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교회포럼(대표 권오헌 목사3차 부산포럼 오후 순서가 지난 30일 송도제일교회당에서 계속되는 가운데 김영태 목사의 사회로 마지막 성경주해 순서가 이어졌다.

송영목(고신대 신학과 교수/교목실장)"예수님의 치유와 복음병원: 성경의 치유에 나타난 공공-선교적 특성"이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발제하는 송영목 교수
발제하는 송영목 교수

송 교수는 "의료선교는 개혁주의 선교의 특장인 영역선교의 일환이다."라며 "치유 받은 공동체인 교회는 성령의 능력을 입어 세상을 치유하는 공동체(healing community)로 자리매김해야 한다(참고. 2:3-4)"고 전했다. 다음은 발제문 전문. 

 

예수님의 치유와 복음병원: 성경의 치유에 나타난 공공-선교적 특성

송영목(고신대 신학과 교수/교목실장)

 

들어가면서

 

영국인이 생각하는 중산층의 기준에 불의에 저항하고 약자를 돕는 것이 해당하지만, 한국인의 기준은 철저히 경제력인데, 부채 없는 30평 아파트, 2,000cc급 자가용과 1억 원 이상의 예금 보유 등이다.1) 한국인처럼 탐욕이라는 우상숭배에 빠져 경쟁과 성과에 목을 매는 피로사회일수록 질병과 중독이 많다. 이런 차제에 예술, 독서, 가족, 인지, 음식, 성경 드라마를 통한 갖가지 새로운 치료 기법이 계발 및 발전되고 있다.2) 질병과 건강은 인류의 보편 관심인데, 의료 행위를 통하여 복음의 문을 여는 행위인 의료선교는 매우 효율적이다.3) 범죄로 깨어진 세상에서 질병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므로, 치유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결과이다. 그런데 의술과 치료가 발전할수록 치료에 있어 종교의 몫과 자리는 줄어든다. 하지만 질병을 초래는 영적-정서적 요인은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통전적 치유 사역의 중요성을 상기한다.4) 그리고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으로써 전인적으로 치유될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웰빙과 샬롬을 누려야 할 존재이다.5)

삼위 하나님의 직무 내용 설명서’(job description)와 같은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에 있어 선교를 누가, 어떤 범위와 영역에서, 그리고 무슨 일을 수행하는가가 중요하다.6) 복음과 하나님 나라가 공적이므로, 그것을 탐구하는 신학도 공적인 현장의 상황과 통찰을 반영하고 적용하여 그리스도인이 정의로운 사회의 웰빙을 건설하도록 안내해야 마땅하다.7) 만유이신 예수님은 하늘과 땅과 바다의 만물들과 화목하기를 원하시는데, 이런 선교에 교회는 플랜 A’로 활용된다(1:22-23). 여기서 화목은 치유를 동반하기에 교회는 의료 영역을 선교에 포기할 수 없다. 따라서 의료선교는 개혁주의 선교의 특장(特長)인 영역선교의 일환이다.8)

이 글은 성경의 치유에 나타난 다양한 차원을 살핀 후, 치유의 공공-선교적 의미를 탐구한다. 마지막으로 교회와 고신대학교 복음병원과 같은 기독교 의료 기관이 추구해야 할 공공-선교적 방향을 모색해 본다.

 

1. 구약성경에 나타난 치유의 다차원적 의미

 

하나님은 사람의 영과 육을 창조하셔서 사회관계 안에 살도록 두셨으므로, 그분의 관심도 영육과 사회 전체를 아우른다. 이집트제국과 바벨론제국에서 의료 체계가 발달 되었지만, 그 당시 이스라엘에서 전문 의료인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았다(참고. 50:2; 대하 16:12; 13:4; 8:22). 혹자는 성경에서 첫 치유 사건을 하나님께서 범죄한 아담 부부에게 가죽옷을 입혀주셔서 그들의 정신적 상처를 고치신 것으로 본다(3:21).9) 하지만 하나님께서 하와를 만드시려고 아담의 갈비뼈를 빼내시고, 그 부위가 살로 채워져 아문 것이다(2:21). 이것은 하나님께서 종말에 행하실 치유를 시초적으로 보여주는 밑그림과 같다(참고. 21:4; 22:2).10) 창세기의 전체 족장 내러티브에서 조망해 본다면, “‘불임뿐 아니라 창세기의 창조 기사에 이어 소개되는 족장 기사에서의 길 떠남갈등회복도 창조 기사에서 발견되는 치료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다.”11)

기도 응답으로써 치유가 종종 발생한다(20:17; 12:9-16; 16:41-50; 왕하 20:7; 대하 30:20; 6:3; 41:4).12) 따라서 치유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사역이자 기도 응답의 선물이다(참고. 시락 38:1-14). 질병은 사람의 영적 상태와 밀접한데, 치유는 하나님의 소관이다(32:39). 하나님은 교육 차원에서 치유가 필요한 질병을 허락하시거나 주시기도 한다(19:22).13)

그런데 기독교 신학은 치유를 구원의 하위 범주에 둠으로써, 이 둘의 상호 관련성을 밝히려고 시도해 왔다. 그 결과 비본질적인 치유는 본질적인 구출 작전/구원/구원자의 권위를 가리키는 표지(sign) 정도로 이해해 왔다(107:19-20).14) 치유는 구원을 얻는 한 가지 방법이지만, 치료와 치유 자체로 의미가 있으며 인간 존재에 있어 필수 요소와 같다.15)

출애굽기 15:26치유에 대한 하나님의 대헌장과 같다(참고. 5:17). 구약에 86회 나타나는 단어 치유하다’(רָפָא)는 출애굽하여 신실하게 행하는 언약 백성에게 선물이자 복이다(103:3; 147:3; 58:6-9; 4:2).16) 이와 달리, 종종 질병은 이스라엘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다(12:8-10; 28:20-22; 삼상 12:14-18; 대하 16:10-12; 26:16-21; 1:6; 24:1-13; 38:16; 57:19; 8:22; 14:19; 17:14; 30:12-17; 33:6; 51:8-9). 사람의 범죄가 초래한 이런 상처와 질병은 누가 치료하시는가? 바로 야웨 라파이시다. 하나님은 치료를 위해 여러 수단을 동원하신다. 음악치료의 예는 다윗이 연주할 때 사울이 치유된 경우이지만(삼상 16:14-23), 이런 축귀를 통한 치유는 음악 자체의 힘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발생한다. 야웨 라파의 대행자인 선지자 엘리사는 아람의 나아만 장군을 치유했다(왕하 4-5). 나아만이 나병에서 치유 받은 후 하나님께만 제사 드리겠다고 고백한 것은 치유와 새로운 삶을 살도록 만드는 선교의 열매가 어우르진 증거로 보인다(왕하 5:15-17).17) 그러나 엘리사의 종 게하시의 탐욕은 치유가 하나님의 은혜임을 무시하는 악한 처사였다(왕하 5:20-27). 야웨는 이방인도 치유하신다(20:17; 19:1-22).

에스겔 34:4는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병든 자를 치유하지 않음을 책망한다. 언약 백성을 지도하던 사람들은 환자가 자신의 질병을 야웨 라파에게 가지고 오도록 만들어야 했다, 이런 맥락에서 소선지서들의 중요한 공통 주제 중 하나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종말에 죄 용서와 치유를 주셔서 의의 열매를 맺는 것이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14:4; 4:2).

 

호세아 2:16-23의 문맥에서 볼 때, 호세아 14:4-8의 치료 모티프는 하나님이 죄 용서함을 통해 새로운 씨(공의와 인애와 의)를 뿌려 자신의 백성을 새롭게 창조시키고, 그 씨에 합당한 공의와 인애와 의의 열매를 맺도록 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 이런 신학적 주제는 말라기 4:2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을 위한 치료에서도 다시 엿볼 수 있다. 종말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치료는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 이것은 소선지서의 종말 사상이 죄 용서라는 치료를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공의와 인애, 그리고 의의 모습으로 백성을 만드는 데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18)

 

하나님은 이런 종말론적 치유를 어떻게 수행하시는가? 이사야는 야웨께서 자신의 종 메시아를 통해 자기 백성을 치유하실 것을 예고했다(35:5; 53:5; 참고. 11:2-5). 그리고 성령은 메시아와 더불어 하나님의 백성을 치유하시고 위로하신다(61:1-2). 그런데 장애인은 육체적인 치유나 회복이 없이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온전함을 누릴 수 있다(참고. 56:3).19) 이것은 장애인을 회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쿰란공동체의 사상과 다르다.

