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적 길 곧 선한 길로 행하라 (예레미야 6:16)

1. 신앙노선

   
   ▲ 성희찬 목사
   마산제일교회 담임
   코닷연구위원
   네덜란드 아펠도른
   신학교에서 수학
   고려신학대학원
   <교회정치> 강사
축구나 야구 경기를 하면 각 팀마다 제 색깔이 있는데 그 색깔을 보고 어느 팀인지 안다. 우리의 신앙 노선과 교회의 길에도 색깔이 있다. 한마디로 개혁주의로 말할 수 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 노선/색깔이다.

 

예를 들어서 1952년 고신 교회가 한국교회에서 노회로 발족할 때 그 발회선언문에서도 분명히 밝혔다. 즉 우리는 한국 교회에서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의 확립을 위해서 발회한다고 하였다.1) 하나의 장로교회 시절에 왜 또 다른 장로교회가 요청되어야 했을까? 여기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없으면 고신교회의 발회는 분열임에 틀림없다.


 그 이전 1946년 고려신학교 설립 취지서에도 개혁주의가 나온다.2) 물론 이후 한상동, 주남선 목사의 글이나 박윤선 교수의 글에서도 명백하게 나온다. 당시 이미 조선신학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고려신학교의 설립이 요청되었는가? 과연 고려신학교의 설립이 하나의 장로교회 분열을 제공하는 원인이 되었을까?

 

 그렇지 않다. 우리는 고려신학교의 설립을 하나의 장로교회의 분열이 아니라, 복귀로 본다. 어디로 복귀하고자 했던 것일까? 성경과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 역사적 개혁교회가 우리가 복귀하고자 했던 그 길이었다. 이를 위하여 뼈아픈 단절/분리가 우리에게 요청되었다.


 제59회 현 총회장 윤현주 목사의 인사말에도 개혁주의 교회가 나온다:

 “우리 교단은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들을 기준으로 삼고 신학과 신앙, 생활의 기틀을 다져 온 개혁주의 교회입니다” (총회 홈페이지에 실린 인사말)


 전국학생신앙운동의 표어에서도 그러하다:

 “우리는 전통적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및 대소 교리문답을 우리의 신조로 한다.

 우리는 개혁주의 신앙과 생활을 확립하여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됨을 우리의 목적으로 한다.

우리의 사명은 다음과 같다.

 

 -개혁주의 신앙의 대한교회 건설과 국가와 학원의 복음화

 -개혁주의 신앙의 세계교회 건설과 세계의 복음화

우리의 생활원리는 다음과 같다.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


 총회 해외선교부의 선교선언문에서도 나타난다:

 “우리는 주님의 지상명령에 순종하여 세상 끝 날까지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온 세계에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의 개혁주의 교회를 건설 한다”


 총회교육원의 교육이념에서도 나타난다:

 “개혁주의 정신에 입각하여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를 따라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을 양성 한다”


 이와 같이 고신 교회의 색깔, 우리의 길은 개혁주의이다. 이 개혁주의의 길을 가는 것이 섹트가 아니라 가장 에큐메니칼한 것이며, 사도신경에서 고백하는 하나의 공회를 따르는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이러한 개혁주의에 대한 자긍심 혹은 당당함이 사라지고, 열등의식이 들어와 있는 것 같다. 교단 지도자가 모이는 공적 모임에서도 '개혁주의를 벗어나야 한다' '개혁주의가 전부가 아니다'라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고, 몇 년 전에 총회교육원이 교육이념에서 '개혁주의' 용어를 삭제하려고 한 점을 실례로 들 수 있다.

 

 개혁주의, 종교개혁/개혁파의 전통을 따르는 것이 시대착오이고 한국장로교회에서 고립되었다는 생각이 어느 새 우리 안에, 그것도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 같다.

 

 언제 어떻게 어디에서 들어오게 된 것일까?

