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도의 화두는 단연 부흥이다. 한국교회는 지금 어디서나 부흥을 외치며, 부흥을 사모하고 있다. 100년 전 평양에서 일어났던 부흥이 오늘 우리에게 다시 한 번(again) 일어나기를 사모하고 있다.   그런데 부흥이 무엇일까? 여러분들은 부흥을 말할 때 마음 속에 어떤 아이디어나 어떤 영상이 떠오는가? 우리가 부흥을 사모함에 앞서 가져야 할 것은 부흥에 대한 비전이다. 부흥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있어야 하고 구체적인 비전을 가져야 한다.

첫째로 부흥은 영적인 것이다 . 우리 심령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심령이 소생되고, 확신과 기쁨과 능력으로 충만케 되는 일이다. 바울 사도님의 표현으로 말하면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살전1:5)으로 충만한 것이며,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롬14:17)을 누리는 것이다. 베드로 사도님의 표현으로 말하면 부흥은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벧전1:8)이다. 부흥은 한 마디로 성령 충만이다.

둘째로 이런 심령의 부흥은 외적으로 나타난다 . 신앙의 본질이 그러하듯 부흥은 개인적인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공동체에 확산된다. 그리하여 작은 모닥불이 큰 불길을 이루며 타오른다.
부흥은 복음의 말씀과 성령님의 역사로 일어난다. 복음이 전파될 때 성령님이 함께 하셔서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고 회개케 하며,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고 거듭나게 하신다. 그래서 부흥은 대개 복음전파, 회개, 믿음, 성령충만, 그리고 또 복음전파의 순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개인의 심령에 일어난 이런 부흥은 다른 사람에게로, 공동체로 전달되어 대중운동으로 전개된다. 큰 무리가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오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셋째로 부흥은 신앙의 증진과 복음전도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변혁으로 진행 된다. 사람의 심령에 일어난 부흥이 그 안에 머무르지 않고 공동체로 확산되듯 역시 부흥은 교회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사회에 강력한 영향을 끼쳐 사회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그 영향이 초기에는 일단 핍박이라는 반응으로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부흥은 핍박을 거쳐 더 강해지고 세련된 모습으로 사회 속에 침투한다. 사람들의 역사적 책임의식을 일깨우고 도덕적인 향상을 불러온다.

역사가들 중에는 1907년의 부흥이 오히려 신앙의 개인주의화와 몰역사성을 가져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물론 복음주의 신앙은 일시적으로 개인주의, 개인구원에 몰입 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의 과정이다. 역사의식을 갖기 전에 인격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아니 이것이 앞서야 한다. 복음에 대한 고백과 중생의 경험 없이 하나님나라를 이해하고 역사적 사명감을 갖게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만약 그런 경우가 있다면 그는 사회운동가는 될 수 있어도 하나님나라의 일꾼은 될 수 없다..

이것은 기독교 2000년 역사가 잘 보여주고 있다. 부흥이 있었던 곳에는 사회변혁이 일어났다. 18세기 초 웨일즈에서 일어난 부흥은 영국 복음주의의 부흥을 가져왔고, 이는 영국 사회, 경제, 정치 등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 여파는 신대륙에까지 미쳐 미국의 대각성운동을 일으켰고, 미국 사회의 변혁을 이끈 동력이 되었다.

우리는 1907 평양대부흥 100주년을 기념하는 한국교회에 큰 부흥이 일어나기를 사모하면서 무엇보다 우리 각자의 심령에 큰 부흥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사모한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기름 부으심을 기대하며 기도한다. 우리 모두 동일한 부흥을 사모하며 기도하자. 그리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서 시작된 부흥이 우리 교회들의 부흥을 가져오고, 이 부흥이 담을 넘어 우리의 이웃인 지역사회와 우리나라에 큰 복이 되기를 소망한다.

마침 2월 5-6일에는 미래교회 포럼 중앙위원회가 주최하는 기도회가 경주에서 열리고, 이어 3월12-13일은 고신 총동창회가 주최하는 기도회가 역시 경주 보문단지에서 개최된다. 모두 모여 기도하자. 회개하고, 성령충만을 받자. 고신의 역사를 새로이 하자. (코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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