구약 시대에 지연적 치유와 기적적 치유는 구분되지 않았고, 모두 하나님의 소관이었다. 이 둘의 구분은 계몽주의의 산물이다.20) 구속사가 전진하면 치유 개념도 발전된다. 치유는 하나님께서 창조의 상태로 돌이키셔서 하나님 앞에서 살도록 회복하시는 것이며, 메시아의 대속적 고난을 통한 치유는 가장 치명적 상태도 해결한다(53:5).21)

 

2. 신약성경에 나타난 치유의 다차원적 의미

 

신약성경은 건강이나 힘과 관련하여 13개 용어를 소개하지만, ‘질병과 약함과 관련하여 43개 용어나 언급하기에, 치료가 필요한 다양한 질병을 강조한다.22) 복음서에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神癒, divine healing)20여 차례에 걸친 축귀를 포함하여 총 72회 나타난다(중복된 치유를 제외하면 41). 치유 보도는 예수님의 메시아로서의 정체성과 사명을 보여주는데, 복음서 전체 분량에서 20%나 차지한다(특히 기적장인 마 8-9).23) AD 1세기 치유자들과 비교할 때, 예수님은 메시아로서 지리-문화-사회-관습-종교적 장벽을 넘어 치유하심으로써 복음서의 주요 주제인 하나님 나라의 역동적인 확장과 연결하시는 독특한 특징을 보인다.24) 이런 치유를 패러디하는 사탄적 치유도 간과할 수 없다(12:24; 13:22; 8:9; 고후 11:14).

스스로 천국이신 예수님은 공적으로 복음을 가르치시고 전파하시며, 병자를 치유하셨다(θεραπεω, 4:23; 17:21).25) 구약의 예언을 따라 수행된 이 세 가지 사역은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한 착한 일이다(10:38). 예수님은 병든 자의 의사(ατρς, Christus medicus)로서 하나님 나라 건설을 목표로 하여, 긍휼과 사랑으로 인간의 전인적 필요를 채우시는 공감적 돌봄 사역을 펼치셨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돌봄과 치유의 대상이 주님의 제자가 되어 다른 사람을 돌보도록 가르치셨다(14:14; 8:18-22; 9:9-13; 1:41; 2:17; 참고. 4:14).26) 요세푸스는 유대고대사18:63-64에서 예수님을 현인이자 놀라운 일들을 행하는 분이라고 소개한다(참고. 5:26). 이를 오늘날에 적용하면, 빈자와 같은 약자들이 단지 도움을 받는 데서 그치지 않고 치료를 통해 전인적 변화를 경험하도록 교회교육/기독교교육, 신학, 그리고 기독교보건/교회복지 간의 협업이 필요하다.27) 예수님의 3대 사역을 따라서 오늘날도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육체의 치유가 동반되면 더 효율적이다. 따라서 의료선교는 사람의 영혼보다는 육체에 더 관심을 두기에 성경적 치유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면 영육 이원론에 빠지게 된다(고전 11:1; 살전 1:6; 5:23).28)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선물인 의술로써 치유하여 회복시킨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새 창조를 일으키시는 선물이다.29)

신약성경의 가장 중요한 치유는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치유 사역이다. 이를 세분화하면 아래와 같다.30)

가르치시며 병을 고치심(4:23; 9:11).

손을 대시며 말씀으로 고치심(8:1-4, 1:41; 6:56; 7:14).

환자의 손을 만져 고치심(8:14-15).

손으로 환처를 만져 고치심(22:50-51).

말씀으로 고치심(8:16; 12:9-13; 15:21-28; 20:29-34; 1:25; 3:5; 7:29; 10:51-52; 5:20; 6:10; 17:14; 18:41-42; 22:50-51; 4:50; 5:1-9; 11:43-44).

손을 잡아 일으키심(9:18-25; 1:31; 5:41).

눈을 만져 명령하심으로 고치심(9:28-31).

옷 가에라도 손대기를 간구하는 자들에게 허락하심으로 고치심(14:35-36).

악령을 쫓아내어 고치심(4:24; 8:28-34; 9:32-33; 12:22-37; 15:29-31; 17:14-20; 1:23-26, 34, 39; 5:1-20; 7:24-30; 9:25 ).

안수로 고치심(6:5; 4:40; 13:12-13).

손가락을 양쪽 귀에 넣고 침을 뱉어 혀에 손을 대시며 명령하심으로 고치심(7:32-35).

눈에 침을 뱉으시며 안수하셔서 고치심(8:23).31)

능력이 나와서 고치심(5:30).

땅에 침을 뱉어 진흙으로 이겨 눈에 발라 고치심(9:6).

 

마가와 누가가 예수님의 치유를 이해한 방식을 비교하면 아래와 같다. (1) 마가와 누가는 예수님께서 연민을 가지고 도움을 요청하던 병자를 치유하셨는데, 치유는 전도와 맞물린다고 밝힌다(1:38-39; 4:38-43). (2) 마가는 누가보다 주님의 치유와 가르침을 더 쉽게 분리하는데, 누가는 치유를 더 자주 언급하면서 가르침과 더 긴밀히 연결한다(10:13; 13:32). (3) 누가는 마가보다 더 자주 축귀를 언급하면서, 치유와 축귀의 구분을 허문다. (4) 마가와 누가는 예수님의 치유가 주님의 신성과 관련되지만, 그것을 증명하기 위할 목적은 아니라고 밝히는 점에서 요한복음과 다르다. (4) 누가는 예수님의 치유가 구약의 메시아 예언의 성취라는 사실과 치유의 사회적 회복을 마가보다 더 강조한다(7:18-23). (5) 마가가 예수님의 치유의 능력을 주님께서 약함 가운데 죽으심과 대조한다면, 누가는 치유를 하나님의 능력의 증거이자 예수님의 부활에 나타난 성부의 영광과도 결부한다.32)

예수님의 치유 사역에 세 가지 사실에 더 주목해보면, 첫째, 축귀와 죽은 자의 부활은 하나님 나라를 강력하게 도래시키는 메시아의 치유 사역이었다. 둘째, 예수님께서 말씀만으로 치유하신 경우인 베데스다 연못가에서의 38년 된 병자 치유는 특이하게도 불신자가 치유 받은 표적이다(5:1-9). 이를 통해 예수님은 치유의 공간(베데스다 연못 안), 시간(연못 표면 물결이 요동칠 때), 범위의 한계(먼저 입수하는 한 사람)를 제거하셨다.33) 이 표적은 신약 교회가 치유의 범위에 있어 구약보다 더 확장된 사역을 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 셋째, 예수님의 나병 환자의 치유는 전통적인 정결과 경계선을 허물고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위해 사회 공동체성도 회복했다(1:40-45).

 

예수님이 행하신 놀라운 일 혹은 기적은 그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표적이었다. 그가 행한 표적을 통해 엿볼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특징은 죄 용서(2:5, 10; 10:45; 14:22-24), 악령 축출(1:25-26, 34; 3:11; 5;1-20; 9:14-29 ), 사람의 몸 기능의 회복(3:5; 5:25-34, 35-43), 사회적 관계의 회복(1:31; 2:11; 5:34, 43), 그리고 혼돈의 자연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들을 포함하는 총체적 회복(4:35, 41; 6:45-52)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34)

 

