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성호 교수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졸
고려신학대학원 졸.
Calvin Theolgical Seminary
(Th. M. 및 Ph. D)
합동신학대학원 대학교 조직신학 교수(역임)
고려신학대학원 역사신학 교수 (현)
제60회 총회에서 일어난 에피소드

제60회 총회 수요일 저녁 시간, 고신교회의 어른 중의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 오병세 교수님이 모든 총대들에게 고신 교단의 현 상황에 대해서 여러 말씀을 하는 중 “왜 선거운동을 하십니까?”라고 단호하게 질문을 하였다. 선거운동은 기본적으로 인본주의에 속한 것이며 교회에서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기에, 오교수님의 질문은 모든 총대(목사 총대들은 거의 대부분이 그 분의 제자들이다)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준엄한 꾸지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분의 말씀이 모두 끝나고 나서 총대들은 모두 자숙하면서 통성기도를 하였다.


금요일 오전 시간, 총대들이 마지막 안건들을 계속 토의하고 있었다. 토의 의제 중 선거운동에 관한 것도 있었는데, 선거운동을 어떻게 하면 공정하게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집중되었지 선거운동 자체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는 총대는 한 사람도 없었다. 모두가 선거운동은 당연한 것, 혹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전제 속에서 의논을 하였다. 바로 이틀 전에 외친 원로 교수의 목소리는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들은 마치 그 분의 말을 전혀 듣지 않았던 것처럼 발언을 하였고, 발언 안에서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낄 수 없었다. 


“왜 선거운동을 하는가?”라는 노 교수의 수사학적 질문은 원래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예전에는 선거운동이 없어도 선거가 잘 이루어졌는데, 왜 지금은 선거운동이 존재하고 있을까? 어려서부터 고신교회에서 자라 온 나로서는 총회라고 하면 의례히 선거운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렇다면 선거운동 없는 선거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 한 때 역사 속에서 있었던 일일 것이다. 자라는 동안 나는 한 번도 선거운동 자체가 하나님 앞에서 심각한 범죄행위라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물론 너무 심한 선거운동(예를 들면, 식사 대접이나 여비라는 이름의 돈 봉투)은 덕스럽지 못한 것쯤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신학 공부하고 있는 동안 나는 미국 개혁교회의 총회에 가끔씩 참석하였다. 그들은 어떻게 선거를 하는 지 궁금해서 총대 중 한 명에게 선거운동을 어떻게 하는지 물어 보았다. 그분의 대답에 따르면, 그 교회에는 선거운동이 전혀 없다고 하였다.1) 선거운동이 말씀의 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에 아무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선거운동을 하면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나는 그 답변을 들었을 때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분의 답에서 나는 “왜 선거운동을 하는가?”에 대한 답을 들었다.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죄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둘째, 선거운동을 해야 당선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교회 내에서 선거운동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모든 직분은 하나님의 은사

교회의 모든 직분은 하나님의 “은사”이다. 즉,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자에게 거저 주시는 선물이다. 바꾸어 말하면, 직분은 우리가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따라서 선거운동은 직분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심히 악한 죄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선물을 돈을 주고 사려고 했던 시몬에게 사도들이 어떤 저주의 말씀을 하였는지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시몬을 향한 사도들의 저주는 성직매매뿐만 아니라 직분의 은사됨을 거부하는 모든 행위에도 적용이 되어야 한다.


직분이 하나님의 은사라는 성경적 가르침을 포기하지 않는 한, 선거운동은 교회 내에서 허용될 수 없다. 선거운동이 허용되면, 선거에서 떨어진 사람은 상대방이 자기 보다 선거운동을 더 잘 하고, 돈도 더 많이 쓰고, 인맥도 더 많이 확보하였기 때문에 당선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어 있다. 그렇게 되면, 다음 선거에는 더 많은 돈, 더 많은 인력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직분은 하나님의 선물이 아니라, 인간이 노력해서 쟁취할 수 있는 탈취물로 전락하게 될 뿐이다.


선거운동이 심각한 죄라는 것을 알리는 것과 병행해서 선거운동을 해도 안 될 수밖에 없는 제도와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도 교회 개혁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하다. 선거운동이 근절이 되지 않는다면, 합동 측과 같이 제비뽑기를 도입하는 것도 검토할 만하다.2) 또한 선거운동을 하는 자에게 엄격한 시벌을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로마교의 경우 교황 선거에 영향을 주는 자는 그 행위 자체로 파문에 처한다. 교황 선거를 하는데, 후보자들이 세계를 돌면서 선거운동을 하는 것을 본적이 있는가?


