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건 선교사

고려신학대학원 39회 졸업(M.Div)
고려신학대학원 선교학 석사
(Th.M. in Missiology)
파라과이 선교사(1989년 부터 21년 7개월 사역 중)
파라과이 아과비바 장로교회 담임목사
파라과이 장로교 신학교 전임 교장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선교사
고신 세계선교사회 회장
(들어가는 말)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원하시는 것은 가든지 보내든지 하는 선교사로 헌신하기 전에 선교사적인 삶을 평생 살도록 헌신하기를 원하신다. 평생 선교사적인 삶을 산다는 말은 현재 타 문화권에 직접 가서 사역하던 하지 않던 상관없이 복음을 위해 사는 자로서의 삶을 사는 것을 말한다. 세계 선교의 역사를 보면 변화하는 선교 환경에 따라 각 시대마다 선교의 수단과 방법, 전략이 달라졌다. 그러나 이 비본질적인 요소에 집중하다 보니 본질적인 선교의 성경적인 원리를 잊어버리고 않았나 하는 지적을 하고 싶다. 한국교회는 매해 1500명 이상의 선교사들을 파송해 왔다. 결과적으로 2010년 현재 23,000명 가까운 선교사를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파송하여 양적으로는 급성장이 되었지만, 성경적인 선교의 원리를 선교의 현장에서 실천하는 점에 있어서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이것은 기본에 충실하지 않았고, 또 본질적인 선교의 원리에 따라 선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본질적인 선교의 원리가 무엇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성육신적 선교원리이다. 이 글에서는 이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1. 성육신이란 무엇인가?

성육신(Incarnation)이라는 말은 ‘육신으로’라는 뜻이며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이 동정녀 탄생으로 그 자신이 본래 가지신 신성에 더해진 본성, 즉 인성을 취하신 것을 가리킨다. 그 결과 그리스도는 본래 영원히 흠 없는 신성이 있으신데 여기에 인성이 더해진 100% 하나님이자 100% 사람이 되신 것이다.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그러나 그는 영원히 한 인격 안에 죄 없는 인성을 소유하셨다. 히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2. 이 성육신이 어떻게 선교사에게 나타나야 하는가?

효과적인 타 문화선교를 위해서는 선교사는 선교지 사람과 동일화(identification)가 되어야 한다. ‘동일화’란 현지인의 의식주 생활을 무조건 모방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마음과 태도의 문제로서 그 목적은 선교지의 사람들에게 신뢰감을 주도록 하는데 있다. 선교의 접촉은 먼저 인간 대 인간의 신뢰감이 확보된 후에 인간과 하나님과 관계를 맺도록 되어 있다. 성경에서 그 대표적 실례는 예수님의 성육신이다. 하나님이셨던 그 분이 사람이 되셔서 사람 가운데 거하셨다. 선교사는 모름지기 선교지의 사람들과 하나가 되어 그들에게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질 때 비로소 복음의 메시지를 소개할 수 있다.


효과적인 선교를 위한 가장 좋은 접촉점은 선교사 자신이다. 선교사가 타 문화권으로 들어갈 때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해서 성경은 직접적인 교훈을 준다. 바울은 빌립보서 2:5에서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말씀하고, 베드로전서 2:21에서는 “그리스도는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고 말씀하신다. 선교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그가 보여준 본을 따라야 한다. 즉 선교사는 선교지 문화 속에 성육화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선교사는 그저 단순히 보냄을 받은 자가 아니라, 분명히 전달할 메시지를 가지고 보냄을 받은 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교사는 하나님의 말씀인 구원의 메시지를 소유해야 할 뿐 아니라 그 메시지를 실제로 구체화하며, 그가 가르치는 진리를 성육화 해야 한다.