예수님의 치유 사역은 그 당시 그레코-로마세계의 치유와 비교할 때 몇 가지 면에서 독특하다. (1) BC 1세기 그레코-로마세계에는 치유에 대한 불신감이 대중 사이에 팽배했다. 특히 AD 1세기에는 상류층을 중심으로 기적적인 치유를 매우 불신했지만, 예수님(과 제자들)의 치유는 전도와 기도와 어우러져 대중의 큰 호응을 이끌었다(참고. 16:20; 5:14-15; 집회서 38:9; mBer 5:5의 병에 대한 축복).35) (2) 로마제국에서 치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나 쎄라피스에게서 보듯이, 신전의 사제가 치유를 담당했기에 의사의 의료 행위와 정확하게 구분되지 않았다. 그리고 히포크라테스를 따르는 의사들은 아스클레피오스를 후견신으로 섬겼다. 신전 제사장과 의사는 치료를 위해 협업했지만, 비체계적인 치료로 인해 치유 여부는 불확실했다.36) 환자는 아스클레피오스에게 제물을 바치고 신전에서 잠을 자기도 했는데, 초기 기독교에도 치료를 열망하는 환자가 성인의 무덤이 있는 교회당에서 자기도 했다.37) 하지만 예수님의 치유는 미신이나 성전의 제사장과의 협업과 무관했기에, 주님은 새로운 아스클레피오스라 불릴 수 없다. (3) 통전적 치유자 예수님의 보혈 곧 그분이 주시는 사죄의 은총은 치유의 근본 원인이다(9:6; 벧전 2:24). 하지만 그레코-로마세계에서 신비 제의 가운데서 심지어 가장 극적인 타우로볼리움(taurobolium, 황소의 피에 목욕하는 것)도 어떤 내세의 통행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의 권력, 정력, 풍성한 생활을 주고 앞으로 닥칠지 모르는 모든 악으로부터 보호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혜택은 오직 20년 동안만 효력이 있었다.”38) (4) 예수님은 모든 병을 고치셨다(4:23-25; 8:16-18; 9:35). 이것은 야웨의 치유 사역을 계승하셔서 구약의 메시아 예언을 성취하신 것으로서, 하나님 나라와 샬롬을 현시하려는 선교 목적이다(10:13; 살전 5:23).39) 예수님의 치료는 육체의 회복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샬롬 즉 평강으로 이어진다(5:34; 1:79; 7:39, 50; 8:48). 그러나 그레코-로마세계에서 치유의 목적은 구원 곧 죽음이나 고통에서 벗어나는 세속적 복과 번영이었다.40)

위의 네 특징 가운데 (4)와 관련하여, 요한복음에서 치유를 통하여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 및 메시아임을 증명하기에 치유 사역은 표적에 해당한다(4:43-54; 5:1-9; 9; 11:1-44; 참고. 8:16-17; 7:20-22). 종종 범죄가 질병을 초래하기에, 치유에서 죄 해결이 중요하다(2:1-12; 5:14; 참고. 6). 예수님은 질병의 영적 원인에 주목하셨고, 전인 구원을 위해 긍휼을 베푸신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치유에는 구속사적 의미와 관계의 회복이 강하게 나타난다.41) 요한복음에서 모든 치유 표적 기사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들려질 것을 예언한 구절(3:14-15)과 실제 그렇게 된 것(19:34) 사이에 위치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치유 표적이 십자가 사역 속에 감싸여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42) 치유의 이러한 구속사적 의미는 널리 전파되어 적용되어야 마땅하다. 따라서 거라사의 광인 치유와 나사로의 부활에서 보듯이, 치유는 구원의 복음이 전파되는 결과를 가져왔다(8:26-39; 4:53; 11:45).

나사렛 회당 설교(4:18-19)와 그 이후의 치유 보도는 천국과 구원의 복음을 설명한다(4:39; 참고. 10:38).43) 예수님의 치유는 은혜의 해를 실행하는 희년 사역이다(61:2). 마가복음에 치유는 구원’(σζω) 관련 용어로 6회 나타나는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종말론적으로 총체적 구원을 주시는 분으로 소개한다(3:4; 5:23, 28, 34; 6:56; 10:52).44) 다시 말해, 예수님은 치료를 통해 비이성적 생물학적 목숨(βος, 12:44), 인간에게 있는 이성적 목숨(ψυχ, 3:4), 그리고 그리스도인에게 있는 영생(ζω, 9:43) 이 모든 생명을 회복하신다.45) 이를 위해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ψυχ)을 버리셨다. 이 대목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와 구원 및 생명의 상관관계가 분명히 드러난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삶의 의미가 회복되어 사회의 온전한 구성원으로 복귀하는 것이야말로 예수의 치유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사회적 의미가 결여된 예수의 치유에 대한 해석은 불완전한 것이다. 예수는 사회 병리적 현상을 치유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데 힘썼다. 신약성서의 많은 사례가 치유 이후의 사회적 회복을 언급하는데, 장애인들이 치유 받아 온전하게 되어 사회와 공동체의 일원으로 당당히 서게 하는 것에서 확인된다.46)

 

교회는 십자가를 통한 치유와 화해라는 원칙에 입각하여 치유공동체(healing community)를 추구하며, 수직 및 수평적 화해의 공동체를 지향해야 한다(4:14-19; 2:12-20; 1:20).47)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세상을 치유하여 천국을 확장해야 한다(16:15-18; 10:8-9; 11:15; 22:2). 예수님의 치유 사역은 교회의 선교 사역으로 전수된다(10:1; 3:6). 사도행전의 치유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48)

베드로와 요한은 성령이 충만한 상태로 나면서부터 장애인을 일으킴(3:1-10).

사도의 손으로 민간에 (성령의) 표적과 기사가 많이 나타남(5:12-15).

솔로몬 행각에서 병든 사람과 더러운 악령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들이 나음을 얻음(5:16).

성령과 지혜와 은혜와 권능이 충만한 스데반이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함(6:3-8).

빌립 집사의 치유 사역(8:5-8).

제자 아나니아의 치유 사역(9:17-18).

베드로의 룻다에서의 치유 사역(9:32-35).

베드로의 욥바에서의 치유 사역(9:36-42).

바울의 바보에서의 선교와 치유 사역(13:4-12).

바울과 바나바의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복음 전파와 선교를 위한 치유 사역(14:1-7, 8-10).

바울의 빌립보, 에베소, 드로아, 멜리데에서 선교와 치유 사역(16:16-18; 19:10-12; 20:7-12; 28:1-10).

 

위의 치유 사례를 염두에 두고, 오성종의 아래 진술을 들어보자.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지체들에게 성령의 능력을 나타내는 은사들이 주어지는데, 그 중 치유와 축사의 은사가 있다. 이 은사들은 사도나 목회자의 은사와 구별된 것이며 교회공동체에게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들의 메시지의 신적 신임을 위해 주신 것이었으므로 지금은 중단되었다고 보는 은사중단론은 근거가 없다. ...... 신약의 서신들에는 질병과 치유에 대한 언급이 드물게 나타난다. 서신의 서두에서 기원하였던 평강은 히브리어 샬롬의 의미로 쓰인 말로 형통과 건강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편지 중 문안이나 기도나 권면 중 건강이나 치유에 대한 언급이 적은 것은 사실이다. 이는 세상에서의 건강과 형통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세속적 가치관을 따르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워진 신분에 상응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영적인 싸움을 싸우면서 성령을 따라 성화를 이뤄가는 종말론적인 삶을 살라고 권면하는 내용이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건강’/‘번영복음은 복음의 왜곡이며 남용이다.49)

 

오성종이 은사지속론을 지지하고 치유와 관련하여 번영복음을 반대하는 것은 정당한가? 오늘날의 신유는 사도의 메시지의 신임성을 증명하기 위함인가? 다시 말해, 지금도 사도가 전한 복음은 치유나 축사로써 증명되어야 하는가? 신유 이외에 다른 증명 방법은 없는가? 더 근본적으로 사도의 메시지의 정당성은 지금도 증명되어야 하는가? 치유의 은사는 지속되는가?(고전 12:9).50) 이런 꼬리를 무는 질문들에 긍정적으로 답하기 어렵다. 그러나 신약 서신서들에 샬롬은 건강을 포함하지만, 건강이 최고의 가치는 아니며 건강이 없더라도 성도의 정체성에 따라 성화를 이루어 갈 수 있다는 주장은 정당하다. 그런데 어원상 샬롬은 온전한 상태를 가리키기에,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의 부활의 은덕을 선취하는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51)

베드로의 전도와 치유는 복음이 전파되는 긍정적 결과를 가져왔다(3:2-4:4; 9:32-35, 36-42).52) 마찬가지로 바울의 사역에 전도와 치유는 함께 했고, 그는 자신의 사도성을 오래 참음과 기적과 표적과 능력에서 찾았다(19:11-20; 고후 12:12). 신약 교회는 치유를 위한 기도를 병자 자신 그리고 장로나 목회자와 더불어 한다(5:14-16). 그리고 고통을 치유하신 긍휼의 예수님과 연합된 교회라면 참된 선교적 경건을 실천하기 위해 우는 자와 함께 울어야 한다(14:14; 10:33; 12:15; 고후 5:14; 1:27).53)

