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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경근 목사 다우리교회 담임 코닷 연구위원
학교폭력 문제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특별히 지난 세 달 동안은 온 국민의 관심을 모았다. 서울시에서 결정한 학생인권조례와 관련하여 정부와 언론이 이 부분을 더 이슈화 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어쨌든 이 문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학교폭력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개인과 가정과 사회가 함께 노력해야 할 문제임에 틀림이 없다. 최근 정부에서 여러 대책을 내놓았다. 이 대책만으로 문제가 쉬 해결될까? 


기획기사!

이번에 코닷은 그리스도인의 관점에서 학교폭력 문제를 어떻게 보고 해결할 것인가를 기획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문제를 보는 시각과 대안은 다를 것이라는 기대로 시작한 기획이었다. 역시 그리스도인 전문가들이 학교폭력 문제를 접근하는 방식은 남달랐다. 단순한 문제 해결에 급급한 접근이 아니라 더 근본적인 원인을 지적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가정과 범사회적인 노력이 필요함을 지적해 주었다. 글을 써 주신 좋은교사 대표 정병오, 수내중학교 교사 박숙영, 두레자연고등학교 교장 임태규, 대안학교연맹 사무총장 마병식, 우석대 교육학과 교수 강영택 등 글쓴이들께 감사한다. 기독교사 선교단체, 교사, 교육행정가, 부모, 그리고 사회의 입장에서 대안을 제시했다. 구체적이고 좋은 제안들이었다. 


교회는 학교폭력과 무관한가?

마지막으로 필자는 학교폭력에 대한 교회의 역할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교회는 어쩌면 학교폭력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을지도 모른다. 교회는 학교폭력의 조장자도 아니고 학교폭력의 피해자도 아니다. 그러나 학교폭력이 일어나는 곳은 그리스도인 교사가 일하는 곳이요, 그리스도인 학생이 다니는 곳이다. 이렇게 교회의 회원인 성도가 학교폭력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교회는 이 문제에 결코 무관심할 수 없다. 그러면 교회는 학교폭력과 관련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교회 고유의 역할에 충실하라!

이런 중요한 사안 앞에서 우리는 먼저 교회의 고유역할을 짚어보아야 한다. 그리고 교회가 교회 본연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교회의 고유 역할을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의 백성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만드는 것(마 28:18-20)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사도들)을 교회로 부르시고 말씀을 맡기셨다. 예수님이 하늘로 승천 하신 후 사도들은 교회에 직분자를 세웠고 말씀을 전수했다. 지금도 교회에는 사도들이 전해 준 말씀을 선포하는 직분자(목사)가 있다.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선포함으로 교회로 부르신 자들을 말씀을 가르쳐 세례를 주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제자로 만들어야 한다. 제자란 주님의 말씀을 잘 지키는 자이다. 교회가 이 역할을 충실하게 잘 할 때 그 역할을 다 했다고 볼 수 있다. 교회에서 가르침을 받고 양육 받은 예수님의 제자들은 세상으로 나가 삶의 각 영역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 즉 그리스도인들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뿐 아니라, 학교 폭력 문제에서도 기독교적인 영향을 세상에 끼치게 된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그리스도인 학생, 학교에서 일하는 그리스도인 직원(교사와 행정가), 교육관련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하는 그리스도인들, 그리고 사회 여러 영역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에 기독교적 영향을 미친다. 교회는 바로 성도들이 세상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제대로 하도록 말씀으로 잘 가르치는 역할을 한다. 이것이 교회 고유의 역할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안타깝게도 교회가 고유의 역할에 충실했느냐, 라는 질문에 잘하고 있다고 대답할 수 없다. 한국 교회는 세속적 성공주의에 깊이 물들어 있으며 생명 존중의 정신이 부족해 보인다. 한국 교회는 그리스도인 가정이 건강하도록 가르치지 못했다. 가정에서 신앙생활이 역동적으로 이루어지도록 가르치지 못했다. 

  

이번 코닷 기획 학교폭력에 대한 그리스도인 전문가들이 하나같이 지적한 학교폭력의 근본적인 원인이 바로 교회가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것들이다. 이제 교회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세속적 성공주의를 벗어나라!

