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식?

▲ 정진경 목사 울산지역 SFC 대표간사
최근 몇 년간 SFC(학생신앙운동)는 “신입생오오” 운동을 전략적으로 펼쳤다. 이 운동은 각 지역의 대학 신입생들을 조사하여 대학 SFC로 연결하는 것이 목적이다. 또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신입생들의 경우 대학 SFC 뿐만 아니라 고신교단 교회로 연결하는 목적도 있다. 특히 지역에서 수도권으로 이동하는 신입생들이 고신교단 교회에 정착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이 운동의 성과에 대한 평가는 다르지만, 운동에 대한 필요성은 많은 교회지도자들이 공감하고 있다.

SFC가 이 운동을 전략적으로 펼치는 이유는 기독청년들이 선교단체와 교회를 떠나고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기독청년들이 선교단체와 교회를 떠나는 현상은 일반적이다. SFC와 고신교단 교회도 이 흐름에서 빗겨날 수 없다. 기독청년들이 떠나는 시점이 많은 경우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때이다. 이 시기에 교회를 떠나는 사례가 많다. SFC는 이 문제에 대한 위기의식을 가지고 “신입생오오”운동을 펼쳤다.


“청년 대학생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는 위기감!

기독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것에 대한 위기의식은 1990년대 후반을 넘어오면서 두드러졌다. 그 위기의식은 한국교회의 양적성장이 멈추면서 오는 위기의식과 함께 커져온 것이다. 각종 조사 기구에서 발표되는 통계자료가 그 위기의식을 더해준다.

        

통계청 2005년 발표 자료에 의하면 한국의 20세에서 29세 인구는 7,333,970명이다. 그 중 개신교 인구는 1,309,816명이다. 약 17.8%로이다. 아래 표1)가 그 비율을 자세히 보여준다.

 1) 통계청 2005년 발표자료이다. 통계청 자료는 홈페이지(http://www.kostat.go.kr)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 통계는 청년층이 다른 연령층보다 개신교 비율에서 낮은 것을 보여준다. 이런 통계에 대한 분석이 교회지도자들에게 위기의식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교회 안에 있는 청년들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이 위기인가? 숫자가 줄어드는 것에서 위기의식을 가져야 하는가? 숫자가 줄어드는 것은 현상이다.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다. 그렇다면 위기는 숫자의 감소가 아니라 수를 감소시키는 원인이다. 그리고 위기의식은 바로 그 원인에서 가져야 한다. 대안을 찾는 것도 그 원인에서 시작해야 한다.


누가 교회를 떠나는가?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 위기의식 속에서 교회지도자들이 가지는 생각이다. 그래서 왜 그들이 교회를 떠나는가에 대한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이런 분석에 대한 의구심이 든다. 떠나는 청년들이 누구인가? 대상이 모호하다. 한국에서 20대를 보내고 있는 청년 들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 20대에 교회를 다니는 청년들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구원의 은혜를 누리며 교회에서 헌신하는 청년들을 말하는 것인지? 그 대상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그 이유 또한 모호하다.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원인을 찾기에는 그 이유가 피상적이고, 일반적이다.

        

이상화 목사는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33가지 이유』에서 책 제목처럼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33가지 이유2)를 들고 있다. 그 책에서 말하는 33가지 이유 때문에 교회를 떠나는 청년들이 누구인지 의문이 든다.

2이상화 목사가 주장하는 이유 몇 가지를 소개한다.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니 허무맹랑한 것 같아 교회에 갈 수가 없다.” “반드시 교회라는 특정한 장소에 나가서 예배드려야만 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교회에 가지 않는다.” “교회에 가면 ‘하지 말라!’는 것이 너무 많고 경직된 분위기 때문에 숨쉬기가 곤란해서 가기 싫다.” “이성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서로 충돌하는 교리들 때문에 혼돈이 생겨서 교회에 가기 싫다.” “딱 부러지지 않고 물에 물 탄 듯한 자기합리화의 색깔이 농후한 교리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교회에 가지 않는다.”

 

        

《전국 청년목회 컨벤션 2002 자료집》과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교회교육백서》에서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도 지극히 현상적인 이유만을 말하고 있다. 청년들을 위한 재정, 세대차이, 교육 기자재와 소통의 문제를 들고 있다. 이런 문제로 교회를 떠나는 청년들이 누구일까?