AD 1세기에 치유를 위하여 협력했던 종교와 의학은 쌍둥이 과목’(twin disciplines)이라 불릴만하며, 지중해 연안 세계에서 기독교는 치유의 종교혹은 치유 운동이라 불릴만했다.54) 이 사실은 이른바 역사적 예수 탐구의 주제에 맞닿는다. 팔레스타인에서 역사 속에서 사역하신 예수님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은 용한 의사인가? 아니면 예수님은 개인과 사회를 점진적으로 변혁시키신 공공 건강 전문가’(public health expert)인가?55) 예수님이 구약에서 예언된 주,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제쳐두고 치유자라고 간주한다면, 눈 감은 채 코끼리의 코만 만져보고 큰 그림을 그리는 격이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사람의 영혼만 치유하시지 않고 악한 영을 제압하시고 육체를 치유하시며, 더 나아가 가족 관계 및 사회적 관계도 고치셨다(7:11-17; 9:37-45; 17:11-19).56) 그런데 사도행전과 달리 바울서신에서 바울은 기적적으로 치료하는 사람으로 거의 언급이 안 된다. 이유는 무엇인가? 교회 밖의 미신적이고 이교적인 치유를 반대하기 위함인지, 아니면 바울이 치유를 통해 선교했지만 그것은 그의 서신에서 주요 논점이 아니었든지, 복음서와 사도행전과 달리 말씀 위주의 신앙생활을 강조하기 위함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57) 아마도 바울서신은 약한 가운데 주님의 강함이 나타남을 시종일관 강조하려는 의도 때문에, 바울이나 다른 사도의 치유 사역을 거의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후 12:9-10).58)

치유의 미래 종말론적 특성은 교회에게 위로가 된다. 질병과 썩음에 종노릇하는 것은 옛 질서의 한 부분인데 특히 범죄가 긴장을 유발한다면(8:21; 참고. 32; 38; 88), 기도하는 어린양의 종말론적 신부에게 더 이상 사망, 애곡 그리고 아픈 것이 없을 것이다(고전 15:54; 21:4; 참고. 91:5-6; 13-16).59)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대적하던 자들은 부귀영화가 사라지면 고통과 애곡에 빠지지만(18:15), 예수님은 자기 신부를 위로하시고 치료하신다(21:4).60) 그리고 범죄와 저주에 빠진 열방을 치유하는 생명수 강과 생명나무 잎들은 교회의 치유 사역이 성령의 능력으로 온 세상에 펼쳐져야 함을 가르친다(22:2-3; 참고. 14:11; 7:37).61) 계시록 22:2의 회개한 열방이 경험하는 건강한 시나리오’(healthy scenario)에 닮긴 치유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가 회복되는 영적 치유는 물론 육체의 치유를 포함하기에 굶주림과 목마름도 없을 것이다.62) 그리스도 사건에 근거하여 성령님은 교회와 지면을 새롭게 하시는 치유와 화해와 갱신과 선교의 영이시다(104:30; 2:17 이하; 고후 3:17 이하; 5:6).63) 그렇다면 치유는 교회의 선교에 있어 부수적인가, 아니면 본질적 차원인가?64) 지역 교회가 육신의 질병을 치유하는 것을 주요 사역으로 간주하지 않지만, 치유를 위해 중요한 요소인 믿음을 전도로 심도록 애써야 한다. 그리고 교회의 보건의료 전문가들을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

 

3. 치유 사역의 공공선교적 특성

 

선교에서 말씀의 우선성은 늘 견지되어야 하므로, 치료는 복음의 선포를 위한 수단이다.65) 코로나19 시대에 공공의료서비스를 강화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되었는데, 아쉽게도 의료 영역에서 안정적인 공동선을 확보할 수 있었던 공공의대 설립이 논의에 그쳤다. 그리스도인 개인의 치유를 넘어, 공적이면서도 선교적인 치유를 위한 노력은 중요하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님의 역사로써 구원의 은혜와 사랑으로 전쟁과 경제 불평등 그리고 인종 혐오와 같은 열국의 상처를 치유하는 교회의 선교가 필요하다(22:2).66) 무엇보다 성육신적 성령론은 하나님의 구속을 기다리며 신음하는 생태의 정의와 치유를 위한 성령론적 치유신학에 중요한데, 교회는 이런 성령의 에토스를 공유하여 선교해야 한다(8:18-30).67)

교회의 치유 사역은 영적 특성에 특화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경건주의자들의 치료에 대한 논의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경건주의자들은 의사의 치료를 존중하면서도 의사이신 예수님께 드리는 합심 기도가 환자의 영혼의 건강을 위해 유익하다고 보았다(참고. 집회서 38:1-7).

 

경건주의 저작들은 질병을 눈먼 운명이라거나 우연을 통해 도래하는 것이라는 그릇된 입장에 반대해서 언제나 질병 가운데는 하나님의 손이 관찰된다고 주장했다. ...... 그분의 보혈은 구원과 치료를 위한 기적의 치료제가 된다. 질병과 죄의 재앙이 동일시된 것처럼, 보혈()-신비주의는 영혼의 의사이신 그리스도를 표현하는 경건주의의 핵심 주제가 되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죄인들에게 보내신 의사요, 치료제인 동시에 그분의 상흔은 모든 질병의 약국이자 치료의 원천이다.68)

 

교회는 환자 개인의 치유나 영적 돌봄을 넘어서야 한다. 교회는 공공신학에 기반하여 하나님 나라의 샬롬이 도래하는 건강 도시’(사회와 자연적 환경 등을 포괄하는 전인적 웰빙을 누리는 도시)를 형성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1:18-20).69) 그러나 세계교회협의회(WCC)는 하나님의 선교에서 치유와 화해를 매우 강조하지만, 탈식민주의 관점에서 논하기에 사회복음의 요소를 여전히 견지한다.70) 하지만 진정한 치유와 화해에 있어, 성부의 사랑과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 그리고 성령님의 새롭게 하심이 핵심 사항이다(고후 5:18).71)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성만찬 예배를 통하여 화해와 치유를 경험해야만 예전 이후의 예전’(liturgy after liturgy)이라는 선교가 가능하다.72)

 

나오면서

 

교회의 감동력과 영향력 그리고 미래는 생태와 사회 속에서 활동하는 사람의 영과 육을 어떻게 치료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73) 하나님의 은혜로써 치유 받은 선교적 교회는 세상 속에서 은혜로 임하는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어야 한다(10:8). 치유 선교의 목표는 새 피조물이 예수님의 새 창조 사역 곧 사망이나 애통해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없는 상태를 맛보도록 돕는 것이다(21:4-5).74) 아래에서 교회 및 기독교병원의 치유 사역을 위해 실제적 방향을 제안해 본다.

(1) 치유 받은 공동체인 교회는 성령의 능력을 입어 세상을 치유하는 공동체(healing community)로 자리매김해야 한다(참고. 2:3-4). 지역교회는 성경적 건강 교육과 생물-의학 윤리를 가르쳐야 하고, 특히 사탄과 죽음이라는 질병을 초래하는 영적 측면을 인지하고 대처해야 한다. 치유의 방법은 그리스도 안에서 경험하는 성령의 능력이며, 이때 복음과 기도와 긍휼의 사역을 간과할 수 없다. 성산 장기려가 남긴 명언처럼, 환자는 구약과 신약도 복용해야 한다.

