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영안 장로

  서강대 철학과 교수
  두레교회 장로
  현재 미국 칼빈 칼리지 초빙 교수
땅위에 사는 동안 좋은 사람을 만나 삶을 함께 나누는 만큼 큰 복이 어디 있겠는가. 부부 나 사제(師弟), 선후배나 친구뿐만 아니라 목사와 성도 사이에도 사랑과 신뢰와 상호 소통이 있다면 우리의 삶은 아름답고 행복할 것이다. 남편이나 아내, 친구 문제로 고민하고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듯이 목사님들 가운데는 성도들 문제로, 성도들 가운데는 목사님 문제로 고민하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최근 우리 기독교계 경향 가운데 우려할 일은  평신도들만 모이는 교회가 이제는 점점 낯설지 않게 보인다는 것이다. 신앙생활을 진지하게 하고자 하는 사람들 가운데, 그 가운데서도 대부분 전문직에 종사하는 3, 40대 젊은이들 가운데 이런 성도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준다.

기존 교회를 떠나 새로운 교회를 이루고자 하는 동기가 현실 교회에 대한 실망이고, 현실 교회에 대한 실망은 대체로 담임 목사에 대한 실망에서 비롯되는 것을 자주 본다. 성도들의 은사를 충분히 인정하고 활용하기 보다는 목회자 독단으로 일을 계획하고 집행하는 모습이나 언행일치가 되지 않는다거나 말씀 사역에 열심을 내지 않고 다른 일에 관심을 더 많이 둔다거나 하는 것들이 성도들에게는 목회자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하는 요인이 된다. 목회자에 대한 비판적 생각을 가진 성도들이 많이 늘어나면 날수록 목사 청빙 문제는 어려워진다. 조건이 늘어나고 사람 보는 눈이 까다로워지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일이다. 목회자 문제로 열 가정이 한꺼번에 나와 따로 예배를 드리는 그룹이 있었다. 직접은 아니지만 간접적으로 어느 목회자를 그 교회에 추천을 해서 보냈는데 청빙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했다. 청빙 과정에 중심 역할을 했던 장로에게 사정을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자기들이 듣고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다고 했다. 교회를 민주적으로 운영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럴 생각이 없으며, 소형 교회를 지향하기를 성도들은 기대를 하고 있는데 그렇지 않았으며, 설교가 성도들의 관심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사람을 잘못 봤을 것이라고 말은 하긴 했지만 좋은 목사님 모시려는 열망을 나무랄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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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면서 내 자신이 목사 청빙에 직접 관여해 본 일은 두 번 있었다.  한번은 1980년대 초반 네덜란드 유학 시절에 암스테르담 한인교회에서 목사 청빙에 관여한 일이었고 또 한 번은 90년대 후반 경기노회 소속 두레교회 당회를 도와 청빙에 관여한 일이었다. 두 번의 경우 역할과 주안점은 서로 달랐다.

암스테르담에서 목회자를 초빙할 때, 주로 관심을 둔 것은 절차였다. 목회자를 초빙하자면 교회가 종교 기관으로 등록이 되어 있어야 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정관기초위원회를 만들었고 내가 서기를 맡아 정관 초안을 만들었다. 네덜란드 개혁교회 교회 헌법을 읽고 교회법과 교회정치의 역사를 자세히 공부한 때가 이 때였다. 아직도 한인교회가 사용하고 있는 그 때의 정관을 보면 목회자 청빙과 관련된 부분이 다른 부분보다 자세하게 규정이 되어 있는 것은 정관을 만든 동기가 목사 청빙에 있었기 때문이다. 정관이 공동의회에서 통과된 뒤, (다시 내 손으로) 번역하여 네덜란드 법무부에 교회를 종교 법인으로 등록하였고 그 뒤에야 청빙위원회를 구성하여 청빙 절차를 밟았다.  

