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유광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교육학
한국교회는 19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면서 고도의 경제성장과 맞물려 놀라운 수적(數的) 성장을 이루었다. 많은 교회들이 개척되었고, 또 많은 교회들이 대형화 내지는 초대형교회(메가처치 megachurch)가 되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성장의 동력(momentum)을 상실하였고 수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에 놓이게 되었다.1)

   

한국교회는 사회적으로는 신뢰를 상실하고 있고,2) 내부적으로는 비성경적인 이단의 가르침이 계속 횡행하고 있다. 1990년대에 오대양사건, 다미선교회의 시한부종말신앙, 영생교주사건, 탁명환 씨 피살과 연관된 아가교사건 등 사이비 종말론이나 사이비종파로 말미암아 홍역을 치루었다. 그리고 2000년대에는 특별히 신천지의 집요한 공격으로 한국교회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대복에 의하면, 한국교인들의 96%가 이단으로부터 접촉을 받아본 적이 있다고 한다.3) 최병규는 오늘날 이단의 침투전략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4)


지금은 평신도들의 생활 속으로 이단사이비 단체들과 불건전 단체들이 침투하고 있는 시대이다. 이단들은 평신도들의 가정을 방문하여 설문 조사를 벌이고, 성도들을 그들의 성경공부반(선교방, 복음방, 다락방 등 다양한 명칭으로 일컬어져 왔음)에서 공부한 다음에 그들의 신학교로 등록시키고 있다. 심지어는 이단에 속한 자들이 ‘자연스럽게 전도된 척하면서’ 교회로 침투하여 들어와서 성도들에게 접근하고 그들을 이단 단체로 데려가고 있다. 또 그들 가운데 일부는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장기적으로 침투해 있으면서, 목회자들의 신임을 얻어 교회에서 중직을 차지하고 있는 이들도 있다. 그리고 이단들이 앞으로 또 어떤 전략으로 기성 교회를 공격해 올지 모른다.


이단의 공격에 대해 이만열은, “한국교회가 자기 정체성을 갖지 못하고 윤리성을 회복하지 못함으로써 생기는 문제일 수 있으며, 이것이 직접적 원인이 아니더라도 교회가 말씀 중심의 기독교 본연의 모습을 간직하지 못하고 물량주의, 기복신앙, 반지성주의로 흘러가기 때문에 불건전한 사이비종파들이 그 속에서 번식했다”5)고 지적한다.

침체의 위기상황을 돌파하고자, 2007년 한국교회는 평양 대부흥 100주년 행사를 기획하였다. “어게인(Again) 1907"이라는 구호를 걸고 각종 학술대회와 기념행사와 집회를 가졌다. 그러나 부흥의 분위기는 아직 보이지 않는 것 같다. 1970년에서 1990년 사이에 효과를 보았던 구호(口號)와 홍보와 프로그램과 이벤트를 통해 교회성장을 추구하고 소위 부흥을 모색하는 방법이 2000년대에는 더 이상 한국교회에 바람직한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이제 차분하게 성경이 교훈하는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 위에 교회를 세워가야 한다. 아울러 종교개혁의 역사적 교훈과 개혁자들이 집성(集成)한 교리를 오늘의 문화에 효과적으로 적용하고 가르치는 가운데 21세기 한국 땅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를 세울 수 있어야 한다. 이 글은 교회의 교리교육을 어떻게 함으로써 건강한 교회, 성장하는 교회를 세울 수 있는가를 다룬다.

 

1) 한국교회는 2006년 통계청이 “2005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를 발표하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 기독교인의 수를 1,200만 정도로 보고, 한국인 중 약 25%가 기독교를 믿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인구조사 결과를 보면, 총인구 4,728만 명 중 2,497만 명(53.1%)이 종교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 중 861만 6천 명(18.3%)이 기독교인으로 보고되었다. 이 숫자는 10 년 전(1995년)과 비교할 때에 약 14만 4천 명이 감소한 것(-1.6%)이었다. 