(2) 치유의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선교이다. 다시 말해, 선교지향적 기독교 가치를 따라, ‘소마-프쉬케를 회복하여 조에를 얻도록 해야 한다. 이를 하여 중요한 접촉점은 교회가 돌보는 공동체가 되어 사회의 다양한 약자를 섬기면서 공동선을 추구하는 것이다.75)

(3) 교회는 보건 서비스와 의료 기관과 분리되어 있기에, 교회는 치료 사역을 의료 기관에 전적으로 외주화(outsourcing)하고 있지 않는가?76) 건강한 농어산촌 및 도시의 구현과 통전적 구원과 치유를 위해 지역교회는 기독교 병원 및 단체와 협업하여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

(4) 일부 선교지에 설립된 기독교 병원은 외국 선교단체의 후원으로부터 자립하기 위해 진료비를 인상하다 보니, 빈자가 의료서비스를 누리기 어렵게 되자 성경적 정의가 문제로 대두되었다.77) 의료 기관을 운영하되 누구나 공평하게 접근이 가능한 공공의료의 정의를 어떻게 충족할 수 있는가? 재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사람의 가치에 기반한 접근이 필요하다.78)

(5) 치유 신학(healing theology)은 교회가 주도하는 치유 선교(healing mission)와 기독교 기관이 수행하는 의료선교(medical mission)에 기독교 신앙이라는 맥락에서 성경적 건강의 정의와 치료의 목적 등에 관한 통찰을 제시해야 한다.79) 성경에서 질병의 원인을 찾을 때, 생물-의학적 요인은 물론 사회-경제-영적 정의와 평화가 왜곡되거나 결핍하여 기인한 경우가 더 많다면, 건강은 한 개인에게 질병이 없는 상태를 넘어 하나님의 () 창조의 원리에 따라 육체적-사회적-경제적-영적 웰빙이 어우러지는 역동적 상태이다.80) 범위를 좁혀, 선교적 교회는 성경의 화해와 치유의 내러티브로부터 피로사회에 만연한 트라우마, 우울, 슬픔, 분노를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

(6) 기독교/교회의 의료 기관은 선교적 사명을 달성하기 위해, 재정 우선의 경영적 사고를 극복하고, 전인 치유를 위한 전문적인 인재를 양성하여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기독교 병원이 우리 사회의 일반 병원에서 난무하는 탈세와 부적절한 의료서비스의 제공, 부당한 의료비 청구 등을 근본적으로 일소하고 이 사회의 존재해야 할 가장 이상적 의료 기관으로서의 역할과 기능을 다함으로써 이 사회의 빛과 소금된 역할을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써 우리 사회의 복음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전파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81) 이를 위해, 기독교 선교병원의 원목실의 사랑의 수고와 복음 전도가 중요하다. 그리고 재정과 인력을 갖춘 병원 인근의 지역 교회는 원목실 사역에 동참하여 환자가 퇴원 후에 신앙을 유지하도록 협력해야 한다.82) 또한 수익은 교육과 구제와 선교를 위해 다시 투자해야 한다.

(7) 선교적 교회는 그리스도인을 의료 영역에 파견하여, 비록 잠정적이고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통치의 표지인 치유와 자유와 온전함과 화해를 보여주는 사역을 감당하도록 해야 한다(6:8; 참고. BAM).83) 치유하는 선교적(therapeutic-missional) 교회의 사역은 창조 세계 전체(. 생태적 관심), 인생 전체(종교, 문화, 사회, 경제, 사회), 그리고 인간 전체(영과 육)를 아우른다.84) 선교적 교회가 지구 가열화로 대변되는 기후 변화가 초래하는 다양한 질병에 대처하려면, 정부, 비정부기관 그리고 크리스천 전문가들의 협업은 필수이다.85)

(8) 특정 국가의 건강이 아니라 글로벌 건강(global health)을 추구하기 위해 세계의 보편교회는 단기-중기-장기적으로 협력해야 한다.86) 코로나19는 세계의 의료 격차를 노출했고, 지구촌의 백신 보급과 방역에 협력이 중요함을 인식시켰다.

성장지상주의에 매몰되는 교회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생존과 세속적 경영을 우선순위에 둔 자칭 기독교(미션)대학과 기독병원은 정체성의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다. 이런 위기는 구성원들이 하나님 나라 구현을 위해 파송 받았다는 선교사적 직업 소명 마인드를 가지고 성경적 세계관과 신앙과 선교 지향성을 회복할 때만 가능하다.87) 예장 고신은 선교적 교회의 정체성과 사명을 인식하고 능력을 갖추기 전에 기독교(미션)대학과 기독교 병원의 덩치를 키우는 데 열중하여 현재 난관에 부딪힌 것은 아닌지 진솔하게 평가하고 가능한 해결책을 모색하고 실행해야 하지 않는가?88) 본 연구는 선교적 교회’, ‘복음과 신앙의 활력이 회복된 기독교대학그리고 기독교 선교병원으로 자리매김하여, 상생과 협력하는 것이 해답이라고 제안한다. 교회와 학교와 병원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남은 자로서 선교적 노력과 헌신을 아끼지 않은 구성원들을 기억하셔서 지금까지 보존해 오셨고, 그렇게 하실 것이다.

 

▼미주

1) https://blog.naver.com/china-hao/222818808227 (202288일 접속).

2) 구약 이스라엘의 음식법(kashrut)에 기반하여 성경적 먹거리를 통한 치유는 황금주, “성경 시대의 음식과 관련하여 치유 선교의 도구로서 푸드테라피의 필요성 고찰,” 선교신학61 (2021), 242-66을 보라. 그러나 구약과 신약의 음식의 불연속성 및 신구약 중첩기를 고려해야 한다(7:19).

3) 1883년에 호레이스 알렌의 입국 이래, 조선에서 활동한 해외 선교사 중에 약 4분의 1은 의료선교사였다. 선교사 존 로스와 더불어 성경을 한글로 번역한 서상륜(d. 1926)도 의료선교의 혜택을 입었다. 그리고 1920년대 중국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의 절반이 의료선교의 혜택을 받았다. 안승호, “지역교회와의 협력을 통한 의료 선교 활성화 방향,” 신학과 목회40 (2013), 244, 252.

4) 바울은 치유되지 않은 육체의 질병에도 불구하고, 주님과 함께 거할 날을 열망했다(고후 12:7-10; 1:21-23). 따라서 영과 육의 통전적 치유가 없더라도, 적어도 영적 그리고 심리적 웰빙은 가능하다. T. D. Mashau, “Moving to Different Streams of Healing Praxis: A Reformed Missionary Approach of Healing in the African Context,” Verbum et Ecclesia 37/1 (2016), 7.

5) 그리스도인이 치유공동체 안에서 각자 역할을 감당하는 것을 만인제사장직의 일환이라고 간주하는 경우는 에즈베리신학교의 F. B. Stanger, 위대한 의사 예수, God’s Healing Community, 배상길 역 (서울: 도서출판 나단, 1993), 28을 보라.

6) P. J. Isaak, “God’s Mission as Praxis for Healing and Reconciliation,” International Review of Mission 100/2 (2011), 322.

7) D. A. Forster, “African Public Theology?: A Conceptual Engagement to keep the Conversation Alive,” In die Skriflig 56/1 (2022), 2-8.

8) 송영목, “영역선교에 대한 성경적 고찰.” KPM R&D 5 (2021), 31-51.

9) 김요섭, “성경적인 치유 개념에 대한 신학적 고찰,” 헤르메네이아 투데이55 (2013), 9.

10) J. T. Carroll, “Sickness and Healing in the New Testament Gospels,” Interpretation 49/2 (1995), 130-31.

11) 박형대, “치료를 통해 평강주시는 하나님과 예수님,” 35.

12) 치유를 위한 기도는 진정으로, 적극적으로, 구체적으로, 기대하며, 감사함으로, 믿음으로 수용하며 드려야 한다는 설명은 Stanger, 위대한 의사 예수, 126-28을 보라.

13) 2성전시기 유대문헌에 의하면, 치료와 의술에 대한 입장은 다양했다. 희년서 10:10-13는 의술은 지혜가 사람에게 계시된 것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쿰란공동체는 헬라식 치료법을 사용했다. 그러나 1에녹서는 의술의 가치를 평가절하한다. 토빗서는 라파엘이 치료하며, 의술은 상태를 악화한다고 보았다. R. A. Culpepper, “Jesus as Healer in the Gospel of Matthew, Part 1: Methodology,” In die Skriflig 50/1 (2016), 2; 박형대, “치료를 통해 평강주시는 하나님과 예수님: 치료와 치유와 회복과 평강의 성경신학적 정리,” 헤르메네이아 투데이55 (2013), 26.

14) D. C. Westermann, “Salvation and Healing in the Community: The Old Testament Understanding,” International Review of Mission 61/241 (1972), 9.

15) Westermann, “Salvation and Healing in the Community,” 11.

