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하필 중국에 있는 바람에 나는 목사님의 장례식에도 참석치 못했다. 병고로 힘들어하실 때도 더 힘들게 할까봐 찾아뵙지 못했다. 그런데 이렇게 홀연히 가시고 나니 마음이 아프고 아쉽다. 지금은 아버지 집에서 편히 쉬시리라 생각하면서도 옛 정이 그리워짐은 인간의 상정이라 치부하며 마음을 달랜다.

옥 목사님을 가까이에서 만난 것은 1992년 CAL세미나에서였다. 무슨 일에나 날쌔지 못한 나는 이 세미나에 사전등록을 하지 못했다. 답답해서 목사님께 직접 전화를 드렸더니 “일단 그날 와봐.”라고 하셔서 세미나에 참석케 되었다. 나는 울면서 목사님의 강의를 들었다. 당시 나의 마음에는 교회갱신에 대한 열망, 곧 교회다운 교회를 세우고 싶다는 생각으로 충만하던 때여서 목사님의 강의는 나에게 사막에서 발견한 샘물과 같은 것이었다.

또 당시 나는 소그룹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었다. 처음에는 소그룹이 교회의 조직이나 관리를 위한 툴(tool) 정도로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연구가 진행되면서 나는 교회 안의 소그룹이 단순히 훈련의 장이나 목회의 툴이 아니라 바로 그 하나 하나가 작은 교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에 옥 목사님의 제자훈련이라는 내용이 담기니 내가 꿈꾸는 교회상이, 모세가 시내산에서 본 회막의 식양처럼, 뚜렷한 비전으로 떠올랐다. 그래서 나는 감격해서 울고, 희망에 벅차서 울었다.

그리고 나는 즉시 이런 교회를 세우고 싶었다. 시무 중이던 교회를 사임하고 개척교회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열병에라도 걸린 것처럼 이를 추진했다. 교회를 설득하여 분당에다 교회를 분립개척하기로 하였고, 장소도 마련되었다.

그러나 이 일은 아내도 반대하였고, 내가 상담했던 모든 분들이 한결같이 반대했다. 교회개척을 반대한 것이 아니라 당시 시무 중인 교회를 떠나서는 안 된다는 반대였다. 아주 어려웠던 교회가 이제 겨우 정상화되어 성장하고 있는데, 갑자기 담임목사가 떠나면 또 무슨 일이 있게 될지 알 수 없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나도 사실 이 점이 가장 염려되어 그때까지 교회 안에서는 아예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옥 목사님을 만났다. 목사님의 동의와 격려를 기대하며 나의 꿈과 비전을 말씀드렸다. 그런데 이외로 목사님까지 머리를 흔드셨다. "좋은 생각이지만 때가 아닌 것 같다. 그런 꿈을 현재 섬기고 있는 교회에서 한 번 실현해 보세요. 나는 제자훈련으로 교회를 개척하고 성장시켰는데, 정 목사는 제자훈련을 기성교회에 적용해서 한 번 성공해 보세요."라고 말씀하셨다.

결국 나는 교회개척을 포기하고 기성교회의 갱신을 위해 헌신키로 다짐하였다. 그러나 성공하지 못했다. 열심히 했지만 본이 될 만한 교회로는 세우지 못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2000년 10월에 나는 "건강한 중소교회를 지향한다"는 모토로 향상교회를 분립 ․ 개척하였다. 그러나 이 일도 분립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으나 내가 꿈꾸던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 일에는 역시 성공하지 못했다. 교회가 급성장하는 바람에 제자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안식년을 앞두고 많이 고민하며 기도하고 있었는데, 2007년 1월말 어느 날 옥 목사님이 직접 우리교회를 방문하셔서 나와 인터뷰를 하시겠다는 연락이 왔다. 찾아온 옥 목사님과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었다(이 인터뷰 기사는 『disciple』 2007년 3월호에 게재됨). 목사님은 당신이 직접 이렇게 방문하여 인터뷰를 가지는 것은 처음이시라며, 내가 제자훈련을 아주 잘하는 것으로 알고 계셨고, 또 앞으로의 희망도 피력하시며 몇 가지 팁도 주셨다.

그러나 그때 나는 나의 목회에 대한 전반적인 반성을 하고 있었고, 기존의 제자훈련 프로그램이 성장한 교회에서는 한계가 많다는 것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목사님께 이것을 솔직하게 말씀드리지 못했다. 멀리까지 찾아오신 어른이 섭섭한 마음으로 돌아가시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끝내 나의 마음에 목사님에 대한 죄송함과 부담으로 남게 되었다.

하지만 방법에는 약간 다를지 몰라도, 목사님이 교회에 대하여 가지셨던 애정이나 목표는 나의 마음에도 그대로 남아있다.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는 일, 영혼구원하여 제자 삼는 일은 옥 목사님이나 나나 거역할 수도, 변경시킬 수도 없는 주님의 지상명령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옥 목사님은 이 일에서 평생 잊을 수 없는 나의 선생이셨기 때문이다. "목사님, 보고 싶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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