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에 시작한 코람데오 닷컴이 6개월 만에 창립총회를 가졌다. 아주 작은 홈페이지이지만 인터넷 언론을 표방하고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교계에는 수많은 언론매체들이 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정확한 정보와 소식에 목말라 하고 있다. 어떤 신문은 조금이라도 이슈가 될 성 싶으면 아예 취급을 하지 않는다.

취급할 수가 없다. 기자의 의견이나 비판적인 내용이 조금이라도 실리면 그것이 바로 하나의 사건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언론이란 성경적인 의미로 보면 선지적인 외침인데, 그것이 불가한 것이다. 물론 영 엉터리 같은 언론들도 있다. 불의한 자들의 대변지 같은 신문이다. 

우리는 작은 - 그야말로 미니 언론이지만 선지적인 소리를 발하려 한다. 특히 불의한 일, 악한 일, 깨닫지 못하는 죄를 지적하는 글방이 되고자 한다. 이런 방을 만든 것은 우리의 죄 된 모습을 보고, 하나님의 의를 깨닫고 가슴을 두드리는 기도의 골방으로 나아가고자 함이다.

한국교회의 빛이 되고 개혁의 선봉이 되고자 했던 고신 교단, 지금은 황폐한 모습을 부끄러움도 모른 채 만천하에 드러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모습이 어떤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적고, 애통하는 자도 별로 없다. 오히려 죄를 조금이라도 지적하는 자가 있으면 그는 분노와 미움의 대상이 되고 만다. 아- 우리의 수명이 벌써 다했단 말인가!

거짓의 영이 지도부를 점령한 것처럼 보인다. 개인적인 거짓을 넘어 이제는 공회가 거짓을 옹호하고 감싼다. 분명히 거짓 서류를 만들었고, 그것이 교인들의 고발로 만천하에 드러났건만, 총회산하 해당 위원회는 그를 감싸고 후보자격을 부여했다. 거짓은 거짓을 덮고 죄의식을 무감각하게 만드는 법. 그러다보니 총회 수뇌부가 모여 세 차례나 거짓 공문서를 만들어 발송하는 일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걸 지적하면 편 가르기 싸움으로 몰아부친다.

지금도 거짓되고 악한 자들을 비호하는 사람들이 있다. 억장이 무너지는 것은 이런 일이 개인적인 차원이 아닌 공적인 차원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우리 주위에 참과 거짓이 뒤바뀌고, 악과 선이 왜곡되는 일들이 계속되고 있다. 더 불의한 자가 덜 불의한 자를 치는 세상이다.

우리는 의인이 아니다. 의인은 없나니 아무도 없다. 그렇다고 침묵할 수는 없다. 불의한 것은 보고도 의분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는 살았으나 죽은 자가 아니겠는가. 내가 비록 죄인이지만 죄인인 줄은 알아야 하고, 불의를 보면 불의인 줄은 알아야 희망이 있다. 그것은 생명이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알기라도 알고,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껴야 회개가 일어날 것이 아닌가.

물론 선지자들의 말씀은 이런 면에서 매우 비관적이다. 시편에서는 “귀머거리 독사”가 언급되었고,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보내시면서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고 말씀했다. 그런데도 왜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보내시는가? 선지자는 왜 이런 걸 빤히 알면서도 외치는가?

사람들은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그들을 모욕하고 핍박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다시는 말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는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이것이 우리의 심정이다. 답답하여 견딜 수 없음으로 말하는 것 뿐이다.

어떤이들은 고맙게도 우리를 개혁파라는 이름으로 불러주고 있다. 황송한 일이다. 개혁파란 16세기를 전후해서 성경으로 돌아가 성경의 진리를 찾고 개혁운동을 일으킨 사람들에게 붙여졌던 명칭이다. 우리도 그분들이 했던 일을 조금이라도 할 수 있었으면 한이 없겠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정치가 아니다. 세력을 구축하고 패권을 잡겠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의를 선포하고 그의 의를 이 땅에 구축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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