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구 목사의 주장에 대한 반론을 보내주었으면 했지만 필자의 요구에 의하여 '총회장 선거제도 동기회 추천으로 바꾸자'는 데 찬성의 글을 그대로 게재합니다. 앞으로 글을 보내실 때는 무조건 찬성이나 반대발언보다는 앞글에 대한 반론이나 해명글을 보내 주셔서 토론이 되게해 주시면 합니다. 물론 이전의 찬성 혹은 반대 글에 대하여 전혀 새로운 주장일 때는 가능합니다. 코닷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습니다. 편집자 주

 

사람은 보면서(See), 느끼고(Feel), 변화해가는(Change) 존재입니다. 이로 보건데, 금번 신학대학원 몇몇 동기회장단의 이름으로 기독교보에 게재된 “총회장 선거 바꾸자는 제안”은 교계와 교단의 시류에 대한 필연적 반응이며, 순수한 충정 중에 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삶의 모든 典據를 성경에 두고 있는 우리로서는, 선출 문제에 있어서도 사도행전 1장의 전례를 따라 복수 공천하여 제비뽑는 것이 가장 합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웃교단에서 이 제도를 사용하면서 다소가 무리가 있다는 평가를 듣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차선책으로 부총회장 후보를 동기회에서 (복수)추천하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물론 동기회가 교회나 총회가 아닙니다만 이점에서는 계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현재까지 관행처럼 되어온 계파추천보다는 동기회에서 추천하는 것이 훨씬 투명하고, 선명하며, 비정치적이고, 비소모적이고 설득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지상을 통해 제안 된 개선안은 포괄적 선언임으로, 해당기관에서 세부사항을 첨삭해서 다듬으면 전례 없는 좋은 제도가 나오리라 기대가 됩니다. 저는 다음 세 가지 이유로 부총회장을 동기회에서 (복수)추천하자는 데 적극 동의합니다. 

 

1. 첫째는, 동질상지(同質相知)의 원리 때문입니다. 

사람은 같은 사람끼리 서로 잘 압니다. 類類相從이지만 類類相知이기도 합니다. 즉 목사는 목사가 제일 잘 안다는 말입니다. 또 동기는 동기가 제일 잘 압니다. 게다가 부총회장 후보로 출마하려는 기수는 신학교를 졸업한지 30년 남짓한 기수입니다. 이 30년이면 강산도 세 번이나 바뀌었을 세월입니다. 결코 적지 않는 세월을 동고동락하면서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었을 것입니다. 서로 알고, 사랑하며, 이제는 무슨 소리라도 하고 들을 수 있는 연륜입니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한두 번 만나보고는 의기투합하거나, 생각이 같다고 쉽게 동질감을 느끼거나, 이해관계에 따라 離合集散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입니다. 

   

물론 동기회도 연약한 인간의 모임입니다만 그래도 교단과 교회의 미래를 위해 가장 순수하고, 다양하게, 염려하며, 기도하는, 가장 허심탄회한, 자연발생적 모임일 것입니다. 여기에는 가식이나 위선이 통하지 않으며, 순수와 열정만이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동기회 추천에 대한 여러 가지 우려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이만한 대안을 찾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만약 동기회에 이 추천의 사명이 부여된다면 동기회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하나님과 교회 앞에서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인물을 추천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선거운동 금지의 단서를 붙여서 동기회에서 복수나 그 이상의 공천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둘째는, 질서지화(秩序之和)의 원리 때문입니다. 

모름지기 만물은 질서가 있어야 평화롭습니다. 그러나 질서가 깨어지면 모든 공든 수고가 무너지고, 우리의 마음도 적잖은 상처와 고통을 받습니다. 우리는 시찰회나 노회의 여러 일에서 기수가 파괴되고, 장로 장립서열이 깨어지면, 심기가 불편해지고, 밤잠을 설치게 되고, 화평이 깨어지고 협력이 저해되는 것을 이미 누구나 경험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총대 선정에서도 기수나 질서가 깨어지면 당장에 섭섭한 마음이 드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이는 우리의 이기심과 교만을 충동질한 마귀가 가장 좋아할 일입니다. 

   

굳이 총회장 자리가 무슨 전권을 휘두르거나 교단의 흐름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면 꼭 무슨 대단한 사람(?)이 총회장이 되어야 할 이유가 별로 없다고 봅니다. 어느 정도 은사가 있고, 시간이 있고, 약간의 리더십이 있고(사실 당회장의 리더십이 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총회를 섬기기를 원하는 꿈과 비전이 있는 사람이라면 동기회에서 찾기가 어려울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동기회에서 기수별로 추천하면, 자연스럽게 질서가 잡히고, 평화로우며, 이 평화로 보다 긍정적인 데 에너지를 쏟는 역동적인 총회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3. 셋째로, 유비점비(有備漸備)의 원리 때문입니다. 

사람은 함께 준비하면서 더 잘 준비하게 됩니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무엇보다 먼저 준비하는 것이 성공의 비밀이다”고 했습니다. 만약 부총회장을 동기회가 추천하게 된다면, 동기회는 함께 부총회장을 준비하는 결과가 되고, 이로 전체가 준비하게 되는 동기부여를 하는 셈이 됩니다. 사실 1은 위대한 일을 하기에는 너무 적은 숫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기회가 함께 준비하면서 동기회도 함께 성숙하게 되는 은혜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준비는 재능을 극대화 시키고 재능이 더해진 사람이 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선택입니다. 

   

때로 준비과정은 길고 느립니다만 그러나 동기회가 20, 30년을 함께 기도하고 준비하면서, 동기 모임이 활성화 되고, 이로 상부상조의 은혜가 더해지며,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처럼, 동기들이 동기를 빛나게 만들어 갈 것입니다. 무엇보다 동기회의 활성화는 목사의 영육간의 부패를 막는 가장 강력한 수단입니다(강력한 교제의 수단보다 사람을 순화시키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로 교단은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하게 될 것입니다. 또 예측 가능한 리더십은 과거와 현재를 접목시켜 미래지향적으로 성장하며 교단 본연의 사명을 이루는 데도 아주 유용할 것입니다. 

 

이제 글을 맺습니다. 

현금 범 교단이 총회장 선거로 홍역을 앓고 있습니다. 他山之石으로 삼아 有備無患하는 것이 삶의 지혜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교단도 나은 것이 없습니다. 총회장 선거에 대한 경고음이 여기저기서 들려옵니다. 선거과열로 인한 금권선거도 이제는 위험 수위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과다경쟁으로 인한 흑색비방도 상호간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내고 있습니다. 순진한 총대들마저도 여기저기 줄을 서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까지 치닫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시간과 물질과 재능으로 복음전도에 진력하지 못하는 것이 제일 부끄럽습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병폐를 최소화 하고, 목사를 구비시키는 가장 좋은 방편은 동기회 추천입니다. 

   

돌아보니 주제넘게 글을 쓴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그러나 상황이 완벽해지기까지 기다리다 보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고, 또 저는 평소에 행동해야 할 때 스스로에게 하는 가장 큰 거짓말이 “나중에 해야지!” 하는 말임을 늘 의식하며 살기에 두서없이 몇 자 적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시작하는 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는 것 같습니다. 무엇을 고치는 일이 당장에 어렵고 귀찮아 보여도 잘게 나누어서 시작해보면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경험을 살려서 총회장 선거제도를 한 번 바꾸어 보기를 중심으로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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