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 3000 교회 100만 성도 운동 제67호 교회

 

                                       3월 기획 기사 주제는 개척교회입니다.

교회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그리스도의(엡4:10) 몸인 동시에 충만입니다.(엡1:23). 성막과 성전에 충만했던 하나님의 영광이 창조하신 세상의 회복을 위해 교회에 충만으로 임재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세상의 소망이고 위로입니다. 이런 교회를 세우는 개척하는 일은 교회와 성도들에게 주신 참된 사명입니다. 고신 교회가 삼천 교회 운동을 전개하면서 많은 개척교회들을 세우고 있습니다. 다양한 형태로 교회들이 개척되고 있습니다. 교회 개척이 쉽지 않은 시대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주님의 교회를 개척하는 현장들을 둘러보고, 함께 나누고, 격려하는 자리를 가지려고 합니다. 그리고 또한 삼천 교회 운동이 가진 의의를 살피면서 또한 평가도 해 보려고 이런 주제를 준비했습니다. 관심을 가지고 함께 참여해 주시고, 이를 기회로 코닷이 개척교회를 하려는 목회자들을 소개하는 고정적인 난을 만들어서 함께 협력할 동역자들을 얻도록 돕는 역할도 할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코닷연구위원장 이세령 목사-


기쁨 주는 교회 개척 이야기- 김재일 목사

온 생명 교회 개척 과정과 현재- 안재경 목사

개척교회를 준비하면서 - 임경근 목사

사랑 가득한 교회 개척 이야기 - 차영훈 강도사

충무제일교회의 교회 분립 개척 이야기 - 이성호 목사

삼천 교회 운동에 대한 평가 - 이신열 교수


개척 설립지: 전북 전주시 덕진구 송천동1가 262-1(063-213-3742)

개척 설립일: 2010년 1월 19일

개척 설립자: 김재일 목사(전주대학교 기독교학과 졸업, 고려신학대학원 목연과정 56회 졸업)


1. 기쁘고도 슬펐던 개척과정

▲ 교회당 전면 2009년 10월의 어느 날 담임 목사님께서 부르시더니 해임을 통보하셨다. 그렇잖아도 12월을 끝으로 16년의 부교역자 생활을 마무리하고 2010년에는 개척을 할 생각이었다. 뜻하지 않게 계획이 두 달 앞 당겨진 것이다. 한 해를 끝까지 마무리하지 않고 중도에 그만두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당황스러웠지만 이제부터 모든 기도와 관심은 개척에 맞추어졌다. 지역 정보지를 뒤적거리며 적합한 장소와 건물을 찾기 시작했다. 예상외로 응답은 빨리 왔다. 본격적으로 건물을 찾아 나선 지 일주일 만에 비어있는 예배당을 발견한 것이다. 적벽돌로 잘 지어진 130평짜리 예배당을 보는 순간 바로 이곳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중개인을 통해 들은 임대 조건은 전세 2천만 원에 월세 70만원 이었다. 교회당이 8차선 대로변에 있으니 그 정도는 비싼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우린 전세금을 올려 받으시고 월세를 없애달라고 부탁했고, 땅 주인은 신자가 아님에도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그래서 월세 없이 전세 8천만 원에 계약이 이루어졌다. ▲ 내부 수리
돌아보면 참 감사한 일의 연속이었다. 비자발적 이지만 만약 두 달 앞당겨 사임하지 않았다면 이 건물은 다른 사람의 차지가 되었을 것이다. 전세금 8천만 원도 기적적으로 만들어졌다. 당시 우리가 가진 돈은 4천만 원이 전부였다. 꼭 목돈이 필요한 그 시점에 이천에 사는 큰 매형의 땅이 팔렸다. 교회당을 보여 준 후 5천만 원을 빌릴 수 있었고, 후에 큰 누님이 3천만 원을 더 빌려 주셨다. 전세비 뿐 아니라 공사비와 성구 구입비까지 다 마련된 것이다. 계약이 끝나고 두 달은 교회당 공사에만 매달렸고, 조금이라도 절약하기 위해 웬만한 일은 직접 했으며, 내부에 방과 화장실을 만들어 사택으로 꾸몄다. 

