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광복 65주년이고, 특별히 한일합방으로 주권침탈을 당한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런데 이런 민족적 국가적 기념일도 역사가 흐르면서 국민들의 기억 속에서 차차 사라져 가고 있다. 어느 일간 신문에서 설문조사를 했는데, 한일합방의 연도를 기억하는 국민들은 15%에 지나지 않았고, 해방연도를 기억하는 국민들도 약 50%였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크리스천들은 8.15와 같은 중요한 절기를 꼭 기억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자신을 돌아보고, 또 조국을 위해 기도하는 날로 지켜야 하겠다.

2차 대전 때 연합군 사령관이었던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이 일본의 항복 조인식을 끝내고 남긴 한 마디 말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고 있다. “앞으로의 세계문제는 더 이상 군사적으로 해결하지 못합니다.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의 세계문제는 신학의 문제입니다.” 이 말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많이 생각하도록 만든다. 이런 말을 염두에 두면서 8.15가 주는 신앙적인 의미들을 함께 나누고 싶다.

8.15는 한국교회의 중요한 절기가 돼야
우리는 먼저 8.15가 한국교회사 속에서 갖는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8.15는 단순히 국가적이고 정치적인 기념일만은 아니다. 이 날은 한국교회가 신학적인 관점에서 기념해야 할 중요한 교회의 절기이다. 광복절이 한국교회에 있어서는 이스라엘의 유월절과 같은 의미를 가진 절기이기 때문이다. 유월절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히브리인들을 말살하려고 했던 애굽의 바로 왕으로부터 그들을 해방시킨 날이다. 이같이 광복절도 일제가 한국교회를 박멸하려고 했던 데서부터 해방된 날이다.

이런 신학적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제 시 한국통치의 중심 타켓이 한국교회였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먼저 일본제국과 한국교회는 영적으로 적대관계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일본제국의 헌법을 기초한 사람은 이등박문(伊藤博文)이었다고 하는데, 그는 제국헌법의 정신적 중심을 천황제에 두었다. 이 천황제는 일본의 민족종교인 신토이즘(神道)에서 나왔다. 신도란 귀족이나 나라를 위해 죽은 사람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순국선열들을 모두 신으로 받들어 신사에 모시고 섬기는 종교이다. 그리고 이런 모든 신들의 우두머리는 천황이다. 천황은 태양신의 아들이요 살아있는 현인신이다. 이런 종교화된 천황제를 일본의 국가이념과 정신으로 삼은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 일본이 항복선언을 할 때 그 첫마디는 “천황은 신이 아니다”라는 말이었다.

따라서 일제는 태생적으로 기독교와 적대관계에 있었고, 영적으로 적그리스도의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조선통독부는 한국통치의 가장 큰 장애가 기독교회와 선교사들이라고 처음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교회를 굴복시키지 않고서는 한국통치가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를 증거하는 문서자료들이 드러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학교의 학생들과 교회들로 하여금 신사에 참배하게 하였고, 말을 듣지 않으면 학교도 교회도 폐교시켰다. 신사참배를 하는 교회도 예배를 시작할 때는 가장 먼저 천황이 있는 동방을 향해 절을 해야 했다. 바로 동방요배(東方遙拜)이다. 그리고 그들은 교회 지도자들을 데리고 나가서 천조대신의 이름으로 미소기바라이(기독교의 세례와 비슷한 신도의 청정예식)를 하게 하였다. 이는 신앙의 근본을 무너뜨리려고 하는 사탄의 책략이었다.

또 천황이 최고의 현인신이기 때문에 찬송가에 “만왕의 왕, 만군의 주, 전능왕, 재림주” 등등이 나오는 구절들은 읽거나 부르지 못하도록 했다 한다. 또 목사의 설교는 임석경관이 와야 시작했고, 목사님이 설교 도중에 앞에서 예로 든 말이 나오면 “닥쳐”라고 소리치며 강단에 뛰어올라가 손을 비틀어 수갑을 채우고 거칠게 끌고 갔다고 한다. 그러므로 일제의 교회 탄압은 단순히 기독교인들의 독립운동을 막고 “내선일체”라는 정치적 목적을 이루려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공격이요 전쟁이었던 것이다.

