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하 선생께서 지난 1월 25일 미국 LA에서 집회 중에 심장마비로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수소문하여 장례일정이 어떻게 되는지 알아보았다. 이미 가족들은 미국으로 가셨고 거기서 장례식을 거행한다고 했다. 여기 서울에서는 섬기시던 광야교회에서 지난 토요일(1월 27일) 윤선생을 아시는 분들과 교우들이 모여서 오후에 간략하게 예배를 드린다고 했다. 

윤종하 선생은  서울중앙교회의 2대 담임목사이셨던 윤봉기목사의 장남이다. 윤봉기목사는 1957년 4월 17일에 서울중앙교회에 부임하셔서 1971년 1월 31일에 사임하시기까지 훌륭하게 목회하여 교회가 크게 성장했다. 특히 청년들에게 큰 감명을 주셨던 목사님으로 기억에 남는다. 손봉호장로도 가장 존경하는 목사님이라고 여러 번 말씀하셨다.

윤종하 선생은 실제로 한국교회의 평신도 운동을 시작하셨던 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특히 탁월한 성경교사였다. 필자가 성경교사로 한 평생 살고자 다짐하게 된 것도 실은 윤종하 선생의 영향이 컸다. 1970년대말  경기지방 SFC 위원장 하던 시절 여름수련회 강사로 모셨고 그때 QT(경건의 시간)와 소그룹 Bible Study의 중요성을 힘주어 강조하셨던 것 제 마음에 깊이 각인되었다. 그 후로도 몇 번의 교제가 있었고 특히 벨기에 브뤼셀 한인교회를 섬기고 있을 당시 성경사경회 강사로 모셔서 함께 지냈던 날들이 기억 난다.

필자가 서울중앙교회에 부임한 후 윤봉기 목사의 가정을 심방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 윤종하 선생께서 노모님을 모시고 계셨다. 그때 다른 약속 때문에 함께 자리하지 못하셨지만 우리 교회의 권사들과 장로들이 오신다고 정성스럽게 다과를 준비해 놓으셨던 것도 기억난다. 그때 노모님의 건강은 아주 양호하셨다.

그래서 백수하실 것으로 생각했는데 윤종하 선생의 갑작스런 소천 소식을 듣고 연락해 보니 이미 3년 전에 노모님이 소천하셨다는 것이다. 그 소식을 듣고 너무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서울중앙교회에서 그토록 수고하셨던 사모님의 소천 소식을 감감히 모르고 있었다는 것 자체가 슬픈 일이었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섭섭하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윤종하 선생의 그 단정한 모습이 떠오르면서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세상의 관례를 초월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 아마도 친지들과 마지막까지 함께 예배하던 몇 교우들이 모여 조촐하게 장례를 치루는 것이 덕스러운 일이라고 윤종하 선생께서 고집하셨던 것 같다.  윤종하 선생은 항상 짧게 자르신 스포츠 머리처럼 단정하게 사셨다.

그렇게 소망하셨던 성경만 가르치는 학교(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를 설립하셔서 열심히 성경을 가르치셨고 정년이 되어 은퇴하시고는 후배 교수들이 소신껏 가르치도록 그 자리를 완전히 떠나셨다는 얘기도 우리에게 영원한 본이 되는 그분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래서 윤종하 선생님!

참으로 존경합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단정하게 살겠습니다. 성경을 너무나 사랑하셨던 선생님처럼 저도 한평생 성경교사로 살겠습니다. 천국에서 다시 만날 때 선생님께 다시 감사하다는 말 꼭 하고 싶습니다. 이 말을 앞선 신앙의 선배요 선생님을 기리며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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