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웨스트체스터 감옥 수감중인 박동선씨를 위해 기도하자

“늙고 병든 박동선씨가 조국의 법정에서 재판 받을수 있도록 선처해 주십시오!” 동포청원서를 모아 한국으로 보내자. 지난밤에 나는 “옥중의 박동선선생님”에게 편지를 썼다. 이민 18년 동안 두 번째 써보는 편지였다. 10년 전 고향 형님에게 보내는 첫 번째 편지를 쓸 때처럼 눈물이 났다.

이계선 목사(퀸즈평화교회)가 지난 1월 유엔의 대 이라크 석유-식량계획 부정사건과 관련, 미 연방수사국(FBI)에 의해 체포되어 뉴욕의 웨스트체스터 감옥 수감중인 박동선씨를 위해 동포 청원서를 보내자고 제안했다.

또 "한 장의 편지가 감옥에 있는 박동선씨에게는 천군만마와 같은 힘이 된다"라며 박동선씨에게 편지쓰기도 부탁하고 있다.

(주소  Tong Sun Park #188027  10 Woods Rd  Valhalla NY 10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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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선씨는 크리스챤 집안에서 태어났다. 누나등도 한국 영락교회의 핵심인물인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박동선씨는 국제적인 인물로 거듭나면서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기회를 놓쳤다.

수감되어 어려운 환경을 맞이한 박동선씨는 뉴욕소재 한인교회의 담임목사인 N목사에게 초신자 교육을 받기도 했다. 10여회 박 씨와 만난 N 목사에 따르면 박씨는 "신앙의 출발"이라는 제목의 새신자 훈련 책을 가지고 공부를 했다.

N목사와의 만남에서 처음에는 고위층과 만난 이야기등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하던 박동선씨는 점차 자신의 이야기가 줄어들고 내가 죄인이라는 식의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N목사가 준 숙제를 열심히 한다. 박동선씨는 수감중 한 선교단체에 거금을 내놓기도 했다.

박동선씨가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서 나머지 인생을 살수 있도록 앞서간 자들의 기도가 필요하다. 그는 로비스트가 아니라 초신자 박동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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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이계선 목사가 쓴 아멘넷 칼럼이다.

박동선씨가 수감돼있는 웨스트체스터 감옥을 다녀온 후 나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면회는 못했지만 주혜란여사가 박동선씨와 나눈 대화에 내 얘기가 끼어든걸 알았기 때문이다.

“주박사는 서울에 있는 병원원장으로, 문화재진흥재단 회장으로 아주 바뿐 몸인데 이역만리 미국까지 면회와줘 고마워요. 뉴욕에서는 어떻게 오셨오?”

“이계선 목사님이란 분이 운전해줘서 왔어요. 그분이 집필을 도운 ‘변영로 아들 변천수회고록’도 가져 왔구요. 이 책에는 교포들의 힘으로 감옥에서 풀려난 감동스토리도 있으니 꼭 읽어 보세요”

“이목사님은 나이가 얼마나 되는 분인데?”

“저보다는 위이고 박선생님보다는 아래일거예요”

“음, 그러면 내 동생뻘이 되겠네. 그분을 꼭 만나보고 싶군. 전화번호나 주소라도 알면 내가 먼저 연락 할 텐데... 이목사님에게 꼭 부탁해주어요. 편지라도 보내주면 내가 아주 행복해할 거라고...”

‘동생뻘’이라는 말에 가슴이 저려왔다. 박동선이 누군가? 17살에 유학하여 명문 조지타운대학 총학생회장을 지내고 워싱턴정가를 주름잡았던 로비의 천재. 박정희대통령의 부탁을 받고 미국쌀을 수입하느라 85만 달러 로비자금을 뿌려 코리아게이트로 유명했던 거상(巨商). 미륭그룹과 숭의학원의 소유주로 다협회(茶協會) 난협회(蘭協會)를 만든 문화인. 비록 감옥에 있다 해도 나 같은 범부(凡夫)와는 감히 비교 할 수없는 일세의 영웅이 아닌가? 그런데 그 박동선이 나에게서 편지 한 장이 오기를 그렇게 기다리고 있다니!

