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이판사판이다”이라고 하는 말을 하기도 하고 듣기도 하는 데, 이 말은 원래 불교에서 쓰는 말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이판사판”은 불교의 승려들 전부를 통틀어서 일컫는 말이다.
이판(理判)은 불교의 승려들 중에 속세를 떠나 순수하게 도를 닦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사판(事判)은 세상과 접하는 일인 절에서 재물과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사람들이다.

다른 종교에서도 이런 구별된 사람들을 볼 수 있는 데, 특별히 천주교는 불교와 아주 유사하다. 천주교에서 신부의 수련을 받기 위해서 또는 신부가 되어서 수도원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수도하는 사람들은 이판에 속한다. 그리고 추기경이나 사무를 처리하는 신부들과 같이 실제로 앞에 나서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사판에 속한다.
불교와 천주교가 동일한 것은 이판이나 사판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각각 나눠져 있는 것이다. 이판은 수도하는 그 일에 정진한다. 그리고 재무와 행정은 사판의 일을 맡은 사람들에게 맡겨 처리하게 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불교 분규가 일어나서 조계사에서 각목 들고 깡패와 같이 그렇게 분규를 일으켜 서로 재정권을 차지하려 해도 불교계가 꿈쩍하지 않는 것은 수많은 이판들이 속세를 떠나 산 속에서 나름대로의 도를 닦고 있기 때문이다.
천주교도 마찬가지다. 밖으로 나타나는 모습 속에 부패하고 타락한 모습이 있다. 그렇다고 천주교가 흔들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숨겨진 빙산과 같이 수많은 수도사들이 수도원에서 나름대로의 도를 닦고 있기 때문이다. 불교나 천주교가 이런 이판들이 있는 한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이와 비교해서 기독교는 신자 개개인이 불교 언어로 말하면 이판과 사판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목사와 장로와 모든 성도들이 세상에 속하여 한 편으로는 말씀과 기도로 영적 수련을 통해 이판의 일을 해야 한다. 뿐 아니라 또 한 편으로는 세상 속에서 살면서 교회에서 이런 저런 직분을 맡아서 섬겨야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밖으로 나타나지 않는 말씀을 배우고 확신하는 일과 기도하며 자신의 영성을 바르게 세우는 일<이판>을 행하게 되면 결코 타락하지 않고 이런 그리스도인들이 많을 때 교회는 건강하다.
이전에 우리의 선배들은 성경책은 낡고 낡아서 보이지 않을 정도다. 그리고 새벽기도 빠지면 죽는 줄 아셨다. 이것(이판의 일)이 중직자가 행해야 할 제 1의 일로 생각하여왔기 때문이다. 그 영적인 힘이 오늘날 한국 교회를 세우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 교회 성도들이 교회 내어서나 총회에서 뿐 아니라 사회 속에서 사판에 매력을 가지고 달려드는 데 있다. 위험한 것은 불교는 각목을 들고 설쳐도 이판이 있고 천주교는 수도승이 있지만 우리에게는 없다. 우리 스스로 행해야 하는 데 우리가 사판에만 매력을 가지고 있으면 전적으로 타락할 수밖에 없다는 데 위험이 있다.
사판에 대한 관심보다 이판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그리스도인들이 일어날 때 2007년 뿐 아니라 미래의 한국 교회가 밝을 것이다. 2007년을 시작하면서 앞선 선진들 같이 먼저 이판에 대한 관심을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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