사탄은 창세 이후 계속해서 하나님나라를 공격해 왔다. 교회를 말살하려고 책동하고 공격했던 일은 역사 속에서 수없이 계속되었었다. 일제가 한국교회를 공격한 것도 바로 이런 전쟁의 연장선상에 있었던 일이다. 지금도 북한에서는 이런 사탄의 책동과 공격이 계속되고 있다.

일제가 통치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한국교회는 한국의 상징이요 대표였기 때문이었다. 당시에 조선에 교회보다 강한 신앙을 가진 집단이 없었다. 교회 외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정신적 구심점이 없었고, 또 실제로 교회 외에는 전국을 연결할 수 있는 조직이나 네트워크가 없었다. 3.1독립운동이 일어났던 곳을 한반도 지도상에 표시하면 그것은 곧 교회의 전국 분포도와 정확히 겹쳤다고 한다. 그래서 조선총독부는 한일합방이 된 직후부터 기독교를 굴복시키기 위해 온갖 모략과 악법을 만들어 야수와 같이 탄압하였던 것이다.

8.15 해방은 하나님의 은혜
이런 상황에서 맞은 8.15야말로 이스라엘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인도하여 내신 것과 동일한 의미를 가진 역사적인 날이요 은혜의 날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의 독립은 자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임시정부가 쟁취한 해방도 아니요 독립군이 일본군과 싸워 얻은 독립도 아니다. 그리고 한국교회가 태양신과 싸워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이겼기 때문에 된 일도 아니다. 사실 한국교회는 일제의 야수적인 핍박과 만행 앞에 지리멸렬 되었었다.

우리나라의 독립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한국교회가 완전히 무너지지 않도록 긍휼을 베푸신 것이다. 먼저 자주독립정신의 기초가 된 민족자결주의는 성경에서 나온 사상이다. “민족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정하신”(행 17:26) 하나님을 알고 믿었던 사람들에게서 나온 사상이다. 그리고 독일과 일본과 이태리, 세 나라를 꺾고 많은 나라와 민족들에게 독립을 안겨주었던 연합군의 지도자들은 대부분 신실한 크리스천들이었다. 영국의 처칠 수상,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 연합군 사령관 맥아더 장군 등은 아주 훌륭한 신앙인들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통해 우리에게 해방을 가져다주셨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조국의 해방과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며 싸운 애국지사들과 순국선열들의 공로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일제 때 믿음의 정조를 지키고 교회를 지키다가 순교한 분들의 영적인 투쟁을 폄하하려는 것도 물론 아니다. 그분들의 희생과 투쟁을 우리가 높이 기리고 감사하면서도 이에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셨고, 하나님이 우리나라와 민족을 지켜주셨다. 애국가의 첫 구절인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라는 가사 그대로이다.

필자는 우리나라의 근대사를 공부할 때마다 “오직 은혜”를 확인하며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역사란 가정이 있을 수 없는 것이지만, 만약 우리나라가 일본에 의해 70년 정도 지배를 받았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남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과연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 없이 근대화와 민주화를 이룬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을 수 있었을까? 우리나라는 열강들이 각축을 벌이고 있는 작은 반도의 나라이다. 그것도 남북이 갈라져서 엄청난 비극적인 전쟁을 치르고도 싸움이 끝나지 않고 계속 총부리를 겨누며 대치하고 있는 불안한 나라이다. 영토도 좁고 지하자원도 없는 나라, 그리고 세계 속에 정말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는 위대한 지도자도 없는 나라, 이런 나라가 열방 속에 우뚝 설 수 있다는 것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가 있을까?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의 축복이다. 먼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음, 프로테스탄티즘, 청교도신앙이 그 은혜의 중심이다. 나라를 넘고 세상을 넘어 영원한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갖게 해 준 신앙과 그 정신이 결정적인 축복이요 은혜이다. 그리고 공산주의로부터 지켜주시고, 열강들의 경제적인 침략에서도 보호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이다.

