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우 박사, 부인, 두 아들에 이별편지 "행복하게 떠납니다"

▲ 故 강영우 박사
당신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보내주신 날개 없는 천사였습니다.

부인, 두 아들에 이별편지 "행복하게 떠납니다"


 

"너희들과 함께 한 추억이 내 맘속에 가득하기에 난 이렇게 행복한 마지막을 맞이할 수가 있단다."


"아직도 봄날 반짝이는 햇살보다 눈부시게 빛나고 있는 당신을 난 가슴 한 가득 품고 떠납니다."


시각장애인인 전(前) 백악관 차관보 강영우 박사는 임종을 앞두고 아내와 두 아들에 남긴 편지를 남겼다.


강 박사는 지난해 10월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고 차분하게 세상과 이별할 준비를 해왔고 가족들에게도 마지막 편지를 써내려갔다.


23일(현지시간) 별세한 강 박사의 가족이 전한 편지는 그가 가족과 함께 하며 행복했던 순간을 회고하고 부인 석은옥 여사와 진석, 진영 두 아들에 대한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빼곡히 담고 있다.


"이제 너희들과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로 시작되는 두 아들에 보내는 편지는 "내가 너희들을 처음 품에 안은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너희들과 이별의 약속을 나눠야 할 때가 되었다니, 좀 더 많은 것을 나누고, 좀 더 많은 것을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이 밀려온다."고 두 아들과 헤어지는 아픔을 담았다.


그는 "하지만 너희들이 나에게 준 사랑이 너무나 컸기에, 그리고 너희들과 함께 한 추억이 내 맘속에 가득하기에 난 이렇게 행복한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단다"라며 두 아들을 키우는 과정의 추억을 회고했다.


강 박사의 장남 진석(39. 폴 강)씨는 지난해 워싱턴포스트에 의해 `슈퍼 닥터'로 선정되기도 한 유명 안과전문의이며, 차남 진영(35. 크리스토퍼 강)씨는 백악관 선임법률고문으로 활약하고 있다.


그는 "해 보기전에는 결코 포기하지 말라는 나의 말을 가슴 속깊이 새긴 채로 자라준 너희들이 고맙고, 너희들의 아버지로 반평생을 살아왔다는 게 나에게는 축복이었다."며 특히 지난해 연말 췌장암 판정을 받은 후 손자들까지 모든 가족이 함께 했던 크리스마스가 "너무나 소중한 선물이었다."고 아들들에 감사의 뜻을 표했다.


강 박사는 "내가 떠나더라도 너희들은 혼자가 아니기에 너희들 곁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늘 항상 함께 할 것이기에 아버지는 슬픔도, 걱정도 없다"며 "나의 아들 진석, 진영이를 나는 넘치도록 사랑했고 사랑한다."고 편지를 맺었다.


`사랑하는 아내에게'라는 제목이 붙은 부인에 보내는 편지는 젊은 시절 첫 만남부터 회상하며 시작했다.


"당신을 처음 만난 게 벌써 50년 전입니다. 햇살보다 더 반짝반짝 빛나고 있던 예쁜 여대생 누나의 모습을 난 아직도 기억합니다. 손을 번쩍 들고 나를 바래다주겠다고 나서던 당돌한 여대생, 당신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보내주신 날개 없는 천사였습니다."


1962년 서울맹학교 학생이던 강 박사는 맹학교 자원봉사를 나왔던 당시 숙명여대 1학년이던 부인 석은옥 여사를 처음 만났다. 강 박사는 `대학생 누나'였던 석 여사의 도움으로 대학 진학의 꿈을 키웠고 1972년 두 사람은 결혼했다.


강 박사는 "앞으로 함께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이 순간에 나의 가슴을 가득 채우는 것은 당신을 향한 감사함과 미안함"이라며 시각장애인인 자신과 결혼하고 보살펴준 부인의 헌신적인 삶을 떠올렸다.


미국 유학, 이민 생활의 어려움을 회상하며 "시각장애인의 아내로 살아온 그 세월이 어찌 편했겠느냐"며 "항상 주기만 한 당신에게 좀 더 잘해주지 못해서, 좀 더 배려하지 못해서, 너무 많이 고생시킨 것 같아서 미안하다"고 회한도 담았다.


"지난 40년간 늘 나를 위로해주던 당신에게 난 오늘도 이렇게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미안합니다. 더 오래 함께 해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내가 떠난 후 당신의 외로움과 슬픔을 함께 해주지 못할 것이라서..."


강 박사가 "나의 어둠을 밝혀주는 촛불"이라고 지칭한 부인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는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고마웠습니다."는 말로 맺었다.


1944년 경기도 문호리에서 태어난 강 박사는 13세때 아버지를 여의고 이듬해 축구공에 눈을 맞아 망막박리로 시력을 잃었고 같은 해 어머니까지 세상을 떠나 10대 가장으로 생계를 책임지는 불우한 청소년기를 겪었다.


역경과 고난을 딛고 연세대를 졸업한 뒤 1972년 미국으로 유학길에 올라 피츠버그대에서 교육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강 박사가 미국 유학을 떠날 당시 문교부(옛 교육과학기술부)는 장애를 해외 유학의 결격사유로 규정했지만 강 박사의 유학으로 이 조항이 폐지되면서 그는 한국 장애인 최초의 정규 유학생이 되는 기록도 세웠다.


그는 박사학위 취득 후 일리노이대 교수와 일리노이주 특수교육국장 등을 역임하다 지난 2001년 조지 부시 행정부에서 백악관 장애인위원회 정책차관보로 발탁됐다.


당시 강 박사의 백악관 차관보 발탁은 미국 이민 1백년 한인 역사상 최고위 공직이었다.


그의 자서전 `빛은 내 가슴에'는 7개 국어로 번역 출간됐고, 국회 도서관에 음성도서(talking book)로 소장되어 있을 뿐 아니라 드라마와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장애인 인권을 제도적으로 증진시키기 위해 강 박사는 국제교육재활교류재단을 창설했으며 유엔 세계 장애위원회의 부의장을 역임하며 루스벨트 장애인상 제정을 제안하고 창설하기도 했다.(워싱턴=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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