의 첫 아시아계 판사, 최초의 한국계 판사가 된 존 리(54·한국명 이지훈) 판사는 지난 19(현지시간) 시카고 도심의 덕슨 연방법원 빌딩 집무실에서 연합뉴스와 만나 젊은이들에게 이같이 당부했다.

취임 선서 일주일만인 리 판사는 "중요한 자리에 섰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차세대 특히 젊은 법조인들에게 좋은 롤모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매우 중요하고 뜻깊게 생각한다"며 말문을 열었다.

리 판사는 지난 2012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지명으로 종신직인 연방법원 일리노이 북부지원(시카고 연방법원) 판사에 오른 지 10년 만에 연방 항소법원 판사로 영전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413일 리 판사를 일리노이·위스콘신·인디애나주의 7개 지방법원을 관할하는 제7 항소법원 판사로 지명했고 연방 상원은 법사위 청문회를 거쳐 지난 8일 본회의에서 인준안을 가결했다.

리 판사는 지난 12일 다이앤 사이크스 제7 항소법원장 주재로 취임 선서를 했다. 공식 취임식은 현재 준비 중이며 아직 날짜는 결정되지 않았다.

소감을 묻자 리 판사는 "무척 영광스럽고 감사한 마음"이라며 지명자 바이든 대통령과 추천인 딕 더빈·태미 덕워스 두 일리노이 연방상원의원에게 특별히 감사를 표했다.

그는 "대통령 지명부터 상원 인준까지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인준 확정 후 가족들은 안도하며 기뻐했다""하지만 마무리해야 할 지방법원 일이 너무 많아 한동안 별다른 실감을 못 하고 지냈다. 아내와 둘이 오붓한 저녁 외식을 하는 것으로 축하를 대신했다"고 말했다.

리 판사의 집무실은 시카고 연방법원 21층에서 항소법원 판사들이 쓰는 26층으로 다섯층 더 올라갔다.

그는 마침 인터뷰 다음 날이 집무실 이전일이라며 설레는 마음을 드러내 보이기도 했다.

업무상 가장 크게 달라지는 점에 대해 리 판사는 "재판(trial)을 주재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라며 앞으로는 법정에서 변호인단의 변론, 검찰 진술, 증인 신문을 듣는 일이 드물어지고 법을 해석해 적용하는 심리가 더 많아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10년간 연방 지원 판사로서 다양한 사건들을 다루면서 새로운 영역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어 좋았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다만 특허 관련 분쟁은 1심 법원이 어디든 상관없이 워싱턴DC 연방 항소법원이 맡기 때문에 특허 침해 소송을 다룰 일은 없어졌다고 말했다.

2012년 시카고 연방법원 판사에 취임한 존 리 판사[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2012년 시카고 연방법원 판사에 취임한 존 리 판사[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리 판사가 연방법원 종신 판사에 오르기 전 시카고 대형 로펌에서 특허·지적 재산권·통상규제·반독점 관련 소송 전문 변호사로 활동한 점을 상기하자 "아쉬움은 없다. 다양한 사건을 다루는 것이 더 흥미진진하다"고 답했다.

그는 "공정하고(fair) 세심한(careful) 판사가 되기 위해 노력해왔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이 두 가지를 마음에 새기며 사건 심리에 임할 생각"이라며 "소송 당사자들의 말을 모두 귀 기울여 듣고 양측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했다는 점을 느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사실'에 근거해 판결을 내리는 것이 판사의 의무"라면서 "'법은 무엇인가'를 늘 고민하며 각 사건에 적절한 '''선례'를 제대로 적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최초' 타이틀에 대해서는 "좋은 롤모델이 되고 영감을 줄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한다. 나도 젊은 변호사 시절, 법정에서 소수계 판사를 보기만 해도 힘이 났다""차세대 젊은이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요한 자리에 오른 사람은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사회에 기여할 의무가 있다"면서 "변화를 끌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소망했다.

리 판사는 "꿈을 크게 가져야 한다. 꿈꾸지 않으면 이룰 것이 없다"며 특히 이민자 가정의 젊은이들에게 "미국은 누구에게나 제한 없는 큰 기회가 열려있는 땅, 노력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나라"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살 날이 많다. 실패를 통해 우리는 많은 것들을 배운다""사실 나도 크고 작은 좌절들을 겪으며 성장했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기회가 반드시 다시 찾아온다"고 조언했다.

리 판사는 1960년대 박정희 정부가 한독근로자채용협정을 통해 독일에 광부로 파견한 이선구(83)씨와 간호사 이화자(80)씨의 맏아들로 독일 아헨에서 태어났다. 생후 3개월 무렵 외가가 있는 한국 대전으로 보내져 외할머니 손에 자라다 네 살 때 부모와 함께 시카고로 이민했다.

초기 이민생활은 쉽지 않아 아버지와 어머니가 어린 아들을 집에 혼자 남겨두고 각각 신발공장과 병원으로 출근해야 하기도 했다.

이런 일화와 관련해 리 판사를 연방 판사로 추천한 더빈 상원의원은 "아메리칸드림의 상징이자 미국의 이야기"라고 소개한 바 있다.

시카고 교외 도시에서 초··고교 시절을 보낸 리 판사는 하버드대학(1989년 졸업)을 거쳐 하버드 로스쿨(1992년 졸업)을 졸업하고 법무부 환경천연자원국 소송 전담 변호사로 일했다.

시카고 연방법원 집무실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 하는 존 리 판사(시카고=연합뉴스) 김현 통신원 = 존 리 판사가 시카고 연방법원 집무실에서 연합뉴스와 만나 이야기하고 있다. 2022.9.21. chicagorho@yna.co.kr
시카고 연방법원 집무실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 하는 존 리 판사(시카고=연합뉴스) 김현 통신원 = 존 리 판사가 시카고 연방법원 집무실에서 연합뉴스와 만나 이야기하고 있다. 2022.9.21. chicagorho@yna.co.kr

이후 시카고 대형 로펌 '메이어 브라운', '그리포 앤드 엘든', '프리본 앤드 피터스' 등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다 연방 판사로 발탁됐다.

리 판사는 현재 시카고 교외도시에서 부인 준 리(51·한국명 이윤정·마취과 의사)씨와 살고 있다.

10년 전 연방 지원 판사 취임 당시 중학생이던 딸(24)은 대학원생, 초등학생이던 아들(20)은 대학생이 돼 각각 타주에서 생활하고 있다.

리 판사는 한국에서의 관심에 대해 "감사한 마음뿐이다.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다음 목표를 묻자 그는 "좋은 판사가 되는 것이 변함없는 목표"라고 답했다.

chicagor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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