2) http://www.trusti.kr/ 교회신뢰도여론조사발표세미나_자료집_full.pdf (5.7M) 참고. 기독교윤리실천운동본부가 ‘2008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를 했다. 이 조사에서 일반인들에게 가장 신뢰하는 종교를 질문했다. 이에 대해 그들은 천주교 35.2%, 불교 31.1%, 그리고 개신교는 18%로 답했다. 종교가 없는 사람 가운데 개신교를 가장 신뢰한다는 비율은 7.6%에 불과했다. 개신교만 놓고 “신뢰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신뢰한다’ 18.4%, ‘신뢰하지 않는다’ 48.3%였다. 

3) 이대복, 알기쉬운 이단정체, 기독교이단문제연구소, 2003, 170. 

4) 최병규, “이단 경계 의식, 목회자부터 새롭게 해야!”, 개혁신학연구소, http://cafe.daum.net/reform25/4ofJ/8  

5) 이만열, “한국교회 성장둔화의 요인”, http://cafe.daum.net/vision12/ByT/196. [밑줄은 본 연구자의 것].

 


1. 교리란 무엇인가?

교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실제로 가르치고 설교하려고 할 때에 엄두를 내지 못하는 목회자들이 종종 있다. 교리라고 할 때에 너무 어렵게 느껴지고, 교리를 설교하거나 가르치라고 할 때에 지난(至難)하게 생각하는 교역자들이 많다. 신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이러하다면 일반 교인들이 생각하는 교리는 머리를 아프게 하는 것으로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교리는 가르칠 필요도 없고 배울 이유도 없는 것인가?

   

교리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런 교육을 어릴 때부터 받지 않았기 때문에 생소하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더욱이 오늘날의 영상(映像)문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하기를 싫어하게 만든다. 물질문화에 젖어있는 사람들이 성경의 진리,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기초와 근간에 대해 서로 논의(論議)를 한다는 것은 익숙하지 않은 일임에는 틀림없다. 매스컴에 과도히 노출되어 수동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기만 하는 사람들에게 성경의 진리에 대한 자기의 생각을 글로써 표현해 보라는 것은 그들의 몸과 마음을 얼어붙게 만드는 위협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이대로 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암환자에게 아스피린만 처방할 수 없듯이, 목회자는 자신과 그들에게 있는 “교리는 어렵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교리(敎理)란  “종교상의 이치나 원리”라고 국어사전은 정의를 내린다. 칼빈은 교리라고 번역되는 ‘독트리나’(doctrina)라는 단어를 그의 저서들에서 빈번하게 사용했다. 칼빈은 이 단어를 포괄적으로 사용하여 설교, 요리문답, 강요(綱要), 성례와도 연관시켰다. 따라서 칼빈에게 있어서 ‘독트리나’(교리)란 교회의 기초가 되는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6) 이 글에서 ‘교리’는, “성경의 근간(根幹)이 되는 것으로서, 교회의 신앙고백의 내용”으로 정의한다.

   

그러면 교리 또는 요리문답의 중심 내용은 무엇인가? 요리문답의 개요를 파악하면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다. 대부분의 요리문답서의 중심내용은 사도신경, 십계명, 그리고 주기도문이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의 경우, 그 구조는 아래와 같다.7)


1-3문답

   1 문답: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

   2-3 문답:  사람의 본분을 바르게 잘 수행할 수 있는 방법, 곧 기준, 성경. 그리고 성경의 내용.

    첫째,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믿어야 하는가?

    둘째,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바가 무엇인가?


4-38 문답: 하나님에 대하여 사람이 믿어야 할 바

  4-6 문답: 참되신 하나님과 그 속성, 삼위일체                   <35문답>

  7-19 문답: 하나님의 작정과 실행(창조와 섭리) - 성부 하나님

  20-28 문답: 구속과 구속주 – 성자 예수 그리스도

  29-38 문답: 구속의 적용 – 성령 하나님

39-107 문답: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본분

  39 문답: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본분 – 하나님의 뜻에 순종

  40-81 문답: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보이신 선한 길 –도덕법의 요약 십계명<42문답>