  선교사는 그 사역의 성격상 자기와 매우 다른 사람들과도 끊임없이 접촉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본을 따른다는 것은 철저한 개인적 재교육(personal reorientation)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울은 유대인의 민족적 우월주의와 선민의식을 떨쳐버리고 복음을 전해 받는 이방인들에게 자신을 동화하며, 피선교지 주민들이 저항감 없이 들을 수 있도록 피선교인(人) 지향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그는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all things to all men)’의 전도방법을 취하였는데 이것은 결코 복음의 본질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효과적인 선교를 위한 커뮤니케이션의 방법의 변화를 시도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선교사역에 있어서 선교사가 자기 방식대로 생각하고 판단해야 한다고 고집하는 것과 나아가 선교지 사람들을 선교사 자신이 원하는 모양으로 바꾸려고 하는 것은 성육신적 선교의 원리에 어긋난다고 볼 수 있다. 선교사역의 목표가 선교지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지체들로 만들고 서로간의 교제를 견고히 하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선교사는 예수님처럼 항상 자기보다 선교지 사람들을 더 낫게 여겨야 하는 종의 위치에 서야 할 것이다.


3. 성육신과 커뮤니케이션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의 동일화(identification)에 대해서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고 말하고 있으며, 사도 바울은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으로, 이방 사람에게는 이방 사람으로 동일화함으로 성공적인 선교를 하였다. 동일화만이 선교지 사람들의 언어와 풍속과 문화를 알게 되며, 또 복음을 전달받는 사람들과 마음의 일치를 가질 수 있다.
 

타 문화권 선교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본받아 선교지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겸손하게 섬기는 모습을 가지고 그들 가운데 생활할 때, 복음은 듣는 사람들의 내면 세계에 깊숙이 뚫고 들어가 영혼을 일깨워 회개와 신앙의 결단으로 인도하게 된다. 지금은 OMF로 불리는 CIM세움으로써 18,625명의 중국인 교인 뿐 아니라 1,152명의 중국인 사역자를 배출한 허드슨 테일러가 중국인처럼 되기 위해 변발을 하고 중국인 복장으로 중국인처럼 살면서 중국인의 마음을 얻었다. 이것이 그 당시 서양 선교사들에게 비난의 대상이 되었으나 그는 중국인의 마음을 여는 길이라면 무엇이든지 자기가 가진 것을 내려 놓았고 그들처럼 되었다.


로버트 웨버(Robert E. Weber)는 동일화 모델을 “성육적 커뮤니케이션(Incarnational Communication)”이라고 부르면서, “성육신 이야말로 케뮤니케이션의 완벽한 모델”임을 주장했다. 이에 서울신대 장중열 박사“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Incarnation)은 초 문화적 존재(Supracultural Being)인 하나님이 인간의 문화 속에 들어와서 문화적 규제 하에 있는 인간과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한 사건이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하나님께서 구속을 실현하신 방법은 그리스도안에서 구체적인 인간의 실존 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하나님은 성육의 사건을 통하여 인간의 문화를 접촉하고 인간의 언어세계를 통해 커뮤니케이션을 하신 것이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성육신 사건을 믿을 수가 없었다. 무엇 때문에 전능하신 하나님이 인간이 되셔야만 하는가에 대해 깊은 의문을 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원을 거닐다가 한 무리의 개미 때가 열심히 집을 짓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그는 그 날 아침에 일기예보를 통해 오후에 큰 비가 쏟아질 것을 알고 있었다. 그때 마침 저쪽 하늘에서 검은 구름이 밀려오고 있었다. 이제 곧 큰 비가 쏟아질 것이고 개미들이 수고하여 지은 집은 다 떠내려 각 것이다. 더구나 이 폭우는 개미들의 생명까지 앗아갈 것이 틀림이 없었다. 이 사람은 다급해졌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 사실을 개미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그러나 개미들에게 알릴 방법이 없었다. 다만 개미들에게 알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자기가 개미가 되어 개미의 언어로 그들에게 곧 일어날 엄청난 재난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는 이 사실을 통해 왜 전능하신 하나님이 인간이 되셔야만 했는지를 깨달았다고 한다. 하나님은 그분의 언어를 우리가 알아들을 수 없기에 사람이 되셔서 우리의 언어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야기 해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커뮤니케이션의 목적에 대해서 풀러신학교에서 40년간 선교학을 강의한 찰스 크레프트(Charles Kraft)교수는 “하나님은 자신의 창조물인 인간과의 친족관계(relationship)를 원하고, 인간에게 완전한 친족관계가 열쇠라는 응답을 이끌어 내려고 하며 이해하기를 원한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지난 수 십 년간 전 세계 90개국에서 선교훈련가, 선교전략가, 선교컨설턴트로 일해온 제임스 엥겔(James F. Engel)은 다음과 같이 예수님의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세가지로 제시한다.

