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와 공평이 있는 총회가 되어야 한다.

   
   ▲ 이세령 목사

   로테르담사랑의교회 담임
   코닷 연구위원장
1. 노회에서 있었던

필자가 한국에서 담임 목회를 했던 지방의 어떤 노회에서의 사건을 소개한다. 노회 임원을 선거하기 위한 정기 노회를 앞두고 소속된 시찰내 목사들의 모임이 아침 일찍 소집되었다. 지역에 실세로 불리는 목사가 시찰내 목사들을 불러서 아침 식사를 하면서 노회 임원 선거에 대한 지침을 시달하였다. 다른 노회에서 이명을 목사님이 계셨는데 분이 연세도 있기에 노회장이 되어야 한다는 취지의 내용으로 기억이 된다.

 

여기에 어떤 목사가 참석하지 않았다. 어떤 모임인지를 대략 짐작하고 참석을 거부하였다. 나중에 만나서 이런 일들의 자초지정을 나누었다. 그리고 나서 정기 노회에 참석했다. 임원 선거 직전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던 목사가 일어나 발언을 신청했다. 노회 선거를 앞두고 사전에 사적인 모임을 통해서 임원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일을 사실에 대해서 고발을 했다.

 

사건은 당시 노회에 사건이 되었다. 이후 고발한 목사는 소속한 시찰 내에 조직된 목사회에서 제명을 당할 위기에 몰렸다. 목사간에 있었던 일들을 외부에 밝혀서 목사의 명예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명이었다. 실은 실세의 목사가 목사회로 하여금 제명을 하도록 만들고 있었다. 이에 더욱 완강히 거절하던 목사는 주변의 권면을 받아들이는 차원에서 적절히 사과하는 수준에서 마무리가 되었다.

 

2. 헌법에서 교회 직원 선거에 대한 규정

고신 교단 헌법의 헌법적 규칙은 선거에 대한 다음과 같은 규정을 가지고 있다.

3 교회 직원/ 제42조 교회 직원의 선거와 투표

교회의 직원 선거와 투표는 다음과 같이 한다.

 

1. 선거 투표는 무흠 입교인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비밀히 할 것이다. 교회에서나 어떤 회에서든지 특정한 사람의 성명을 기록하여 돌리거나 방문하여 권유하거나 문서로나 집회를 이용하여 선거운동하는 일은 일체 금한다. 이를 어겼을 경우, 그 치리회는 적절히 시벌한다.

 

이것은 물론 교회 직원 선거를 위해서 규정된 것이다. 교회의 직원은 목사와 장로와 집사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런 직원의 선거는 주로 개체 교회의 경우에 해당한다. 이런 선거에 대한 규정을 배반하는 사건이 발생하면 치리회는 적절히 시벌해야 한다.

 

이런 규정의 내용 중에 교회에서나 어떤 회에서든지 특정인을 위해서 방문하거나 권유하거나 문서나 집회를 이용해서 선거 운동을 하는 일은 일체 금한다고 규정한다.

 

이제 이런 직원 선거의 규정이 앞서 언급한 노회의 경우나 혹은 나아가 총회의 임원 선거나 이사 선거의 경우에는 어떻게 적용이 것인가? 노회나 총회는 적절하게 선거에 대한 규정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이런 치리회의 세부 선거 규정을 지배하는 헌법의 원칙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지금 다루고 있는 교회 직원의 선거에 근거를 두고 있을 것이다.

 

교회의 선거는 무흠 입교인이 실시한다. 말은 복음의 은혜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자만이 선거에 참여한다. 세상의 선거와 다른 질서와 기준을 가진 자들이 나아간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선물로서 직분자를 받아들이는 과정으로서 선거에 참여한다. 복음의 수용의 과정으로서 직분자를 받는 것이 선거이다.

 

고신 교단에 실제로 계파가 존재해 왔다. 유구한 역사를 언급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총회를 앞두고 자기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어떤 모임들이 진행되었는지는 공공연한 사실이다. 심지어는 조정을 하기 위해서 제비뽑기까지 했는데 불복했다는 말을 최근에는 들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3. 한번 가정해 보자.

교회에서 장로의 선거가 있다. 성도가 장로로 당선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무리들이 교회 안에 있다. 그래서 되도록 하기 위해서 선거 전에 온천에서 사람들을 불러모아서 장로가 당선이 되도록 하는 모임을 가진다. 그리고 같이 마음을 모은다. 교회가 제법 규모가 있어서 사람들이 서로 모르니 알려서 분이 장로가 되어서 교회를 위해서 열심히 일하도록 보자고 마음을 모은다.

 

이런 사실을 교회 당회가 알았다고 해보자. 어떻게 처리해야 하겠는가?

만약에 노회나 총회의 선거를 앞두고 일어나는 오늘의 우리 현실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총회의 총대가 500 정도인 모양이다. 목사와 장로들이 총회 총대원을 모르는 것과 오늘날 중대형 교회에서 교인 상호 간의 관계에서 모르는 것과 비교할 있을까?

 

4. 총회가 가진 -세속적 질서로 가면 안된다.

한국 교회의 총회 선거나 한기총 선거가 과열 분위기이다. 한국 교회가 지금 왕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필자가 속한 고신 유럽 총회의 예를 보면 분명하다. 개체 교회의 수가 얼마 되지 않는 총회이다. 일년에 한번씩 만나서 처리할 회무도 별로 없다. 그래서 아무도 총회장이 되는 일에 관심이 없다. 심지어는 자신이 총회에서나 노회에서 어떤 역할인지 잊어먹고 모이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나 여기도 교세가 증가하고 뭔가 있게 되는 순간 다른 장이 것이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너무 세속적이라는 것이다. 천국의 복음을 가진 질서답지 못하다. 왕성한 교회는 이렇게 자천과 경쟁이란 세속 질서에 함몰되어야만 하는가? 그렇게 하려고 예수님을 믿고 복음을 붙잡고 있는가?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복음을 믿고 교회를 섬기는 것은 아닌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누구든지 섬기는 자가 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우린 부름을 따라서 섬기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총회가 왜 사적인 집단의 이익과 명예의 장이 되어버렸는가? 왜 한 부류의 사람들이 되면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죽는다는 생각이 들도록 하고 생존을 놓고 경쟁을 하는 장이 되어 버렸는가? 정말 공의로운 치리회인가? 공의를 잊어버린 계파 이익을 추구하는 치리회와 치리회의 운영은 결국 복음을 가진 교회에게 수치를 안겨다 줄 뿐이다. 누가 어떤 자리에 있어도 교회는 결과적으로 정의와 공평을 담아 내어야 한다. 바른 목표와 바른 과정을 담은 복음적 질서를 세우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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