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부지런한 물지게꾼이 매일 두개의 항아리를 어깨에 메고 물을 날랐습니다. 오른쪽과 왼쪽에 각각 하나씩의 항아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왼쪽 항아리는 금이 간 항아리였습니다.

늘 처음에는 물을 가득 채워서 출발했지만, 집에 오면 왼쪽 항아리의 물은 반쯤 비어 있었습니다. 금이 갔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오른쪽 항아리는 가득 찬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왼쪽 항아리는 주인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주인에게 요청합니다. 

"주인님, 나 때문에 항상 일을 두 번씩 하는 것 같아서 죄송해요. 금이 간 나같은 항아리는 버리고 새것으로 쓰세요." 

그때 주인이 금이 간 항아리에게 말했습니다. 

"나도 네가 금이 간 항이리라는 것을 안단다. 네가 금이 간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바꾸지 않는단다. 우리가 지나온 길 양쪽을 바라보아라. 오른쪽에는 아무 생명도 자라지 않는 황무지이지만, 왼쪽에는 아름다운 꽃과 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지 않니? 너는 금이 갔지만 네가 물을 흘린 자리 위에 아름다운 꽃과 풀이 자라고 있지 않니? 금이 간 네 모습 때문에 많은 생명이 풍성하게 자라고 있단다."

많은 사람들이 완벽함을 추구합니다. 자신이 금이 간 모습을 수치스럽게 여깁니다. 어떤 때는 자신을 가치없는 존재로 여겨 낙심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세상이 삭막하게 되는 것은 금이 간 인생 때문이 아니라, 너무 완벽한 사람들 때문입니다. 

당신은 금이 안 간 아내입니까? 그래서 남편이 죽은 것입니다.
 
당신은 금이 안 간 남편입니까? 그래서 아내가 죽은 것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명문대를 나온 어떤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 부모의 완벽함 때문에 그 자식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2등을 해도 만족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1등을 해도 전교 1등을 해야 한다고 다그쳤습니다. 그 아이의 심성이 아스팔트 바닥같이 메마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 황무지로 만드는 똑똑한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금이 간 항아리 같이 부족해도 살리는 사람이 좋은 이웃 아니겠습니까? 좀 금이 가면 어떻습니까? 틈이 있으면 어떻습니까? 좀 부족하면 어떻습니까?

하나님은 금이 간 인생을 좋아하십니다. 우리가 약할 때 강함이 되어 주십니다. 세상에서 천하고 멸시받고 약한 것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한 방울의 물도 떨어뜨리지 않는 항아리는 황무지를 만듭니다. 탁월함은 완벽함이 아닙니다. 약함과 부족함과 누수 되는 물이 주는 생명력이 있습니다. 비록 금이 간 항아리이지만, 오히려 그 약점을 통해 다른 생명들을 살리는 도구로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바로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고전 1: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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