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참사랑교회(박종선 목사)
결국 염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재정이 바닥났다. 가지고 있던 조금의 개인 재산도 한 순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어떻게 할까? 어디서 빌릴 수도 없고, 또 빌린다 하더라도 감당이 안 되는 일이었다. 30여 명의 청소년들을 먹이고 입히는 일에 한두 푼이 들어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할 수 있는 일로 ‘결단’을 했다. 막노동이었다. 아내 김순복 사모는 식당 설거지 등의 일에 뛰어들었다. 그것으로도 부족했다. 카드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당장 굶길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 달, 두 달……. 신용불량자로 떨어지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박 목사는 이 아이들을 돌보다가 인생이 끝나면 그렇게 하겠다고까지 다짐을 했다.
“그 때 남편(박 목사)을 향해 처음으로 이혼하자고 했어요. 너무 힘들었어요. 나는 못 하겠으니, 혼자 하라고 한 것이지요. 그때를 생각하면… 참.”
▲ 박종선 목사(왼쪽)와 김순복 사모(오른쪽) | ||
옆에 있던 김순복 사모가 당시를 생각하며 한 마디 거들었다. ‘이것이 목회인가’ 등 수 많은 생각이 자신을 흔들었다고 했다. 어린 딸 지희(지금은 고1)를 볼 때 더욱 마음이 아팠다.
2년 후, 빛이 비추었다. 정부의 사회복지를 위한 각종 제도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박 목사가 청주지역 1호 사회복지 혜택을 받는 자로 선정이 된 것이다. 박 목사 내외가 모두 사회복지사를 위한 자격 공부를 하게 되었고, 이후 급여가 지급되었다. 아이들을 위한 각종 시설도 제공 받을 수 있었다.
지금은 4동의 기숙사(해뜨는집, 해맑은집, 해오름집, 드림하우스)가 마련되었다. 학생들은 보다 쾌적한 환경에서 미래를 꿈꾸며 달려가고 있다. 모두 충실한 교회 성도들인 것은 당연하다. 큰 아이들은 벌써 청년부가 되어 동생들을 잘 돌봐주고 있다.
안미영 양(20)은 중학교 3학년 때 박 목사를 만났다. 가정적인 어려움으로 방황할 때다. 그가 지금은 해뜨는 집 기숙사의 보육사로 일을 하고 있다. 교회 내에서는 찬양팀인 오아시스밴드의 단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김민석 어린이(초6년)는 초3년 때 이곳에 왔다. 아동학대 등의 고통을 받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태권도 유단자 자격증도 취득했다. 초등학생 찬양밴드인 파라다이스에서 베이스 기타를 맡고 있기도 하다.
새로운 장년 성도들도 많이 늘었다. 평균 30~40명이 출석을 한다. 예배당 의자가 부족할 정도다. 또 하나 즐거운 일은 올 4월이면 박 목사가 신용불량자 해제가 된다.
“우리 교회는 ‘쉼’의 역할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힘든 사람, 상처받은 사람 등 누구든지 찾아와서 쉼을 얻고 또 힘을 공급받고 나서, 자신의 비전과 더욱 적합한 곳이 있다면 떠나도 좋다고 봅니다. 실제로 그렇게 여러 차례 설교도 했구요.”
박 목사는 개척교회, 작은 교회가 해 줄 수 없는 분야가 많음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좀 더 좋은 환경, 좋은 교육 시스템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지만, 모두를 만족시키지는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박 목사는 한국교회를 향해 한 마디를 덧붙였다. 한국교회, 특히 큰 교회가 ‘치리 목회’를 좀 더 명확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성도들의 불의한 신앙과 삶에 대해 교회가 공정하게 치리하게 된다면, 큰 교회는 물론 작은교회도 보다 건강해 질 수 있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목회를 해오면서 가장 잘했다고 생각되는 것은 정말 아이들만 생각하고 막노동판에 뛰어들었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목숨 걸었죠. 그러니까 길이 열리더군요.” (교회와신앙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