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회 추천안은 고려해야 할 소지가 너무 많아..

지난 7월 7일 고신총회 산하 각 노회는 총회 임원들을 추천하는 임시회를 열었다. 사람들의 관심이 서서히 차기 총회 부총회장 후보에 쏠리고 있다. 총회장은 이미 부총회장이 승계하게 되어 있으니 누가 부총회장이 될 것인가가 관심을 끈다. 누구인가?

이미 지난해 총회 이후 한 사람의 후보는 나와있다. 낙선한 사람이 선거가 끝나자마자 내년에 출마의사를 밝혀 논란이 오갔다. '한 번만 출마하기로 하고서 약속을 깼다' '마산의 모 목사가 차기에 나오기로 했는데 낙선한 사람이 다시 출마한다고 하여 접었다.' '출마하지 않는다고 한 적이 없다' '두사람이 제비뽑기 한다면 할 용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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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더니 느닷없이 신학교 졸업생 몇 동기회에서 한 기수에서 한명씩만 출마하도록 출마를 제한하자며 선거방법의 개혁을 요구하고 나섰다. 한마디로 총회장 선거를 신학교동기회 회장선거로 축소하자는 이야기이다.

명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경쟁이 치열하고, 계파배경이 없으면 출마할 수 없고, 화합을 깬다는 것이 주된 이유로 제기된다. 동기회에서 추천한 사람을 뽑게 되면 경쟁도 없고 비용도 들지 않으며 화합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과연 그럴까? 과연 총회장이라는 자리 때문에 화합이 되지 않는 것일까? 문제를 해결하려면 문제의 핵심을 찾아야 한다. 오늘 우리 교회를 둘러싼 문제는 무엇인가? 오늘의 고신교회도 한국교회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의 무능력에 사회가 외면하는 지경이다. 무슨 소리를 해도 교회의 말을 믿지 않는다.

 

불감에 의한 부패와 불의, 불의에 의한 불신, 불신에 의한 부나방같은 추락의 길에 선 것이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교회가 좀 더 정의롭고 좀더 거룩하고 좀더 풍성해야 한다. 교회가 영적으로 거듭나고 살 길을 찾고 갈 길을 명확히 해야 한다. 어디로 가야 하는가?

교회는 무엇보다 거룩한 교회여야 한다. 거룩한 교회는 거룩한 사람들로 이루어져야 한다. 누가 거룩한가? 거룩하다는 개념은 일차적으로 구별되었다는 말이다. 남다르다는 이야기이다. 세상과 다른 모습을 가져야 한다. 교회의 지도자는 남달라야 한다. 남다르게 살아야 한다. 남다르다는 느낌을 주어야 한다.

더구나 고신은 여럿중의 하나로 세워진 교회가 아니다. 시대적 사명을 찾아내야 하는 교회이다. 만약 오늘 60년전의 시대적 사명에 버금가는 사명이 없다면 사정없이 다른 장로교회와 통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말이 아니라 실천으로 옮겨야 한다.

오늘의 고신교회는 토론의 논제를 달리해야 한다. 헌법을 고치고 총회장 뽑는 방법을 고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향해야 할 남다른 역사적 방향을 모색하고 우리가  감당해야 할 남다른 역사적 소명을 찾고 우리가 행해야 할 남다른 역사적 사명을 확인해야 한다.

도대체 우리 고신은 지난 57년간 왜 존재해 왔으며 이제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남다른 소명도 사명도 없는가?

총회는 이런 논의를 해야 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총회장이나 뽑고, 조직이나 완료하면 슬슬 사라져버리거나 죽여 없애거나 눌러버릴 사람이나 찾고 얻어걸칠 자리, 감투나 노리는 사람들만 남는 총회로 전락해서는 안된다.

칼빈탄생 500주년을 기념하는 포럼을 열고 장로교 대회를 하면서 평양 부흥 100주년 기념대회가 그러했듯이 아무런 새로운 역사적 방향을 찾지 못하고 지나간다면 보통일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총회적으로나 신학대학원에서나 그런 노력을 전혀 하지 않는다. 그저 돈들여 행사를 치를 뿐이다.

본래의 정신으로 하면 장로교 총회장은 본래 회의의 사회자일 뿐이다. 회의가 끝나면 사라지는 인물이다. 제58회 총회장은 총회가 열렸던 지난 해 9월의 5일간 이후에는 더 이상 총회장이 아니어야 한다. 물론 금년에는 법인총회가 희안하고 얄궂게 진행되어 얼마전까지 총회를 열어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총회 없는 총회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총회는 노회와 달리 법적으로 임시치리회일 뿐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우리 고신의 총회장이나 한국장로교회 총회장은 회의 주재로 역할을 끝내지 않는다. 작은 교회 위임식에도 총회장이 나타나야 할만큼 총회장은 현재적이요 지속적이다. 1년내내 총회없는 총회장 역할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총무(요즘은 사무총장)은 없어도 총회장은 반드시 항시 존재해야 한다.

그런 현실을 부정한다고 해서 부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원리를 떠들어도 듣지 않으면 그만이다. 중세 로마교회가 왜 타락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우리는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의 결정은 성경말씀 만큼 위대하고 강하고 확고한 위치를 차지해가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래서 종교개혁이 다시 일어나야 한다고 하는 것일까? 분명하게 잘못된 총회의 결정들, 총회의 판결문, 재판결과들이 버젓이 회록에 올라있고, 역사가 되어 있다.

