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한 신앙의 전통을 나누면서, 실제적 교제가 이루어져야

12월 기획기사는 “합신을 소개합니다.”로 정했습니다. 지난 총회에서 고신과 합신은 교단합동을 위한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였습니다. 코닷 연구위원들은 이 위원회를 통하여 좋은 열매가 있기를 바랍니다. 다른 교단과 연합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교단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리라 생각하여 이 기획기사를 구성하였습니다. 이 기획기사가 양 교단의 교류를 조금이나마 돕는데 사용되기를 소망합니다. 기획기사는 다음 순으로 게재가 될 것입니다. 많은 관심이 있기를 바랍니다.


1. 합신과의 교류를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이성호 교수

2. 합신의 역사- 조진모 교수.

3. 합신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3개의 교회 소개 – 화평교회, 일산현산교회, 전주새중앙교회

4. 합신 교수 소개- 합신 졸업생

5. 합신의 교단지 「개혁신보」 소개 –  송영찬 목사, 기독교개혁신보 편집국장  

6. 1년에 한 번 개최되는 정암신학강좌에 대한 소개 –변종길 교수

 

                                                                          코닷연구위원장 이세령 목사

 

합신과의 공통점

   
  ▲ 이성호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역사신학
  코닷연구위원
우리는 주일날 사도신경을 통해서 한 교회를 고백한다. 예수를 믿지만 교회가 하나라는 것을 부인한다면,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은 이단이다. 교회의 하나 됨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신중’이라는 구실로 하나 됨에 무관심하거나 소홀히 하는 것은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께 불충성하는 행위이다. 또한 입으로는 교회 연합을 말하면서 머리로는 “우리끼리 잘 지내면 되지 굳이 다른 교단과 연합할 필요가 있는가?”라고 생각하는 것은 위선이다. 따라서 교회 역사 속에서 핵심적인 문제는 교회의 하나 됨 자체가 아니라 그 하나 됨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에 더 많은 논의가 이루어졌다.


이와 같은 교회연합의 당위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하나’니까 무조건 서로 합치자고 주장하는 것은 믿음이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교회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순진한 발상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교회 연합이라는 당위와 어떻게 이룰 것인가에 대한 가능성을 동시에 살펴보아야 한다. 교회의 연합은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으로 나눌 수 있는데, 외적인 연합이 지나치게 강조되면 하나 됨이 잡탕을 의미할 수 있고, 내적인 연합만 강조되면 실체 없는 환상을 추구하게 될 것이다. 역사 속에는 좋은 교회의 연합도 있고, 나쁜 교회의 연합도 있다. 당연히 우리가 힘써야 할 것은 연합을 통해서 교회의 하나 됨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그 연합을 통해서 각 지교회들이 영적인 유익을 얻는 방향으로 가도록 하는 것이다. 


하나됨을 힘써 지키라는 주님의 준엄한 명령을 지키기 위해서 실현 가능한, 혹은 가장 가능성이 높은 교단과의 교류를 먼저 추구하는 것이 상식이다. 이 점에서 합신과의 연합은 다른 어떤 교단과의 연합에 비해서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고신과 합신은 신앙고백에 있어서 어떠한 차이도 없다. 두 교회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및 대/소 요리문답을 신조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두 교회는 이 신조를 단지 선언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신조에 따라 교회를 세워나가기를 노력하고 있다. 물론 아직도 두 교회 내에 적지 않은 목회자들이 개혁주의 보다는 복음주의적 목회를 하는 경향이 있으나 적어도 신학교에서 만큼은 (비록 미약하게 보일 수 있지만) 개혁주의 신학과 목회를 추구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더 나아가 두 교회는 역사적 경험에 있어서도 아주 중요한 동일한 경험을 박윤선 목사님을 통하여 공유하고 있다. 박윤선 목사님은 고려신학대학원과 합동신학대학원의 신학적 기초를 세운 분이다. 비유적으로 표현해 보자면 두 신학교는 한 부모를 모시고 있는 형제 관계라고 할 수 있다. 박목사님이 고신을 떠남으로 고신은 중요한 신학적 자산과 역사적 유산의 손실을 경험하였다. 따라서 합신과의 교류를 통하여 고신이 얻게 되는 가장 큰 유익은 잃어 버렸던 신학적 전통을 다시 회복하여 한국 장로교회에 보다 더 큰 선한 영향력을 발휘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합신도 마찬가지이다. 고신과의 연합을 통하여, 지금과는 달리 합신 설립 이전의 박목사님의 모든 역사적 유업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게 됨으로 이전 보다는 더 풍성한 개혁신학의 역사적 전통을 서로 공유하게 될 것이다.


