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인기는 한낱 물거품 같은 것이라고 했던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연예계에서 문희옥(42)은 24년을 버텼다. 아니 건재했다. 오직 정통 트로트 가수로만 말이다. 이미자의 뒤를 잇는 ‘정통 트로트의 계승자’라는 자부심, 그게 그녀를 붙들었다.


그동안 좋은 날도 많았지만 화병을 얻을 정도로 힘든 날도 많았다. 신앙으로 역경을 극복했다. 그리고 새로운 도전장을 내밀었다. 지난 21일 만난 그녀는 최근 케이블채널 tvN ‘오페라 스타’에 출연하면서 좀 더 큰 세상을 알게 된 것 같다며 환히 웃었다.


‘트로트의 여제’, 오페라에 도전하다

‘오페라 스타’는 가수들의 오페라 도전으로 화제가 된 프로그램이다. 트로트 가수로는 유일하게 문희옥이 출연해 매주 미션을 치러냈다.


“출연 섭외를 받으면서 ‘내가 해 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성악 발성은 소리를 위로 띄우고 멀리 내보내야 하는 데 반해, 트로트는 최대한 소리를 내리고 개성 있게, 구수하게 불러야 한다는 게 문제였지요. 또 오페라 아리아는 대중가요에 비해 보통 키가 2,3키가 높다는 것도 난관이었습니다. 그래서 우승이 중요하지 않았죠. 한계가 있지만 도전을 했다는 것….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가가 중요할 뿐이었습니다….”


문희옥은 세미 파이널 무대에서 오페라의 레퀴엠 중 ‘Pie Jesu(자비로운 예수님)’을 불렀다. 흰색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선 그녀는 하늘나라 천사의 이야기를 전하듯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열창했다. 네 번의 격정적인 무대가 끝나고 문희옥은 탈락했다. 결과가 발표되자 문희옥은 밝게 미소를 지으며 소리쳤다.


“속이 너무 후련하다. 아줌마의 힘, 트로트의 힘, 아자! 아자! 아자!”

문희옥은 ‘오페라 스타’ 출연 이후 찬사를 받았다. 트로트 가수라는 한계를 딛고 열정적인 무대를 선보인 그녀의 도전 정신에 시청자가 감동했던 것.


“잠도 안자고 가사를 외웠어요.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너무 행복한 무대였어요. 앞으로 24년은 더 열심히 노래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깁니다.”


문희옥은 1987년 은광여고 3학년 때 ‘팔도 디스코 사투리 메들리’로 데뷔했다. 발매 1주일 만에 이 앨범은 360만장이 팔렸다. 이후 ‘성은 김이요’ ‘사랑의 거리’ ‘강남 멋쟁이’ 등 히트곡을 잇달아 냈다.


2005년 SBS TV ‘도전 1000곡’에서는 쟁쟁한 경쟁자를 물리치고 ‘황제’ 타이틀을 거머쥐며 레퍼토리가 다양한 가수로도 정평이 났다.


“트로트 가수로 활동하면서 행복했던 순간이 많았죠. 주위에서 이미자 선배님의 뒤를 이을 사람이라고도 평가해 주었고요. 저도 특별한 사명감을 갖게 되었답니다. 구수한 된장처럼 우리 민족이 지켜온 고유한 맛을 제대로 지켜가고 싶어요.”


이런 그녀에게 요즘 트로트 음악계는 안타깝기만 하다. 트로트 음악을 한다는 후배들이 갖은 기교가 지나치기 때문이다.


“우리가 성인가요라고 부르는 트로트는 전통과 정통, 현대와 세미 트로트로 나눠요. 저는 정통 트로트인데 ‘꿍짝 꿍짝 쿵짜작 쿵짝’ 리듬이 기본이지요. 그 음을 굴리는 표현을 남용하지 않고 세련되게 또 절제있게 부르는 것입니다. 정통 트로트를 이어가기 위해 무대를 더 열정적으로 준비하는 것은 물론, 후배를 이끄는 역할도 제대로 할 계획입니다.”


참된 평안을 맛보다.

환한 얼굴로 인터뷰를 하던 그녀는 올 여름 방글라데시로 휴가를 간다며 화제를 돌렸다.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보니 휴가가 아니라 봉사활동을 가는 것이다. 교회 의료팀에 합류해 노래로 문화 봉사활동을 벌일 예정이라고 한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엄마와 언니의 손을 잡고 교회를 다녔다고 했다. 교회학교 중등부 땐 임원도 했다. 그런데 가수활동을 하면서 점점 믿음생활을 멀리하게 됐다. 인기 가수로 소위 ‘잘 나가면서’ 생긴 일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런 그녀를 끝까지 버리시지 않으셨다. 연단을 통해 교회로 다시 돌아오게 한 것이다.


연단은 몇 년 새 한꺼번에 몰려왔다. 힘들게 가수생활을 이어가면서 화병이 생겼고 급기야 성대에 이상이 왔다. 목이 바짝 마르고 숨을 고르게 쉴 수 없어서 노래를 부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자신을 사랑해 주던 큰 언니가 암에 걸렸고, 다섯 살 아래 착한 남동생이 군대 근무 중 갑자기 심장 부정맥으로 하늘나라로 떠나버렸다. 모아 놓은 재산까지 주식 투자 실패로 잃어 버렸다.


“많이 힘들었어요. 나이가 들면서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가족과 이별하는 것만큼 힘든 일도 없는 것 같습니다. 누구를 원망하지도 못하는 성격 탓에 결국 화병에 걸리고 말았죠. 그런데 신기한 것은 제가 고난 중에 하나님을 찾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예배에 열심을 냈다. 누군가 자신을 알아보는 것이 부담이 돼 이 교회 저 교회 예배당 구석에 앉아 고개 숙여 기도만 하던 그녀의 상처가 치유되기 시작했다. 그러길 3년…. 교회 집사가 됐다. 서울 삼성2동 새국민교회(담임목사 한재욱)에 출석한다.


“하나님은 제게 평안이란 귀한 선물을 주시더라고요. 회사원인 남편, 아들 동건(7)이와 함께 목사님 말씀을 들으며 이제야 영적인 영양실조에서 벗어난 것 같아요. 화병도 거의 나은 것 같고요.”


그녀는 간증 집회 때마다 ‘내 영혼이 그윽히 깊은 데서’라는 찬송을 부른다. 그리고 성도들의 요청이 있을 때면 자신의 히트곡 ‘성은 김이요’ ‘사랑의 거리’를 부르곤 한다.


“교회 문턱이 높으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언제부턴가 ‘사랑의 거리’를 부를 땐 ‘여기는 ○○○교회, 사랑의교회…’라고 개사를 해서 부른답니다. 그러면 듣는 분들이 무척 좋아하시더라고요. 대중가요를 통해 이름을 얻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 받는 사실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녀는 하나님 보시기에 참 잘했다고 칭찬받는 성도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평소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라는 구절을 즐겨 외운다고. 방황한 자신의 인생 역정과 딱 어울리는 말씀이란다.


“누구에게나 힘든 시절이 있잖아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이겨내느냐에 있다고 생각해요. 성경공부를 하면서 돈이나 세상 인기를 쫓는 게 먼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이제 예수님처럼 소외 이웃에게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기도 부탁드려요.”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유영대 기자·사진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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