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영택 교수 우석대학교 교육학과
학교폭력 문제가 다시 우리사회의 핫이슈로 등장하였다. 계기는 작년 12월에 발생한 대구한 중학생의 자살사건이었다. 그 사건을 시작으로 연이어 발생한 학생들의 자살사건이 학교폭력과 관계있음이 드러나자 방송과 신문은 연일 학교폭력의 문제를 보도하였다. 결국 정부는 2012년 2월 6일 학교폭력근절 종합대책을 발표하였는데, 그 내용은 학교폭력에 대한 교장과 교사의 권한과 역할, 책임의 강화, 학교폭력 피해학생의 보호와 가해학생에 대한 엄중한 처벌, 학생 인성교육의 활성화, 폭력적 게임중독 예방을 위한 제도개선, 학교와 학부모, 지역사회의 공동 대책 마련 등 실로 광범위한 방안들이 총망라되어 있었다. 

학교폭력 문제는 가끔씩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는 단골메뉴 가운데 하나이다. 치명적인 사건이 발생하면 떠들썩하게 관심이 집중되다가 시간이 지나면 조용히 사라지는 대표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이번 정부의 종합대책에 대해서도 사회각계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1998년 DJ 정부 때 학교폭력 및 유해환경 단속을 강화하며 학교폭력 대책을 마련한 바 있고, 2005년 참여정부 때에도 스쿨폴리스 제도를 시행하는 등 학교폭력을 막기 위한 노력을 하였다. 그러나 학교폭력은 줄어들기는커녕 꾸준히 증가하면서 오히려 광포화 되고 있는 실정이다. 


학교폭력의 문제에 대해 번번이 정부 차원의 종합대책이 마련되기도 하고, 학자들의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고, 여러 단체들의 실질적인 노력도 기울이고 있건만 왜 학교폭력은 줄어들지 못하는 것일까? 그 원인과 관련하여 필자는 두 가지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싶다. 첫째는 대책마련과 실천에서 지속성의 결핍이고. 둘째는 학교폭력 근절을 위한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의 결핍이다. 이 두 가지에 대하여 좀 더 생각해보도록 하자.


  첫째, ‘실천의 지속성’ 문제는 학교폭력에 대한 문제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태도와 관계한다. 만일 자기 자신의 자녀가 폭력의 피해자가 되어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면 그 학생의 부모가 되는 정부정책가나 학교교사는 단지 사회적 관심이 집중될 때에만 이 문제에 매달리고 곧 잊어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학교폭력의 문제를 최우선적 해결과제로 삼고 오랜 시간이 걸려도 지속적으로 문제해결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학교폭력 근절을 위해서는 학교폭력의 문제가 우리국민 모두의 시급한 과제라는 인식이 우선되어야 한다.

  

불행하게도 여러 가지 조사결과는 학교폭력이 우리 모두에게 이미 심각한 수준으로 가깝게 와있음을 알려준다. 연세대학의 김재엽 교수팀의 연구는 서울과 경기지역의 중고등학생 중 48%가 지난 1년간 폭력을 경험했다고 발표했다(연합뉴스, 2012.1.06).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의 연구에 따르면 전국 초중고 학생들에게 “학교폭력이 일상화되면서 학생들이 폭력 불감증에 빠져들고 있고, 가해율 증가 등 집단화 현상이 두드러졌다.”고 한다. 중고등학생의 절반 정도가 학교폭력을 경험했고, 더구나 학교에서의 폭력이 일상화되어 학생들 중 56.8%가 폭력을 목격 시 모른척한다고 했고, 학교폭력을 행하는 학생 중 55.5%가 장난 또는 이유 없이 폭력을 행사했다고 한다. 학생들 가운데 가해학생들이 점차 증가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이다(2009년 기준 12.4%).


  위의 연구조사는 학교폭력이 얼마나 광범위하고 뿌리 깊게 학교사회에 자리 잡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므로 특정 사건이 발생할 때 일시적으로 관심을 갖다가 곧 무관심하게 되는 현상이 반복해서는 결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학교폭력 문제가 우리 자녀를 고통 속으로 밀어 넣고, 우리 가정과 사회를 파괴하는 주범임을 분명히 인식하는 동시에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경험하는 아픔을 공감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예수님께서 고통가운데 있는 자들을 대할 때 그들의 아픔을 체휼하신 것처럼 말이다.