  

▲ 수리를 마치고 이렇듯 일이 술술 풀려 갈 때 한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직전에 부목사로 있었던 교회와 가깝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총회에서 규정 한 인근에 있는 교단 교회와의 거리 제한은 300m이다. 우리교회와 직전에 있었던 교회와의 거리는 직선으로 2㎞이기에 사실 법적으로는 아무 하자가 없다. 하지만 이 거리가 개척을 준비하는 내내 힘들게 했다. 결국 교회 설립을 위한 임시노회에서 가까운 곳에 개척하게 된 경위를 설명하고, 허락 없이 가까운 곳에 개척한 것에 대해서도 사과하고, 인근 교회의 성도들과 일절 교류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고서야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많이 울었던 것 같다. 그냥 내버려둬도 살지 죽을지 모르는 개척교회 목사에게 응원과 격려가 아닌 질타와 비난은 견디기 힘든 슬픈 현실이었다. 우리 교회는 그렇게 기쁨과 슬픔이 범벅된 채 시작되었다. 2. 개척설립예배에서 발생한 해프닝 ▲ 개척 설립 예배

개척하기 전까지 무려 다섯 교회에서 부교역자 생활을 한 덕에 개척예배 때는 이곳저곳에서 수많은 성도들이 찾아와 주셨다. 무려 250여 명의 축하와 기도 속에 우리교회는 공식적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이 날에 들어간 식대비만 300백만 원에 달할 정도였다. 모든 사람들의 축복가운데 설립예배는 그렇게 순조롭게 끝나는 듯 했다. 그러나 노회장님의 설교가 약간의 해프닝을 만들었다.

 

   
▲ 전도위원회 지원금 약정서
노회장님은 설교시간에 개혁주의, 칼빈주의 정통신학 등등 고신교단의 우월성을 역설하셨다. 타 교단을 무시하는 노골적이고 편파적인 설교에 나는 속이 편치 못했다. 그곳에는 나를 잘 아는 성결교단 목사님과 교인들, 통합측 목사님과 교인들도 다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곳에 있던 성결교 목사님은 예성 부흥사회 회장이셨고 그 날 축사도 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 분 성격을 잘 알기에 결코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줄 알았다.


예상은 들어맞았다. 축사 시간에 성결교단 목사님은 적지임에도 분위기를 주도하고, 좌중을 압도하는 스피치로 고신 우월주의에 일침을 가했다. 긴장감도 없지 않았지만 그렇게 무거운 분위기는 아니었다. 내가 볼 때 교단간의 팽팽한 신경전은 성결교단 목사님의 판정승이었다. 여러 교단의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있다는 것을 배려하지 못한 편파적인 설교가 빚어낸 한 편의 해프닝이었다.


3.교인 현황

구     분

여 

합 계

유아세례

유치부 이하

2

3

5

초등부

 

1

1

중고등부 이상

 

 

 

유아세례합계

2

4

6

원입교인

유치부

 

1

1

초등부

1

 

1

중고등부

 

2

2

청년대학부

 

 

 

장년

3

2

5

원입교인합계

4

5

9

학습교인

중고등부

1

5

6

청년대학부

 

 

 

장년

 

2

2

학습교인합계

1

7

8

세례교인

(입교인)

중고등부

 

 

 

청년대학부

1

 

1

장년

12

12

24

세례교인합계

13

12

25

합     계

20

28

48


 

   
▲ 가을 소풍

이제 우선해서 해야 할 일은 개척 멤버를 모으는 일이었다. 물론 갖가지 전도 용품을 가지고 동네 주변에 전도하는 일도 병행했다. 전주에서 피아노 학원을 하시는 작은 누나와 매형이 개척에 동참해 주셨다. 일단 피아노 반주 문제는 해결되었다.

 

주일마다 김제에서 어머니와 남동생도 먼 거리를 마다 않고 기꺼이 와주셨다. 그렇게 가족 중심으로 3가정이 첫 예배를 드렸다. 차츰 차츰 식구들이 늘었다. 대학 때 함께 공부했던 동기가 개척 소식을 듣고 한 달음에 찾아와 한 가족이 되어 주었다.

 

   
▲ 개척 1주년 기념 예배
예전에 다니다 지금은 쉬고 있는 아내의 친구도 우리교회에서 신앙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전에 9년 간 부교역자로 있었던 교회의 교인들 중 이런 저런 이유로 몇 년 간 나가지 않고 있는 분들이 있었다. 담임 목사님께 찾아가 허락해주시면 우리교회 식구로 만들고 싶다고 했더니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중3짜리 딸아이는 학교 반 친구들을 여러 명 데리고 왔다. 주일날이면 자기 방을 개방하고 하루 종일 놀아주는 힘든 일을 잘 참아 내고 있다. 그렇게 저렇게 10가정 20여 명의 멤버들을 모으는데 6개월 정도 걸렸다.

