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대정신은 포스트모더니즘(탈현대화)을 그 배경으로 한다. 놀라운 것은 이름도 낯익지 않고 내용도 어렵게 느껴지는 이 현대사조 속으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몰입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포스트모더니즘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은 전통과의 단절, 불확정성, 파편화, 반리얼리즘, 전위적 실험성, 비역사성, 비정치성 등을 들 수 있다.


남경태는 ‘개념어사전’에서 설명하기를 포스트모더니즘에 의하면 인류 역사에서 전체성과 보편성을 추구한 정치와 종교, 예술은 모두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모두 거대 담론의 오류에 빠진 결과라고 말한다. 거대 담론은 항상 통합과 합의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목적론의 덫을 피할 수 없고 중요한 것은 전체가 아니라 부분이며, 동질성이 아니라 차이라고 한다. 이 말을 우리시대 속에서 아니 우리 교회들 속에서 주의 깊게 살펴보자.


현대에서 우리가 갖는 느낌은, 이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고 있으며, 모든 것이 가능하고, 어떤 것도 다시 똑같을 수 없고, 어떤 것도 다시 똑같기를 원치 않으며, 새롭게 만들기를 원하며, 과거의 모든 대상, 가치, 정신구조, 일을 행하는 방식들을 제거해 버리려고 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 시대는 과거의 모든 것이 변형되기를 원하고 우리가 지켜 온 가치를 대단치 않게 여기는 듯하다. 절대적으로, 그리고 철저하게 현대적이어야 하며 동시에 현대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의 상황 속에서 느끼는 방식이다.


포스트모던에서는 과거 그 자체가 과거에 대한 인식, 또는 역사성, 그리고 집단적 기억과 함께 사라져 버린다. 사회발전과정에는 반드시 주 경향과 반경향이 있고, 근본요인과 파생적 요인이 있다고 할 때, 우리 시대의 두드러진 특징은 불가피한 다원화의 과정에 있고 다원사회에서는 정치적 주도집단의 다두화(多頭化), 사회적 다핵화(多核化), 문화적 다양화(多樣化)가 확연한 경향을 갖는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우리 시대에 가장 강력히 밀려오는 탈 획일화의 물결을 ‘제3의 물결’이라고 칭한 바가 있고, 피터 드러커도 이미 시작된 21세기의 특징을 ‘새로운 다원시회의 출현’에 있다고 보았다. 포스트모더니즘을 보는 시각은 아직도 확실하게 정리되지 않고 있지만, 여하튼 포스트모더니즘의 유입은 탈 권위화,  탈 중심화, 중심 해체 등을 가속화하리라고 보고 있다(이신건 ‘종교다원주의의 부활관’).


그런 의미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다원화를 추구하면서 상대주의, 즉 이 세상에 절대적인 가치는 없고 모든 것은 상대적이라는 관념으로 이때까지 내려온 전통적 가치관들을 부정하는 현상으로 나가고 있다. 오늘 시대는 같은 세대 내에서도 서로 다른 가치관들을 제시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과연 어떤 원칙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인지 혼동될 때가 많고 우리는 극심한 가치관의 혼동을 느끼고 있다.


 매일매일 “이렇게 살아라, 이렇게 목회해라, 이렇게 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수도 없이 우리들에게 전달된다. 그래서 과연 누구 말을 받아들일 것인가 혼돈이 일어나고 자아관이 흔들리게 됨으로 오늘의 원칙과 내일의 원칙이 다른 생활이 되풀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현대인의 가치관의 혼동, 자아관의 상실이다.


이런 속에서 교회는 어떨까요? 21세기의 ‘변해야 산다’는 패러다임 속에서 변화를 추구하고 수요자인 성도들의 요구를 따라 이것저것 수용하다 보니 뭐가 뭔지 모르게 되었다. 장로교회도 침례교회도, 감리교회도, 특징이 없어졌다. 아니 굳이 특징을 찾으려하지 않는다. 이것을 거부하는 기성세대는 그대로 불만이 생기고, 새 세대는 변화가 너무 느려 불만이다.


그러다보니 교회를 세대(世代)와 같은 것들로 이리저리 분리시켜 공동체라는 말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교회공동체는 이제 교인 명부상에나 가능하게 된 시대이다. 문제는 기준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우리는 개혁주의 신학을 부르짖고 개혁자들의 후예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 있는 진정한 개혁주의는 무엇인가? 새로운 제도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개혁 신학적인 신중한 검토를 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성경과 우리가 배워 온 신학, 그리고 우리가 지키겠다고 서약한 헌법과 예배지침은 이제 버려도 되는 것인가?


교회 성장은 필요하고 또한 우리의 지향점이기는 하지만 교역자들이나 성도들이나 성장이라는 명제 앞에 짓눌려서 성장제일주의에 빠져 있는 것 같다. 요즘 대형교회가 하는 것은 무엇이나 허물이 안 된다. 결국은 그것이 성장에 필요한 것이고 성장한 교회의 모델이라는 이유로 모두가 따라간다.


변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성경과 개혁주의 신학에 근거한 원리와 원칙일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필자도 성장하는 일이라면 아마 무엇이든지 할 것 같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제 다음에 등장할 것은 무엇인가? 우리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개혁주의의 후손이라는 우리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시대사조에 몰입되고 있는 것은 우려할 만한 일이다.


혹자는 말한다. “개혁주의가 교회를 성장시켜 줍니까?” 이렇게 개혁주의는 더 이상 매력도 없는 책에서나 읽을 수 있는 일이 되어 가고 있다. 이것이 아주 개혁적이지도 그렇다고 성장하지도 못하고 선구적이지도 못한 한 목회자의 넋두리만이 아니길 바랄뿐이다.





저작권자 © 코람데오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