  82-85 문답: 인간의 불순종과 그 결과, 그것을 고려하신 새로운 세 가지 요구

  86-107 문답: 믿음, 회개, 은혜의 방도(means of grace)

     86 문답: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87 문답: 생명에 이르는 회개

    88-107 문답: 구원의 은혜를 내려주시는 수단들 – 말씀, 성례, 기도

         89-90 문답: 구원의 방도로서의 말씀

         91-97 문답: 구원의 방도로서의 성례 – 세례와 성찬

         98-107 문답: 구원의 방도로서의 기도와 주기도문              <10문답>


소요리문답의 경우 사도신경을 그 문장을 따라 해설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설명한다는 점에서 사도신경의 내용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그렇게 볼 때에 소요리문답 총 107문 중 87문답( 81.3%)이 사도신경, 십계명, 그리고 주기도문과 연관을 지닌다. 교회에서 자주 선포되고 가르쳐지는 이 세 가지가 교리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교리를 멀리 그리고 어렵게 느낄 이유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러면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의 구조는 어떠한가?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의 구조는 아래와 같다.

서문 위 로 1-2

I. 인간의 비참함

   A. 율법 (제2의 용도) 3-5

   B. 창조/타락 6-8

   C. 공의와 자비 9-11

II. 인간의 구원

   A. 서론
1. 하나님/인간의 중보자 12-18
2. 복음에 의해 알게 됨 19
3. 믿음과 구원 20-22

   B. 사도신경                            <총 42문답>
1. 사도신경과 구조 23-25
2. 성부 하나님 26-28
3. 성자 하나님 29-52
4. 성령 하나님 53-64

   C. 성례
1. 서론 65-68
2. 세례 69-74
3. 주의 만찬 75-82
4. 천국의 열쇠들 83-85

III. 인간의 감사

   A. 서론 86-91

   B. 십계명 (율법의 제 3의 용도) 92-115  <총 24문답>

   C. 주님의 기도 116-129          <총 14 문답>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의 경우, 총 129문답 중 80문답(62%)이 사도신경, 십계명, 주기도문에 근거하고 있다.


이상에서 볼 때에 교리는 목회자나 교인들로부터 멀리 동떨어져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교리들에 대해 체계적으로 정립한 개혁 또는 장로교 신앙의 유산을 발전시키거나 가르치지 않은 교회 지도자들에게 있다.

 

6) 양금희, “죤 칼빈의 교육사상”, 신학과 목회 (영남신학대학교, 1997). 230. 

7) http://blog.naver.com/soonlight5/15560488 “소요리 문답을 통한 교회교육”  2005/07/28 23:47입력. 2012, 3, 30 발췌.

 


2. 교리의 필요성

오늘날 기존 교회를 집요하게 공격하며 교인들을 미혹하는 집단 중에 신천지가 있다. 그들이 기성교회의 교인들을 공격하는 ‘모략’ 중에 사도신경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방법이 있다. 신천지 교인이 기성 교회의 교인에게 접근하여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1) 사도신경은 사도들이 만든 것이 아니다? 이것은 모든 교회가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사도의 가르침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사도신경이라고 하는 것이지, 사도들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사도신경이라고 하지 않는다. 따라서 신천지의 지적은 틀리지 않았다.


   2) 사도신경에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라고 되어 있는데,

“베드로의 증언을 사도행전 2장 22-23절에서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법 없는 자의 손을 빌려 예수를 못 박아 죽였다고 했다. 또 사도행전 4장 8-10절에는 백성의 관원과 장로들(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했다. 그리고 스데반은 사도행전 7장 52절에서 ‘의인이 오시리라는 말을 듣고도 그 의인을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라.’고 하였다.”8)


따라서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은 것이 아니라고 신천지는 주장하고 따라서 사도신경은 틀렸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그러나 사도행전 2:23절에서 “너희가 법 없는 자의 손을 빌려 예수를 못 박아 죽였다”라고 했는데, 여기서 ‘법 없는 자’는 빌라도를 포함한 로마 군병들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빌라도는 재판권을 가지고 있는 로마 총독이었고, 따라서 역사적이고 법적인 책임이 빌라도에게 있음을 고백하는 내용이다. 따라서 신천지의 비판은 성립될 수 없다.