16) D. T. Adamo, “I am the LORD Your Healer-Exodus 15:26: Healing in the Old Testament and the African (Yoruba) Context,” In die Skriflig 55/1 (2021), 3; 오성종, “신약 시대의 질병과 치유: 신약신학적 관점에서 1,” 신약연구 17/2 (2018), 149-50.

17) Westermann, “Salvation and Healing in the Community,” 12; 김진의, “성경에 나타난 신유(神癒)의 선교적 이해와 필요성,” (석사논문, 백석대학교, 2020), 60. 그런데 김진의는 아브라함과 아비멜렉(20:17-18)에서도 치유와 선교 모티브를 찾지만, 실제로 후자는 나타나지 않는다.

18) 김창대, “소선지서의 통일성 관점에서 호 14:4와 말 4:2의 치료(רפא)에 대한 고찰,” 성경과 신학 56 (2010), 300, 303-304.

19) T. K. Christiani, “Mission as Healing and Reconciliation,” International Review of Mission 101/2 (2012), 364.

20) Westermann, “Salvation and Healing in the Community,” 14.

21) Westermann, “Salvation and Healing in the Community,” 18-19.

22) J. P. Louw and E. A. Nida, Greek-English Lexicon on the New Testament based on Semantic Domains, Volume 1 (Cape Town: BSSA, 1993), 268-74.

23) Carroll, “Sickness and Healing in the New Testament Gospels,” 132. 참고로 복음서 편집자들이 치유 전승을 정확하거나 부정확하게 편집했기에 치유 기사의 역사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견해는 김건호, “예수의 치유와 그 의미에 대한 이해: 마르 1, 40-45를 중심으로,” (석사논문, 대구가톨릭대학교, 2016), 18-19를 보라.

24) R. A. Culpepper, “Jesus as Healer in the Gospel of Matthew, Part II: Jesus as Healer in Matthew 89,” In die Skriflig 50/1 (2016), 2-8; 루돌프 쉬낙켄부르크를 인용하는 김건호, “예수의 치유와 그 의미에 대한 이해: 마르 1, 40-45를 중심으로,” 67.

25) (주로 하나님의 기적적 방식으로) ‘치료하다는 의미의 두 동사 θεραπεωἰάομαι는 교차적으로 사용된다(5:10, 13). 바울서신과 일반서신에 θεραπεω는 사용되지 않으며, 바울서신에는 ἰάομαι도 나타나지 않는다. C. D. Stanley, “Paul and Asklepios: The Greco-Roman Quest for Healing and the Mission of Paul,” JSNT 41/3 (2019), 279-80; F. E. Payne Jr., 의료의 성경적 접근, Biblical Healing for Modern Medicine, 김민철 역 (서울: 한국누가회출판부, 2001), 285.

26) 참고로 아폴로니우스의 생애4:45에는 죽은 자를 살리는 기적에서 긍휼의 동기는 나타나지 않는다. 김준, “교회의 돌봄 사역: Heinz Kohut의 자아심리학과 신약의 제자의 모습을 통한 돌봄 사역자의 자세,” 복음과 실천신학18 (2008), 21-25, 28; 김건호, “예수의 치유와 그 의미에 대한 이해: 마르 1, 40-45를 중심으로,” 20. 참고로 크리스토쎄라피는 성경에 반하지 않는 자연적인 심리 치료기법을 수용하면서도, 그런 기법을 성경의 최종 판단 아래에 두면서 치유의 기독론적 의미와 가치에 참여함으로써 사람의 삶과 심리에 자리 잡은 파괴적 요소들을 치료하는 방식이다. 이 치유법은 실존주의 및 해방신학에 접맥되어 있다. B. Tyrrell, “Christotherapy and the Healing of Communal Consciousness,” Thomist 40/4 (1976), 613, 623-27.

27) 최무열, “마태복음에 투영된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사역에 대한 사회복지 철학 및 방법론 적용에 관한 연구: 케이스웤(Social Case Work)을 중심으로,” 신학과 목회13 (1999), 299, 312.

28) C. H. Grundmann, “Proclaiming the Gospel by Healing the Sick: Historical and Theological Annotations on Medical Mission,” International Bulletin of Missionary Research 14/3 (1990), 120.

29) Grundmann, “Proclaiming the Gospel by Healing the Sick,” 124.

30) 구규창, “통전적 선교의 빛 안에서 바라본 통전적 치유목회의 새로운 패러다임,” (박사논문, 호남신학대학교, 2015), 36; Stanger, 위대한 의사 예수, 43-44.

31) 공관복음 기자들과 달리(. 4:23-24; 1:34; 4:40),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동시에 여러 병자를 치유한 사건을 기록하지 않고 맞춤식 치료를 소개한다.

32) A. A. Dawson, “Perspectives on Healing in the New Testament: A Comparative Study of Mark, Luke and Paul,” (Ph.D. Thesis, University of Aberdeen, 2005), 221-30. 참고로 축귀를 영적 차원이 아니라, 사회 질서를 회복하는 정치적 행동으로 이해한 예는 J. J. Pilch and B. J. Malina, 성서 언어의 사회적 의미, Handbook of Biblical Social Values, 이달 역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1998), 234를 보라.

33) 베데스다 연못에서 일어난 표적은 천년왕국기의 안식일(66:23; 46:1)을 예표한다는 미래 전천년적 해석은 S. S. Kim, “The Christological and Eschatological Significance of Jesus’ Miracle in John 5,” Bibliotheca Sacra 165/660 (2008), 423을 보라. 안식일의 근원이자 주인이신 예수님은 치유를 통해 유대인들의 안식일 개념을 초월하시고 성취하셔서 참 안식을 주셨다. 이것을 거부하는 자에게는 이 표적이 심판이다(5:17, 27-29). N. Hahn & E. van Eck, “The Lame Man at the Pool of Bethesda: Christological and Doxological Significance of Characterisation in John 5,” In die Skriflig 55/1 (2021), 5-8.

34) 박윤만, “예수, 총체적 종말론적 구원자,” 277.

35) 김건호, “예수의 치유와 그 의미에 대한 이해: 마르 1, 40-45를 중심으로,” 23.

36) 이 단락은 김건호, “예수의 치유와 그 의미에 대한 이해: 마르 1, 40-45를 중심으로,” 19Stanley, “Paul and Asklepios,” 280-81에서 요약.

37) G. H. Grundmann, “Mission and Healing in Historical Perspective,” International Bulletin of Missionary Research 32/4 (2008), 185.

38) 윤철원, “신약성서에서 치유와 구원의 상관관계,” 525.

39) 박형대, “치료를 통해 평강주시는 하나님과 예수님,” 39; 오성종, “신약 시대의 질병과 치유: 신약신학적 관점에서 1,” 158.

40) 윤철원, “신약성서에서 치유와 구원의 상관관계,” 신약논단 11/2 (2004), 526.

41) 김요섭, “성경적인 치유 개념에 대한 신학적 고찰,” 21-22.

42) 김동수, “신약성서에서 기적적 치유의 신학적 위치,” 피어선 신학 논단8/1 (2019), 17.

43) 오성종, “신약 시대의 질병과 치유: 신약신학적 관점에서 1,” 169.

44) 박윤만, “예수, 총체적 종말론적 구원자: 마가복음의 예수의 치유와 축귀 그리고 죽음을 중심으로,” 성경과 신학77 (2016), 261. 하지만 바울서신에 치유와 관련하여 동사 σζω는 사용되지 않는다. 라틴어 ‘salus’(구원)도 건강을 함의한다. Stanger, 위대한 의사 예수, 76.

45) 안호숙, “신약 사복음서에 나타난 치유 기사들이 지닌 구원과 생명의 의미,” (박사논문, 백석대학교, 2019), 17, 151-52.

46) 윤철원, “신약성서에서 치유와 구원의 상관관계,” 519.

47) R. J. Schreiter, “Reconciliation and Healing as a Paradigm for Mission,” International Review of Mission 94/372 (2005), 80-82. 참고로 초대교회가 영적 실재에 관해 마술적 힘을 가지고 치료했다는 그릇된 주장은 I. W. C. van Wyk, “Finding a Place for Jesus as Healer in Reformed Mission in Africa,” HTS Teologiese Studies 67/1 (2011), 1을 보라.

