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낙태천국입니다. 2005년 보건복지부 조사에 의하면 한 해 동안 약 34만 건의 낙태가 이루어졌습니다. OECD국가 중 최고 수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는 낙태를 금지하는 법이 없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현 모자건강법에 따르면 강간이나 근친상간, 산모의 유전 전염성 질환, 혹은 임산모의 건강을 위협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낙태를 금하고 있습니다. 법을 지키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낙태의 95%가 불법 낙태입니다.

  

우리나라는 사형의 형벌이 있고 그래서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형을 집행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형사소송법에 의하면 사형 선고가 내려지면 6개월 안에 법부무 장관의 서명으로 사형을 집행하도록 되어 있습니다(형사소송법 제465조 1항). 사형 선고를 내렸는데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 것은 법을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언젠가 어느 신문을 보니 이명박 대통령은 사형제도는 찬성이지만 사형 집행은 반대하는 입장이라고 했습니다. 사형제도의 취지는 살리되 실제 집행은 하지 않는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사형을 집행하지 않으려면 법을 바꾸어 사형 제도를 폐지해야 합니다. 대통령에게 법을 지키지 않을 권리가 없습니다. 저는 지금 사형제도의 찬반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법은 지켜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서구 사람들은 오랜 세월 왕의 권력으로부터 시민을 권력을 찾기 위해 투쟁해왔고 그 투쟁 과정에서 얻은 시민의 권리를 법으로 확보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서구 사람들은 대체로 법은 나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법을 통해 자신의 권익이나 사상을 실현하기 위해 법을 만드는 데 관심을 쏟고 (대법원에서 낙태에 관계된 한 사건에 판결을 내리기 전에 낙태 반대자와 찬성자가 각각 백만 명이 모이는 시위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판례가 되기 때문에 결정이 나기 전에 그렇게 시위를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일단 만들어진 법은 당연히 지키는 것으로 여깁니다. 우리는 왕정에서 식민지 시대를 거쳐 갑자기 민주주의를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법으로 우리의 권리를 쟁취해온 역사가 거의 없습니다. 우리에게 법은 다스리는 사람들이 백성들을 다스리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법을 만드는데 별로 관심이 없고 심지어 법은 할 수만 있으면 빠져나가는 것이 유익이라는 잠재의식까지 있습니다.

  

법을 만드는 사람들 또한 법을 다스리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다보니 자기들 편리한 대로 법을 만듭니다. 그런 다음 집행할 때는 여유를 둡니다. 그래서 법과 현실 사이에 거리가 생깁니다. 법과 현실 사이의 거리, 그 거리가 때로는 여론에 의해, 때로는 집행하는 사람에 의해 좌우됩니다. 그 거리가 많은 경우 부정의 온상이 됩니다. 결국 그 거리가 나라를 무질서하게 만들고 국민을 불안하게 만듭니다. 법과 현실 사이에 거리가 없어야 합니다. 법은 만들 때 지킬 수 있는 법을 만들어야 하고 만든 다음에는 모든 국민이 지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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