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상규 목사

  한남대학교 영문과(B.A)
  고려신학대학원 신학과(M. Div.)
  고려신학대학원 선교학과
  (Th.M in Missiology)논문학기
  전, 주는교회 담임
  전, WEC국제선교회 대전지부장
  현, 창원한빛교회 선임부목사
‘선교적 교회 missional church’라는 용어가 최근 북미를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런데 이 용어는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먼저는 북미를 중심으로 일고 있는 ‘선교적 교회 missional church’이고, 다른 하나는 ‘선교 중심적 교회 mission centered church’(선교에 적극 참여하며 힘쓰는 교회를 말한다. 최형근 교수는 ‘선교지향적 교회 mission-orienetd 혹은 mission-minded'라고 표현 한다.)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같은 용어를 쓰고 있지만 그 의미는 다르다. 그것은 교회와 선교 와의 관계를 어떻게 보느냐?에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서정운 교수는 “한 쪽에서는 교회와 선교를 일치시킴으로 교회를 전적으로 선교적 의미로 보는 견해와 다른 쪽은 교회가  선교를 사명으로 가진다는 인식이다. 앞의 경우, ‘교회가 선교다.(The Church is mission)’라는 말로 단언하는 반면 후자의 경우에는 ‘교회가 선교를 사명으로 가진다.(The Church has missions)’라고 표현한다.”라고 하였다.

 

성희찬 목사는 이를 ‘선교를 교회의 본질로 삼는 교회’(The Missional Church)와 ‘선교를 하나의 사명으로 삼는 교회’(The Church with Missions)로 구분하였다.


‘선교적 교회 missional church’가 이 시대의 중요한 선교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목회와 신학’은 2006년 5월호(vol.203)부터 8월호(vol.206)까지 4회에 걸쳐 최형근 교수가 “선교적 교회란 무엇인가?” “한국교회와 문화의 대면” “교회와 복음의 만남” “선교적 공동체를 지향하는 한국교회”라는 제목의 글들을 ‘선교적교회’라는 큰 타이틀 아래 연재로 실었다. 그리고 고신교단에서는 제2차 고신세계선교포럼(2008.8 태국 치앙마이)을 개최하며 “선교전략 이슈” 중 ‘선교신학’의 주제를 “선교적 교회론”으로 다루었다. 아울러 국내외에서 이에 대한 책들과 글들이 나오고 있다.


‘선교적 교회 missional church’의 출현과 그 의의

‘선교적 교회 missional church’라는 말은 인도의 선교사이자 영국 선교학자였던 레슬리 뉴비긴(Lesslie Newbigin)의 선교신학에 영향을 받은 북미 신학자들을 중심으로 'The Gospel and Our Culture Network'를 형성함으로써 시작되었다. 1998년 이 네트워크의 Darrell L. Guder가 편집한 'Missional Church : A Vision for the Sending of the Church in North America'라는 책이 나오면서 이 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이후 이 네트워크의 사람들은  2006년에 ‘Planting Missional Churches', 2007년에 ’The Missional Church in Context'와 ‘The Ministry of the Missional Church', 2008년에 ‘The Missional Church and Denominations' 그리고 2009년에는 'The Missional Church and Leadership Formation'과 ‘Introducing the Missional Church'라는 책을 발간하였다.

  

이 네트워크의 멤버이고, ‘Missional Church’를 같이 썼던 Alan J. Roxburgh는 2009년에 ‘Introducing the Missional Church'이라는 책을 썼는데, 이 책에서 'Missional Church'운동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Lesslie Newbigin이 30년이 넘는 인도선교 사역을 마치고 영국에 돌아 왔을 때 서방세계(영국, 유럽, 북미 등)에 기독교 문화가 완전히 사라지고 선교지가 되어 있는 상황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은 것에서 이 운동의 시작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Missional Church에 대해 쓰고 가르치는 특권을 누리는 중 “Missional Church는 그들 주변의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려고 하시는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면서 하나님의 나라의 선교에 하나님과 동참하는 온갖 방식을 실험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Missional Church는 해외선교를 강조하는 교회, 아웃리치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교회, 교회성장의 다른 라벨,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교회 등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Missional Church'는 간단히 정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서구 사회자체가 선교지라는 인식” “선교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에 대한 것" “교회가 대조사회(Contrast Society)가 되는 일에 관한 것”이라고 하고 있다.


‘선교적 교회 missional church’에 대한 평가

Alan J. Roxburgh는 'Missional Church'가 어떤 교회인가를 보여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였는데, “Missional Church에 대한 탐험은 우리를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가장 위대한 발견들 중 하나로 우리를 인도해 줄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길을 개척할 것이다. 그 길은 교회가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줄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말은 그의 교회관이 어떤가를 보여주는 말이다. 기존의 교회를 다분히 부정하는 뉘앙스를 가진 말이다.

  

그는 역사적으로 리더십의 형태를 사도적 리더십, 초기 기독교 왕국의 리더십, 종교개혁의 리더십, 계몽주의의 리더십으로 구분한다. 사도적 리더십이 초기 기독교 왕국에서 성직계급을 중시하는 리더십으로 바뀌었고, 종교개혁의 리더십은 기독교 왕국의 가정들을 지속한 채, 성직자 중심에서 교사 중심으로 변했다고 한다. 그리고 계몽주의의 리더십은 설교자와 교사 중심에서 전문가 중심으로 변했다고 한다. 최형근 교수는 이것을 정리하면서 “이런 성직자 중심의 리더십과 만인 제사장직을 실제로 실천하지 못했던 개신교 종교개혁의 교육 중심의 리더십의 형태, 실증적이고 효율적이며 전문적이고 기능적인 리더십의 형태는 하나님의 선교를 수행하는데 적합한 리더십이 될 수 없다.”라고 단정하고 있다. 이런 주장들이 개혁주의 교회를 지향하고 있는 우리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도전인지 모른다.

