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기획기사는 예배입니다. 지난 총회에서 개정 확정된 헌법중 예배 모범에 대해 관심을 가지려고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중심은 항상 예배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복된 시간입니다. 점점 더 인간 중심적인 예배가 유행하는 가운데 하나님 중심한 예배가 회복되기를 바라는 중심입니다. 이를 위해서 교단 헌법 예배 모범부분을 총괄하셨던 장희종 목사께서 전체적인 해설을 합니다. 그리고 이성호 교수가 개혁파 신학에서 예배의 특성을 기록하고, 안재경 목사가 개혁파 예배의 언약적 성격을 밝혀줍니다. 그리고 성희찬 목사가 개정된 예배 모범에서 나타난 미진한 부분들을 언급해 주시고, 마지막으로 교단의 공식 신조는 아니지만 개혁파 교회의 신조인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과 예배와의 관계를 이세령 목사가 조명해 봅니다. 관심을 가져 주시고 좋은 나눔을 기대합니다. -코닷연구위원장 이세령 목사-

 

 혁파 예배는 단순하지만 질서 있고, 하나님 중심적 예배이다.

   
  ▲ 이성호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교수
  코닷연구위원
개혁파 예배는 하늘에서 어느 날 갑자기 떨어진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오랜 과정을 통해서 형성되었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이 말은 개혁파만의 고유한 어떤 특정 예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활절을 예를 들어 보자. 서방교회와 동방교회는 서로 다른 날을 부활절로 지킨다. 그런데 개혁교회는 일반적으로 서방교회가 오랫동안 정하여 지켜왔던 날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이 점에서 우리 개혁교회는 동방교회가 아니라 서방교회에 이미 속해 있다. 종교개혁은 ‘오직 성경’이라는 이름으로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 동방교회가 옳은 지 서방교회가 옳은 지에 대해서 신학적 논쟁을 하지는 않았다. 즉, 개혁교회는 상당부분 서방교회의 전통을 그대로 따르면서 그 교회가 성경의 가르침에서 벗어난 부분만을 개혁하려고 하였을 뿐이다. 따라서 예배에 있어서 개혁교회는 공교회성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개혁교회는 ‘오직 성경’뿐만 아니라 ‘규범적 원칙’도 받아들였기 때문에 무엇보다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한 예배를 추구하였다. 어떻게 보면 모든 교회는 자신들의 예배야말로 가장 성경적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심지어 이단들도 똑같이 말한다. 결국 이들과 개혁교회를 구분하는 결정적인 요소는 개혁교회가 성경의 모든 핵심 가르침을 요약 정리한 신앙고백서이다. 개혁파 교회는 바로 이 신앙고백서에 근거하여 성경적 예배의 이상을 실천하고자 하였고, 그 결과 몇 가지 개혁파 예배의 특징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성례전 중심에서 설교 중심으로

중세 로마 카톨릭 교회의 예배는 기본적으로 성례전 중심의 예배이다. 세례와 성찬만을 성례로 인정한 개신교와는 달리 로마교회는 견진, 혼례, 고백, 서품, 종부 성사와 같은 비성경적인 예식도 성례로 인정하였다. 예배는 특별히 미사로 불리는 성찬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예배당 안에는 성경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수많은 그림이나 조각들로 가득 차 있었다. 반면에 설교는 거의 행해지지 않았는데 설교에 대한 강조도 없었을 뿐 아니라 설교를 할 수 있는 성직자도 거의 없었다. 따라서 그 당시의 예배는 기본적으로 ‘보는 예배’였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될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중세 사회는 교육이 부재한 시대였기 때문에 일반 성도들이 글을 읽을 수 없었고, 성경의 교리에 대해서도 설교를 듣는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은 본질적으로 복음의 회복이었다. 1517년 마르틴 루터가 95개조 명제문을 발표했을 때, 그 첫째 명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처음으로 외쳤던 ‘회개’에 관한 것이었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이 복음은 성례전을 통해서 가장 잘 전달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지만 종교개혁은 이 기존관념에 도전하여 설교야 말로 복음을 가장 효과적이고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는 외적 수단이라고 주장하였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는 사도 바울의 선언은 복음에 관하여 종교개혁이 굳게 붙든 진리였다. 
        

복음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예배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거의 없어지다 시피하거나 성찬에 보조적인 역할을 하였던 설교가 이제는 예배에 있어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를 위해서 개혁교회는 제대로 된 설교를 할 수 있는 목사 양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어떻게 보면 칼빈 선생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성경의 가르침을 체계적으로 요약하여 정리한 '기독교 강요'가 아니라 그 가르침을 실제적으로 교회에 전파할 수 있도록 수많은 설교자를 양성하기 위하여 설립한 제네바 아카데미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설교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 설교를 전파할 설교자가 없다면 설교의 중요성은 하나의 구호에 그치고 말았을 것이다.

