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번 설교 380만명에 복음

3·1운동 당시 무죄선고 이유로 포상 보류 정부 “국권 회복위해 헌신” 뒤늦게 인정

   
천로역정을 읽고 깊은 감동을 받은 청년이 있었다. 영국에서 교회 부흥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한국에서도 그 같은 역사가 일어나길 소원하며 매일 열심히 기도했다. 금식과 철야 기도에 힘썼고 손에 한번 성경을 쥐면 놓을 줄 모를 정도로 열중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된 뒤 그의 설교는 많은 사람에게 큰 감동을 줬다. 일생 동안 2만번 이상의 설교로 380여만명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가 세운 교회는 60여개, 배출한 목사와 전도사 장로 교사가 800여명, 세례를 받은 성도는 3000여명에 달했다.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회개 운동을 통해 한국교회 부흥의 단초를 제공한 길선주(1869∼1935·사진) 목사의 이야기다.


20대 초반 평양에 온 미국 북장로교의 새뮤얼 마펫(한국명 마포삼열) 선교사를 만난 그는 성경 등 기독교 서적을 접하고 기독교에 귀의했다. 깊은 밤 기도하던 중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불덩이처럼 울며 회개하게 됐다고 한다.


한국적 상황에 부합하는 교회 건설을 위해 그는 외국 장로교회 전통과는 달리 집사직은 안수집사와 서리집사로 이분화했으며 교회음악에 아악을 도입할 것을 주장했다. 한국교회의 독특한 전통이 된 새벽기도, 통성 기도도 그의 창안이었다.


길 목사는 부흥사로만 활약한 것이 아니었다. 민족 독립을 위해 앞장섰던 그는 3·1운동의 도화선이 된 민족 대표 33인의 독립선언서에 한국교회 장로교를 대표해 서명하고 1년7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그는 부흥사경회를 인도하면서 경제 자립과 국산 장려, 농촌 개발, 금주 운동과 같은 사회활동에 힘썼다. 교육사업에도 뛰어들어 숭실학교와 숭덕학교를 세우기도 했다. 그는 뜨거운 성령 체험을 통해 기독교가 단순한 정신 무장 운동이 아니라 생명의 진리라는 점을 깨닫게 해주었다.


정부는 오는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제64주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일제에 침탈된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헌신한 길 목사에게 건국훈장독립장을 추서한다.


국가보훈처 공훈심사과 김성민 사무관은 12일 서울 용산동 국방부 기자실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이번 포상과 관련, "길 목사는 3·1 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무죄를 선고받았다는 이유만으로 그동안 포상이 보류됐으나, 독립선언서에 한국교회 장로교를 대표해 서명한 사실이 분명하고 체포돼 1년7개월간 옥고를 치른 공적이 행형기록 등을 통해 확인됐다"고 추서이유를 밝혔다. 3·1운동 발발 90년, 해방 64주년 만에 비로소 애국지사로 인정받은 셈이다.


칼빈대 이억주(한국교회사) 교수는 "한국교회 부흥운동으로 성령 받은 사람들은 애국운동 대열에 적극 동참했다"며 "길 목사의 애국심과 행동하는 신앙은 참된 애국의 길을 모색해야 할 한국교회에 귀한 지침서가 된다"고 평가했다.

(출처 국민일보)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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