   3) '거룩한 공(catholic)회'에 대한 신천지의 비판은 어처구니가 없다. 그들은 교회가 ‘거룩한 공회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이 공회가 거룩한 일을 했는지, 공회에 대하여 성경을 통해 알아보자. 그 시대 공회가 어떤 일을 하였는지 마태복음 26장 59절에 보면,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님을 죽이려고 거짓 증거를 찾는 곳이 되었고 거짓 증인들이 모이는 장소가 되었다. 오늘날도 공의와 공도로 계시된 진리를 전해 주는 자들을 해하기 위해 모이고 있지 않은가? 마태복음 27장 1절을 본바,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기도한 것이 아니라 새벽부터 대제사장, 장로들, 서기관들 곧 온 공회가 예수님을 결박하여 총독에게 끌고 가려고 의논한 곳이다. 또 사도행전 5장 12-27절에도 사도들을 능욕하고 잡아들인 곳이 바로 이 공회이다.


사도 바울이 끌려 간 곳(행 22:30)도 이 공회이다. 사도행전 23장 12절 이하에 보면 사도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자지도 않고 밥도 먹지 않겠다고 모여 음모한 자들이 이 공회에 속한 자들이었다. 이 공회야말로 사단 마귀가 맡긴 일을 수행한 곳이라 할 것이다. 참 진리의 계시가 전파되는 것을 방해하고 거짓말을 지어내어 살인하는 마귀의 소굴이었다. 이 곳이 어찌 거룩한 공회란 말인가?


신천지는 복음서와 사도행전에 기록된 ‘공회’를 사도신경의 ‘공회’로 오해하고 있다. 사도신경에 나오는 교회와 관련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I believe in the Holy Ghost; The Holy Catholic Church; The Communion of Saints;). 사도신경에서 말하는 ‘공회’는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말하는 산헤드린 공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공회’는 보편적인 교회 즉 나이, 인종, 문화, 재산 등 어떤 신분이나 인종의 차별이 없이 모두가 포함되는 교회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신천지의 주장은 유치하고 무지의 결과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상에서 볼 때에 교리를 정확하게 알면 이런 이단의 공격을 물리칠 수 있다.


교리는 왜 필요한가? 믿음(신앙)이란 ‘무엇을’이라고 하는 목적어(내용)가 있어야 성립된다.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가장 핵심이 되는 내용(목적어)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에서 보여주는 대로 “예수님은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8:19-20에서, 이 사실을 믿고 고백하는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라고 명령하셨다. 그리고 또한 세례를 받은 이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다. 이와 같이 교리의 핵심에는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내용이 있고, 나아가 예수님이 분부하신 모든 것의 중요한 내용들이 교리의 나머지 부분을 이루고 있다. 앞에서 본 것처럼 종교개혁 이후의 교리서의 주요한 내용은 일반적으로 사도신경, 십계명, 주기도문, 그리고 성례 등으로 되어있다.

   

역사적으로 교회는 성경의 중심 되는 교리를 검증하여 신앙고백서나 요리문답서를 제정해 왔다. 교회가 제정해 왔고 또 앞으로 제정할 교리서의 기능에 대해 살펴본다. 여기서는 칼빈의 『기독교강요』(1536), 『제1차 신앙교육서』(1537), 『제2차 신앙교육서』(1541)를 중심으로 교리(doctrina)의 필요성과 교리교육의 당위성을 살펴본다.


   1) 믿음은 성경을 아는 것을 기초로 생겨나고 자라는 것이다. 따라서 어린아이들을 포함한 모든 교인들은 구원과 관계된 성경의 내용을 알아야 한다. 또한 세례를 받고 성찬에 참예할 이들은 그들의 개인적인 믿음을 교회 앞에서 고백하고 검증을 받아야만 한다. 이를 위해 교회는 공적인 신앙고백서를 마련하고 세례를 준비하는 이들이 교리적으로 준비시키는데 사용한다.