우리는 8.15를 맞으며 과거의 고난의 때를 기억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해야 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유월절이 되면 자녀들과 함께 쓴 나물에 누룩을 넣지 낳은 딱딱한 빵으로 기념만찬을 가지면서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고난의 때를 기억하고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을 찬미하고 감사하였던 것처럼 말이다.

반성과 회개가 반드시 뒤따라야
그리고 8.15는 감사의 절기로 지켜야 할뿐 아니라 반성과 회개의 절기로 지켜야 한다. 지난 8월12일 서울에서 8.15를 기념하는 학술대회가 있었다. 필자는 목회자를 대표하는 패널로 초청받아 참석하였다. 그 토론에서 필자는 8.15 대성회가 캐치 프레이즈로 내세운 일곱 가지 주제 가운데 회개가 없다는 것을 지적하며 안타까움을 표시하였다.

성경을 보라. 성회에 회개가 없었던 적이 있었던가? 그리고 과연 지금 한국교회가 과연 8.15를 감사와 축제로만 맞을 수 있는 형편인가? 필자의 이런 질문에 나온 주제발표자들의 대답은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 대답의 요지는 “한국교회가 잘못하고 있는 것이 대관절 무엇이냐? 그리고 회개란 하나님 앞에서 개인이 하는 것이지 회개를 공적으로 떠들며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이런 대답이 목회자들 입에서 나왔다 해도 놀랄 일인데 원로학자들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이 필자뿐 아니라 함께 참석한 신학자 패널들까지도 귀를 위심케 만들었다.

다행이 8월15일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8.15대성회에서 목사들이 강단에 무릎을 꿇고 “한국교회는 여러 번 분열하였고 예언자적 사명을 소홀히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기주의와 물량주의에 치우쳐 신자의 윤리적인 책임과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했음을 깊이 뉘우치며 회개합니다.”라며 회개하고, “창조질서를 회복하겠습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진실한 신앙인이 되겠습니다. 교파주의를 극복하겠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함께 하겠습니다.”라고 다짐하였다고 한다.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닌 실천이 이루어지기를 함께 기도한다.

우리나라 역사는 이스라엘 역사와 너무나 많은 면에서 닮았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펴신 팔과 그 능력으로 애굽에서 해방되었다. 홍해를 육지같이 건넌 후 그들은 춤추며 노래했다. 그러나 그후 그들은 어떻게 했나? 그들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았다. 그들은 출애굽을 했지만 정신적으로나 신앙적으로는 애굽에서 독립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애굽의 고기 가마를 사모했고, 애굽 사람들의 우상인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했다. 그러다가 그들은 광야에서 다 죽었다. 그리고 그 후손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갔는데, 그들은 또 어떻게 했나? 그들은 그 땅의 토속종교인 바알과 아세라 숭배에 끊임없이 빠지고 타락했다.

“여호와의 율례와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들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과 경계하신 말씀을 버리고 허무한 것을 뒤따라 허망하며 또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따르지 말라 하신 사방 이방 사람을 따라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모든 명령을 버리고 자기들을 위하여 두 송아지 형상을 부어 만들고 또 아세라 목상을 만들고 하늘의 일월성신을 경배하며 또 바알을 섬기고 또 자기 자녀를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복술과 사술을 행하고 스스로 팔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그를 격노하게 하였으므로”(왕하 17:15-17)

한국교회가 꼭 이와 같은 역사를 반복하고 있다.
1) 일제 때 한국교회가 저지른 우상숭배의 죄를 회개하고 청산하는 일을 하지 못했다. 신사참배라는 엄청난 죄를 짓고도 해방 후에 이에 대한 공적인 회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본이 한국을 침략한 일에 대하여 사과를 하면서도 한편으로 엉뚱한 소리를 내듯이 교회지도자들이 회개한다고 하면서도 “회개는 개인문제라느니” “순교자들이나 옥중성도들만 고생한 것이 아니라 일제의 온갖 탄압을 받으면서도 교회를 지킨 지도자들도 동일하게 고생하였다”며 변명했다. 한경직 목사님은 템풀상을 받을 때 “나는 신사참배를 한 죄인이 올시다”라며 회개했다. 그런 분이 참으로 용기 있는 분이고 존경할 분이다.