우리 아이들은 지금 무한경쟁에 내 몰리고 있다. 이기는 자는 좋은 자리에 ‘선발’되지만, 패배자는 ‘배제’되는 냉혹한 현실을 학교와 사회에서 배우고 있다. ‘선발’과 ‘배제’의 원리는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의 기본원리이기도 하다. 인간의 욕망과 욕심을 자극해 경쟁 속에서 이겨야 된다고 가르치는 교육방법은 성경적이지 않다. 그런데 이런 세속적 성공주의가 우리 교회 속에도 깊숙이 들어와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좋은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사람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말하고 이런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한경쟁에서 이겨야 한다고 세상은 말한다. 신앙인들도 이런 세상의 주장에 속아 세속적 성공을 위해 많은 것들을 희생하고 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신앙을 희생시키는 것이다. 현재 우리 아이들은 신앙훈련을 받을 시간도 없이 학교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주일에 예배를 빠지면서까지 학교와 학원을 오간다. 교회의 주요 직분자의 자녀도 예외가 아니다. 꽤 유명한 모 목사는 자신이 아는 거의 대부분 목사들이 그 자녀들을 주일에도 학원에 보내더라고 말했다.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교회는 성경적인 가치를 교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아이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각각 다양한 능력과 적성을 받았다. 교회는 아이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능력과 은사를 감사하고 만족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영어나 수학 성적이 나쁘면 그 외 다른 재능이 있어도 열등감을 느끼며 사는 것이 현재 사회 분위기이다. 교회는 이런 아이들이 하나님 앞에서 바른 자존감을 갖도록 가르치고 격려해야 한다. 자신들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고 독특하고 존귀한 존재임을 깨닫도록 가르쳐야 한다. 하나님의 평화와 사랑과 공의를 세상에 전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훈련해야 한다. 학교 교육은 한계가 있다. 누가 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교회가 아니고는 할 수 없다. 주님께서 바로 이것을 교회가 하도록 부탁하셨다.   

  

이런 맥락에서 수능 시험 날 교회에서 기도회를 하거나 자녀가 소위 일류대학에 들어갔다고 감사헌금을 하는 것, 또는 이를 교회적으로 광고하는 일 등은 피하는 것이 좋다. 성도들로 하여금 세속적 성공주의를 따라가도록 조장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교회는 더 깨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교회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기울이지 않는다면 교회 아이들은 전쟁을 방불케 하는 경쟁 속에서 신앙과 인격이 파괴될 것이고 결국 비 신앙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폭력에 노출될 것이다. 

   

생명의 소중함을 가르치라!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청소년의 자살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친구 관계에서 정신적 폭력과 신체적 폭력으로 고통 받던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택하는 방법이 자살이다. 참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많은 청소년들이 생명에 대해 무지하다. 생명이 무엇인가에 대한 개념이 없다. 자살을 할 정도로 심각한 고통 속에 있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생명을 자신이 해치는 것도 폭력이고 하나님 앞에서 죄임을 알아야 한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해하는 것과 자신의 생명을 해하는 것이 대상만 다를 뿐 동일한 폭력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생명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생명은 하나님의 소유이다.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된다. 그런 생명에 대한 바른 개념을 교회가 가르쳐야 한다. 자살하면 지옥에 간다는 식의 공포감만 주는 교육이 아니라 생명의 소중함을 가르치고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특별히 정신적ㆍ신체적으로 연약한 자들을 더 돌아보고 도와주어야 하는 사랑의 정신을 가르친다면 학교 분위기는 한 층 나아질 것이다. 청소년들이나 청년들이 준비되지 않은 임신을 하고 쉽게 낙태를 선택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배 속의 생명을 힘으로 폭력을 행사해 죽이는 것은 신앙인으로서 할 수 없는 일이다.   

  

교회는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가르쳐야 한다. 만약 교회가 생명을 사랑하도록 교육한다면 아이들은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폭력을 쓰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생명에 대해서도 하나님 안에서 가치를 찾게 될 것이다. 생명의 소중함과 관련해 가르쳐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건강한 가정을 회복하라!

