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전 12장을 중심으로 -

 이번 달 기획 기사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의 역사 특히 성령의 충만이나 방언 그리고 신유 등의 은사에 대한 개혁파의 입장을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은사 특히 방언에 대한 주해적 시도를 하고, 성령의 은사와 직분의 연관성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성령의 은사가 교회를 세우는 일을 위해서 주어진 것입니다. 무질서한 성령의 역사에 대해서 바른 태도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함께 참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코닷 연구위원장 이세령 목사-

 

은사는 교회를 세우는 일에 봉사해야 한다.

 

서론


   
  ▲ 황원하 목사

  고신대학교 신학과(B.A.)
  고신대학교 신학대학원 (M.Div.)
  Pretoria University(Th.M.)
  Pretoria University(Ph.D.)
  대구서남교회, 고신대학교,
  고려신학대학원 강사
동서양을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의 요충지였던 고린도에 아시아와 이집트에서 비롯된 신비주의가 들어왔다. 이러한 고린도의 신비주의는 고린도 교회 안에서 성령의 은사와 결부되어 열광적 혼합주의의 형태로 자리를 잡았다. 이에 바울은 고전 12-14장을 할애하여 성령의 은사 문제를 다룬다. 그리하여 우리는 여기서 신구약 전체를 통틀어 가장 분명하고 상세한 성령의 은사에 대한 가르침을 접하게 된다. 이 글에서는 고전 12-14장의 문맥을 중시하면서 고전 12장을 세밀히 살펴봄으로써 바울이 성령의 은사에 대하여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를 살펴보겠다.

 

본론: 고전 12장 분석


12:1-3 그리스도인과 성령


1절에 나오는 ‘신령한 것’(톤 프뉴마티콘)이란 성령의 은사를 뜻한다(12-14장). 한글 개역개정판은 헬라어 성경을 직역하여 이 단어를 ‘신령한 것’이라고 번역하나, 대부분의 영어 성경은 이 단어를 의역하여 ‘성령의 은사들’(spiritual gifts)이라고 번역한다. 영어 성경에서의 이러한 의역은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한 것이다. 바울은 성도들이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 알기를 원한다. 2절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으로 간주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더 이상 이방인(불신자)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신자)이다. 불신자들은 우상(성령과 대조되는 세력)의 지배를 받는다. 3절은 신자들이 성령을 통하여 예수님을 주로 인정하고 고백한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이는 은사가 성령에 의한 것임을 분명히 하기 위한 것이다.


12:4-6 은사와 삼위일체


4-6절에서 바울은 은사를 삼위일체 공식문에 유비한다. 즉 은사, 직분, 사역을 각각 성령, 주(그리스도), 하나님에 대비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여러 가지 은사’(카리스마타)-‘그러나 같은 성령’, ‘여러 가지 직분’(디아코니아이)-‘그러나 같은 주’, ‘여러 가지 사역’(에네르게마타)-‘그러나 같은 하나님’으로 정리하는 것이다. 이것은 은사와 직분과 사역을 같은 입장에서 보기 위한 것이다. 즉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은사가 직분을 감당하고 사역을 위하여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은사는 교회를 섬기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지 개인을 드러내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필요로 하는 것이 은사이다.


12:7 은사의 목적


7절은 4-6절의 내용을 이어받아서 은사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명시한다. 이 구절이 한글 개역개정판에는 그냥 ‘유익하게’라고 되어 있지만 헬라어 성경에는 ‘공동의 유익’(토 쉼페론; NIV: common good)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므로 다시금 말하지만 은사는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교회를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받은 은사는 오직 교회를 위하여 사용되어야 한다. 이는 현대 교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데, 은사를 많이 받은 사람들은 마치 자신의 신앙이 특별하며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는 구별되는 존귀한 사람인양 우쭐거리는 일에 경종을 울려준다.


12:8-10 은사의 목록


8-10절에서 바울은 은사의 목록을 제시한다. 물론 여기서 바울은 모든 은사들을 나열하지 않고 우선 생각나는 대로 몇 가지만 언급한다(신약성경에서 은사의 목록: 롬 12:4-8; 엡 4:11-13, 고전 12:28-30). 여기서 은사들은 헬라어 단어 ‘헤테로’(another)에 따라서 3부분으로 나뉜다. 이러한 방식의 은사 구분은 고든 피(Gordon Fee)에 의해 제시된 것이다. 고든 피에 따르면, 고전 헬라어에서 ‘알로스’(allos)는 같은 종류에 속하는 또 하나(another of the same kind)를 의미하고, ‘헤테로스’(heretos)는 다른 종류에 속하는 또 하나(another of a different kind)를 의미한다. 비록 코이네 헬라어에서 이러한 용법이 엄격하게 지켜지지는 않았으나, 여기서 바울이 구분을 위해 이 용법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Richard B. Hays, 고린도전서, 352-353).


그룹 1: 고린도 교회에서 믿음이 강한 자들이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는 은사들

어떤 사람(allo)에게는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allo)에게는 지식의 말씀을,


그룹 2: 이적을 일으키는 초자연적인 은사들

다른 사람(hetero)에게는 믿음을(이적을 일으키는 강력한 믿음),

어떤 사람(allo)에게는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allo)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allo)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allo)에게는 영들 분별함을(진리를 보존하는 능력),


그룹 3: 고린도 교회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은사들

다른 사람(hetero)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allo)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12:11 요약


11절은 지금까지의 내용을 요약한 것인데, 은사는 같은 한 성령이 그의 뜻대로 나누어 주시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내가 자의로 은사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판단하셔서 은사를 적절히 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서로의 은사에 대해서 시기하거나 질투하거나 열등감을 가질 것이 아니다. 다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받은 은사를 잘 사용해야 한다.