48) 구규창, “통전적 선교의 빛 안에서 바라본 통전적 치유목회의 새로운 패러다임,” 40-41; Stanger, 위대한 의사 예수, 47.

49) 오성종, “신약 시대의 질병과 치유: 신약신학적 관점에서 2,” 398, 400, 비슷한 견해는 Stanger, 위대한 의사 예수, 50-51을 보라.

50) 조지아주립대 가정의학 교수이자 신학과 의학의 접목과 의사가 진료 시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기도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성경적 의료윤리를 연구 중인 Payne Jr., 의료의 성경적 접근, 212, 308-309는 은사지속론을 반대한다.

51) V. Magezi & B. S. Keya, “‘The Concept of Shalōm as a Constructive Bereavement Healing Framework within a Pluralist Health seeking Context of Africa,” HTS Teologiese Studies 692 (2013), 6-7.

52) 구규창, “통전적 선교의 빛 안에서 바라본 통전적 치유목회의 새로운 패러다임,” 51.

53) 김승호, “선교적 경건(敬虔)으로 긍휼(Compassion)에 대한 성경신학적 고찰,” 신학지남87/3 (2020), 96, 108.

54) 지금도 일부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병원이 아니라 교회가 치료를 담당해야 한다고 믿는다. J. Beate, “Healing: An Essential Dimension of the Church’s Mission,” Ogbomoso Journal of Theology 18/1 (2013), 2.

55) Beate, “Healing,” 9.

56) Van Wyk, “Finding a Place for Jesus as Healer in Reformed Mission in Africa,” 6.

57) 참고. Stanley, “Paul and Asklepios,” 303.

58) Dawson, “Perspectives on Healing in the New Testament,” 230.

59) R. Hibbert, G. G. Harper, and E. Hibbert, “The Role of Divine Healing in Cross-Cultural Ministry,” Evangelical Review of Theology 41/4 (2017), 348-50.

60) K. L. Gentry Jr., The Divorce of Israel: A Redemptive-Historical Commentary on the Book of Revelation, Volumes 2 (Dallas: Tolle Lege, 2017), 751-54.

61) Gentry Jr., The Divorce of Israel, Volumes 2, 812.

62) J. A. du Rand, A-Z van Openbaring (Vereeniging: CUM, 2007), 609.

63) K. Schäfer, “Come Holy Spirit, heal and reconcile!: Called in Christ to be Reconciling and Healing Communities.” International Review of Mission 94/372 (2005), 142-43.

64) 치유가 종말론적 천국을 현시하고 은사 활용하여 종말을 체험한다는 측면에서 예수님의 전인적인 치유로서의 구원(8:16-17; 10:7-8; 26:28; 벧전 2:24)에 비춰볼 때, 교회의 본질적 사역이라는 주장은 김동수, “신약성서에서 기적적 치유의 신학적 위치,” 7, 10-12; Beate, “Healing,” 2를 보라. 하지만 예수님과 사도의 선교에 있어 치유는 항상 필요했던 요소는 아니었다.

65) Mashau, “Moving to Different Streams of Healing Praxis,” 6.

66) G. Müller-Fahrenholz, “Healing the Wounds of the Nations: Towards a Common Mission of the Churches,” HTS Teologiese Studies 56/2-3 (2000), 610, 612.

67) M. Wenk, “An Incarnational Pneumatology based on Romans 8.18-30: The Spirit as God’s Solidarity with a Suffering Creation,” Religions 13/3 (2022), 3-10.

68) 이은재, “질병과 치유: 경건주의의 신학적 질문,” 신학과 세계100 (2021), 87-88.

69) Grundmann, “Mission and Healing in Historical Perspective,” 187; 조무성, “공적신학 관점의 건강도시와 샬롬커뮤니티의 형성: 성남시 대형교회의 사례분석,” 신학과 실천38 (2014), 694-728.

70) N. S. Kang, “Towards Healing and Recognition of ‘Regardless’: Radicalizing Christian Mission for Today,” International Review of Mission 94/374 (2005), 375-85.

71) P. Vassiliadis, “Healing and Reconciliation: A Challenge for Orthodox and Ecumenical Common Witness,” Greek Orthodox Theological Review 51/1-4 (2006), 172, 176.

72) Vassiliadis, “Healing and Reconciliation,” 179, 181.

73) Grundmann, “Mission and Healing in Historical Perspective,” 185.

74) G. N. Cattermole, “Global Health: A New Paradigm for Medical Mission?” Missiology 49/2 (2021), 191.

75) 1884년 이해 조선에서 선교사들은 의료선교를 통해 기독교에 호감을 가지게 만들고 공공보건사업에 힘썼다.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어을빈(Dr. C. H. Irvin)1909년에 부산시 감만동에 나환자 수용시설인 상애원과 상애교회를 건립했으며, 구라선교회의 도움을 받아 1910년에 조선 최초의 나병원을 개원했다. 그 후 스코틀랜드 출신 목사이자 의사인 맥켄지(J. N. Mackenzie, 1865-1956)는 어을빈을 이어 1912년부터 부산나병원을 맡아 28년간 헌신했는데, 그는 나횐자에게 우리 아버지’, ‘경남의 주 하나님이었다. 이가연, “호주장로교의 부산지역 의료선교: 맥켄지의 부산나병원 운영과 부산부의 나환자 대책을 중심으로,” 역사와 경계121 (2021), 3, 6-7, 9. 오늘날 독일 개신교가 운영하는 의료기관 Diakonie와 천주교가 운영 중인 Caritas는 공공의료선교의 모델과 같다.

76) Beate, “Healing,” 15.

77) Beate, “Healing,” 4.

78) Beate, “Healing,” 7.

79) Beate, “Healing,” 4-5.

80) Beate, “Healing,” 6.

81) 배성권·오창석, “기독교 세계관에서 본 한국기독병원의 방향,” 로고스 경영연구4/2 (2006), 38.

82) 안승호. “지역교회와의 협력을 통한 의료 선교 활성화 방향.” 262.

83) Cattermole, “Global Health: A New Paradigm for Medical Mission?” 202; Isaak, “God’s Mission as Praxis for Healing and Reconciliation,” 323-24.

84) Isaak, “God’s Mission as Praxis for Healing and Reconciliation,” 325.

85) 목회신학이 신앙을 전제로 하여 현장에서 벌어지는 사회문화적 현상을 집중적으로 분석한다면, 사회 속에서 감당해야 할 교회의 정체성과 목표를 정립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교회가 복음과 신앙으로 세상을 치유하도록 신학 분과들 간의 협업을 추구한다면, ‘공공-선교-목회학이라는 통합적 패러다임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H. U. Ashby Jr., “Pastoral Theology as Public Theology: Participating in the Healing of Damaged and Damaging Cultures and Institutions,” Journal of Pastoral Theology 10 (2000), 25-27.

86) Cattermole, “Global Health: A New Paradigm for Medical Mission?” 190.

87) 배성권·오창석, “기독교 세계관에서 본 한국기독병원의 방향,” 39-40.

88) 고신대학교는 기독교대학을 지향하지만 안타깝게도 미션대학으로 변하고 있다. 기독교대학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선교적 교과과정을 수립하고, 기독 교직원과 학생들의 선교사화 및 불신 학생의 전도를 병행하는 선교적 대학을 추구해야 한다.

 

 

▼참고문헌

구규창. “통전적 선교의 빛 안에서 바라본 통전적 치유목회의 새로운 패러다임.” 박사논문. 호 남신학대학교, 2015.

김건호. “예수의 치유와 그 의미에 대한 이해: 마르 1, 40-45를 중심으로.” 석사논문. 대구가 톨릭대학교, 2016.

김동수. “신약성서에서 기적적 치유의 신학적 위치.” 피어선 신학 논단8/1 (2019): 5-24.

김승호. “선교적 경건(敬虔)으로 긍휼(Compassion)에 대한 성경신학적 고찰.” 신학지남87/3 (2020): 89-111.

김요섭. “성경적인 치유 개념에 대한 신학적 고찰.” 헤르메네이아 투데이55 (2013): 9-23.

김준. “교회의 돌봄 사역: Heinz Kohut의 자아심리학과 신약의 제자의 모습을 통한 돌봄 사 역자의 자세.” 복음과 실천신학18 (2008): 9-33.