 고신 교회 안에서 우리가 하나의 유대와 연대를 가지려면 개혁주의에 대한 동일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혁주의라는 용어는 우리 모두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는 적어도 개혁주의를 통해서 동일한 신앙고백과 동일한 교회정치, 동일한 역사적 경험, 동일한 생활의 원리를 가지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공동 토대가 되어야 진정으로 신앙의 일치를 기대할 수 있다.



2. 고신 개혁주의의 역사적 기원

그렇다면 고신의 개혁주의는 어디서 생성되었으며, 역사적으로 어디에서 기원되었는가? 개혁주의 용어는 종교개혁 당시에 비롯되었다. 첫째는 로마천주교와 차별 되었다. 프로테스탄트(항의파)라고 불렸다, 둘째는 루터파와 차별되어 사용되었다.


 무엇보다 16세기 종교개혁, 특히 개혁가 칼빈에게 주목한다. 개혁주의=칼빈주의, 이 등식이 통용되는 것은 칼빈의 신앙/신학이 오늘 우리에게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칼빈과 개혁가들의 신앙/정신/사상/고백이 다음의 고백서에 반영되었다: 특히 프랑스신앙고백서 (1559년) 벨기에신앙고백서 (1561), 팔츠 교회정치 및 하이델베르크요리문답(1563년), 스코틀랜드 제1/2 치리서, 돌트신경(1618) 등이다.


 나아가 1648년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이것이 일부 청교도들을 통하여 미국 교회를 생성하게 하였고, 다시 미국 교회를 통하여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다.


 우리의 경우 1907년에 장로회 독노회가 구성되고 직후 개혁주의문서인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 일부를 받게 되었다. 일제시대 교회가 신사참배와 자유주의신학의 영향 아래에 있고, 평양신학교가 폐교가 되고 자유주의신학의 선봉에 선 조선신학교가 설립될 때 1946년에 고려신학교가 부산에서 설립되는데 미국의 개혁주의 신학교 인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수학한 (이후 화란에서 잠시 수학) 박윤선 목사가 1960년까지 14년 동안 교장으로 있으면서 비로소 한국장로교회가 개혁주의를 접하게 되고 개혁주의가 한국에 소개되게 되었다. 이후 경남노회가 고려신학교를 배경으로 1952년에 한국 교회에서 개혁주의를 파수하고 개혁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한국장로교회에서 축출되어 독노회로 발회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합동과 환원이라는 시행착오와 아픔을 겪은 고신 교회는 1969년 19회 총회에서 화란개혁교회와 자매를 맺으면서 그 조건이었던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 전체를 받으므로 한국장로교회에서 개혁주의교회로 새롭게 도약하게 되었는데 이때가 선교 85년 되는 해였다. 이후 ICRC (국제개혁교회연합)에 가입하게 되면서 세계의 개혁주의교회와 친선을 갖게 되었고, 화란개혁교회에서 파송된 두 교수, 고재수 박도호 두 분을 통해서 (1980년대 약 10년 동안) 더욱 성숙한 개혁주의의 틀을 다지게 되었고, 이후 미국 및 화란 등의 개혁주의 신학교에서 수학한 교수들을 통해서 개혁주의의 신학정통이 이어지게 되었다.


 그 와중에 김해복음병원의 부도 (2003년 3월), 복음병원의 부도 (2003년 5월), 관선이사회의 파송 (2003년 4월)으로 고신교회의 바벨론 포로 상태가 닥치기도 하였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4년 만에 다시 정이사체제로 전환 (2007년)하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이 고신에서 개혁주의가 형성 유지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3. 고신의 개혁주의에 대한 다음과 같은 오명과 오해가 있다

첫째는 고집스럽고 고리타분하다, 전통에 매여 있다, 따라서 현실성/적응성이 없다는 것이다.


 둘째는 다른 교단과 교파에 대하여 비판/정죄를 잘 한다, 자기만 항상 옳다고 생각한다. 율법주의, 분파주의 혹은 완전주의를 지향 한다, 이로써 연합과 일치를 꺼린다는 것이다.