암스테르담 한인교회는 어느 특정 교단 소속이 아니었기 때문에 교단에 추천을 부탁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교인들이 믿고 맡길 수 있다고 생각한 세 분에게 추천을 요청했고 그 결과 지금은 명덕교회에서 시무하고 계시는 장희종 목사님을 추천받았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어려움이 생겼다. 청빙위원 가운데 친지를 통해서 추천받은 목사님을 끝까지 고집한 가정이 생겼고 이 분들이 교민으로 오래 생활한 분들과 함께 자신들의 안을 관철시키려고 애썼다.  그러나 결국 공식 결정과 절차를 따라야 한다는 주장으로 청빙위원회가 애초에 결정한 통로를 통해 추천받은 장 목사님을 초빙할 수 있었다. 청빙 과정에서 특정 인물을 거론하기 전에 절차를 정해 두고 절차를 따라 일을 진행함이 얼마나 유익한지를 이 때 배웠다고 하겠다. 

두 번째 경우는 두레교회였다. 초대 목회자였던 정근두 목사님에 이어 장희종 목사님이 목회를 하고 있었는데 97년 10월 장목사님이 명덕교회로 결정되어 갑자기 옮기게 되는 일이 생겼다. 당시 두레교회 장로님들은 대부분 독립교회였던 일신교회에서 나온 분들로 고신측 목회자들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장로님들은 나에게 적합한 목회자를 찾아 달라는 요청을 해 왔다.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이 두레교회가 어떤 교회로 자라가야 하며 어떤 목회 스타일이 가장 알맞을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 때 떠오른 키워드가 세 가지였다. ‘지역 목회’, ‘청년 목회’, ‘현실 목회’였다. 목회학 시간에는 아마 이런 단어가 사용되지 않겠지만 두레교회가 처한 상황에서는 장로들과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따라서 목회자도 지역을 섬기는 일과 청년들을 키우는 일, 그리고 현실 속에서의 성도들의 구체적이고 일상적 삶을 성화시키는 목회에 관심을 둔 분을 모시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말씀을 잘 가르쳐야 한다든지, 영성에 뛰어나야 한다든지, 인품이 좋아야 한다든지, 가정생활에 충실해야 한다든지 하는 것은 물론 기본적으로 깔려 있었다.

