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흥수 변호사가 지난 주말 고시촌 목회에 대해 이야기하며 잠시 묵상에 잠겼다. 벽에 걸린 그림은 지난 달력을 아끼려고 오려 붙인 것이다. ‘전관예우 금지법’ 시행 이후 사법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여기에는 ‘사법개혁 전도사’라 불리는 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문흥수(54·법무법인 민우 대표) 변호사의 역할이 컸다. 1998∼99년 잇달아 법관과 변호사의 유착관계가 폭로될 때 그는 법원 인터넷 게시판에 ‘진정한 사법개혁을 바라는 국민에게 드리는 글’이라는 장문을 올렸다. 매스컴에 대서 특필됐다. 하지만 사법개혁을 촉구하는 그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04년 19년 동안 입은 법복을 벗고 변호사 겸 목회자의 길로 들어섰다. 근황이 궁금했다. 변호사로 번 돈 고시방 무료 운영 문 변호사는 목회를 하는 기쁨에 푹 빠져 있었다.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알려진 그는 2002년 6월 서울 대학동(구 신림9동) 고시촌에 기독교한국침례회 낮은마음교회를 개척했고, 그곳에서 담임 전도사직을 맡고 있다. 500㎡ 규모의 상가 교회 안에 고시 준비생을 위한 20개의 고시방도 운영하고 있다. 숙소 역할을 겸하고 있는 고시방은 모든 것이 무료다. 사법시험, 로스쿨, 법무사시험 준비생 등 15∼20명의 고시생이 생활하고 있다. 형편이 어려운 이들에게는 장학금도 제공하고 있다. 왜 고시방을 만들었는지 궁금했다. ▲ 금요철야기도회에서 설교하는 문 변호사
“그동안 법조인과 크리스천으로 살아오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충남 예산 고향에서 올라와 30여년을 고시촌에서 살면서 예수님을 영접했고 새 힘을 얻었지요. 판사 시절인 1995년 고시촌에 성경공부반을 만들면서 받은 은혜를 고시 준비생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제가 감당해야 할 도리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변호사로 일해서 번 돈 대부분을 이곳에 털어 넣고 있지요(웃음). 성경공부와 예배, 새벽기도회를 인도하며 제가 더 큰 은혜를 받습니다.”


전도사님은 ‘미스터 쓴소리’


부장판사까지 지낸 그의 조언이나 설교는 고시생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질문에 “고시를 어떤 마음으로 준비하라는 원칙만 이야기하고 공부방법, 수험서적 등 상세한 것은 조언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는 전도사로 고시촌 목회를 하면서 ‘미스터 쓴소리’란 새 별명을 얻게 됐다. 쓴소리를 서슴없이 토해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고 기도하면서 공부하면 왜 시험에 안 됩니까. 분발하세요. 시험에 떨어진다고 생각하며 공부하는 사람은 미안하지만 당장 그만 두십시오….”


충고 외에 덧붙여지는 것. 모든 교인은 예배 후 청소와 설거지 당번을 돌아가며 해야 한다. 이면지를 활용하지 않거나 물, 가스 등을 조금이라도 낭비했다가는 불호령이 떨어지기 십상이다. 그의 ‘따끔한’ 설교를 듣고 고시방을 거쳐 간 고시생 가운데 10여명은 법조인과 공무원 등으로 살고 있다. 그에게 시험 컨설팅이나 진로 상담을 받으려는 고시생이 줄을 잇고 있다.


“고시촌 목회를 하면서 힘든 점이 있다면 불합격한 사람을 위로하고 함께하는 것입니다. 소위 ‘고시 낭인’들을 정성스레 돌보며 좋은 곳에 취직시키는 것이 제가 이곳에서 감당하는 사역입니다. 어떨 땐 제가 아직도 시험 준비를 하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곤 해요.”


1억 명에게 복음 전하는 게 꿈


그는 요즘 마태복음과 창세기의 주석서 발간을 준비하고 있다. 성경을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조만간 재학 중인 미국 리버티 신학대학원을 졸업하면 목사 안수도 받을 계획이다. 또 신학의 대주제인 ‘자유의지론과 예정론’을 주제로 박사 학위 논문을 쓰려고 틈틈이 자료를 모으고 있다.


“신앙생활이나 신학공부를 하다 보니 성경이 어렵게 느껴질 때가 있었어요. 예를 들면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라는 마태복음 5장 5절 구절 있잖아요. 조금 어렵죠? 온유의 개념이 무엇인지. 또 왜 온유한 사람이 땅을 기업으로 받는 것인지…. 하나님이 제게 허락하신 글 쓰는 달란트를 활용해 성경 주석 작업을 계속해 나갈 계획입니다.”


그는 이날 “평소 존경하는 슈바이처와 간디처럼 깨끗하게 살다 죽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리고 1억명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고시 준비생 시절에 신앙을 갖고 체험했던 절절한 이야기를 800여 교회와 미션스쿨 등에서 간증했다. 최근엔 중국 선교를 위해 기도하고 있기도 하다.


또 교회 재정의 상당 부분을 형편이 어려운 외국인근로자와 불우 아동을 위해 쓰고 있다. ‘성경의 진리-잠언‘이란 소책자를 제작, 지역 주민들에게 나누어주며 전도 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의 서초동 변호사 사무실은 전도의 장소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장소가 되고 있다. 무료 변론도 허다하다. 현재 교인 100여명 중 3분의 1 정도가 의뢰인과 그 가족이다.


‘전관예우’ 받을 수 없도록 개선해야


그는 고시생들이 닮고 싶은 법조인 가운데 한 명이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는 해(1979년)에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사법연수원을 수석 졸업했다. 또 법관이 되었으며 법원에서 연수생으로 선발되어 미국 하버드로스쿨을 졸업했다. 헌법재판소 연구관도 역임했다.


혹 전관예우 특혜를 받고 있는지 물었다.


“저는 형사사건보다 민사·행정 변론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민사·행정 쪽은 이론과 실력이 더 필요한 분야로, 전관예우 특혜를 받기 힘듭니다. 정의로운 사회란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고 잘못한 만큼 책임을 지는 사회입니다. 하루빨리 시스템이 개선돼 법관이 명예롭게 정년퇴직하고 변호사보다 사법연수원이나 로스쿨 교수 등으로 일하는 것이 훨씬 좋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습니다.”


문 변호사와의 인터뷰는 지난 20일 오후 그가 전도사로 사역하고 있는 낮은마음교회에서 이뤄졌다. 3시간 인터뷰에도 그는 변호사답게 꼼꼼하면서도 환한 표정으로 어떤 질문에도 막힘없이 시원시원하게 답했다.


“요컨대 다윗은 자신이 맡은 목동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밤잠을 자지 않으며 최선을 다해 일했습니다. 이러한 다윗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를 택하여 구국의 용사, 위대한 왕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현재 하고 있는 일이 비록 양치는 일일지라도 우선 그것을 최선을 다해서 해야 합니다.”

(국민일보 유영대 기자· 사진 홍해인 기자 ydy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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