 셋째는 성령과 무관하다, 성령의 역동적 역사와 기도에 무관심 하다는 오명이다.


 넷째는 사랑보다는 법을 잘 따진다, 법정신을 무시하고 문자적인 법을 고집한다, 심지어 사회 법정에까지 가지고 갈 만큼 고소를 잘 한다는 오명이다.


 다섯째 사람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4. 이러한 오해와 오명을 가지게 된 배경 (외적 영향)을 먼저 보려고 한다.

변명으로 들릴 수 있을지 모르나, 그러나 냉정하게 볼 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우선 근대주의의 영향 때문이다.

이러한 사조는 전통을 중시하는 것이 무조건 능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인데, 그 결과 교회 뿐 아니라 사회에서도 전통을 경시하는 경향을 볼 수 있다. 서양에서는 이미 300년 훨씬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그래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권위-신/교회/성경의 권위를 경시하게 되었다. 이런 배경에서 고신교회가 전통을 중시하는 것을 케케묵었다, 현실성이 없다고 비판을 한다는 점을 먼저 생각했으면 한다.


둘째 에큐메니칼(교회일치운동)의 영향이다. 이러한 운동에 선 사람들은 고신교회를 분파/분리주의라고 말한다. 더욱이 고신교회 안에서도 이러한 말을 공공연하게 많이 듣는다. 


셋째 민주주의의 영향에도 어느 정도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고신교회를 가리켜서, 너무 폐쇄적이다, 여자 장로 목사를 왜 세우지 않느냐고 비난하기도 한다.


넷째는 개혁주의에 대한 우리의 무지에도 어느 정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개혁주의 신앙고백서를 구체적인 교회생활에서 배운 적이 없다. 개혁주의를 구호로만 외쳤고 세례 교육 시나 임직자 교육 시에 형식적으로 배웠을 뿐이었다.


다섯째 오순절 운동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고 본다. 이 운동에서 바라볼 때 고신교회는 성령/은사/기도/방언/치료에 관심이 덜한 것으로 비판을 받는다.



5. 이러한 오해와 오명이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첫째, 율법주의이다. 주일을 성수하는 것은 좋으나 이를 통하여 자기의 의를 쌓으려고 하였고 남을 비판/정죄하였다면 위의 오해와 오명은 사실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용서와 화해보다는 비판과 정죄의 분위기이다. 우리는 교회내부의 일을 가지고 세상 법정에 간 뼈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예배당 쟁탈전 등 세상 법정 고소건은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


셋째, 탈 신앙고백 성향이다. 이 시대의 사조-감성주의-를 따라서 고신교회 역시 신앙고백에서 이탈하고 있다.


넷째, 탈 장로회정치 성향이다. 장로회정치에서 이탈하는 교회가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있다.


다섯째, 노회 총회의 관심이 주로 임원 및 이사 선출에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이나,  교단 내 파벌, 총회 산하 기관 및 기독교 단체, 연합회의 관료화/행정화는 차후 교회에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6. 맺음말

고신 교회 안에서 우리를 하나로 묶는 것은 무엇인가? 적어도 우리가 고신교회 안에 있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동일한 역사적 경험이다. 개혁주의는 역사성을 전제로 한다. 종교개혁을 거쳐서 한국교회 안에서 고려신학교의 설립과 고신교회의 발회에 대한 동일한 경험이 있어야 한다.

둘째는 동일한 신앙고백이다. 개혁주의 표준문서를 동일한 마음으로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는 동일한 교회정치이다. 우리는 동일한 장로회정치원리를 가지고 있다.


넷째는 나아가 개혁주의를 바탕으로 한 동일한 생활 원리, 예컨대 자녀교육/직장생활 등에서 이 원리가 나타나야 할 것이다.


다섯째는 위 모든 것이 다 구비되어 있다 하더라도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예수님의 마음과 하나 되게 하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연합되지 않으면 같은 고신 교회 안에 머물러 있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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