그러나 가장 쉽고도 우선적인 방법은 총대들의 양심에 호소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총회에서 투표하기 전에 모든 총대들이 “나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 앞에서 선거운동과 관련된 어떤 행위도 하지 않았음을 엄숙히 맹세합니다.”라고 맹세를 하는 절차를 시행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노회 차원에서도 총대들이 결의를 하여 “선거운동을 하는 후보자에게 투표하지 않을 것”을 공개적으로 표명하는 것도 후보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들에게 큰 가르침과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총회는 다른 나라의 교회들의 선거방법들을 깊이 연구하여 선거운동을 제도적으로 근절시킬 수 있는 방안들을 지금부터 모색해야만 한다.


모든 개혁운동이 마찬가지이지만, 개혁은 회개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것이 고신정신이요, 종교개혁의 정신이다. 회개는 우리가 죄인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선거운동에 관한 한 우리 모두는 죄인이다. 선거운동 자체가 얼마나 큰 죄인지를 모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선거운동을 해야만 교회 안에서 직분을 차지할 수 있다고 다들 생각하고 있다. 우리 고신교회가 정말 개혁교회가 되기를 원한다면, 교회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선거운동이 근절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원로 교수의 선지자적 외침이 단지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지 않기를 후배교수로서 교단 지도자들에게 간절히 호소하는 바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없는가? 

직분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기 때문에 이것은 선거운동을 통하여 쟁취하려고 하는 모든 시도는 하나님 앞에서 큰 범죄라는 것을 앞에서 언급하였다. 여기에는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신학교수인 본인도 포함하여, 고신 교회 성도들 모두, 적어도 교회의 목사들과 장로들은 지금부터라도 회개 운동을 하여야 한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이 당연한 원리와 원칙만 강조한다고 해서 오랫동안 있어왔던 관습적인 폐해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폐해들의 원인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대안들도 같이 모색해 보는 것이 책임있는 자들의 올바른 자세일 것이다.


한국 교회의 총회장 선거는 치열하기로 유명하였다. 그래서 나온 대안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부총회장이 자동적으로 당선하도록 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 총회장 선거는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이 되었지만, 그 불똥은 부총회장 선거로 옮기게 되었다. 따라서, 비록 이전 보다는 완화되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그대로 남게 되었다. 그렇다면, 서기가 자동적으로 부총회장이 되게 하고, 그 다음해에는 총회장이 되게 하면 어떨까? 아마도, 동일한 결과, 즉, 서기가 되기 위한 치열한 선거운동이 있게 될 것이다.


더구나 이런 해법은 장로교 정치에 있어서 큰 약점을 가질 수 있는데, 장로교 정치체제에 있어서 총대 파송권은 전적으로 노회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회가 해당 후보를 총대로 그 해에 파송하지 않으면, 선거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매우 어려워진다. 지금 제도 역시 부총회장이 다음 해에도 당연히 총대로 참석하게 될 것이라는 전제하게 시행되는 법인데, 원리적으로는 불완전한 법일 수밖에 없다.


한국 교회의 총회장 선거가 혼탁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 중의 하나는 세상적인 선거법을 따르기 때문이다. 세상의 선거와 마찬가지로 지금의 현 선거법에 따르면 “모 아니면 도”라고 할 수 있다. 선거 결과에 따라 승자와 패자만이 존재할 뿐이다. 더 큰 문제는 승자와 패자가 너무나 공개적으로 분명하게 알려진다는 것이다. 그 결과 선거에 임하는 사람들은 체면 때문이라도 치열하게 선거에 임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즉, 선거에 떨어진 사람은 패했다고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것은 체면을 중시하는 한국에서 아주 심각한 문제이고 결코 소홀히 다룰 수 없는 사항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선거라고 하면, 당연히 경쟁이 있어야 하고, 어떤 목사들은 심지어 그런 선거가 되어야 재미가 있다고 생각을 하기도 한다. 문제는 그런 생각들 때문에 선거가 더 혼탁해지게 되는 배경이 된다는 것이다. 경쟁이 전혀 없을 수는 없겠지만, 교회에서 선거는 경쟁을 상당히 완화시키거나 경쟁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 점에서 우리는 다른 나라 교회들이 어떻게 하는지를 참고로 할 필요가 있다.