따라서 총회장에 대한 근본적 인식 변화가 불가하다면 현재의 총회장 선발 방식을 바꾸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총회장은 총회를 위하여 헌신한 증거가 있어야 하고, 총회의 영욕을 함께 안고 살아온 경험이 있어야 한다. 그저 동기회에서 추천했으니까 총회장으로 받아주는 그런 자리일 수 없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이런 점들을 염두게 두면서 총회장의 자격을 생각해 보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1. 총회장은 고신교회의 역사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역사를 새롭게 할 의지와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따라서 부총회장 시절부터 2년간 그런 역사적 반성과 방향을 잡아가는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건 동기생들만의 인정을 받아서 될 일이 아니다. 시작부터 전체적인 점검을 거쳐야 한다.

2. 총회장은 순전하여야 한다. 평소에 궤변이나 명예욕이나 기타 자리에 대한 탐욕을 보이지 않은 사람이어야 한다. 평소에 총회와 관련한 자리를 한꺼번에 많이 맡아 이일 저일에 나서고 돌아다니는 사람은 경계해야 한다. 순전성이 결여될 위험이 높다. 동기생들이 그런 것을 모두 고려할 형편이 아닐 수 있다.

3. 총회장을 곧바로 승계하는 부총회장은 단독 출마하기 보다 적어도 두 사람을 세워놓고 뽑을 수 있어야 한다. 가룟유다의 자리도 두 사람을 천거한 가운데 뽑도록 하였다. 한 동기회에서 추천한 한 사람을 무조건 뽑으라는 것은 지나친 요구다. 총대들의 생각이 동기회의 생각과 얼마든지 다를 수 있고 다른 것이 정상이다. 나머지 총대들은 전부 거수기 노릇만 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게 해서 과연 총회가 특정인을 총회장으로 받아들였다고 말할 수 있을까?

4. 총회장 선거를 통해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묻는다. 동기회가 과연 기도하면서 총회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뜻을 묻는 절차를 밟을 수 있는 자리에 있는 것인가? 한 동기생들의 기도가 전체 총회의 기도를 아우를 수 있는가?

5. 총회장을 동기생들이 뽑을 때 일어날 부작용은 없을 것인가? 동기회는 어떻게 대표를 세울 것인가? 연장자 순으로? 큰교회 순으로? 인기순으로? 혹시 몇 사람의 절친한 친구들이 세게 밀면 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신학대학원 시절 원우회장을 지낸 사람이 당연직으로 맡으면 될까? 원후회장 선거도 단독인 경우가 거의 없다. 그리고 당선된 사람이 늘 그 동기생들 전체에게 환영받는 것도 아니다. 어떤 때는 동기생들은 지지하지 않는데 다른 학년들이 다수 지지하여 원우회장이 되기도 하는 것이 현실인데, 과연 목사가 된 이후 총회장을 맡을 즈음에 순조롭게 내부에서 조정이 될 수 있을까? 인물됨을 누가 어떻게 판단하는가는 전혀 개별적적인 문제인데 과연 어떻게 누구를 내세우겠다는 것인가?

6. 총회는 목사와 장로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다면 장로의 견해는 어떻게 수렴할 것인가? 장로 부총회장을 전국장로회장을 지낸 분 중에서 뽑자는 논의가 있었으나 결코 그렇게만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금년에도 세사람이 출마하고 있지 않은가? 과연 목사들의 동기회가 선정한 부총회장 후보를 장로 총대들이 동일한 마음으로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7. 이번의 제안은 총회가 계파니 파벌에 의하여 움직인다고 하는 것에 불편과 위기를 느꼈거나, 특정 기수의 총회 임원자리를 동기생들의 대표라고 보기 어려운 사람이 먼저 선점하는 것을 보면서 그런 현상을 인정할 수 없는 사람들이 아예 싹을 자르자는 의도에서 나왔을 가능성도 생각할 수 있다. 총회내에서 총회의 역사나 방향에 대하여 다른 견해를 가지는 것이 굳이 경계해야 만 하는 일일까? 총회장 선거방법만 바꾸면 모든 사람의 생각이 같아질 것인가? 생각이 같다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지난 날 복음병원의 부도덕성과 파행운행에 대하여 계속 한 의견만 주창되었으면 지금쯤 어떤 결과를 빚었을까? 서로 생각이 달라야 서로에게 유익한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법이다. 모든 일을 너무 지나치게 부정적으로만 볼 일이 아니다. 소위 그 유명한 돼지파의 시작도 알고보면 순수한 뜻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인간의 타락을 막기 위해서라도 서로 경계할 수 있어야 한다.

이야기는 얼마든지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총회장이 아니라 총회와 교회를 섬기는 지도자들의 마음 자세이다. 자신만을 생각지 말고 전체 교회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최선을 다할 각오를 하고 살면 방법이야 어떠하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교회를 자기를 위한 존재로 여기는 순간 천길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우리의 시선이 문제다. 촛점을 잃지 않도록 극도로 주의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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