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호 교수의 “왜, 선거 운동을 하십니까?”를 읽고 부산삼일교회(손성은 목사 시무) 성도 한 분이  이 글을 교회 게시판에 올렸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삼일교회에서 봉사하고 있는 손재익 강도사가 답글을 달았습니다. 연구위원회 회원 중 한 분이 이 사실을 알게 되어 연구위원회에 보고하였고 연구위원회는 이 글을 코닷에도 올리는 것이 좋다고 판단하여 게재하게 되었습니다. 약간의 오자와 밑줄들을 제외한 전문을 가감 없이  싣습니다. (이세령 연구위원장)

 

그동안 가벼운 글을 많이 올렸는데...

이번에는 교역자답게(?) 무거운 글 한 번 올려 봅니다...

마침 아래에 보니 '공부방'님께서 올린 이성호 교수님의

"왜 선거운동을 하는가?"라는 제목이 있어서 그와 관련해서 글을 썼습니다.

급하게 써서 조금 부족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해해 주시길...

 

도입

   
▲ 손재익 강도사

부산대학교 졸업
고려신학대학원 M.Div 졸업
현. 고신대학교 대학원 Th.M 과정중(구약학 전공)
현. 삼일교회 강도사
교회의 직분자를 선출함에 있어서 ‘선거 운동’은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이 사실은 고려신학대학원에서 역사신학을 가르치시는 존경하는 이성호 교수님께서 코람데오닷컴에 실린 글(그 글은 아래의 게시판에 옮겨져 있습니다)에서 잘 설명해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교수님의 주장대로 교회에서는 선거운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이런 반문을 할 수 있습니다. “선거운동은 안 되는데 왜 선거를 하느냐? 선거운동 없는 선거는 선거로서의 의미가 없지 않느냐?”라고 말입니다. 이러한 반문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저는 “왜 선거를 하는가?”라는 제목으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왜 선거운동을 하는가?”라는 제목은 선거운동을 하면 안 된다는 의미였지만, “왜 선거를 하는가?”는 교회는 선거를 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답입니다. 이 교수님은 역사신학자 다운 글을 쓰셨는데, 저는 성경본문에 입각하여서 구속사적 관점에서 왜 교회는 직분자 선출을 위해서 선거를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선거운동을 하면 안 되는 이유

교회 안에 선거가 있습니다. 특별히 직분자를 뽑는 일에 있어서 교회는 역사적으로 선거를 합니다. 그렇다면 먼저 우리는 선거를 왜 하는지를 다루기에 앞서서 선거운동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좀 더 분명하게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이 교수님은 선거운동을 하면 안 되는 이유가 교회의 직분은 그리스도의 선물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증거가 어디에 있느냐? 엡4:7-12입니다.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7)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8)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랫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9)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라(10)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11)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12)”

위 본문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9절). 그런데 그렇게 올라가신 이유는 원래 계신 곳이 하늘이었고, 그 하늘에서 땅 아래로 내려 오셨기 때문입니다(9절).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땅에서 다시 하늘로 올라가실 때에 그냥 올라가신 것이 아니라 8절에 의하면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으셨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습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시편68장 18절을 인용하여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사로잡힌 자’는 마귀(사탄)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사건(죽음, 부활, 승천을 통틀어)을 통해서 마귀를 사로잡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선물은 무엇인가? 선물(gift)이라는 말은 ‘은사’(gift)라는 말과 같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만, 좀 더 구체적으로는 11절에 암시되어 있는 것처럼 ‘직분’(은사)입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향해서 각 사람에게 선물을 은혜로 주셨는데(7절), 그것은 곧 교회를 위한 직분입니다.

이 사실은 이미 구약시대에 예언되어져 있었습니다. 민수기 8장 19절(개역한글판)에 보면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취하여 그들을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선물로 주어서 그들로 회막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봉사하게 하며 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라고 말하면서, 제사장의 직분이 곧 선물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처럼 교회의 직분이란 오직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지는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하신 결과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렇기에 교회의 직분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는 선거운동을 통해서 그 결과를 얻는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을 받는 절차가 선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노력으로 그 선물을 얻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 어떠한 방법도 의도적으로 동원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측면에서 선거운동은 직분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심히 악한 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직분이 하나님의 은사라는 성경적 가르침을 포기하지 않는 한, 선거운동은 교회 내에서 허용될 수 없습니다. 선거운동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직분을 얻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직분의 고유한 성격을 스스로 파괴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선물을 인간이 스스로 찾으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왜 선거를 하는가?(1) - 제비뽑기는 안 되는가?