합신과의 통합 가능성이 높은 가장 큰 이유는 교단 통합의 가장 큰 장벽인 신학교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상, 교단 통합을 이야기할 때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이 신학교이다. 이것은 우리가 환원을 통하여 이미 교회 역사 속에서 경험한 것이다. 그러나 고신과 합신양 교수진은 이미 상당 기간 동안 정기적으로 교제의 모임을 가져오면서 서로간의 신뢰감을 증진시켜왔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교수 연수회를 같은 장소에서 개최할 정도로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다. 따라서 누가 만들어 내었는지는 모르지만, 신대원 교수들이 교단 합동에 반대한다는 것은 전혀 근거가 없는 헛소문이다.


합신의 특성

신학적으로, 역사적으로, 그리고 경험적으로 아주 중요한 부분에 있어서 두 교단이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또한 중요한 차이점이 두 교단 사이에 존재한다는 것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 차이점이 교회의 하나 됨을 막을 정도로 큰 것은 아니지만 이것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면 서로 간에 불필요한 오해를 낳을 수 있다.


합신의 태동에 대해서 다 말할 수 없지만, 합신이 태동하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부조리가 난무하는 교단정치였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합신 목회자들은 교단 정치에 대해서 상당히 부정적일 뿐 아니라 최대한 노회나 총회 운영에 있어서 순수함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 아직 교단이 작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노회장, 총회장, 총대 선거에 대한 관심이 고신보다 현저하게 작다. 이러한 분위기 때문에 어떤 문제를 원칙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풀려는 경향을 상당히 싫어한다. 합신의 3대 이념인, “바른 신학, 바른 교회, 바른 생활”에서 나타나듯이 합신은 정도를 추구하려고 하는 정서가 노회나 총회 정치 속에서 매우 강하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고신 총회가 교단이 계파에 의해서 선거나 의제가 결정되는 것을 보면 매우 부정적인 인상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진정으로 우리가 합신과의 연합을 추구하려고 한다면 우리 속에 있는 그와 같은 부정적인 모습들을 지금부터라도 줄이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교단 갈등의 주원인이 되는 복음 병원을 점진적으로 총회에서 독립시켜야 할 것이다. 합신의 입장에서 보면, 복음 병원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이유도 없거니와 그것을 두고 해마다 총회가 엄청난 에너지를 쏟는 것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희망적인 것은 고신 안에 있는 계파 정치는 향후 10년 안에 당사자들이 대다수 은퇴를 하게 되면 지금 보다 훨씬 더 희석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정말로 합신과 진정한 연합을 원하자면 우선 우리 안에 있는 걸림돌부터 조금씩 제거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교단정치와 관련하여 합신의 두 번째 큰 특징이 생겨났는데, 합신은 교단 정치로부터 신학교의 철저한 독립성을 추구한다. 합신이 생기기 전 합동의 총회는 몰상식적인 교단 정치로 신학교를 철저하게 유린하였고, 그 결과 바른 신학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신학교가 교단정치에서 완전히 독립해야 한다고 합신의 지도자들은 생각하였다. 그래서 현재 합동신학교는 교단과 인준 관계에 있다. 합신과는 정반대로, 고신은 총회가 신학교를 단순히 지원할 뿐 아니라 철저하게 감독을 해야 한다는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신학교 운영에 관한 한 두 교단은 전혀 다른 이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는 서로가 만나서 지혜로운 제3의 안을 만들어야 하겠지만 결코 쉬운 문제는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도 합신에 속한 목회자들은 합동신학교를 대단히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물론 누구나 자기가 졸업한 학교를 사랑하겠지만, 그 정도에 있어서 합신 출신들은 다른 교단 목사들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교수와 학생들 간의 깊은 애정과 존경, 무감독 시험, 무인 매점 등이 시사하듯이 합신은 자신들의 독특한 전통을 발전시켰고, 그것이 학교에 대한 무한한 자부심과 사랑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한 예로 필자는 미국에서 상당히 많은 합신 출신의 목회자들과 교제를 하였는데, 단 한 명도 신대원 교수나 학교에 대해서 비판하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개혁주의 원리로 보았을 때, 신학교는 교회의 감독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전제가 필요하다. 교단의 정치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이 원리는 신학교를 바로 세우기보다 파괴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역사가 그러했다. 예를 들어서, 이사회가 신대원 교수를 채용함에 있어서 후보자에게 거액을 요구한다고 생각해 보라(물론 고신과 합신이 그렇다는 말은 전혀 아니다). 따라서 이 개혁주의 원리를 합신 사람들 설득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교단 지도부가 신학교 교수들보다 탁월한 지원과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다. 만약 교단이 앞장서서, 신학교 발전을 위해 대대적으로 지원하고 올바로 감독하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면 교수들이 반대할 이유가 무엇이 있겠는가? 이것은 또한 교수들에게도 책임도 있다. 적어도 현재보다 훨씬 더 교수진과 교회가 밀접하게 관계를 잘 맺어서 상호 신뢰 관계를 유지할 때, 신학교에 대한 개혁주의 원리가 제대로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하고 실제적인 교류

