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교회를 바라보면서 많은 사람이 염려한다. 기독교인은 교회가 성장하지 않는 위기를 말하고 비기독교인은 더는 크리스천 같지 않은 교인의 모습에 실망한다. 오늘날 교회 위기는 ‘복음’ 때문이 아니다. 참다운 정체를 밝히지 못하는 교회와 교인 때문이다. 이 모든 일은 진실이 드러나지 않는 오해에서 비롯된다. 교회 건물을 드나든다고 교인이라고 생각하고, 십자가를 단 건물을 지었다고 하나님의 교회라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아니, 세상 사람이 그렇게 착각하도록 만들어서는 안 된다.

어떤 노신사가 상점에 들어서다 흉하게 생긴 큰 개가 웅크리고 앉은 것을 보았다. 그 옆에 편안하게 앉아 있는 아이를 보고는 물었다. “너희 집 개는 물지 않니?” “예, 우리 집 개는 순해서 물지 않아요.” 아이가 대답했다. 그 어른은 개 앞을 지나가면서 쓰다듬는다. 그런데 갑자기 개가 으르렁거리더니 순식간에 이 사람을 물어버렸다. “아이야, 너희 집 개는 순해서 안 문다며?” “예, 우리 집 개는 순하죠. 그런데 이 개는 우리 집 개가 아니거든요.”

지레 짐작한 것이다. 아이의 곁에 있다고 그 개가 그 아이의 것은 아니다. 옆에 있다는 것이 그 사람의 소유를 의미하지 않는다. 실제로 그 개가 누구의 것이냐는 다른 문제다.

문제는 세상 사람이 착각하는 것이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크리스천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그런 착각이 하나님에 대해서도 착각하게 만든다. 교회에 있는 사람들의 행동을 보면서 하나님에 대해 지레 짐작하고, 오해하고, 실망하고, 때로는 분노한다. 복음의 탁월성과 하나님의 선하심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요즘은 ‘마케팅’이라는 말이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아무리 좋은 물건을 만들어도 마케팅에 실패하면 헛수고가 된다. 좋지 않은 물건을 그럴싸하게 마케팅으로 포장해 판다면 그것은 사기의 일종이지만, 아주 좋은 것을 가지고도 마케팅을 못해서 판매에 실패하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필자는 요즘 “복음을 마케팅 하라!”고 주장한다. 요즘 한국교회와 교인을 보면 마치 좋은 물건을 만들고도 마케팅에 실패한 기업과 같기 때문이다. 아무리 탁월한 복음과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 알고 있다 해도 그것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실패한 것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마케팅의 방법이 있다면, 크리스천의 삶과 교회가 하는 일을 통해서다.

종종 고위 공직자들을 임명하는 데 ‘이중국적’ 논란이 일곤 한다. 누군가 그 정도 위치에서 권력을 누리고, 이 나라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마음이 있다면 정체를 밝히라는 것이다. 양다리를 걸치고 뭔가 혜택을 누리려는 얄팍한 태도를 세상 사람이 바라보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회와 크리스천의 문제도 바로 이중국적의 문제인 듯하다.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가지고도 이 세상의 혜택을 누리면서 포기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세상이 뻔히 알기 때문이다. 더는 숨길 수 없다. 하나님을 오해하지 않도록 분명하게 소속을 밝혀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라면 우리의 정체를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복음을 마케팅하는 최선의 방법은 복음을 사용하는 ‘소비자’를 통해 증명해야 한다. 당신의 정체를 밝혀야 한다. 하나님을 오해하지 않도록, 그리고 복음의 탁월함과 하나님의 선하심이 밝히 드러나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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