 

첫째, 예수는 인간의 죄성을 알았다. 그러기에 죄인된 인간을 해방시키는 데는 구원의 은혜가 필요함을 알았다. 둘째, 사람을 귀하게 여겼다. 사람은 하나님의 걸작품이며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존재이다. 셋째, 말씀을 적합하게 전달하셨다. 그래서 그들이 만족할 수 있는 수단을 사용하셨기 때문에 누구든지 쉽게 그의 말씀을 알아 들을 수 있었다.


4. 타 문화에서의 성육신
  타 문화 속에서 성육화를 이루기 위해서 선교사는 편안하고 안락한 자기 문화에서 불편한 선교지 문화로 적응해가야 한다. 그리고 성육화의 목적은 어디에서 사역하든지 선교지 사람들을 존중하며 사랑하고 그들과 선교사의 삶을 나누는 삶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선교사는 엡 5:1-2,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하나님을 본받은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는 말씀으로 도전 받고 선교지 사람들의 문화속으로 성육화 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파라과이에서 선교하는 가운데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지금도 또 올리면 기분이 좋아진다.  언젠가 파라과이 사람들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한국사람 닮았다”고. 나는 그제서야 드디어 내가 파라과이 사람들에게 그들의 사람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고 그 날 나는 너무나 기쁘고 행복했다.


5. 성육신적 선교의 원리

한국선교선구원(KRIM) 원장인 문상철 박사는 성육신적 선교의 원리를 다섯 가지로 말한다. 그것은 하나됨, 낮아짐, 상황화, 소프트파워, 성령의 임재가 있는 선교이다.

 

* 하나됨의 원리 - 하나님의 선교가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됨 가운데 실현된다는 것이다. 선교를 위해서는 하나됨이 있어야 한다. 진정한 연합과 교제 가운데서 세상을 섬길 의지가 표현될 수 있다.

 

성자 하나님의 성육신의 방법을 통한 선교에 대해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의지가 있었다. 21세기 선교에 있어서도 교회와 선교단체들의 연합과 협력이 필요하다. 분파화되고 경쟁적인 구도 속에서의 선교는 세상에 감동을 주지 못한다. 오랫동안 분열되고 개교회중심적이고 경쟁적인 지역교회들의 한계가 극복되지 않는 한 수준 높은 선교를 하기가 어려워진다. 한국 교회는 이제 일치단결하여 하나님의 선교를 감당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선교지에서도 선교사들끼리, 동역자들끼리 하나가 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집안에서 새는 바가지, 집밖에서도 샌다”는 말이 있다. 선교사로 나가기 전에 이 하나되는 훈련이 되어있지 못하면 선교지에서 나타날 현상은 뻔하다.