교단 통합에서 있어서 고신은 잊을 수 없는 고통스런 추억이 있다. 바로 합동 교단에서의 환원이다. 그때 합동 추진은 너무나 성급한 것이었을 뿐 아니라 일부 지도자들에 의한 것이었다. 대다수의 공감대가 없는 상황에서 합동과 환원이 추진되다 보니 서로에게 상처만 남게 되었다. 따라서 교단 통합은 지도자들만의 논의가 되어서는 안 된다. 다양한 측면에서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교제가 이루어져야 하고, 그 교제를 통해서 서로가 유익을 얻고 신뢰를 쌓는다면 교단의 통합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한국교회에서 교단 통합이라고 하면 보통 총회적 차원에서만 이루어졌다. 필자는 이런 노력과 더불어 보다 쉬운 노회적 차원, 혹은 개교회적 차원의 교류가 더 중요하고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두 교회의 가까운 두 노회가 서로 만나서 자매 노회 관계를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일 년에 한 차례 정도는 같이 모여서 연합 부흥회나 체육회를 같이 하면 실제적인 하나 됨의 유익을 누릴 수 있다. 그리고 인근의 두 교회들 간에 목회자들 사이에 강단 교류가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양 신학교수의 교류도 이제는 한 단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이제까지는 친목모임의 성격이 강하였다면 이제는 양 교단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단계로 격상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웨스트민스터 신조를 함께 번역을 한다든지, 교회를 위한 신학 포럼을 공동으로 개최한다든지, 목회 대학원을 일 년에 한 번은 같이 개최한다든지 하여 양 교단의 목사들이 실질적으로 하나 됨을 누리고 교회는 그 하나 됨에서 영적인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교단 통합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 대단히 중요한 사항이다. 아무리 교단 통합이 옳은 것이라 하더라도, 교단 목회자들이 만나서 그 모임 속에서 실제적인 유익을 누리지 못한다면 교단 통합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고신의 역사를 볼 때, 우리는 박윤선 목사님에 대한 큰 부채를 안고 있다. 만약 우리가 사랑과 지혜안에서 교단의 연합을 이루어 낼 수 있다면, 그 부채에서 자유롭게 되어 보다 당당하게 한국교회 전체를 향한 우리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다. 우리가 이 연합을 이룰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이 일에 실패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 때문일 것이다. 결국 겸손히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며 서로 인내하고 소망 가운데 묵묵히 나가갈 때, 하나님께서 주 안에서 하나 됨을 선물로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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