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야성이 다시 일어나는 운동이 되기를 소망하면서

▲ 이세령 목사 코닷연구위원장
최근 대학 SFC를 함께 하던 후배를 만났다. 그는 지금 모교의 경영학 교수로 재직중이다. 모교 SFC의 지도 교수이기도 하다. 그리고 학생 때부터 다니던 서울 중앙교회의 안수 집사로 섬기면서 대학부장을 맡고 있다. 이 형제를 만나 대화하면서 서로 기억을 나눈 두 가지가 있다.


필자는 이 형제가 가진 신실함을 기억하고 있다. 대학 시절 학원 SFC가 조직되고, 아침 기도회를 매일 모였다. 지방 출신이던 이 형제가 아침 기도회를 참석하는 일이 부담이 되었다. 강의 시간 전인 아침 8시에 모임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하숙집에 밥을 먹으려면 아침 기도회에 참석할 수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이 형제가 기도회에 참석하면서 자신의 결단을 나누었다. 이제 기도회에 참석하겠다고. 이것은 매일 아침을 포기하겠다는 말이다.


이것이 그 형제에 대해서 내가 가진 특별한 기억이다.


그런데 오랜 만에 만나 대화를 나누는 중에 교회 생활에 대한 것이 있었다. 서울 중앙교회 대학부가 지금도 잘 모이고 충실한 교육을 하고 있다는 것을 함께 주변 사람들과 기억했다. 그러면서 옆에 있던 지인에게 서울 중앙 교회 대학부가 30여년이 지나기까지 오늘의 왕성함에 틀을 놓은 장본인이라고 소개했다. 정말이다. 저가 후배들을 챙기고 격려하면서 성경공부를 비롯해서 잘 지도하고 인도했다. 유학을 다녀와서도 다시 중앙 교회로 돌아가서 대학부 부장으로 지금도 봉사하고 있다. 


서울 서문 교회 대학부와 대조가 된다. 현 고려 신대원 교수의 거의 절반 가량을 서울 서문 대학부 출신들이 봉사하고 있을 만큼 서문 대학부의 역할이 지대했다. 그런데 지금 그런 왕성함을 유지하고 회복하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함께 나누고 싶은 것은 이 후배가 서울 중앙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는 것이 어려워서 당시 선배였던 저에게 여러 번 교회를 옮기고 싶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때마다 필자가 '너는 거기에 있어야 한다'라는 말로 격려했다는 것이다. 필자는 잊어먹고 있었다. 정말 잘 했었구나 라는 안도의 마음이 들었다. 


전국 학생신앙운동은 개혁주의 교회 건설과 학원의 복음화가 목표이다. 과연 이 두 마리의 토끼를 잘 잡고 있는가에 대한 논의와 평가가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1. 교회 자치 기구로서 학신의 위상의 변화 이해

최근 들은 소식에 의하면 지구(시찰별)와 지방(노회) 교회 연합 조직으로서 학신이 와해되고 있다. 조직을 형성할 수 없을 정도이다. 사람과 관심이 없다. 왜 그런가?


필자가 중고등부 시절에는 성인들과 함께 오전예배를 함께 드렸다. 그리고 중고등부 모임은 그 이전에 9시부터 모임을 가졌다. 전도사님의 강의를 듣고, 또한 자치회의를 가지기도 했다. 또한 토요일에도 모임을 가졌다. 예배를 독립적으로 드리지 않았다. 필자가 서울 성원교회 출신인데, 당시 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교회로서 전도사님을 배치해 주었다. 대부분의 교회들은 담임 목사님을 모시기만도 벅찬 환경들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교회들이 성장하고, 교회의 재정적인 환경이 나아지고 반대로 학교와 학생들의 상황이 변화되었다. 그래서 교회들은 중고등부를 따로 성인들의 예배에서 분리하기 시작했다. 예배가 분리된다는 말은 중고등부 예배를 위한 전임 사역자를 필요로 한다. 부모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러 와서 나눠 예배를 드리기에 당연히 다른 목회자가 필요하다. 


여기서 중고등부는 교육적 배려를 받는 기관으로 위상을 자리매김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교육적 책임을 맡은 사람 즉 전도사님이나 강도사님 혹은 목사님들의 의지와 교사들의 회의가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어떤 조직이 개입하면 그 조직이 역할을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가게 된다. 주체적인 역할을 하고 싶어 한다. 선한 의도로 본 것이다. 학생들이 가진 자발적 가치보다는 교육적 의미가 강화되는 방향으로 진행이 되어 왔다. 그러나 결과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 필자가 보기에는 이런 흐름이 성공적이었는지는 평가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이 든다. 


