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폭력이 심각하다!

▲ 임경근 목사 다우리교회 담임 코닷연구위원
  학교가기 무서운 세상이 되었다. 학교 폭력 때문이다. 학교 폭력에는 육체적 폭력도 있고 영혼을 다치게 하는 정신적 폭력도 있다. 아이들이 내뱉는 욕설과 비속어들이 하는 아이와 듣는 아이 모두의 양심을 무디고 거칠게 만들고 있다. 요즘 아이들은 욕설이 들어가지 않으면 대화가 안 된단다. 이런 학교 폭력으로부터 누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의 자녀도 예외는 아니다. 피해자 일 수도 있고 가해자 일 수도 있다. 몇 달 전 대구에서 학교폭력에 시달리던 중학생이 자살을 했다. 재판에서 피해자 부모는 가해자를 엄벌해 달라고 눈물의 호소를 했단다. 그도 교사란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이런 학교폭력사건이 적지 않다는 데 있다. 심각한 것은 자살에 이른 학교폭력은 언론에 알려 지고 주목을 받지만 이와 비슷한 수준의 폭력이 알려지지 않은 채 우리 아이들의 학교와 주변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학생과 교사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 폭력 사건을 쉬쉬하며 덮어두기 때문에 밖으로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어떤 학교 교문에 이런 구호를 써 놓은 것을 보았다. “폭력 없는 학교가 되자!” 함께 그 문구를 읽은 딸이 이렇게 말했다. “아빠! 저 학교에는 폭력이 있나 봐요! 저렇게 써 붙인 것이 오히려 폭력이 있는 학교라고 선전하는 것 같아요!”


과거의 학교폭력

  필자가 30여 년 전 중.고등학교 다닐 때에도 폭력은 있었다. 화장실 뒤편에서 친구끼리 싸움을 하거나 약자를 괴롭히는 일이 있었다. 학교 밖에서도 그런 일들이 있었다. 요즘처럼 일진회라는 조직적인 형태는 아니지만 소위 ‘논다’는 무리들이 있었다. 그들이 있는 골목을 피해 먼 길을 일부러 둘러간 적이 많았다. 필자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술에 취한 깡패 같은 대 여섯 명의 학생들로부터 억울하게 폭행을 당한 적이 있다. 이유 없이 폭행당했고 당시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 그 일로 인한 상처는 지금도 큰 흔적으로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다. 사후 처리 방법도 몰라 그냥 덮어둘 수밖에 없었다. 성인들은 과거에 이런 크고 작은 부당한 폭력을 다 경험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학교폭력에 못 이겨 자살을 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학교폭력이 곳곳에서 자살이라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은 근래 일어난 변화이다. 학교폭력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요즈음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왜 일까? 과거 우리는 어지간한 폭력도 잘 참고 이겨냈지만, 요즘 아이들은 패기(깡다구)가 없어서일까? 그렇게 단순하게 풀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더 복잡하고 다양한 요인들이 있을 것이다.


요즘 학교폭력의 실상

  요즘 학생들의 폭력은 그 종류도 다양하다. 그 구체적인 사례를 보면 ‘빵셔틀’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힘이 센 학생에게 종처럼 매점에서 빵을 대신 사다주는 심부름꾼을 말한다. 어떤 때는 돈도 주지 않으면서 빵을 사오라고 한단다. 이를 거부하면 신체적 폭력을 가한다고 한다. 신체적 폭력으로는 ‘차기’, ‘때리기’, ‘침 뱉기’, ‘흉기로 위협하기’, 등이 있다. 이런 신체적 폭력 외에도 ‘피해자 물건 빼앗기’, ‘돈이나 금품갈취하기’, 등이 있다. 언어를 사용한 정신적 심리적 폭력이 있는데 ‘모욕을 주는 말하기’, ‘차별하는 말하기’, ‘신체적 폭력을 가하겠다는 위협의 말하기’, ‘개인 약점 들추고 모함하기’, ‘신체적 특징에 대해 놀리기’ 와 ‘공개적으로 망신주기’, ‘집단에서 소외시키기’, ‘지속적으로 귀찮게 하는 행동’, ‘대화 거부하기’, ‘비웃기’, ‘쓸데없이 심부름 시키며 하인 부리듯 하기’, ‘장난을 빙자하여 괴롭히기’, ‘학용품, 돈, 물품 등을 감추거나 버리기’, ‘고립시키기’(왕따) 등이 있다. 이런 일들은 학교 수업 중간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 그리고 방과 후 학교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방과 후 학교 밖에서 일어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모든 시간을 교사들이 지도 감독할 수 있을까? 학교 내에서 벌어지는 폭력만이라도 교사가 책임져달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 사실 그것조차 교사에게 버거운 일이 아닐까 싶다.

  

그리스도인도 학교폭력에 예외일 수 없다!

  그리스도인의 자녀들은 이런 학교폭력에서 예외일까? 그리스도인 자녀들은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무풍지대에서 살고 있을까? 수 년 동안 기독교학교에서 일한 경험으로 보건데 학교폭력에 노출된 그리스도인 자녀들이 학교에서 신체적 그리고 정신적 폭력에 시달리다 대안학교를 찾는 경우를 적지 않게 보았다. 그리스도인 자녀라도 이런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리스도인도 이 학교폭력의 실태를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제도적 조치로 충분할까?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나서고, 총리가 움직이고, 심지어 대통령까지 발 벗고 나섰다. 복수 담임제도를 실시하고, 가해학생을 즉시 출석 정지시킬 수 있도록 하며, 폭력 사건을 방치하면 교사를 직무유기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여러 가지 강도 높은 대책이 쏟아지고 있다. 이런 대책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수많은 대책이 있지만 그 효력은 미미했던 과거를 기억하면 그렇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할까? 정부의 대책만 의지하고 있을 일이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적인 인간관과 성경적 교육관 위에서 학교 폭력의 실상과 원인이 무엇인지 찾아보고 적극적인 대책을 세워 보는 것이 어떨까? 그리스도인 교사는 이런 학교폭력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그리스도인 학교 경영자는 학교폭력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고민하려 한다. 학생들의 폭력은 학교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방과 후 아이들이 가는 게임방, PC방, 학원을 비롯한 친구 또래집단의 모든 삶의 장에서 일어난다. 그리스도인은 이런 사회 환경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고 우리 그리스도인 자녀들을 어떻게 보호해야 할지 고민하려 한다. 그리스도인 가정은 학교폭력에 대처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교회는 학교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언약의 자녀들을 어떻게 교육하고 보호할 것인가? 그리스도인 학생들은 이 폭력이 난무한 사회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우리 앞에는 결코 쉽지 않은 숙제가 놓여 있다. 이런 쉽지 않은 숙제를 기독 전문가들의 글을 통해 깊이 있게 고민하고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코닷 연구위원회에서는 이번 주제에 대한 글을 다음 분들에게 부탁드렸다. 바쁜 가운데 원고를 써 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독자들은 글쓴이들에 대해 존경과 겸손으로 건강한 제안과 의견을 개진해 주면 좋겠다.  

 

글 싣는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학교폭력, 원인은 무엇이고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좋은교사 대표: 정병오)

2. “학교폭력, 현장 기독교사로서의 고민과 대안적 노력” (분당수내중학교 교사, 박숙영)

3. “학교 경영자 입장에서 본 학교폭력과 대책” (두레자연고등학교 교장, 임태규)

4. “학교폭력과 가정” (기독교대안학교연맹 사무총장, 마병식)

5. “학교폭력과 사회의 관계” (우석대학교 교수, 강영택)

6. “마지막 정리”(다우리교회 목사: 임경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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