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기도에 대해서

   
▲ 안재경 목사

고려신학대학원
3,17,8사단 군종목사
한국헤비타드 총무
화란한인교회 담임목사
현 온생명 교회 담임
1. 공적 기도는 예배 순서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이다. 구약시대에 성전은 ‘기도하는 집’(사 56:7)이라고 불렸고 하나님께서는 그 곳에서 하는 기도에 귀 기울이겠다고 말씀하셨다(대하 7:15). 바벨론 유수 이후에 유대인들이 회당을 세워 예배를 드릴 때에도 기도가 회당예배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았다.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세워진 신약교회도 예외가 아니었다. 초대교회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모일 때마다 기도하기에 힘썼을 뿐만 아니라(행 2:42) 핍박 받는 구체적인 상황을 하나님께 아뢰었다(행 4:24; 12:5). 사도들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전하는 일에 힘썼을 뿐만 아니라 안수를 겸한 기도를 통해 직분자들을 세웠다(행 6:4, 6).

2. 종교개혁가들은 공예배 시에 드리는 공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재발견했다. 종교개혁가들은 로마교회에서 미사 시 성직자만이 고정된 기도문을 낭송하는 것을 개혁했다. 종교개혁가들도 공예배 시 목사가 모든 회중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지만 그 기도는 회중의 기도를 인도하는 기도라고 이해하였다. 종교개혁가들이 기도문을 완전히 배척하지 않은 것은 훈련 받지 않은 회중들을 위해서였다. 그들은 기도문을 통해 기도에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겠기 때문이다. 물론 기도문으로 기도하지 않는 자유로운 기도도 허용했다. 기도하도록 하시는 분은 우리 마음속에 임한 성령님이기 때문이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34주일에서는 4계명을 해설하면서 ‘우리는 공적 기도를 드리기 위해서 주일에 모인다’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종교개혁은 공예배를 개혁했고, 공적 기도를 개혁했다.     

3. 종교개혁가들은 공예배에 세 번의 중요한 기도를 배치했다. 첫째는 ‘죄 고백의 기도’인데 예배가 시작하는 부분에 십계명을 읽고 난 다음에 죄를 하나님께 고하는 기도였다. 둘째는 설교 전에 하는 기도인데 ‘조명을 위한 기도’라고 부른다. 이 기도는 말씀을 여는 것과 성령께서 그 말씀선포를 통해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조명해 달라는 기도이다. 마지막 세 번째 기도는 설교 후에 하는 기도인데 ‘중보 하는 기도’이다. 이 세 번째 기도에 들어가야 할 세가지 중요한 기도의 영역이 있는데 회중의 구체적인 필요를 위해 구할 뿐만 아니라 정부를 위한 기도(딤전 2:1-4), 복음을 대적하는 이들을 위한 기도(마 5:43-48) 그리고 복음전파를 위한 기도(엡 6:19,20) 등이 포함되어야 한다. 이 기도는 설교 전의 기도보다 긴데 소위 말하는 ‘기독교의 모든 필요를 구하는 기도’가 여기에 속한다.