학교폭력과 관련해 교회가 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기여는 그리스도인 가정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교육 전문가들이 지적한 것처럼 건강한 가정에서 건강한 아이들이 나고 건강한 아이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학교와 사회가 점차 건강해질 것이다. 교회는 각 성도의 가정이 제대로 서도록 도와야 한다. 가정이 중요하다고 말만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한국 교회의 특징은 신앙생활이 가정 중심이 아니라, 교회 중심이라는 것이다. 교인들은 수많은 예배와 교회 행사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결과적으로 교회 중심의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사람은 정작 자신의 가정을 챙길 겨를이 없다. 부모는 교회 생활에 열심이지만 그의 자녀는 신앙의 울타리 안에서 자라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교회는 성도의 가정이 신앙 안에서 온전히 자라도록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가정예배의 회복

성도의 가정을 세울 구체적인 방법으로 가정예배를 들 수 있다. 종교 개혁가들이 개혁했던 여러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는 가정의 개혁이었다. 중세 천 년 동안 가정은 신앙생활의 장이 아니었다. 신앙생활은 교회 중심과 사제 중심으로 연명되었다.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은 사제나 수도승이 되거나 수녀가 되었다. 이에 비해 반면 가정을 이루고 신실하고 훌륭한 남편과 아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는 것은 신앙적으로 수준이 낮다고 믿었다. 그러나 종교 개혁가들 대부분은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었다. 루터도 결혼했고 칼뱅도 결혼해 가정을 이루었다. 가정에서 남편과 아버지는 가정의 영적 리더로서의 역할을 감당했다. 당연히 그들은 매일 가정예배를 드렸다. 이 전통은 산업혁명 때까지 신실한 기독 가정에서 지속적으로 지켜졌던 전통이다. 그런데 삶이 분주해지고 세속화의 영향이 커지면서 점점 가정예배를 드리지 않게 되었다. 신앙생활의 영역이 가정까지 확대되었다가 다시 교회중심으로 전환 된 것이다. 100여 년 전 한국에 복음을 전한 초창기 선교사들은 가정예배를 경험해 보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우리에게 가정예배를 적극적으로 가르치지 않았다. 그 결과 한국 교회는 가정예배의 중요성을 배우지 못했고 교회중심의 신앙생활만 전해 받았다.  

  

우리는 가정예배를 회복해야 한다. 이것이 학교폭력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물론 당장 드러나는 효과를 보기에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성도의 가정이 가정예배를 드림으로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하나님 안에서 회복될 것이다. 자녀가 신앙적으로 훈련을 받게 되면 학교나 사회에서 일어나는 폭력에 신앙적인 대처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요즈음 비 신앙인들 사이에서도 ‘밥상머리 교육’을 대안적 방법으로 많이 얘기한다. 온 가족이 함께 식사를 나누고 간단한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부모와 자녀의 신뢰 관계가 형성되고, 자녀는 정서적인 안정감을 얻게 된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그런 자녀들은 학업 성취에서도 우수한 결과를 낸다고 한다. 이 밥상머리 교육은 종교 개혁가들이 이미 오래전에 실천했던 방법이다. 개혁교회 전통을 보면 온 가족이 함께 육의 양식을 먹는 식사와 영의 양식을 먹는 가정예배 시간이 연결되어 있다. 아침과 저녁으로 온 가족이 모여 식사할 때 아버지가 대표로 기도하면 식사가 시작된다. 식사 중에는 가족들이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눈다. 이 시간을 통해 가족 간의 친밀한 교제가 일어난다. 그리고 식후에는 간단하게 식탁을 정리하고 바로 성경을 읽는다. 이후 함께 찬송을 하고 기도를 하면 식사가 마무리 된다. 

  

이 시간은 온 가족이 하나님 앞에서 함께 하는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이다. 필자는 가정예배 카페(http://cafe.daum.net/family-worship)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마무리 하며

교회는 교회로 바르게 서 있는 것이 중요하다. 교회가 교회의 역할을 제대로 잘 감당할 때 결과적으로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학교폭력 문제 역시 교회가 교회의 본래 기능을 충실하게 잘 수행할 때 문제를 본질부터 근원적으로 해결하는데 튼튼한 토대를 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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