북미개혁교회(Christian Reformed Church)의 경우, 총회에서 총대들에게 다루어질 안건을 보낼 때, 총대 명단과 간단한 이력을 같이 보낸다. 그러면 각 총대들은 그 명단을 참고하여 총회에서 “임원으로” 선출될 사람을 추천하여 우편으로 총회 서기에게 보낸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특정직에 대한 후보를 추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총회장 직이나 서기에   OO씨를 추천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 의미에서 총회 임원으로 OO씨를 추천하는 것이다. (물론, 추천하는 것은 전적으로 총대의 자유이기 때문에 추천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모든 총대들은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가지는데, 이 점에서 총회장이나 임원들의 자격을 현격하게 제한하는 우리 교회의 헌법은 시정되어야 한다.3) 서기는 일정 수(예를 들어 2명이상)의 추천을 받은 사람의 명단을 작성한다. 총회가 모이게 되면, 선거 직전 이 명단이 공개가 되고 투표에 들어간다. 명단이 공개되기 전까지 정확히 누가 후보로 선정되었는지 알 수 없고, 명단이 발표되면 각 후보들은 총회 앞에서 인사만 할 뿐이다. 총대들은 이 명단 안에서만 모든 임원들을 선출한다.


이 제도는 상당한 장점을 지니고 있다. 모든 총대들이 임원에 대한 추천권을 원하기만 하면 행사할 수 있다. 우리 교회의 법에서 거의 대부분의 총대들은 임원에 대한 추천권을 행사하지 못한다. 정확히 어떤 경로를 통해서 결정되었는지도 모르는 이미 정해진 후보 중에서 (그것도 대부분의 경우에 둘이나 셋 정도) 선택할 뿐이다. 다른 후보를 선택할 자유가 박탈당한 셈이다. 이 제도는 또한 아무리 작은 추천수를 받아도 후보는 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추천 수는 공개되지 않지만, 100표를 추천받으나 2-3표를 받은 후보나 동일한 후보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직분자의 선출이 수에 의해서만 결정되지는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다.


이 제도에 따르면 엄밀한 의미에서 경쟁이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더라도 상당히 약하게 존재할 뿐이며, 더 중요한 것은 승자와 패자가 공개적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총회장에 뽑히지 않더라도, 부총회장에 당선될 수 있고, 또한 서기나 다른 임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임원이 전혀 되지 않더라도 그렇게 부끄러워 할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떨어진 사람이 공개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고, 특정인 한 사람만 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후보로 추천되었으나 떨어진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일 뿐이다.


이 글을 쓴 목적은, 물론, 이 제도를 그대로 시행하자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악용하는 사람이 있으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델은 선거운동 근절을 향한 논의의 좋은 출발점은 될 수 있다고 본다. 필자가 보기에 현재 고신교회의 총회 임원 선거는 이전에 비해서 상당히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는 오늘날 일반 성도들의 윤리적인 수준이나 의식이 이전에 비해서 훨씬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 교회가 나아갈 방향은 지금보다 월등히 더 높은 단계로 발전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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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심지어 사전 후보 등록이라는 것도 없다. 회의에 참석하기 전에, 총대들은 원하면 총회 임원 후보로 추천하고 싶은 사람을 서기에게 우편으로 보낸다. 총회가 개회되면, 그 후보 명단이 발표되고, 그 중에서 모든 총회 임원을 차례로 선출한다(총회장에서 떨어진 사람이 부총회장이나 서기에 당선되는 경우도 많다).  

2) 어떤 이들은 사도행전의 예를 들어서 교회의 모든 직분을 제비뽑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이 주장은 구속사를 모범적으로 해석하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반대로 구속사를 강조하는 사람들은 제비뽑기를 전면적으로 반대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사도행전의 본문은 제비뽑기에 대해서 교회에 절대적인 규범을 주지 않는다. 제비뽑기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은 구약의 잠언에 근거할 수 있는데, 이것은 규범이 아니라 지혜의 문제이다.

3) 예를 들어서 나이, 목회 경력이나 유지 재단 가입여부 등등. 이런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법으로 아예 제한시키는 것이 장로교 정치 원리상 부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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