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한국교회에 희망이 있는가?”라는 질문이 안팎에서 계속 되어온 한 해였다. “역사상 교회가 이렇게까지 타락한 예가 없었다.”는 말까지 나온 해였다. 한국교회의 이곳저곳에서 폭발사고가 거듭되더니 한국기독교총연합회에서 ‘총 연합된’ 폭발이 일어났던 해이기도 했다. 물론 하루아침에 갑자기 생긴 일들은 아니었고 충분히 예견된, 그래서 정신을 차리고 있었으면 막을 수 있었던 참사(?)들이었다.

목사들의 성적 재정적 스캔들, 담임목사직 세습, 각 교단 총회장 선거를 둘러싼 타락, 성직자들의 각종 이권개입, 정치권력에의 아부와 야합 등의 사건들은 오래 동안 계속되어 왔다. 이를 보며 세속인들은 눈살을 찌푸리다 못해 삿대질까지 하며 비난을 해왔지만, 오히려 교회 지도자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러다보니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대표들이 모였다고 하는 한기총에서 이런 모든 죄악들이 총합되어 한꺼번에 폭발한 것이다. 이를 가리켜 어느 교계신문 기자는 “한기총 사건은 한국교회 안에 터진 일종의 자살테러였고, 100만 명 이상의 살상이 일어난 메가톤급 미사일 폭발이었다”고 했다. 무엇이 한국교회를 이 지경에 이르게 한 것일까?


첫째는 성장주의이다.

한국교회는 아직도 성장주의에 사로잡혀 있다. "많은 교인, 큰 교회당"이 우상이 되었다. 전도는 사람 모으기 운동으로 전락했고,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전도를 판촉으로 여기고 있다. 목회자를 평가하는 교인들의 기준은 교회의 양적인 성장이고, 그러다보니 목사들은 자기 목회의 성공과 영광을 위해 목숨을 건다.


교회가 성장하는 것이 결코 부정적인 일은 아니나, 성장자체가 목표가 되면 본말이 전도될 수밖에 없다. 교회의 존재목적 자체에 혼란이 온다.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세워진 교회의 사역이 바벨탑운동으로 전락한다. 바벨탑운동이 무엇인가? 바로 ‘탑을 높이 쌓아 그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흩어짐을 면하자’는 것이 아닌가!


물론 대형교회로 성장하기를 원한다고 해서 대형교회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대형교회가 되면 교회의 건강성에 문제가 생기기 쉽다. 성도들의 교제가 약해지고, 익명교인들이 많아진다. 영혼을 사랑하고 전도하는 일에 관심과 열의가 식어진다. 거기다 더 위험한 일은 교회의 힘이 담임 목사에게 집중되는 것이다. 대형교회로의 성장은 담임 목사의 가장 확실한 공적으로 인정되고, 그것이 담임 목사가 교회 안에서 절대권을 행사할 수 있게 만드는 바탕이 된다. 그렇게 되면 당사자가 원하든 원치 않든 구조상 힘이 그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고, 이런 구조 안에서 목사나 교회가 권력화의 유혹을 이기고 거룩함과 겸손을 지켜내는 일은 참으로 지난한 과제이다.


둘째는 실천적인 무신론이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나라를 믿는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도 그의 나라도 부인하며 사는 것이다. 기독인들의 삶속에 하나님나라의 가치인 의와 사랑과 거룩과 겸손이 없다면 입으로는 하나님을 믿으나 실제로는 부인하는 것이다. 거기서 더 나아가 교회의 지도자들이 세상적인 영광과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돈으로 사람을 매수하고, 또 거기에 매수당하여 패거리를 이루어 정치노름을 한다면 세상 사람들이 대관절 어디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그를 찾을 수 있겠는가?


또 세속적인 명예와 권세를 얻으려고 신앙양심을 파는 지도자들, 세상살이에 얽매여서 세상의 부귀영화를 얻으려고 거기에 올인하고 있는 교인들이 과연 하나님나라를 믿고 소망하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세상 사람들은 자기들이 추구하는 것들과는 뭔가 다른 어떤 고상한 것이 있을까 바라고 교회에 나왔다가 목사와 교인들도 자기들이 구하는 것들과 꼭 같은 것들을 구하면서 불의하고 부정한 일을 행하는 것을 본다면 얼마나 분노하며 적개심을 가지겠는가? 왜 그들이 “개독교” 운운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는 도덕적 불감증이다.

교회 안에 도덕적 불감증이 만연하고 있다. 아주 심각하고 무서운 범죄가 일어나고 알려져도 탄식과 애통이 없다.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장터에서 노는 아이들 같이 되었다. 한기총에서 서로 대표회장이 되겠다고 돈을 쓰면서 선거운동을 한 일이 밝혀지고, 세상 법정에서 정죄되고, 청년들은 놀라는데도 정작 대다수의 교회 지도자들은 별 반응이 없이 침묵하고 있다. 해당 교단의 총회에서는 한 마디 언급도 없었다.


교회직분은 철저히 봉사하고 희생하는 직분인데, 돈을 쓰며 이를 쟁취하려고 한 일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돈으로 하나님의 선물을 사려했던 시몬에게 베드로 사도는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고 무섭게 책망했다. 시몬은 얼마 전에 세례 받은 초신자였다. 그러나 한기총에서는 교회 최고의 지도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런 일을 행했다. 그런데도 일부 목사들은 오히려 한기총의 금권선거를 비판하고 문제 삼는 사람들을 향하여 바리새인들 같은 위선자들이라고 비난한다. 무서운 집단타락이다.


이는 교회가 “오직 은혜”의 교리를 오래 동안 남용해 온 결과가 아닌가 생각된다. 중세 천주교가 경건과 거룩을 강조하고 인간의 공로를 높이 평가하며 의를 위한 노력과 헌신을 강조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공로를 경시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면, 개신교는 은혜만 강조하고 죄에 대한 심판과 회개를 경시함으로써 도덕적 불감증을 심화시켜 왔다. 지금은 이런 도덕적 불감증이 만연돼 있고, 일부 지각 있는 교인들은 체념상태에 빠져 있다.


4. 한국교회 어떻게 개혁해야 할 것인가?

첫째로 그리스도의 주되심이 확인되어야 한다. 그리스도는 개인과 교회와 이 세상 뿐 아니라 오는 세상의 주님이시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시다. 그는 장차 다시 오실 것이고, 심판주로 임하실 것이다. 우리 모두가 주님 앞에 두려움으로 서야 한다. 누구나 자신이 스스로 주인노릇을 하며 그리스도의 주권을 찬탈하고 있는 자가 아닌지 두려움으로 살펴야 한다. 그리고 목사 장로들이 낮아져야 한다.


둘째는 상식적인 정도의 도덕 수준이라도 회복해야 한다. 지금 교계는 상식이 통하지 않을 정도로 타락하거나 무감각해져 있다. 세상 법정의 판사들이 목사들의 시비를 판단하며 훈계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선 교회 안에서 목사 장로들이 최소한 민주적인 절차를 밟아 무슨 일을 결정하고 수행해야 한다. 재정관리도 마찬가지이다.


목사가 수십억 원을 횡령했다는 황당한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재정관리도 민주적인 절차를 밟아 투명하게 처리해야 한다. 이런 건 기본상식이다. 이런 상식이 지켜지지 않으면, 교회는 세상보다 더 어두운 몰상식한 집단이 되고 만다. 우리는 지금 매우 어두운 세말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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