두레교회는 당시 청빙 위원회를 따로 구성하지 않았다. 장로들이 모두 청빙위원으로 역할 했고 그 가운데 나는 여러 통로를 통해서 추천을 받는 일을 맡았다. 그래서 세 분의 이름을 장로들의 모임에 제출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 임시 당회장을 맡은 분이 따로 추천하는 분이 있었기에 그 분도 보기로 했다. 그래서 한 분은 주일 설교와 오후 특강을 하고, 특강이 끝 난 뒤 전 교인들과 한 시간 반 개인의 삶과 가정, 목회철학 등에 관해서 질의토론을 할 시간을 가졌다. 다른 한 분은 수요일 저녁 설교 후, 한 시간 정도 질의 토론할 시간을 가졌다. 두 분 모두 훌륭했고 교회로서는 과분한 분들이었다. 청빙절차가 끝난 뒤, 임시당회장을 맡았던 목사님이 주일설교를 한번 하시겠다고 하셔서 오셨는데, 어떻게 목회자를 불러놓고 질의 토론을 할 수 있느냐고 질책했던 일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두 경우 모두 교단 신문에 광고를 내거나 하지 않고 가능한 인맥을 동원하여 교회에 가장 적합한 분이라 생각되는 목회자를 찾았다. 교육 배경이라든가 학위라든가 언어 능력이라든가 요즘 사람들이 자주 거론하는 조건을 내세우지 않았다. 암스테르담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네덜란드 안에 있는 교회이기 때문에 개혁주의 신앙과 신학 전통을 잘 이해하는 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고 내 개인적으로는 고신측 목사님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두레교회 경우는 고신 교단 소속이기 때문에 고신 신대원을 나온 분으로 기본적 자격은 충족시키는 것으로 보았다. 신경을 많이 쓴 부분은 청년들 중심 목회, 지역을 섬기는 목회,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일군으로, 삶 속의 선교사로 성도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세울 수 있는 목회가 가능한 분을 찾으려고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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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적 관점에서 이미 목사 청빙과 관련된 논의를 몇 분이 하셨고, 그리고 나에게 요청한 내용이 교회 장로로서 청빙에 관한 의견을 피력해 달라는 것이었기에 나의 한정된 경험을 토대로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1. 목사 청빙을 하고자 할 때 당회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일의 절차를 규정하는 일이다. 청빙위원회를 어떻게 구성할지, 청빙위원회는 어떤 방식으로 활동할지, 가능한 목회자의 명단을 어떻게 만들지, 어떤 순서를 따라서 적합 여부를 판단할지, 당회에는 몇 분을 추천해서 올릴지, 당회에서는 어떤 절차를 통해서 공동의회에 제출할 최종 후보자를 정할지 등을 먼저 정해야 한다. 이미 이러한 규정이 되어 있는 교회가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 교회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2. 절차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교회의 현 상황에 대한 파악과 미래 비전에 대한 이해이다.  개체 교회는 지역에 따라, 계층 구성에 따라, 구성원들의 연령대에 따라 그 특성이 다를 수밖에 없다. 교회가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를 이룬다는 점에서 어떤 교회나 기본적으로는 비전이 동일하지만 지역과 인적 구성에 따라 세분화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작업은 연역적일 수밖에 없다. 성경의 원리, 개혁주의 신학의 기본 정신, 고신 교단의 특성, 개체교회의 자원과 역량 등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3. 가능한 후보 명단을 만들기까지는 여러 단계를 밟을 수 있다. 문제는 우선 가능한 인물을 찾는 일이다. 쉬운 방법 중 하나는 목사 안수를 이미 받은 분 가운데 부목사로 섬기고 있는 분들의 명단을 확보하는 일이다. 소속 노회나 가까운 노회 소속 교회의 부목사들 가운데서 가능한 후보 명단을 만드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만일 가까운 노회에서 찾을 수 없다면 멀리 떨어져 있는 다른 노회 부목사 가운데서 찾는 일도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목회를 잘 하고 계시는 목사님을 청빙 대상으로 삼는 일은 삼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4. 그러나 문제는 명단을 확보했다고 하더라도 해당 교회에 적임자인지 검증하기가 쉽지 않다. 교회 담임 목사, 신학 교수, 동기들을 통해서 나이나 배경, 경험, 사역에 대한 평가, 사람 등에 대해서 알아 볼 수도 있을 것이고 본인에게 필요한 정보를 요청할 수 있을 것이다.  노회 차원에서 이 일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각 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으되 아직 담임 목회를 하지 않는 분들의 이력서와 자기 소개서를 예컨대 교단 홈페이지에 올려놓고 만일 청빙이 필요한 교회가 있을 경우 그곳에 들어가 자료를 보고 확인하여 가능한 후보를 물색하는 일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5. 마지막으로 교단 신문에 목사 청빙 광고를 내는 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담임 목사를 청빙을 해야 할 상황에 처한 교회와 임지를 찾아야 할 목회자가 다 같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길이 없는 상황에서 교단 신문에 광고를 내는 방식이 선호되는 것을 현재로서는 중단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어느 교회에서 목회자를 찾고 있는지, 어떤 목회자가 올 수 있을지 목회자나 해당교회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하나의 대안은 공석이 생긴 교회에 관한 정보와 목사 안수를 받을 강도사와 부목사에 관한 정보를 알릴 수 있는 방법을 노회 차원에서 찾는 것이다. 정말 공정하게 할 수 있다면 신학교를 졸업하는 강도사부터 교회에서 사역하는 부목사에 이르기 까지 사역지가 필요한 분들과 목회자가 필요한 개체 교회 사이를 연결해 줄 수 있는 부서를 노회 안에 두고 담당 목사와 장로를 세우는 것이 제도적으로 필요할지 모른다. 시장 경제 방식이 목사 청빙에 지속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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