그렇다면 왜 선거를 합니까? 선거운동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굳이 선거를 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냥 제비를 뽑는 것이 옳지 않을까요? 실제로 성경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잠16:33) “제비 뽑는 것은 다툼을 그치게 하여 강한 자 사이에 해결케 하느니라”(잠18:18)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모세는 제비를 뽑아서 그 땅을 나누라고 하였고,1) 실제로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각 지파에 대하여 제비를 뽑아서 땅을 나누었습니다.2) 신약시대에도 제비를 뽑은 대표적인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사도행전 1장에서 부족한 사도 1명을 채울 때에 제비를 뽑았습니다(행1:26). 이렇게 성경에 나와 있는 것처럼 제비를 뽑아서 하나님의 선물을 얻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닐까요?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성경에 나온다고 해서 무조건 ‘성경적’인 것은 아님을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나온다고 해서 다 성경적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구약의 제사를 오늘날과 같이 드려야 하며, 구약의 절기를 오늘날과 같이 다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장 죽여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제비뽑기가 성경에 있다고 해서 무조건 성경적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성경이 ‘역사’라는 독특한 방식 속에서 계시되어온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계시의 발전과정을 제대로 이해하면서 읽어야 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행1:26을 마지막으로 제비뽑기가 더 이상 등장하지 않습니다.3) 단순히 등장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등장해야 할 상황 속에서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선거를 하는가?(2) - 제비뽑기를 대체한 선거

그렇다면 무엇이 등장합니까? 바로 ‘선거’입니다. 대표적으로 행6장에서는 예루살렘 교회가 직분자를 선출하는데, 그동안에 주로 사용되던 제비뽑기가 사용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히려 ‘택하라’, ‘택하여’라는 말이 6장 3절과 5절에서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택하다’는 것은 일종의 투표형식이라는 것이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행14:23에서도 교회가 장로들을 ‘택하여’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비뽑으라는 말 대신 선거의 방식이 나옵니다.

특별히 여기에서 ‘택하다’라는 말은 원어에 의하면 케이로도네오라는 말로 여기에서 접두어 케이르는 ‘손’이라는 뜻을 갖고 있고, 어원적으로는 ‘손을 들어 표시하게 해서 선택하다’(elect by raising hands)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4) 다시 말해 거수(擧手) 투표를 통해서 한 것입니다(여기에서 손을 드는 주체는 교인들입니다). 일종의 투표형식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동안 계속되어 오던 ‘제비뽑기’라는 방식이 사도행전 1장 이후에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고 그 대신 ‘투표’라는 방법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왜 선거를 하는가?(3) - 선거의 원리

그렇다면 왜 그럴까요? 그것은 제비뽑기가 사도행전 1장을 끝으로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분명해 집니다. 사도행전 2장에는 오순절 성령강림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이 등장합니다. 1장까지는 제비뽑기가 진행되다가 성령님께서 오신 뒤에는 제비뽑기가 나타나지 않고 대신 투표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성령님’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십니다. 어떤 역할이냐 하면 요한복음 14장 26절에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라고 말씀하고 있고, 요한복음 16장 13절에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그 역할입니다.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영입니다.

그 성령님께서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을 통해 모든 사람에게 임하셨습니다. 구약시대에 특정한 때에만 임하시던 성령님께서 이제는 보편적으로 임하셨습니다. 이제 이 성령님이 각 심령 가운데 임하였으므로 하나님의 뜻을 구별하는 방법은 굳이 ‘제비뽑기’일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대신 성령님을 심령에 모시고 있는 성도들이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오랫동안 계속되던 ‘제비뽑기’는 성령강림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세워지면서 중단되었습니다.5) 대신 투표가 그 방식을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께서는 구약시대보다도 성숙한 신약교회에 제비뽑기를 폐하시고 교회에 속한 자들이 지혜롭게 선출하기를 기뻐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시대의 첫 직분자 선출은 제비뽑기가 아닌 투표의 형식을 취하였습니다(행6장).6)


교회 시대에 적용할 방법; 선거

그러므로 우리가 만약 사도행전 2장 이전의 시대를 살고 있다면, 여전히 제비뽑기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사도행전 2장 이후의 시대를 살고 있기에 제비뽑기가 아닌 투표의 방식을 따라야 합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고 여전히 제비뽑기가 유효하다고 한다면, 그것은 단순히 성경에 대한 무지가 아니라 ‘성령님의 강림’이라는 역사를 부인하는 것이 될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대로’ 하려다가 오히려 성경을 무시하는 결과를 낳고,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내어 주신 하나님과 우리 안에 계셔서 진리를 드러내시는 성령님을 무시하는 엄청난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사의 교훈