        

종교개혁을 통해서 설교가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자 기존의 보는 예배는 듣는 예배로 전환하게 되었다. 그 점에서 종교개혁은 무엇보다 믿음에 있어서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는 사실이 지적되어야 한다. 로마 교회는 맹목적인 믿음(implicit faith)도 믿음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참된 이해가 없더라도 교회의 가르침을 무조건 받아들이기만 해도 그것을 효과적인 믿음이라고 보았으나, 종교개혁은 그와 같은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고 못을 박았다. 그렇기 때문에 개혁교회는 성도들로 하여금 예배 시간에 설교를 통하여 복음을 이해시켜서 확신시키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말씀에 대한 이해는 성찬에 대한 올바른 이해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성찬은 화체설로 인하여 미신적인 우상숭배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종교개혁으로 인하여 성도들은 분명한 말씀에 대한 이해 속에서 주님의 살과 피를 받게 되었고 이것은 믿음의 강화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종교개혁이 추구한 예배를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종교개혁의 설교중심의 예배는 성찬을 배제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여야 한다. 개혁가들이 원한 것은 주변부에 자리잡고 있던 설교를 중심에 위치시키고자 하였을 뿐이다. 그리하여 성찬을 올바르게 자리매김하여 설교와 더불어 온전한 예배를 이루기를 원하였다. 실제로 칼빈의 경우 이 이유 때문에 성찬을 매주 실시하기를 간절히 원하였다. 결국 성찬을 자주 시행하는 것은 종교개혁의 정신뿐만이 아니라 초대교회의 예배 전통을 현재에 실현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성직자 중심에서 회중 중심으로 

종교개혁으로 인해 예배에 있어서 새롭게 나타난 또 하나의 현상은 회중 중심의 예배이다. 이 점에 있어서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이 가장 처음에 예배에 임하는 회중의 태도를 강조하고 있는 것은 눈여겨 볼만하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예배는 철저하게 성직자들의 예배였다고 할 수 있다. 예배에 참석한 평신도들은 그야말로 구경꾼이었다. 그들은 성직자가 제단에서 하는 성례전적 행위들을 하는 것을 구경하고, 이따금 묻는 질문에 기계적으로 짧은 말로 “아멘”이라고 할 뿐이다. 더 큰 문제는 모든 예배 의식이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라틴어로 진행이 되었다는 것이다. 기도할 때도 찬송을 할 때도 라틴어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무지한 성도들은 그냥 지켜 볼 뿐이었다.

        

찬송은 회중들의 찬송이 아니라 성가대의 찬송이었다. 언어가 라틴어로 되어 있을 뿐 아니라 곡조도 대단히 어려워서 훈련된 성악가들만이 부를 수 있었다. 따라서 찬송 시간은 예배 시간이 아니라 음악 공연을 듣는 시간이나 다를 바가 전혀 없었다. 종교개혁은 이 점에서 찬송의 혁명을 이루었다. 가사도 모국어로 번역하였을 뿐만 아니라 곡조도 회중들이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곡조로 바꾸었다. 그 결과 예배 시간에 남녀노소 차별없이 모든 회중들이 함께 자신들의 마음을 담아서 진심으로 찬송을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중세 시대의 예배에서 회중들이 소외된 것은 성찬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로마교회에서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진 화체설로 인해 포도주는 예수님의 실제 피로 간주되었고, 실수로 쏟아질 가능성 때문에 포도주 잔은 회중들에게 분배되지 않았다. 회중들은 떡은 받아먹을 수 있었지만, 포도주는 성직자가 자신들을 대신해서 마시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이것은 명백히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이 보여주신 실례와 상충되었지만 로마교회는 떡과 포도주의 차이점을 부정함으로 떡만 받아도 충분하다고 주장하면서 자신들의 전통을 변명하였다. 이것은 잘못된 신학이 어떻게 잘못된 예배로 이어질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각 나라의 언어로 예배를 드리도록 허락한 동방교회에 비해서 라틴어 예배만을 고집한 로마교회는 겉으로 보기에 교회의 가시적 일치를 이룰 수 있었으나, 그것을 위한 성도들의 희생은 너무나 큰 것이었다. 분명한 이해가 없는 예배 속에서 로마 교회의 성도들은 서로 간의 내적인/실제적인 연합은 거의 없었다고 보는 것이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종교개혁은 예배에 있어서 내적이고 실질적 연합이 없을 때 외적인 연합이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이 모든 비성경적 전통에 대해서 종교개혁가들은 예배가 일부회원만이 아닌 모든 회원들의 예배가 되어야 한다고 확신하였다. 이 점을 확실히 하기 위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21장 3절은 예배에 있어서 모국어의 필수성을 강조하고 있다. 더 나아가 모국어 예배가 실제적으로 가능하기 위해서 개혁가들은 성경을 번역하였다. 이 성경 번역은 종교개혁이 이룬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은 이제 일부 성직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국어를 읽을 수 있으면 누구나 어디에서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글을 읽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모국어로 진행되는 예배를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예배는 교회에서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도 드릴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웨스트민스터에 모인 교회 지도자들은 가정예배를 성도들에게 격려하기 위해서 [가정예배를 위한 예배모범(The Directory for Family-Worship)]도 따로 작성하였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 갈 것이 있다. 설교 중심의 예배가 성찬을 없앤 것이 아니듯이 회중 중심의 예배가 성직자의 중요성을 없앤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종교개혁은 만인 제사장 교리를 주장하였지만 이것을 극단적으로 발전시켜서 제세례파와 같이 만인 목사설로 발전시키지는 않았다. 누구나 성경을 읽을 수 있지만, 개혁교회는 공예배에서 성경을 봉독하는 사람을 목사로 제한시켰다. 설교는 목사의 고유한 직분으로 규정하여 아무나 설교를 할 수 없도록 하였다. 찬송 역시 모두가 부를 수 있도록 하였지만 목사의 지도를 받게 하였다. 그리하여 종교개혁은 모든 예배가 말씀이 지배하는 예배가 되도록 하였다. 그러나 예배에 있어서 목사는 철저하게 회중을 섬기는 봉사자(minister)의 역할을 할 뿐이다.

