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8월 6일 오전 8시 삼성의료원 장례식장에서 '고(故) 김성규
장로 천국환송예배'가 진행됐다.
눈과 간
신장과
살
이
귀한 것
온전히
간직하다
다
나누고 떠나셨네.
떼어준
것은 은총
나눠준
것은 기쁨
그
은총과 기쁨으로
인생
여행 고이 마치셨네.
(조호진
시인의 '김성규 장로님' 전부)
고(故) 김성규(73·동진산업기술 명예회장) 천국환송예배가 기독교한국침례회 남선교회전국녕합회와 반포침례교회
주최로 6일 오전 8시 삼성의료원 장료식장에서 열렸다. 성백영(반포침례교회 담임) 목사의 집례로 진행된 이날 예배는
조말수(사랑의교회·전 포항제철 사장) 장로의 기도와 조경식(한국교회평신도단체협의회 대표회장) 장로의 성경봉독,
피영민(강남중앙침례교회) 목사의 설교 등으로 진행됐다.
이날 예배는 진정한 ‘천국환송예배’였다. 살아서는 인재육성으로 세상을 섬기고, 뇌사로 쓰러진 뒤에는 여러
명에게 새 생명을 나눠준 참 그리스도인의 천국환송 자리였던 것이다. 모두들 죽은 채로 지상을 떠나는데 고인은 멋지게 살아서 천국에
입성하면서 산 자들에게 은총과 기쁨을 선물을 나눠주었다. 그리스도인의 영생복락을 몸소 보여준 것이다.
그래도 생의 끝은 슬프다. 한 생애를 통해 맺어진 모든 사람과 영영 헤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가족들은 애통했고 일가친척과 지인 등 조문객들은 그의 영면을 애도했다. 하지만 그 생의 끝은 살아온 생애처럼 아름다웠기에 그의
가족들과 조문객들은 존엄한 죽음에 경의를 표하면서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한편, 고인은 반포침례교회 안수집사(장로)로 재직하면서 '한국교회평신도단체협회의' 6~7대 회장, 침례교형제회
초대회장을 역임했다. 특히, 의료보험이 실시되기 이전엔 교역자들을 위한 의료보험조합 결성에 앞장서기도 했다.
불의의 사고와 뇌사 그리고
생명 나눔
▲ 고인은 성남시립화장장인 '성남영생원'에서 한줌 재가 됐다.
믿음의 본을 보이고 떠난 고인은 육신의 장막을 벗고 영생복락을 누리는 인생이 무엇인지를
증거했다
.
지난 3일 오후 6시30분 최종
뇌사판정이 내려짐에 따라 장기기증 코디네이터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장기이식 수혜자를 연결하기 위해서다. 장기 적출 수술은 이날 밤
9시30분 삼성의료원에서 시작됐다. 간, 신장, 각막, 피부 등에 대한 적출 수술이 끝난 시각은 4일 새벽
3시께.
적출된 두 개의 신장은 삼성의료원에서 50세와 57세 남성에게 곧 바로 이식됐고, 대구가톨릭대학병원으로 긴급
수송된 간은 53세 여성에게 이식됐다. 두 개의 안구는 적임자가 나타나는 대로 각막이식 수술을 진행하고 적출된 피부는 화상환자에게
이식될 예정이다.
고인은 회사 임원 연수 모임에 격려차 참석했다가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지난달 26일 오후
5시30분께 전남 보성의 한 골프장 계단에서 실족하면서 머리를 크게 다친(외상성 뇌출혈) 고인은 전남대병원으로 옮겨져 수술 받은 뒤
삼성의료원 중환자실로 옮겨졌으나 끝내 소생하지 못한 채 뇌사상태에 빠졌다.
"사회지도층의 의무를 일깨운 아름다운 사건"
장기기증을 반대하던 김진경 교수도
막바지엔 동의했다. 김 교수는 "아버지가 곧 일어날 것 같아서 호흡기를 떼어내는 데 동의하기 어려웠다"면서 "평소 이웃을 섬기고
베풀며 살아오신 것처럼 생명을 베푸시면서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떠난 아버지에게 감사드린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이 결정에 통해 다섯
환자의 생명을 살리고 여럿 화상환자들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게 됐다.
장기기증을 서약한 사람 가운데 약속을 이행하는 사람은 극히 미미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故) 최요삼 선수와
김수환 추기경 등 유명인사의 장기기증이 알려지면 장기기증이 쇄도하지만 장기기증을 실천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 것이다. 장기기증 의사를
밝혔다 해도 이식이 다 가능한 것은 아니다. 특히 뇌사자 가운데 건강한 장기를 보유한 경우가 많지 않아 장기 적출은 20%이하로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뇌사 시엔 신장, 간, 폐, 심장, 췌장 등의 장기기증이 가능하지만 심장사망 시엔 각막만이 기증 가능하다.
55세 이상 또는 뇌사시에도 시간이 경과되면 폐와 심장 기증은 불가능하다. 의료진들은 고령자 임에도 신장과 간,
각막, 피부 등의 장기이식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고인이 평소에 건강관리를 잘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최승주(53)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전 사무국장은 "의사 가족이 뇌사 시 장기기증을 했다는 것에 매우 큰
의미가 있다"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의무) 실천이 매우 희귀한 우리 사회에서 고인의 장기기증 서약에 이어 가족의
실천은 이웃 생명을 살린 고귀한 일이자 사회지도층의 사회적 의무를 일깨우는 아름다운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박사 15명 키운 인재
사랑...'뿌린 씨앗 썩지 않을 것'
"아버님은 손해보고 불편하더라도
자신보다 더 절실한 사람을 돕는 데 주저하지 않는 삶을 가족들에게 보여주셨기에 장기기증이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의사가 되자
사회와 교회에 봉사하며 살 것을 강조하면서 받은 은혜를 이웃과 나누는 의사가 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었다. 김진용 교수는 대학시절엔 농촌 진료봉사를 떠났고 고대구로병원에서 내과전문의 시절엔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 자원봉사의사로 외국인노동자들에게 인술을 폈다. 그리고 1998년부터 2000년까지 3년간은 외교부 산하
국제협력단(KOICA) 의사로 몽골에 파견돼 환자를 돌보는 등 예수와 부친의 가르침에 충직했다.
고인은 운명을 앞두고 두 사건을 통해 크게 통곡했다. 한 차례는 영화 <쉰들러리스트>를 보면서 세상
사람을 더 돕지 못한 것을 자책하며 크게 우셨다. 또 한 차례는 김진용 교수가 권한 <그 청년 바보의사>를 읽고 세 번
크게 통곡하신 뒤 식사조차 걸렀고, 그 바보의사가 묻힌 동작동 국립묘지를 두 번이나 찾아갔다. 이 책의 주인공 고(故) 안수현씨는 김
교수의 의사 후배로 헌신적인 봉사의 삶을 살다 서른셋에 하늘나라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