실제로 교회 역사에서도 제비를 뽑아서 직분자를 선출하는 경우를 볼 수 없습니다. 직분자 선출 뿐 아니라 중요한 결정(신앙고백서 채택)을 할 때에는 반드시 투표 혹은 거수(擧手)와 같은 형식을 취하였습니다. 개혁주의 신앙고백서들에서도 이 사실을 분명히 가르칩니다. 16세기에 작성된 벨기에 신앙고백서 제 31조에 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사역자들과 장로들과 집사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규정된 대로 기도와 선한 질서로 교회의 합법적인 선거를 통하여 선출되어야 함을 믿습니다.”라는 언급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교회 시대의 선거의 의의

교회가 직분자를 선출하는 것은 단순히 인기투표도 아니요, 열심히 표를 달라고 요청한 사람에게 주는 것도 아닙니다. 교회에서 투표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위해서 주시는 선물로서의 직분을 뽑는데, 그 방법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오늘날에는 더 이상 제비를 뽑는 방법이 아닌 성령이 임한 각 성도들의 건전한 판단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냅니다. 인간의 지성에 근거한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인간이 교회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근거한 성경적인 절차를 통해 하나님이 오늘날에도 교회를 다스립니다.


선거를 개혁하자?

오늘날 장로교회 안의 선거가 타락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반대 급부로 타락을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논의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극복방법을 보면 단순히 ‘제도’를 고치려고 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개혁은 제도를 뜯어 고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로 돌아가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교회의 직분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선출 방식을 왜 선거로 하는지 성경을 통해서 본질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결론

이번주일에는 각 기관의 총회가 있습니다. 물론 기관의 임원은 ‘직분’이 아닙니다. 하지만, 교회의 각 기관을 운영함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합니다. ‘선거’라는 방식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살필 수 있기를 원합니다.

몇 주 후에는 우리 교회의 중요한 직분자를 선출하게 됩니다. 장로, 집사, 권사. 이 직분을 선출하는 것은 단순히 누가 더 잘났느냐? 누가 더 인기가 많느냐? 하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섬길 일꾼으로 누구를 원하시는 지를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성령님께서 각 성도에 임하고 계시기에 그 성령님의 뜻을 확인하기 위한 방법으로 성경과 교회역사가 증거하는 ‘선거’라는 방식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신약교회에게 주신 선거는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 그 무엇보다도 강력하게 역사하시는 양심의 주(主)가 되시는 성령님의 뜻을 구하는 중요한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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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너희의 가족을 따라서 그 땅을 제비뽑아 나눌 것이니 수가 많으면 많은 기업을 주고 적으면 적은 기업을 주되 각기 제비 뽑힌 대로 그 소유가 될 것인즉 너희 열조의 지파를 따라 기업을 얻을 것이니라(민33:54)

2) 그 사람들이 일어나 떠나니 여호수아가 땅을 그리러 가는 그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가서 그 땅으로 두루 다니며 그려가지고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여기 실로에서 여호와 앞에서 너희를 위하여 제비 뽑으리라(수18:8)

3) Lawrence R. Eyres, The Elders of the Church, 홍치모 역, 『하나님이 세우신 장로』(서울: 총신대학 출판부, 1985), 36. 이 시기가 오순절 성령 강림 이전이기에 구약적 선출 방식인 제비뽑기의 방식을 취하였다는 지적으로 William H. Baker, “Acts”, in Evangelical Commentary on the Bible, ed. Walter A. Elwell (Grand Rapids: Baker, 1989), 887을 보라.

4) Robert L. Raymond, A New Systematic Theology of the Christian Faith (Nashville: Thomas Nelson, 1998), p. 897, n.3; G. H. C. MacGregor, “Exegesis of the Acts of the Apostles”, in The Interpreter‘s Bible, vol. 9 (Nashville: Abingdon Press, 1954), 193; David John Williams, Acts, Tyndale New International Biblical Commentary (Peabody: Hendrickson, 1985), 255

5) Bruce K. Waltke, Finding the will of God: A Pagan Notion? (Grand Rapids: Eerdmans, 1995), 임원주 옮김, 『하나님의 뜻 발견하기』(서울: 도서출판 누가, 2006), 70.

6) 제비뽑기 제도가 신약에서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고, 더구나 기독교적 실천의 규범적인 것으로 나타나지도 않는다는 좋은 지적으로 다음을 참고하라. George Eldon Ladd, “Acts”, in The Wycliffe Bible Commentary (Chicago: Moody Press, 196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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