중고등부 학생들이 자치력을 상실하고, 교육을 받는 피대상자로서만 여기는 현재의 상황은 교육이란 관심의 산물이다. 이것은 학생 신앙운동과의 관계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교육을 받는 대상으로서 중고등부는 자치적인 운동력으로서 SFC의 활동을 잃어버리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그래서 매월 가졌던 순회 헌신 예배가 사라지고, 학생들의 조직으로서 지구나 지방 학신이 소멸되는 현실이 되었다. 


나아가 교육적인 의도로서 수련회 마저 기획이 되고 훈련이 되었다. 교육의 일관성을 위해서 교육을 맡은 목회자의 의도에 적합한 수련회를 찾게 되면서 학신 수련회의 가치는 절감되었다. 이제 지방 혹은 지역 수련회에 중고등부가 참여하는 것은 희소하게 되었다. 


교회 연합으로서 학신이 가졌던 위상은 교회의 교육적 사명에 대한 역풍으로 필자는 평가한다. 


2. 학원 SFC에 대한 이해

USFC의 조직은 80년대에 들어서 형성되었다. 그러나 학원 학신 조직은 이미 학신 초창기부터 중고교와 대학도 일부 형성되었다. 그러나 학원 학신 조직이 시작된 것은 대학생 대회와 관련된다. 


대학생 대회는 한국 대학 사회에 CCC와 같은 캠퍼스 선교 단체의 출현과 무관하지 않다. 70년대 초반 CCC는 서울을 비롯해서 각 교회 대학부의 학생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성경을 가르치고 전도하는 모임으로 사람을 양육한다는 개념으로 캠퍼스 운동으로 자리를 잡는다. 교회의 학생들이 이 운동으로 빠져나간다. 


여기에 당시 김만우 목사를 비롯한 학신의 지도자들은 대학생들을 교회에 잡아두기 위해서 대학생 대회를 마련한다. 그리고 이어서 캠퍼스 운동을 전개한다. 대학부를 기반으로 한 캠퍼스 운동들이었다. 대구, 부산, 그리고 서울도 일부 캠퍼스에서 모임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현재의 캠퍼스 운동으로서 학신 운동의 조직은 1980년 어간이다. 온천교회 안용운 목사가 교사로서 이 운동에 헌신하면서 학원 조직들이 전국적으로 생기기 시작한다. 이성구, 전성준 목사들이 간사로 뛰어들면서 학원조직들을 챙기고 격려하면서 학신 운동은 새로운 시기를 맞았다. 


1983년 겨울 전국 학신은 USFC라는 기구를 지방 기구와 동일하게 위상을 시키고, 얼마 있지 않아 교회 연합과 학원 연합 부위원장 제도를 만들면서 양쪽의 틀을 형성해 왔고, 그것이 오늘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학신이 USFC라는 학원조직에 뛰어들고 캠퍼스 운동에 참여를 시작한 것은 교회를 지키기 위한 출발점이 분명하였다. 그 노력이 얼마나 성공하였는가는 평가해 보아야 하지만 의지는 분명했다. 


필자가 학생으로 있던 시절이나 간사로 봉사했던 시절 그리고 이제는 목회하면서 한 번씩 간사팀이나 학생들과의 만남에서 여전히 공유되는 일정한 태도는 동일하다고 본다. 강령에 나타난 교회 중심이란 말은 일차적으로 최우선적으로 보이는 지역교회 중심을 가리킨다. 여기서 벗어나는 순간 학신은 어려움을 가진다는 경고를 서로에게 분명히 하고 있다. 


그리고 학원 운동은 개혁주의 신앙의 중심을 관통하면서 정착되어 왔다. 즉 삶의 모든 자리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내려는 노력의 정착이다. 교회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보낸다. 이곳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동료 그리스도인과 함께 세상의 질서에 대항하면서 살아내는 운동을 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되는 것이 개혁신앙 운동원들의 목표이다. 그런 원리에서 전도하고, 운동을 하는 것이다. 


이런 캠퍼스 운동이 밑거름이 되어서 사회에 나아가서 직장이나 공동체에서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사역하고 협력하여 하나님 나라를 섬기는 운동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것이다. 교회에서만 가두어진 복음주의 권의 신앙인이 아니라 개혁파 신앙인으로 교회과 세상을 함께 엮어가는 역할을 전국 학신과 학원 학신들이 감당하고 훈련하는 것이다.  