  둘째, 학교폭력의 근절은 ‘근원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이 아니고는 불가능하다. 학교폭력 사항을 학생기록부에 기록하여 가해학생에게 불이익을 주고, 일진 경보제를 도입하고, 폐쇄회로 카메라 설치나 스쿨 폴리스를 증대시키는 방법으로는 학교폭력문제를 해결하는데 분명한 한계가 있다. 학교폭력의 근절을 위해서는 원인에 대한 분명한 진단과 원인을 제거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학교폭력은 이제 더 이상 폭력성향이 강한 일부 학생의 문제가 아니다. 학교폭력이 일상화되도록 폭력을 방관하고 오히려 조장하는 학교와 우리사회의 문제이다. 한 사회학자는 학교폭력이 일상화되는 원인으로 문화적ㆍ제도적 배경을 제시하였다. 즉, 학교와 사회에 만연한 군대문화, 개인(집합)이기주의와 선민의식, 인권ㆍ시민ㆍ공동체의식의 부재, 서열문화 등과 같은 문화적 배경과 정치제도의 후진성, 경제적 빈부격차와 상대적 박탈감, 권위주의적 가족제도, 경직된 교육제도 등의 제도적 배경이 학교폭력의 근저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학교폭력의 원인으로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로 소통ㆍ감성 능력의 약화”나 “성적 중심의 입시위주 교육으로 인성교육의 소홀”을 지적한 것은 적절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대책으로 학교교사에게 학교폭력의 책임을 묻고, 학교에 인성교육과 예술교육을 강화할 것을 주문한 것은 올바른 대책임에도 불구하고 그 실효성에 의문을 품게 한다. 우리나라의 대부분 학교들이 사회의 과도한 경쟁시스템 하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사회의 문화적ㆍ구조적 변화 없이 학교교육에서 인성교육이나 예술교육의 강화를 기대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학교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은 학교폭력의 원인(遠因)이 되고 있는 우리사회와 학교의 문화적ㆍ제도적 변화를 도모하는 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먼저, 교육을 학교에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 우리사회의 중요한 과제로 받아들이고 전사회적인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마을이다.’라는 말은 아프리카 속담이지만 마을 공동체가 기능했던 우리나라에서도 적용되었던 명제이다. 아이에 대한 교육과 보살핌은 아이를 둘러싼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다면 더없이 효과적일 것이다. 많은 사람 사이의 따뜻한 인간적 유대감 속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폭력의 가해자가 된다는 것은 생각하기가 어렵다. 학교와 지역사회에서 인격적 만남의 공동체적 경험을 많이 한 학생들이 인성과 학력의 면에서 긍정적으로 발달했다는 것은 국내외 연구의 공통적인 결과이다. 그래서 최근 지역사회를 학교교육의 울타리 안으로 포함시키려는 시도가 일어나고 있다. 여기에서 교회의 중요한 역할을 생각할 수 있다. 먼저 교회는 교회출석 학생들에게 인격적 만남의 장이 되어주어 따뜻한 공동체적 경험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교회는 지역사회의 학교 학생들에게 돌봄 제공자로서의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풍부한 인적 물적 자원을 가진 교회는 공부방 운영, 상담교사 지원, 멘토링제 운영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학생들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인간의 존엄성과 평화를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건강한 사회가 건강한 학교를 만든다.’라는 미국 교육학자의 말은 우리나라에서도 정확하게 적용된다. 인간에 대한 존중 대신 권력에 의한 차별이 자행되고, 성적과 학력과 학벌이 권력으로 인식되는 사회에서는 폭력이 제도화되고 폭력에 대한 허용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런 사회에서는 학생의 성적에 따라 학교의 서열화와 학급의 우열화가 당연시되고, 이는 교육적 차별로 이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차별을 경험한 학생들은 체력의 강함이나 집단의 힘을 이용하여 그것을 갖지 못한 학생들을 폭행함으로 심리적 보상을 충족시키려 할 것이다. 이런 사회와 학교에 있는 모든 이들은 폭력의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학생 한 명 한 명이 자신의 능력과 적성에 맞는 교육을 받되 차별받지 않는 교육을 제공받는 학교는 인권의 가치를 존중하고 인간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의 제도와 문화 속에서 가능할 것이다. 여기에 기독교의 중요한 역할이 있다. 인간의 존엄성과 평화(샬롬)에 대한 강조를 성경보다 더 잘 제시하는 것이 있는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고, 예수그리스도가 죽기까지 사랑한 인간의 존엄성과 구약 선지자들의 메시지의 핵심이었던 평화를 우리사회의 중요한 가치로 만드는 일은 바로 우리 기독교인들의 과업이라 할 수 있다. 우리사회를 보다 따뜻하고 평화로운 공동체로 만드는 일이 학교폭력을 근원적으로 예방하는 길임을 분명하게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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