* 낮아짐의 원리 - 하나님의 선교가 낮아짐과 비움을 통해서 구현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를 비우시고 낮아짐을 통해서 선교사의 삶을 사셨다. 선교사의 삶은 본국에서의 모든 문화적인 친숙함과 특권들을 버리고 타 문화권에서 불편한 삶을 사는 것이다. 이러한 헌신에는 자기 문화가 기준이 되는 데서 남의 문화를 기준으로 삼는 변화된 자세가 필수적이다. 이렇게 선교를 하기 위해서는 우월감에서 나오거나 자기만족을 위한 활동들을 경계하고, 순수하게 인류 구원의 정신으로 선교에 임하여야 할 것이다. 선교의 외형과 규모를 자랑하는 것도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순수하게 잃어버린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서 특권을 포기하고 희생을 감수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우리가 가는 선교지는 대부분 우리의 상황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지역이 많다. 선교사는 모름지기 고국을 떠날 때 마치 물품 보관소에 자신의 물건을 모두 맡기고 떠나는 사람처럼 다 내려놓고 떠나야 한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한국 사람이 아니라 선교지의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하고 가야 한다. 그리고 선교지의 상황에 맞추어 선교지의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안식년으로 귀국하면 다시 보관했던 한국인의 정체성을 되찾아서 살다가 출국 때는 다시 맡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 상황화의 원리 – 그리스도께서는 유대인으로 유대인 문화 가운데서 사셨지만, 신성을 잃지 않으셨다. 그의 삶과 메시지는 세상 문화에 동화되었지만, 세상으로부터 오염되지는 않으셨다. 그는 완전한 하나님이시면서 완전한 인간이셨다. 마찬가지로 21세기 선교에 있어서도 문화적인 동화를 실현하면서도 영적인 정체성과 순수성을 잃지 않는 비판적인 상황화의 작업이 필요하다.

 

이것은 세상 속에 살면서도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것을 말한다. 문화적으로는 한국인이면서도 타 문화권의 사람처럼 사는 것을 말한다. 문화적으로 적응하면서도 잘 못되고 비 성경적인 문화를 변혁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사역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균형이 한국 선교에 있어서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 소프트파워의 원리 - 하나님의 선교가 진리의 선포와 함께 소프트파워의 혁명의 동인이 되어야 한다.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가 중요한 것을 안다면 우리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대한다. 우리는 세상적인 힘을 사용하지 않는다. 군사력은 물론, 정치력이나 경제적인 영향력, 심지어 미디어의 힘마저도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한다. 대신에 우리는 진리의 힘을 믿는다. 진리가 사람들을 자유케 하고 결국 사회를 변화시키고, 문화를 변혁할 것을 믿는다.

 

진리의 힘은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힘을 가지고 있다. 하드파워는 겉으로만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정신으로 임하는 선교는 진리의 역사와 함께 진정한 변화의 능력을 보여줄 것이다. 한 도시를 변화시키고, 한 종족을 변화시키는 힘은 바로 진리가 선포될 때 생겨난다.  이 진리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이다. 말씀 사역의 중요성을 결코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가장 기초가 되는 성육신 선교의 원리이다.


* 성령의 임재의 원리 – 하나님의 선교는 반드시 성령의 임재를 통해 열매를 맺는다. 우리 주님의 짧지만 능력 있는 사역은 성령의 임재로 인해 가능했다. 성령의 역사 없이는 하나님의 선교는 불가능하다. 성령께서 동행하지 않으시면, 우리는 의미 있는 사역을 할 수 없다. 선교 역사상 크게 쓰임 받은 선교사들은 한결같이 성령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영적인 사람들이었고, 경건한 사람들이었다. 그 원리는 21세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가운데 그 열매를 맺어가는 것이 변함없는 선교의 근본 원리이다. 우리가 의지할 것은 한국의 국력도 아니고, 한국 교회의 경제력도 아니고, 성령의 임재와 교통하심이다.


(나가는 말)

오늘날의 선교는 마치 선교전략이 모든 선교의 열매를 좌우하는 양 전략을 세우는 일에 집중을 한다. 또한 겉으로는 아니라고 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돈 없이는 아무것도 못한다는 논리를 앞세워 선교 재정을 어떻게 하면 풍성하게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지혜를 모은다. 물론 이런 것들도 당면한 과제로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지만 이것이 과연 선교를 선교되게 하는 본질적인 것인가? 하는데 대해서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성육신적 선교의 원리가 모든 선교의 기초이다. 우리는 이 성육신적 선교의 원리도 돌아갈 때 가장 감동적이고 참된 열매를 맺는 선교를 할 수 있다. 또한 성육신적 선교의 원리에 따라 순수성을 회복할 때 한국 선교는 선진화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교단의 선교도 이 성육신적 선교의 원리를 회복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이 성육신적인 선교원리를 사역의 현장에서 실천해야 하는 선교사들에게는 더욱 더 절실한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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