사실 나는 그동안 박동선씨에 대하여 별로 관심이 없었다. 국제사기꾼이요 바람둥이정도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월간조선”의 “박동선옥중 인터뷰”를 읽고 박동선의 참 모습을 알게 됐다. 대동강물을 팔아서 돈을 번 봉이김선달 처럼  박동선은 엉터리로 미국쌀을 한국에 팔아먹은 사기꾼이 아니었다. 정정당당하게 미국쌀을 수입하여 차익으로 돈을 번 사업가였다. 정치자금을 빙자하여 수백억원을 차떼기 한 게 아니라 정당하게 로비를 벌려 그 대가를 받은 것뿐이었다.

바람둥이만 해도 그렇다. 박동선이가 미녀들의 남자로 소문났지만 유부녀를 건드렸다거나 처녀를 임신시키고 도망쳤다는 스캔들은 한 번도 없었다. 진시황이 삼천궁녀를 거느리고 다녔듯, 코리안 박동선이 허리웃의 미녀들을 데리고 놀았다는 이야기는 왜소한 한국 남자들에게 얼  떨 뿌듯한 무용담인가?

황해도민회장을 지낸 최병헌옹의 증언이다.

“박동선게이트로 시끄러울때 TV 특집으로 미국회 청문회에서 증언하는 박동선을 봤어요. 전 세계의 언론이 지켜보고 미국의 국회의원들에게 포위당하고 있는데도, 당당하고 조리 있고 나라사랑이 배어있는 감동적인 연설을 하더군요. 그의 나라사랑에 가슴이 뜨거웠지요”      

1990년대 초 미국의 원유(原油)금수(禁輸)조치로 이락국민들은 매년 수십만명이 굶어 죽어갔다. 이락은 유엔을 통하여 금수조치를 해제하려고 애썼다. 그때 유엔사무총장의 고문으로 있는 박동선씨가 훗세인으로 부터 200만달러를 받고 불법로비를 했다는 것이다. 그 후로 9.11테러, 이락전쟁이 터지고 박씨는 한국으로 귀국한다. 2005년 4월 미국은 박씨를 기소했다.

2006년 1월 사업차 파나마로 가던 박씨는 경유지 멕시코에서 미 FBI에 붙잡혀 미국으로 압송 당했다. 한국여권 소지자를 미국이 제3국에서 체포하는 건 불법이었다. 박씨는 대한민국국민이기 때문이다.

“나는 미국의 유엔 길들이기 희생양이다. 나는 무죄요 미 FBI는 나를 불법 납치했다”고 주장했지만 배심원 유죄판결을 받았다. 배심원들의 약점에 호소한 검사의 길티(Guilty)작전이 교묘했다.

“이사람 박동선은 돈이 많아 몇만 달러 쓰는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배심원을 지칭) 하루하루 벌어서 어렵게 살면서도 꼬박꼬박 세금을 내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일반시민이지요. 더구나 이 사람은 미국의 대적인 훗세인을 대변하는 로비스트랍니다”

가난한 배심원들이 애국심에 호소한 검사의 읍소에 넘어간 건 어쩔수 없는 일이었다. 내년 1월에 선고공판이 열린다. 한국에 있는 박동선 구명운동본부는 오는 24일 미 대사관 앞에서 데모를 벌린다. 일본에서는 33명의 일본국회의원들이 서명한 진정서를 미국판사 앞으로 보냈다. 멀리 한국과 타민족 일본도 그러는데 박씨곁에 사는 우리가 모른 체 하는 건 도리가 아니다. 박씨는 맨해튼에서 30분거리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그가 무죄이기 때문에 구하자는 건 아니다. 유죄 무죄는 법이 판단할 일이요 동포이기 때문에 구하자는 것이다. 박씨는 미국 상류사회에서 50년을 살았지만 시민권은 물론 영주권도 거부한 진기한(?) 한국인이다. 그는 신장이식수술을 받은 71고령에 당뇨와 고혈압으로 고생하고 있다.

“늙고 병든 박동선씨가 조국의 법정에서 재판 받을수 있도록 선처해 주십시오!” 동포청원서를 모아 한국으로 보내자. 지난밤에 나는 “옥중의 박동선선생님”에게 편지를 썼다. 이민 18년 동안 두 번째 써보는 편지였다. 10년 전 고향 형님에게 보내는 첫 번째 편지를 쓸 때처럼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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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아멘넷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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