  

무엇보다도 보람 된 건 교회 옆집 가정을 3개월간 지속적으로 방문한 끝에 전도한 것이다. 지금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면서도 딸과 함께 꼬박꼬박 예배에 빠지지 않는다. 10가정의 멤버들도 전도에 열심을 내 주었다. 언니 가정, 친구 가정, 동생 가정을 전도했고, 가게의 손님들도 데려왔다. 그 와중에 스스로 오셔서 정착한 성도들도 몇 명 생겼다. 사실 왔다 간 사람들은 많았지만 개척교회가 부담스러운지 두 번 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1년이 지난 지금 청장년 30여명이 모인다. 그렇게 호들갑 떨 만큼 급성장하지도 전도에 특별한 노하우도 없는데 주목받는 것이 부끄럽고 부담스럽다.   

           


4.재정현황

항 목

2010년 결산

2011년 예산

주일헌금

5,798,500

8,000,000

십 일 조

12,764,000

23,000,000

감사헌금

3,645,000

5,000,000

일천번제

332,000

500,000

전도헌금

9,009,700

7,000,000

신년감사

150,000

500,000

부활감사

410,000

700,000

맥추감사

301,000

700,000

추수감사

630,000

800,000

성탄감사

477,000

800,000

교회후원금

3,350,000

3,000,000

개인후원금

12,445,000

10,000,000

합 계

₩49,312,200

₩60,000,000

  

작년 한 해 동안 5천만 원에 가까운 결산을 보았다. 교회 규모에 비하면 비교적 넉넉한 재정이다. 지금 현재 11가정이 십일조를 드리고 있다. 그래서 올 해는 자립하는 것이 우리의 기도 제목이다.


작년 결산 중 특징 있는 부분은 전도 헌금이 9백 여 만원에 이른다. 이것은 한 집사님께서 전도에만 쓰라고 매달 특별 헌금을 해 주신 까닭이다. 전도헌금은 주로 전도용 물품을 구입하는데 사용되었다. 


개인 후원금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5개 교회로부터 받은 후원 3백 여 만원보다 4배가 더 많다. 개인 후원금의 대부분은 친가와 처가 식구들이 보내주는 헌금이다. 지난달에는 사업하는 처조카가 이번에 ‘한 건 했다’면서 십일조라고 500만원을 놓고 갔다. 친가와 처가 식구들이 모두 믿는 집안이라 조카들까지도 도움을 주려고 애쓰는 모습이 고맙고 감사하다.

  

비록 우리도 후원 받는 형편이고 빠듯한 살림이지만 매달 10만원씩 선교사님을 후원하고, 생활이 어려운 몇 가정에 3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5.최고의 전도용품은 목회자 가정의 희생과 헌신

지난 1년 동안 다양한 전도용품을 가지고 나갔다. ‘예수는 영원히 사는 생명보험’이라는 글자를 찍은 타올 200장을 주변 주택과 아파트, 상가에 돌렸다. 찐빵과 만두를 천개 이상 노인정, 상가, 병원의 환자들과 나눴다. 제과점에서 쓰는 투명 비닐에 사탕과 과자와 전도지를 넣은 사탕봉지를 2천개 이상 학교와 길거리, 상가, 주택가에 뿌렸다. 자체 제작한 전도지도 2천장 이상 찍었다. 화장품 샘플도 2백 개 이상 후원받아서 사용했다. 전도하는데 아낌없이 마음껏 투자했던 한 해였다. 올 해 도 전도에 적극 나설 것이다. 교인 중에 손재주 있는 식구들이 십자수 휴지걸이를 수 십 개 만들어 가져왔다. 전도 용품으로 손수 제작한 것이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최고의 전도용품은 목회자 가정의 희생과 헌신이다. 전도용품은 현관문을 열고 사람을 만나게 해주는 중매역할을 한다. 그 다음부터는 목회자 가정의 지속적인 섬김과 돌봄이 절실하다. 한 사람의 교인을 얻기 위해 아니 한 영혼을 살리기 위해 흘리는 목사 가정의 땀과 눈물과 수고가 결국 사람을 감동시켜 예수님께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코람데오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