        

하나님 중심: 복잡함에서 단순함으로

종교개혁으로 인해 예배 형식은 이전과 몰라보게 달라졌는데 예배가 놀라울 만큼 단순해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오직 성경’과 ‘규범적 원칙’을 적용시킨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종교개혁은 기존의 예배에서 성경의 명시적 명령이 없는 인간적 전통들을 예배당 밖으로 추방하였다. 예배당 구조는 보다 단순화 되었고, 그림이나 형상들은 제거되었다. 화려한 성찬상 대신 단순한 강대상이 중앙에 위치하게 되었다. 성가대가 없어졌으니 그들이 앉는 자리나 그들이 입는 화려한 의복도 사라지게 되었다. 성인들을 숭배하는 절기나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도 교회 속에서 폐지되었다. 개혁교회는 하나님만을 경배하는 것에 방해되는 모든 것들을 제거하여 순결한 교회를 이룩하였다.

        

예배의 단순함은 개혁교회의 예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순수한 말씀이 성례와 더불어 참 교회의 표지라면 단순한 예배는 참 예배의 표지라고 할 수 있다. 개혁교회가 이렇게 단순함을 추구한 이유는 예배의 대상이 오직 하나님이라는 것을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개혁교회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예배하기 위해서는 예배의 형식도 오직 하나님이 정하신 방식이어야 한다고 확신하였다. 이 점에서 개혁교회는 제1계명뿐만이 아니라 제2계명도 아주 신중하게 받아들였다. 제1계명이 예배의 대상에 관한 것이라면 제2계명은 예배의 방식에 관한 것으로 이해하였다. 개혁가들은 우상을 예배에 있어서 하나님이 정하시지 않고 인간이 고안해 낸 모든 것으로 이해하였다.

        

사람들이 우상을 고안해 내는 이유는 그것들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로마 카톨릭 교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눈에 보이는 그림, 성인들에 대한 기도, 그들을 위한 절기 등 이 모든 것들이 성도들로 하여금 거룩한 마음을 가지게 하고 그 결과 하나님께 보다 더 잘 예배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교회는 수많은 인간적인 요소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98문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식 외에 다른 방식으로 예배하는 것이 하나님보다 더 지혜롭다고 자처하는 것이라고 정죄한다. 개혁교회의 예배는 이런 교만한 자들과의 오랜 투쟁 속에서 나온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개혁파 교회의 예배가 단순함을 추구하였으나 이것이 무형식을 추구하였다는 식으로 오해하여서는 안 된다. 종교개혁은 비성경적 형식에 대한 반발이었지 모든 형식을 부정한 것은 아니다. 개혁교회는 교회의 모든 실천적 영역에 있어서 질서정연함(decency)을 추구하였다. 이 점에서 개혁교회는 모든 형식을 인간적인 것으로 매도한 재세례파나 신령주의자와 구별된다. 심지어 성경적인 예배 형식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교회 성도들에게 실제적인 유익이 되도록 하는 데 힘썼다. 예를 들어,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는 형식적으로 이루어졌고 재세례파에 의해서는 비성경적이라고 낙인찍힌 유아세례는 개혁교회에서 언약신학으로 말미암아 훨씬 더 풍성하고 유효하게 실행되었다. 심지어 성례로 간주되지 않았던 견신례나 혼례성사 및 서품성사도, 단지 그것들이 성례로 인정받지 않았을 뿐이지, 교회 안에서 아주 중요한 예식으로 올바르게 자리를 잡았다.

 

 

이 글은 이번에 고려신학대학원 교수진이 공동집필한 [개혁주의를 말하다]에 실린 글입니다. -코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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