한국교회는 현세주의 물질주의 우상숭배에 빠져 있다. 일제하에서 저질은 우상숭배의 죄를 회개하고 청산하는 일을 제대로 못했기에 그런 우상숭배가 또 다른 형태로 계속된 것이다. 현세주의 물질주의는 한 마디로 기복신앙이다. 바알종교는 현세주의 물질주의 종교이다. 바알은 농사의 신이다. 바알을 경배함으로 풍년이 오고, 양들이 새끼를 많이 낳고, 잘 먹고 잘 살게 된다는 종교이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이런 기복주의에 깊이 빠져있다. 그래서 교인들이 철저히 현세적이다. 연보하는 일도 “연보하면 복 받는다”는 기복적인 강조나 “연보 안하면 망한다”는 기복적인 위협이 없으면 너무나 소극적인 것이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대관절 하나님나라를 구하며 하나님나라를 위해 보물을 쌓는 교인들이 얼마나 될까? 필자는 가끔 신자들이 과연 하나님나라의 존재를 믿기나 하는 것일까라는 의구심이 생길 때가 있다. 또 천국을 믿는 사람들까지도, 사람이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다면 천국에는 가야할 것이 아닌가라는 정도의 믿음으로 사는 것처럼 보인다.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세우고자 하셨던 하나님나라, 영원에 잇대어 있는 그 나라를 먼저 구하며 영원에 잇대어 사는 교인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2) 한국교회는 양적 성장주의에 빠져 있다. 교회가 영혼구원보다 부흥을 앞세우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재보다 숫자를 더 중시하고 있다. 여기서부터 교회의 모든 좋지 않은 병폐와 부패가 시작되었다. 이런 죄는 교인들의 잘못에서 온 것이 아니라 필자와 같은 목사들과 지도자들의 죄악이다.

사실 성장주의도 세속주의 우상이다. 우선 눈에 보이는 일에 집착하는 것은 세속적 성공을 추구하는 자기 비즈니스이기 때문이다. 능력 있는 목사들이 큰 교회당을 짓고 부흥을 강조하는 것이 하나님중심이라기보다 자기중심인 경우가 많은 것이다. 이렇게 자기중심이다 보니 자기가 이룬 것을 남에게 넘겨줄 수가 없어 교회를 세습하는 희한한 일까지 하는 것이다.

물론 이 성장주의가 목사들만의 죄는 아니다. 교인들의 요구가 목사를 그렇게 만들어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로 갓 안수를 받은 젊은 목회자들이 하나님중심 말씀중심의 바른 목회를 해 보겠다고 “거룩한 비전”을 가지고 나섰다가도 “꿩 잡는 것이 매”라는 교인들의 성장주의의 요구 앞에서 순식간에 무너져 버리고 만다.

3) 한국교회는 위선과 이기주의에 빠져 있다.
교회 안에서는 훌륭한 신앙인들인데 삶의 현장에서는 불신자들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사랑의 실천을 강조하면서도 섬김과 나눔을 매우 힘들어 하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다. 교회적으로도 개교회주의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대사회적인 봉사나 공적 책임에 대해서는 무감각하다.

한국교회는 하나님 앞에서 뿐 아니라 열방 앞에서 한국을 대표하고 있다. 이게 좋은 일인지 그렇지 않은지 분별이 잘 안될 때도 있지만, 어쨌든 이것은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외면적으로만 보아도 정부의 3부 요인이 다 크리스천이다. 국회의원의 70%가 기독교인(천주교 포함)이라 한다. 세계 어느 나라에나 선교사들이 나가 있고, 오지에 있는 나라들에는 우리 외교관들이 선교사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외교를 제대로 할 수 없는 때도 있다는 말까지 들린다.

교회가 개혁되어야
교회가 개혁되어야 한다. 진정한 부흥을 이루어야 한다. 호세아의 권고대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 하나님중심, 말씀중심의 신앙원리가 회복되어야 한다. 하나님나라의 이념과 정신으로 세상을 섬기는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교회가 바로 서면 우리나라가 바로 서고 복을 받을 것이다. 교회가 바로 서야 남북의 통일이 이루어질 것이다. 반쪽 광복이 온전한 광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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