4. 종교개혁의 기운이 확산되면서 공예배와 공기도에 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점차로 설교 전에 하는 기도가 즉흥기도로 바뀌고, 길이도 길어지게 되었다. 영국과 스코틀랜드의 청교도와 독일의 경건주의자들은 기도문으로 기도하는 것을 싫어하고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즉흥기도를 강조했다. 기도문으로 기도하는 것은 죽은 기도이며 성령의 감동으로 즉흥적으로 기도하는 것만이 살아있는 기도라는 주장이다. 그 결과 예배시 주기도문을 사용하는 것조차도 꺼려했다. 17세기 말에는 길게 기도를 이어갈 수 있는 ‘기도의 은사’를 받은 이들이 교회 직분자로 선출되는 일이 벌어졌다.   5. 종교개혁 시에는 죄를 고백하는 기도와 조명을 구하는 기도, 그리고 중보기도가 각각 제 역할을 분명하게 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설교 전에 하는 대표기도를 통해 이 세가지 기도를 한꺼번에 통합해서 해 버린다. 이 세 기도들은 예배시 차지하는 독특한 자리들이 있고, 초대교회 때부터 내려오는 전통에 근거하고 있기에 각각의 독특성을 살리는 것이 좋겠다. 특히 기도의 실제적인 성격을 고려한다면 중보기도를 설교 후에 넣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를 들은 후에 그 말씀에 근거해서 우리의 소원과 간구를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38주일에서도 주일에 드리는 예배의 순서를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성례에 참여하며, 주님을 공적으로 부르고, 가난한 자들에게 기독교적 자비를 행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6. 공적 기도는 잘 준비해야 한다. 우리는 즉흥기도, 그리고 아주 길게 기도하는 것을 영적인 것으로 생각하곤 한다. 기도문을 적어서 기도하는 것은 신앙이 깊지 못하다는 증거로 생각하기도 한다. 이런 생각은 다분히 경건주의적이다. 종교개혁자들은 로마교회식의 정형화된 기도문과 재세례 파의 성령의 감동으로 인한 즉흥기도 둘 다를 경계했다. 성령의 인도가 중요하지만 교회의 구체적인 필요를 구하는 치밀함도 중요하다. 즉흥기도를 하다가 신앙고백과 배치되는 기도를 하기가 쉽고, 기도문을 준비해서 그것을 읽는 것에만 익숙해져서 성령의 인도를 무시할 수도 있다. 공적 기도에서 자유가 주어져야 하고, 그렇다고 그것이 질서를 무시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7. 목사는 공예배 시에 공적 기도를 인도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 기도를 일반적으로 ‘목회기도’라고 부르기도 한다. 공예배는 직분사역의 중요한 장이라는 말이다. 우리는 교회를 영적으로 감독하는 장로, 물질적인 부분까지 돌아보는 집사도 공적 기도를 인도할 수 있다고 본다. 우리는 기도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 즉흥적으로 길게 기도하는 것을 선호하여 죄의 고백과 성령의 조명을 구하는 기도를 무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죄의 고백과 설교 시 성령의 조명을 구하는 기도는 상대적으로 짧다고 해서 이 공적 기도의 성격을 무시하고 길게 기도하는 즉흥기도를 우위에 두는 것은 신앙생활이 주관적이고 개인적이 되는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8. 공적 기도는 철저하게 성경적이고 신앙고백적이어야 한다. 모든 성도들이 함께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공예배 시에 드려지는 기도는 사적인 기도와는 성격이 많이 다르다. 공적 기도는 기도자 개인의 주관적인 체험이나 주관적인 사상을 드러내는 시간이 아니다. 지구상에서 일어난 재난이나 성도들에게 일어난 일들도 언급할 수 있겠지만 공적 기도는 철저하게 성경말씀과 언약에 대한 반응이어야 한다. 즉 기도 인도자는 성경과 고백을 재해석해서 읊조려야 한다. 고백의 한 방식이 공기도인 것이다. 게다가 기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은혜에 반하여 신자들의 의와 열심에 근거하여 구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공적 기도를 할 때는 표현과 용어조차도 신중하게 고려하여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표현을 삼가야 할 것이요 이해하기 쉬운 단어와 표현을 사용하여 모든 성도들이 아멘으로 화답할 수 있어야 하겠다(고전 14:15,16).

9. 공적 기도는 설교시간이 아니다. 종종 공적 기도를 교인들을 가르치는 시간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설교자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시간이 따로 있다. 공기도 시간은 성도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는 시간이다. 공기도를 통해 성도들이나 목사, 더 나아가 교회 전체를 가르치려고 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공기도는 같이 죄인의 입장에 있기에 죄인임을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크신 긍휼과 자비를 구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아무 것도 구할 수 없다는 무기력함에 사로잡혀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할 수 있고 그 기도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넘치도록 응답하시기 때문이다.      

10. 공적 기도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보다 감사일 것이다(골 3:16,17; 딤전 2:1). 우리는 성부께서 성자를 통해 성령으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말로 다할 수 없는 모든 은혜를 감사해야 한다. 성도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말씀에 대한 복창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것 외에 다른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 우리는 구체적인 중보의 기도를 올려 드릴 때도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마음을 놓지 말아야 하겠다. 감사는 기도의 요소 중에 하나 정도가 아니라 모든 기도를 지배해야 하는 정신이다. 기도가 곧 감사라고 말할 수 있다. 기도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거룩한 찬양의 제사이다(히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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