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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해야 할 것과 변하지 말아야 할 것
  • 천석길 /구미남교회 담임목사
  • 승인 2007.0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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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수 십년 전의 이야기이다. 그때만 해도 시골에는 전깃불이 들어오지 않았던 마을이 꽤나 많았다. 내가 살던 고향도 그랬었다. 그렇지만 교회는 이런 저런 것이 앞서가는 것이 더러 있었다. 당시에 다른 곳에는 없던 풍금도 있었고, 큰 호야등도 있었는데 보기에 따라서는 별것이 아닐 수도 있지만 시골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는 제법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마치 흑백 필름으로 보는 영화처럼 지나간 시대의 이야기이다. 그때에 교회에서 어른들이 회의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어느 주일날, 우리교회도 도시교회처럼 장의자를 들여 놓자는 안건이 누군가를 통해서 제직회에 상정이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웃기는 일이지만 그것을 놓고 제직회에서 몇 주간을 갑론을박 하다가 결국은 젊은 사람들의 생각을 따라서 우선 네 개만 넣기로 가결했단다.

그래서 각목으로 만들어진 길다란 의자 네 개가 양쪽으로 두개씩 뒷 켠에 놓여졌다. 그렇게나 어렵게 들어온 의자였지만 감히 하나님 앞에서 예배를 드릴때에 의자에 앉아서 드리는 불경건한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시겠느냐는 어른들의 거룩한 협박(?) 때문에 그 의자는 한 동안이나 뒤에서 우! 두커니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코메디 같은 오래된 추억이다.

그것은 또 무지한 시대에 일어난 일이라고 치자 그 무지의 소치가 아직도 우리 안에는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안다. 십 여 년전의 일이다. 섬기던 교회를 건축하면서 그리 넒지도 않은 예배당에 굳이 윗강단 아랫 강단을 구별할 필요가 있겠나 싶어서 당회에서 심도 깊게 의논한 후에 강단을 과감하게 하나로 만들었다. 당회에서 논의한 일이고 절대다수의 교인들이 좋아했던 일이지만 단 한 사람의 강력한 반대로 인해서 몇 년 동안이나 더 아래쪽에 강대상을 두어야만 했다. 그게 현실이었다.

그 일로 인해서 힘을 낭비하기 싫어서 하자는 대로 따르긴 했지만 몇 년 후에는 결국엔 없앴다. 옛날이 아니라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아랫강단을 없애는 것은 교회를 세속화 시키는 일이라면서 소리를 지르던 그 분은 급기야 노회에 질의를 하겠다고까지 하길래 시간이 지나면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고 씁쓰레하게 물러섰던 기억이 새로워진다. 그렇게 물러섰건만 사사건건 시비를 걸거나 핍박을 엄청하던 그 분을 그래도 사랑했던 예사롭지 않던 사건이 추억이라고 하기에는 웃음이 슬며시 나오는 이야기가 아직도 그림처럼 내 마음에 남아 있다.

이런 일들이 그것으로 끝이었으면 얼마나 좋겠냐만 교회에는 비슷한 일이 끝없이 생겨나는 것 같다. 사람들은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은 너무 쉽게 변하고 변해야 하는 것에 있어서는 절대로 변하지 않으려고 생명처럼 붙잡으려 하는 이가 더러 있다. 물론 교회에는 분명코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다. 이 일에 있어서는 어느 누구도 예외가 없어야 한다. 교회의 지도자라면 더 그러해야 한다.

교회의 존재이유인 그것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협조하겠다는 변하지 않는 절대가치를 가져야 한다. 두 번째는 섬김이 변하지 말아야 한다. 주님을 처음 만났을 때에 모든 사람을 나보다 더 귀히 여기면서 그들을 섬기겠다던 사람들이 언젠가부터 함부로 다스리려 들기 때문이다. 복음의 한 중심에는 믿음으로 교회를 섬겨야 한다고 가르치고 또 그렇게 배웠지만 언젠가부터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복종시킬려고 하는 욕망이 우리를 피곤하게 하고 교회를 병들게 한다. 영혼구원의 열정이 식어지고 섬김의 본분을 놓쳐버린 사람들은 변해야 할 것을 변하지 못하도록 막아서는 어리석은 일에 자꾸만 앞장을 선다.

무엇이 변해야 하는가? 영혼구원을 위한 방법이 시대를 따라서 변해야 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변한다기 보다는 시대에 맞는 옷으로 갈아 입어야 한다. 계절이 변할 때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옷을 갈아 입는다. 옷을 갈아 입은 사람을 변질되었다거나 세속화 되었다고 말을 하지 않듯이 우리 시대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어떤 형태의 전도 방법이 옳은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복음의 본질은 영원하다. 그러나 그 복음을 받아 들이는 사람은 너무나 빠르게 변하고 있다. 변하는 시대를 정복하기 위해서는 변하지 말아야 할 것과 변해야 할 것을 구별하는 아량과 너그러움이 있어야 한다. 변하지 말아야 할 복음을 가슴에 품고, 영혼구원하는 일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수용하는 용기를 가질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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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석길 /구미남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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