김진의. “성경에 나타난 신유(神癒)의 선교적 이해와 필요성.” 석사논문. 백석대학교, 2020.

김창대. “소선지서의 통일성 관점에서 호 14:4와 말 4:2의 치료(רפא)에 대한 고찰.” 성경과 신학56 (2010): 283-312.

박윤만. “예수, 총체적 종말론적 구원자: 마가복음의 예수의 치유와 축귀 그리고 죽음을 중심 으로.” 성경과 신학77 (2016): 261-90.

박형대. “치료를 통해 평강주시는 하나님과 예수님: 치료와 치유와 회복과 평강의 성경신학적 정리.” 헤르메네이아 투데이55 (2013): 25-42.

배성권·오창석, “기독교 세계관에서 본 한국기독병원의 방향.” 로고스 경영연구4/2 (2006):

25-47.

송영목. “영역선교에 대한 성경적 고찰.” KPM R&D 5 (2021): 30-54.

안승호. “지역교회와의 협력을 통한 의료 선교 활성화 방향.” 신학과 목회40 (2013): 241-65.

안호숙. “신약 사복음서에 나타난 치유 기사들이 지닌 구원과 생명의 의미.” 박사논문. 백석대 학교, 2019.

오성종. “신약 시대의 질병과 치유: 신약신학적 관점에서 1.” 신약연구 17/2 (2018): 143-79.

. 신약 시대의 질병과 치유: 신약신학적 관점에서 2.” 신약연구 17/3 (2018): 360-408.

윤철원. “신약성서에서 치유와 구원의 상관관계.” 신약논단 11/2 (2004): 503-531.

이가연. “호주장로교의 부산지역 의료선교: 맥켄지의 부산나병원 운영과 부산부의 나환자 대 책을 중심으로.” 역사와 경계121 (2021): 1-25.

이은재. “질병과 치유: 경건주의의 신학적 질문.” 신학과 세계100 (2021): 83-110.

조무성. “공적신학 관점의 건강도시와 샬롬커뮤니티의 형성: 성남시 대형교회의 사례분석.” 신학과 실천38 (2014): 679-735.

최무열. “마태복음에 투영된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사역에 대한 사회복지 철학 및 방법론 적용 에 관한 연구: 케이스웤(Social Case Work)을 중심으로.” 신학과 목회13 (1999): 283-313.

황금주. “성경 시대의 음식과 관련하여 치유 선교의 도구로서 푸드테라피의 필요성 고찰.” 선교신학61 (2021): 242-66.

Adamo, D. T. “I am the LORD Your Healer: Exodus 15:26: Healing in the Old Testament and the African (Yoruba) Context.” In die Skriflig 55/1 (2021): 1-8.

Ashby Jr., H. U. “Pastoral Theology as Public Theology: Participating in the Healing of Damaged and Damaging Cultures and Institutions.” Journal of Pastoral Theology 10 (2000): 18-27.

Beate, J. “Healing: An Essential Dimension of the Church’s Mission.” Ogbomoso Journal of Theology 18/1 (2013): 1-18.

Carroll, J. T. “Sickness and Healing in the New Testament Gospels.” Interpretation 49/2 (1995): 130-42.

Cattermole, G. N. “Global Health: A New Paradigm for Medical Mission?” Missiology 49/2 (2021): 189-206.

Christiani, T. K. “Mission as Healing and Reconciliation.” International Review of Mission 101/2 (2012): 353-64.

Culpepper, R. A. “Jesus as Healer in the Gospel of Matthew, Part 1: Methodology,” In die Skriflig 50/1 (2016): 1-8.

. “Jesus as Healer in the Gospel of Matthew, Part II: Jesus as Healer in Matthew 89.” In die Skriflig 50/1 (2016): 1-8.

Dawson, A. A. “Perspectives on Healing in the New Testament: A Comparative Study of Mark, Luke and Paul.” Ph.D. Thesis. University of Aberdeen, 2005.

Du Rand, J. A. A-Z van Openbaring. Vereeniging: CUM, 2007.

Forster, D. A. “African Public Theology?: A Conceptual Engagement to keep the Conversation Alive.” In die Skriflig 56/1 (2022): 1-9.

Frechette, C. G. “The Old Testament as controlled Substance: How Insights from Trauma Studies reveal Healing Capacities in Potentially Harmful Texts.” Interpretation 69/1 (2015): 20-34.

Gentry Jr., K. L. The Divorce of Israel: A Redemptive-Historical Commentary on the Book of Revelation. Volumes 2. Dallas: Tolle Lege, 2017.

Grundmann, C. H. “Mission and Healing in Historical Perspective.” International Bulletin of Missionary Research 32/4 (2008): 185-88.

. “Proclaiming the Gospel by Healing the Sick: Historical and Theological Annotations on Medical Mission.” International Bulletin of Missionary Research 14/3 (1990): 120, 121-26.

Hahn, N. & Van Eck, E. “The Lame Man at the Pool of Bethesda: Christological and Doxological Significance of Characterisation in John 5.” In die Skriflig 55/1 (2021): 1-9.

Hibbert, R., Harper, G. G., and Hibbert, E. “The Role of Divine Healing in Cross-Cultural Ministry.” Evangelical Review of Theology 41/4 (2017): 339-54.

Isaak, P. J. “God’s Mission as Praxis for Healing and Reconciliation.” International Review of Mission 100/2 (2011): 322-36.

Kang, N. S. “Towards Healing and Recognition of ‘Regardless’: Radicalizing Christian Mission for Today.” International Review of Mission 94/374 (2005): 373-86.

Kim, S. S. “The Christological and Eschatological Significance of Jesus’ Miracle in John 5.” Bibliotheca Sacra 165/660 (2008): 413-24.

Louw, J. P. and Nida, E. A. Greek-English Lexicon on the New Testament based on Semantic Domains. Volume 1. Cape Town: BSSA, 1993.

Magezi, V. & Keya, B. S. “‘The Concept of Shalōm as a Constructive Bereavement Healing Framework within a Pluralist Health seeking Context of Africa.” HTS Teologiese Studies 692 (2013): 1-8.

Mashau, T. D. “Moving to Different Streams of Healing Praxis: A Reformed Missionary Approach of Healing in the African Context.” Verbum et Ecclesia 37/1 (2016): 1-8.

Müller-Fahrenholz, G. “Healing the Wounds of the Nations: Towards a Common Mission of the Churches.” HTS Teologiese Studies 56/2-3 (2000): 608-622.

Payne Jr., F. E. 의료의 성경적 접근. Biblical Healing for Modern Medicine. 김민철 역. 서울: 한국누가회출판부, 2001.

Pilch, J. J. and Malina, B. J. 성서 언어의 사회적 의미. Handbook of Biblical Social Values. 이달 역.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1998.

Schäfer, K. “Come Holy Spirit, heal and reconcile!: Called in Christ to be Reconciling and Healing Communities.” International Review of Mission 94/372 (2005): 133-58.

Schreiter, R. J. “Reconciliation and Healing as a Paradigm for Mission.” International Review of Mission 94/372 (2005): 74-83.

Stanger, F. B. 위대한 의사 예수. God’s Healing Community. 배상길 역. 서울: 도서출 판 나단, 1993.

Stanley, C. D. “Paul and Asklepios: The Greco-Roman Quest for Healing and the Mission of Paul.” JSNT 41/3 (2019): 279-309.

Tyrrell, B. “Christotherapy and the Healing of Communal Consciousness.” Thomist 40/4 (1976): 608-634.

Van Wyk, I. W. C. “Finding a Place for Jesus as Healer in Reformed Mission in Africa.” HTS Teologiese Studies 67/1 (2011): 1-8.

Vassiliadis, P. “Healing and Reconciliation: A Challenge for Orthodox and Ecumenical Common Witness.” Greek Orthodox Theological Review 51/1-4 (2006): 167-88.

Wenk, M. “An Incarnational Pneumatology based on Romans 8.18-30: The Spirit as God’s Solidarity with a Suffering Creation.” Religions 13/3 (2022): 1-10.

Westermann, D. C. “Salvation and Healing in the Community: The Old Testament Understanding.” International Review of Mission 61/241 (1972): 9-19.

 

 

관련기사

저작권자 © 코람데오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