        

20대 청년들이 교회를 떠난다고 했을 때는 그들이 가지는 교회에 대한 이미지에 관한 문제일 것이다. 20대 교회를 다니는 청년들이라 할 경우 범위가 넓어서 교회를 떠나는 이유가 분명치 않다. 이상화 목사가 주장하는 33가지 이유와 《전국 청년목회 컨벤션 2002 자료집》과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교회교육백서》에서 분석한 자료가 여기에 해당될 것 같다.

        

우리가 생각해 볼 대상은 구원의 은혜를 누리며 교회에서 헌신하고 있는 청년들이다. 그들이 교회를 떠나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며, 여기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교회의 미래이며, 현재 교회의 주역들이기 때문이다.


교회 안의 청년들이 교회를 왜 떠나는가?

한 선교단체 간사의 고민은 교회에서 헌신적인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를 잘 설명해 준다. 선교단체 간사는 학생들에게 교회의 소중함을 강조하고, 교회의 성경적인 근거가 무엇인지 가르쳤다. 그리고 교회가 어떻게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들어내야 하는지도 함께 나누었다. 교회의 역사, 교회의 예배, 교회의 교제, 교회의 선교, 교회의 정치에 대해서 가르치고 나누었다. 그가 열심히 가르친 이유는 교회에 대한 성경적 이해를 가지고 학생들이 교회를 섬기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 안에서 발생했다. 자신의 가르침을 받은 청년이 교회에서 부적응 자가 된다는 것이다. 그 학생이 교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가지게 되고, 교회를 섬기기보다는 교회에 상처를 주는 사람이 되고 있었다.

        

선교단체 간사의 가르침을 받은 학생은 교회 안에서 성경적 설교와 가르침, 교제와 나눔, 교회 정책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교회에 대하여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교회가 성경적 가르침과 원리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다른 가르침과 원리를 따르는 것 같았다. 이런 비판적 시각은 교회와 교회지도자들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자신은 점점 교회에서 부적응 자가 되어가고 교회의 “안티 세력”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교회를 잘 섬기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점점 그렇게 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래서 자기가 섬기던 교회를 떠나야 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 것이다. 이 학생의 문제 앞에 선교단체 간사는 고민에 빠졌다. 교회를 옮기라고 할 것인가? 그 교회에 남아 섬기라고 할 것인가?


어떤 교회를 찾고 있는가?

교회를 떠나는 것을 고민하는 학생에게 소위 말하는 ‘교회 이미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랑의 메신저라고 자처하는 교회가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것 같아 교회에 가기가 싫다.” “교회에 가면 “하지말라!”는 것이 너무 많고 경직된 분위기 때문에 숨쉬기가 곤란해서 가기 싫다.” “너무 따분하고 지루해서 교회에 가기 싫다.” 이런 이유 때문에 교회를 떠날지 고민하지 않는다.

        

교회를 떠나 교회를 찾고자 하는 학생에게 교회 안에서 단순히 “들어나 보이는 모순”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구체적인 체험이 없어서 교회에 가지 않는다.” “성경 안에 서로 모순되는 듯한 말씀에 대해서 덮어놓고 믿으라니 답답해서 교회에 가기가 싫다.” “예수 믿는 사람들도 세상에서 고통당하는 것을 보면 교회에 갈 필요성을 별로 못 느낀다.” 이런 이유는 그들의 신앙으로 넘어설 수 있다.

        

그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바른 말씀 선포와 가르침, 성경의 가르침이 실현되는 교회 정치이다. 교회를 떠나는 청년들이 찾고 있는 교회는 성경적 가르침과 설교가 있는 곳이다. 교리가 실현되는 교회이다. 교회 운영의 원리가 성경적 가르침에 따라 실천되는 곳이다.


기독청년들 교회를 떠나 교회를 찾고 있다!

기독청년들은 교회를 찾고 있다. 그들은 교회를 찾기 위해 교회를 떠난다. 그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교회를 찾기 위해서이다. 그들이 찾는 교회가 필요하다.

        

비 기독청년들도 자신의 흥미의 대상이 교회가 아니라 존경의 대상으로 교회를 찾고 있다. 비 기독청년들도 자신의 흥미를 채워지고, 관심을 만족시키는 교회 즉 흥미의 대상이 될 만한 교회를 찾지 않는다. 그들은 존경할 수 있는 교회를 찾고 있다. 이 시대, 이 사회 안에서 존경할 수 있는 교회를 찾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존경할 만한 교회가 필요하다.

        

결국 해답은 교회이다. 교회가 바로 설 때 기독청년들 뿐만 아니라 비 기독청년들도 교회로 돌아올 것이다.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시110:3).” 이 날을 소망해 본다.

저작권자 © 코람데오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