3. 간사 제도에 대한 이해

교회 교육의 강조가 곧 중고등부나 대학부를 지도하는 전문 교역자를 배치하는 것으로 일차적인 관심을 드러낸 것이 교회의 현실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운동의 전문화와 지속성이란 관점에서 간사 제도는 시대적인 요청이었다. 그러나 이들 간사들이 학생 자발 운동이란 명제를 상실하면서 오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얼마 전 전국 초대 간사를 지냈던 김만우 목사님을 유럽에서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가 간사 시절 전국 학신 대회가 소집되었을 때의 일화를 소개해 주었다. 간사 제도에 대한 거부감으로 당시 학신 전국위원들과 선배들은 간사의 발언권을 주지 않았다. 당시 선배들에게도 있었던 발언권이었다. 그만큼 당시에 학신의 학생 자발성이 대단했다. 그래서 김만우 목사님은 그 결정을 존중하고 선배석으로 가서 발언권을 얻어서 발언을 했다고 했다. 학생 자발 운동을 최대한 살리려 한 선배 간사의 충정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간사 제도가 개혁주의 운동으로서의 정체성 유지와 교육과 양육의 심화, 지속성이란 관점에서 필요했다. 그러나 이 간사제도가 이런 학생 조직에 대한 배려와 교육과 자발성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고민하고 있는지 질문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겠다. 


단 세 명의 간사에 의해서 1980년대 전국 운동은 천여 명의 운동원들이 모이는 대학생대회를 치러 냈고, 오천 명이 모이는 중고대회를 치렀다. 그리고 전국에 수많은 학원 조직들을 일구어 내었다. 한 운동원 한 운동원을 돌봄이란 명제 앞에서 두개 정도의 캠퍼스를 맡은 간사 조직으로 발전하게 된 오늘의 현실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생각해 볼 일이다. 


오늘의 방식만이 최선일까?

물론 행정, 출판, 그리고 훈련원, 또한 고교 학원 조직 등 엄청나게 많은 역할을 간사진들이 많아서 진행되도록 하고 있다. 이제 이런 일들은 학생들이 할 수 없는 영역이 되었다. 그럼에도 학생신앙운동의 본류에서 위치하는가? 다르게 말한다면 지원 조직과 본 운동 조직이 어떻게 조화를 가질 수 없을까?


간사 제도가 모든 캠퍼스 선교 단체들의 공통된 조직으로 정착이 되었다. 그런데 교회가 배경이 된 전국 학신의 경우 무엇인가 다른 방식이 없을까? 교회도 교육이란 이름아래서만 문제를 다루지 말고 학생들이 가진 자발성을 키우는 관점에서 SFC를 고려할 수 없을까? 


4. 학생 자발이란 말에 대해서

자발성은 필자가 간사 시절 분명히 마음으로 정의를 규정하였다. 그것을 리더십의 창조적 수용이다. 전국 학신이 출발 할 때 이미 한명동, 박윤선 목사와 같은 이들의 리더십에 의한 운동이었다. 당시의 학생들이 창조적으로 이런 지도력을 창조적으로 수용해서 조직하고 활동하였다. 지나친 면이 있어서 교회 쟁탈하는 일에 학생들이 가담했던 불행한 사건들도 있었다. 


자발성은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고 집행하는 것을 의미하는 시대는 아니다. 자발성은 바른 길에 대한 창조성을 가지고 적응하고 자신들의 길이라고 받아들이는 수동성도 포함한다. 물론 거부할 수 있는 권리도 있어야 한다. 여기서 대화와 타협 그리고 이를 위한 현실 인식과 방향성의 논의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교회를 중심으로 자라난 학생들이 이런 훈련에 익숙해 있어야 한다. 너무 돌보고 자란 이들이다. 교육적 배려에만 익숙한 학생들이 되었다. 여기서 학생 자발성이 성숙하기에는 너무나 힘든 현실이다.


글을 마치면서

전국학생신앙운동(SFC)는 언제나 필자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지금이라도 뛰어들고 싶은 현장이다. 저 세대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바른 개혁신앙의 틀 안에서 잘 성장하게 하고 꿈을 심어주는 일이라면 무엇이라도 하고 싶다. 그리고 주님의 교회만이 이 세상에 소망인 참된 복음을 담고 있음을 잘 설명하고 가르치고 싶다. 


비록 상처가 난 우리 교회이지만 그러나 이 교회를 위해서 충성하는 소망은 복음에 대한 충성이다. 그리고 기도가 모든 현실적인 어려움을 극복하는 힘인 것을 함께 나누고 싶다. 여기서 한국교회의 지도력이 참되게 배양된다. 


몇 해 전 한 대형교회 목사가 이런 말을 했다. 대형교회에서 리더가 배출되지 않는다. 한국교회 부흥 100주년을 맞아서 토로했던 말이다. 야성을 잃어버린 한국교회의 다음 세대이다. 편안하고 쾌적한 교육환경이 교육의 질을 높여주는 지름길인가? 학신이 가진 아름다운 소망 주님의 교회를 위한 열정과 헌신과 더불어 이제 교육적 배려와 삶의 장에 대한 바른 고려로서 캠퍼스에 대한 이해가 함께 어우러지는 것을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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