  

정양오 선교사가 “최근 북미를 중심으로 일고 있는 ‘Missional Church'운동은 전통교회를 부정하고 아예 틀을 깨는 극단적 양상을 보이고 있고, 아주 리버럴한 측면이 아주 강한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좀 더 관찰해야 하고 개혁주의 입장에서 비판하고 공론화 한 후 필요하다면 새로운 용어를 채택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한 것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그리고 성희찬 목사가 말하듯이 북미중심의 ‘Missional Church' 이론은 북미라는 지역적, 환경적, 시대적 상황에서 일어나고 있는 운동이므로 한국적 상황에서 무비판적으로 수용해서는 안 된다. 또한 이 운동은 캔터베리의 대주교 Rowan Williams가 말한 “하나님의 교회가 선교를 소유한 것이 아니라. 선교의 하나님이 교회를 소유한 것이다.”를 바탕으로 하는 운동이며, 그래서 ‘하나님의 선교 missio Dei'의 선교개념을 취하고 있다. 그래서 이 운동이 가진 장점을 굳이 수용하고자 한다면 개혁주의적 관점에서 비판적 수용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선교 중심적 교회 mission centered church’

‘선교 중심적 교회’를 ‘선교적 교회’로 표현하는 경우는 송기태 선교사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데, 그는 선교타임즈에 2007년 7월호부터 ‘선교적 교회’시리즈 글을 2010년10월호에까지 39회에 걸쳐 쓰고 있다. 아울러 선교타임즈 2009년 2월호에서는 기회기사의 타이틀을 “선교적 교회로 거듭나기!”라고 쓰면서 교회를 어떻게 선교에 동참하게 할 것인가?를 다루고 있다. 

  

선교에 힘쓰는 ‘선교 중심적 교회 Mission Centered Church’들이 ‘선교적 교회 Missional Church’로 표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선교 중심적 교회’는 때로는 ‘선교하는 교회’ 또는 ‘선교교회’로 쓰이기도 한다.(코람데오닷컴-나의주장-‘후원교회?선교교회?’ 2010.4.11 참조) 후원교회가 능동적으로, 주도적으로, 전폭적으로 선교에 동참해 줄 것을 소망하여 사용하고자 하는 그 중심은 알지만, 이 용어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어 적절치 않은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개 교회 이름들 가운데도 ‘선교교회’들이 상당히 있다. 그래서 이 용어를 사용할 때 혼돈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선교 중심적 교회, 즉 주님이 남기신 지상명령인 ‘선교’가 교회의 최대의 과업인 것을 인정하고 그 일에 최우선순위를 둘 수 있는 교회를 일컫는 적절한 표현은 무엇인가? 지금 현재의 교단 공식 명칭은 ‘후원교회’이다. ‘후원교회’는 너무 수동적인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선교에 힘쓰는 교회’나 ‘선교에 동역하는 교회, 약칭-동역교회’라는 표현을 선호하고 있다. ‘선교하는 교회’도 무난한 표현이다. 적절한 표현은 좀 더 진지한 논의를 거쳐 만들어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Missional Church' 운동이 일어난 배경을 살피고, 그들의 주장에 귀 기울이며 우리는 더 겸손히 교회의 본질적 사명에 헌신하는 교회를 세워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회가 제도화 되지 않았는지? 교회가 존재 자체를 위해 힘쓰고 있지 않은지? 교회가 물량주의와 세속주의, 현세주의에 영합하여 교회의 존재목적을 잃어버리고 있지 않는지?를 진지하게 질문하고 본질적 사명인 복음전파로서의 선교에 헌신하여야 할 것이다.

  

흔히 지역교회를 섬기는 리더십들이 그 교회가 인적으로나 재정적으로 안정이 될 때에 선교에 헌신하려는 경향이 많이 있다. 그래서 개척단계의 교회나 미자립 교회나 아직 여력이 없는 교회들은 선교는 상관이 없는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리더십이 헌신을 하고, 성도들을 바로세우면 개척교회도, 미자립 교회도 얼마든지 선교에 동참할 수 있다. 선교를 물질로만 참여할 수 있다고 보는데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선교를 잘 감당하던 교회들도 그 교회의 필요가 생길 때에 선교가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선교를 교회의 본질적 사명으로 생각하지 않고,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으로 여기는 까닭이다. 그래서 교회의 재정상태가 어려워지면 가장 우선순위로 줄이는 것이 선교후원금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안타까운 일이다. 또한 일정기간 동역을 하고 나면 후원을 중단하거나, 교회의 리더십이 바뀔 때에 일방적으로 선교를 중단하는 것은 선교에 치명적이다.

  

선교는 주님 가시면서 교회에 남기신 마지막 남기신 사명이요, 다시 오실 때까지 중단 없이, 가장 우선순위에 두고 교회가 감당해야할 본질적 사명이다. 이복수 교수가 강조하는 “선교는 교회의 표지 그 자체이다” “선교는 교회의 존재목적이다.”라는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이 본질적 사명에 모든 교회들이 헌신하였다면 ‘선교적 교회 Missional Church'라는 것은 이 땅에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가장 귀한 것으로 가장 귀한 주님께 헌신하는 교회들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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