12:12-13 한 몸


12절은 명제적 문장이다. 바울은 교회 공동체를 한 몸에 유추한다. 바울 당시에는 사회적 단결을 요청하기 위하여 이러한 몸의 유추를 많이 사용했다. 여기서 바울은 그리스도와 교회를 동일시한다. 바울은 13절에서 신자들이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다고 말한다. 여기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다는 말은 성령의 내주를 의미한다. 성령을 마신다(to drink)는 것은 성령을 들이마시는 것을 뜻하는데(엡 5:18-20; 참고. 요 7:37-39), 모든 신자들이 한 성령에 흠뻑 빠져 있는 한 몸임을 가리킨다. 따라서 신자들의 공동체에는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참고. 갈 3:27-28; 골 3:9-11).


12:14-26 여러 지체


14-16절에는 몸에 여러 지체가 있는 것처럼 교회 공동체 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한다. 17절은 몸의 지체들 중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자명한 사실에 근거하여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모두 중요하다는 진리를 말한다. 18-20절은 몸의 지체들이 모두 제각기 해야 할 역할이 있는 것처럼 교회 구성원들은 자신들이 받은 은사를 사용하여 교회 공동체를 위해 일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21-23절은 상위의 지체들이 하위의 지체들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한다. 더 약하게 보이고 덜 귀하게 보이고 별로 아름답지 않게 보이는 지체가 더 요긴하고 더 귀하고 더 아름답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 공동체는 약한 구성원들을 차별하지 않고 돌보아 주어야 한다. 24-26절은 몸의 지체들이 서로 연결되어서 고통과 즐거움을 같이 누리듯이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분열되어서는 안 되며, 함께 고통과 기쁨을 누려야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은사가 분열을 조장하는 일이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된다.


12:27-31 결론


27절은 한 몸으로서의 교회 공동체를 적시한다. 28-30절에서 바울은 이제 앞에서 설명한 몸의 유추를 은사에 적용한다. 여기에 적시된 여러 은사들에 대한 언급은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은사들을 나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은사를 가진 이들이 모두 힘을 합하여 교회를 세워가야 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여기서 바울이 방언의 은사를 뒤에 둔 이유는 그것이 덜 중요하기 때문이 아니라 고린도 교회에서 방언의 은사를 특별한 위치에 두는 사람들에게 방언은 하나님이 주신 여러 은사들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점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29-30절은 수사학적 질문으로서 부정적 답변을 기대하는 것이다. 바울의 질문에 내포된 대답은 한 사람이 모든 은사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며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과 다른 은사를 받은 사람들을 시기하거나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다양한 은사가 존재하는 것으로 인하여 크게 감사해야 한다.


12:31 가교역할: 고전 12-13-14장을 연결함


12장의 마지막 절은 12-13-14장을 연결하는 가교역할을 한다. 31절a에서 바울은 성도들에게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말한다. 이어지는 14장을 고려할 때, 여기서의 ‘더욱 큰 은사’란 교회를 섬기기 위하여 필요한 은사이다(예. 개인을 위한 방언보다 교회를 위한 예언을 사모하라). 그리고 31절b에서 바울은 ‘가장 좋은 길’을 보이겠다고 하는데, 이것은 13장에 나오는 사랑을 가리킨다. 사랑은 성령의 은사를 사용하는 가장 좋은 길(방식)이다. 즉 사랑은 은사가 아니라 은사를 사용하는 방식이다. 그러므로 31절은 12-14장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한다. 즉 31절a는 12장과 14장을 연결하고, 31절b는 12장과 13장을 연결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14:1도 사랑이 가교 역할을 해서 13장과 14장을 연결한다. 그렇다면 13장과 14장의 요지는 분명해 진다. 13장의 요지는 사랑이 은사를 사용하는 방식이라는 사실이고, 14장의 요지는 사랑이 은사의 사용에서 구체적으로 작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론


지금까지 성령의 은사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이 담겨 있는 고전 12장을 분석하였다. 이 분석으로부터 얻어진 사실들은 다음과 같다.


1) 은사에 대해서 아는 것은 중요하다. 은사는 성령께서 구원받은 신자들에게 주시는 것이다.

2) 성령은 그 뜻에 따라 성도들에게 은사를 나누어주신다. 즉 은사는 자신이 선택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판단하셔서 주시는 것이다.

3) 성도들은 각기 다양한 은사를 가지고 있으며 모든 은사는 동등한 가치를 가진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나와 다른 은사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시기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된다.

4) 다양한 은사는 하나의 목적, 즉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사용되어야 한다. 은사는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되며 오직 교회를 유익하게 하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은사를 통하여 온전한 한 몸(교회)을 이루어야 한다.

5) 은사는 사랑이라는 방식을 통해서 사용되어야 한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리 신령하고 신비한 은사라도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바울에 따르면, 누가 어떤 은사를 받았느냐, 혹은 누가 은사를 얼마나 많이 받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받은 은사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느냐, 혹은 받은 은사를 통하여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바울은 은사를 오직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사랑을 따라 사용하라고 가르친다. 묻고 싶다. 당신이 은사를 사모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개인을 위해서인가? 교회를 위해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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