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은 대한기독사진가협회 고문 엄영수 목사의 작품이다.

 

설한예찬(雪寒禮讚)   김재술 목사


나는 일 년 중 가장 좋아하는 계절을 선택하라면 주저하지 않고 겨울을 말합니다. 추위도 적당히 추운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영하 15도 정도, 칼바람이 매섭게 불어대는 맹추위, 콧속에 얼음이 얼 것 같은 날씨, 숨쉬기도 힘든 날이지만 그런 날은 시원해서 좋습니다. 아직까지 자랑할 것은 못되지만 아무리 추워도 내복을 입지 않고 삽니다. 어떤 때는 입었다가 다시 벗어버립니다. 갑갑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추운 날, 거리를 거닐면 서늘해서 좋고 속 창자까지 시원해서 좋습니다.


나는 화초에 관심이 많습니다. 가끔 친구들에게서 억지로 얻어다 키우기도 합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오래가지도 않고 시들시들 죽어버립니다. 화려한 철쭉, 풍성한 해송, 이끼 위에 폼 잡은 풍란도 시들하다가 죽어버립니다. 수도 없이 죽이면서도 무슨 용기인지 또 얻어 옵니다. 미안한 맘으로 “저거 주라”하면 가져 가라합니다. 그리고 “다시는 오지 말라”합니다.


지난번에는 이름은 모르지만 꽤 좋을 것 같은 난을 또 가져왔습니다. “반갑기는 하지만 죽으면 어찌나”하고 베란다에 각시같이 모셨습니다. 추운 겨울, 밖에 유리문 열어두고 날밤을 지낼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신기하게도 얼어 죽지 않았습니다. “틀림없이 얼어 죽었을 거야!”하고 보면 얼지도 않고 죽지도 않고 살아남아 있었습니다.


어느 날 베란다에 문을 열어보니 살아준 것만도 감사한데 그 난에서 꽃대가 세 개나 올라와 수줍은 듯 방긋이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한 대에 난 꽃이 열두 송이씩이나 초롱초롱 매달려 있었습니다. 꽃은 연한 밤색에 흰 줄이 가지런히 쳐져 있었습니다. 향을 심호흡으로 맡아보면 어찌 그리 매운 향을 토해내는지, 속이 후련해졌습니다. 아내가 내 등 뒤에서 그 꽃을 보며 “여보, 추워야 꽃이 핀대요.” 하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런가? 추워야 꽃이 핀다?”


중국 황벽선사는 이런 선구의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不一時番寒徹骨, 爭得梅花撲鼻香, (불시일번한철골, 쟁득매화박비향)

매서운 추위가 한 번 뼈에 사무치지 않았던들, 어찌 매화가 코를 찌르는 향기를 얻으리요.“


칼바람의 엄동, 혹독한 추위가 있었기 때문에 깊고 독한 향기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을 노래하였던 것입니다. 낮과 밤이 있듯이 인생의 밀물과 썰물의 날들도 반드시 오기 마련입니다. 동면하고 있는 나무들을 흔들어 깨우는 봄바람과 여름의 비는 만물을 성장케 합니다. 그리고 가을 서리와 겨울의 눈은 다시 만물을 더욱 성숙케 한다고 합니다.


이제 아무도 막을 수 없는 봄이 순간마다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그 길목에서 그 찬란한 봄을 기다려 봅니다. 6학년 초로의 머리 위에도 봄은 노고 있습니다. 녹슨 심장이 피가 뛰어 설레게 합니다. 들뜬 마음으로 봄날을 사는 것은 약동하는 삶을 행한 의욕이며 청순한 젊음을 그리워하는 애틋한 향수 같은 것입니다. 혹한이 꽃망울을 터뜨리게 하고 향을 토하게 하는데, 어찌 보면 우리는 추위를 잃어가고 있는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미래의 엄청난 재앙을 몰고 올 지구의 옹난화 현상, 우리 주변 곳곳에 추위를 모르고 자라난 세대들의 고통을 보면서 살고 있습니다.


역사는 인생의 혹독한 추위를 극복한 사람들의 발자국입니다. 뉴턴, 레나 마리아, 헨델, 링컨, 록펠러, 사고로 50번이나 수술을 하고 살아서 간증을 하고 다닌 조웬, 그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사람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그들을 위대하게 했습니까? 그들은 미래에 대한 꿈을 잃지 않고 살았습니다. 고통과 무서운 취위 속에서 살아남았습니다. 조개속에 이물질이 진주가 됩니다. 죽을 만큼 고생도 해 본 사람이라야 사람이 됩니다.


온실에서 자란 나무는 큰 집의 기둥이 될 수 없습니다. 사회의 온실, 사정의 온실, 그 온실에 따스한 봄바람만 불게하면 안 됩니다. 살을 도려내는 찬바람도 들어오게 창문도 열어놓아야 합니다. 배고픈 설움도 알려주어야 합니다. 가난이 무엇인지, 돈 벌기가 얼마나 힘든지도 보여 주어야 합니다. 부자병(Affluenza)을 깨트려보자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식이라면 거짓말 할 때 매도 들어봐야 합니다. 봄이 오면 또 겨울이 올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추워야 꽃이 핀다는 사실을.

(이글은 코닷에 소개된 김재술 저 [곁에 있는 행복] 중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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