   2)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아 구원을 얻게 된 그리스도인은 이제 하나님의 자녀, 천국의 백성다운 생활[성화(聖化)의 과정]을 하나님 앞에 설 때까지 이루어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들의 믿음을 그들의 입과 몸을 통해서 고백해야 한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말로써 뿐만 아니라, 이제 부도덕한 일을 버리고, 참된 경건에 도달해야 한다. 교회의 교리서는 성경의 진리를 집약시킨 것으로서, 단순히 무엇을 믿을 것인가 만을 취급하지 않고,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행함까지도 포함시킨다. 따라서 교리서는 구원 받은 성도의 삶의 지침으로 존재한다.


   3) 교리서의 중요한 존재목적 중 하나는 성경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이다. 성경을 주의 깊게 읽지 않으면 모순되는 내용들이 들어있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라는 로마서의 가르침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선언하는 야고보서의 가르침이다. 이렇게 상호 충돌 하는 것 같은 가르침에 대해, 교리서는 이러한 내용들을 조화롭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교리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경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기능을 한다.


   4) 칼빈의 경우 『기독교강요』같은 대작(大作)을 통해서 당시의 정치, 종교 지도자들에게 개혁자들이 믿는 교리를 변증하였다. 칼빈은 또한 자기뿐만 아니라 모든 교인들이 교리서를 잘 공부함으로써 그들 자신과 교회의 신앙을 변호할 수 있기를 원했다. 교리서는 그리스도인이 믿는 구원의 도리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전도하고, 세상에 대해 성경의 진리를 체계적으로 선포하기 위해 필요하다.


   5) 신앙고백서나 요리문답 같은 교리서는 부모들과 신학지망생들과 교회 지도자들을 양성하는 도구로 활용된다. 교리서는 가정과 교회의 지도자들로 하여금 성경을 잘 이해함으로써 바른 가르침이 가정과 교회로부터 시작하여 세상에 널리 확산되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6) 교회가 공인하는 교리서가 있게 될 때에, 하나의 지역 교회 안에서 동일한 신앙고백이 이루어짐으로써 신앙고백 공동체를 이루는데 크게 기여하게 된다. 나아가 모든 개혁교회가 성경에 근거한 교리서를 채택하게 될 때에 이를 중심으로 일치를 이루고 그 일치를 지속할 수 있게 된다.

 

8) Daum 지식. URL BD%C5%B0%E6&srchid=NKS3ir4D. http://k.daum.net/qna/view.html?category_id=QNO009&qid=3ir4D&q=%BD%C5%C3%B5%C1%F6+%BB%E7%B5%B5%

 


3. 교리교육이란?

교리교육이란 교회가 제정하거나 받아들인 교리를 교인들[세례/입교교인, 유아세례교인, 학습교인, 원입(願入)교인]에게 가르치는 활동이다. 교리교육을 통해 교회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인격(人格 person)과 사역(事役 works)을 알고 믿고 고백하며, 그 교리를 따라 행동하는 사람들을 양육한다.


   1) 교육의 두 가지 면

   교육을 한 마디로 정의를 내리라고 하면, “배우는 자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가르치는 자의 의도적인 활동”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교육 활동에 두 가지 면이 있다. 즉 교육은 가르치는 사람이 지식, 태도, 기술 등을 학생들에게 주입(注入) 또는 전달하는 활동(impression)이 있는가 하면, 배우는 사람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숙지(熟知)하고 내면화(內面化)하여 삶으로 표현(expression)하는 활동이 있다. 이 두 가지가 모두 있을 때에 교육은 온전해진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고 보여주신 후에 제자들이 입으로 그리고 삶으로 신앙고백을 하게 하신 것에서 이것이 잘 드러난다.


   2) 교리교육의 두 가지 목표

   교리교육은 성령님의 주도적인 일하심과 도우심 가운데, 성경에 기초하여 이루어진다. 그리고 교리교육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교리교육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돕는데서 출발하며, 궁극적으로 그의 인격과 삶을 닮아가도록 돕는 교육활동이다.

   

교리교육이 추구하는 목표는 예수님의 지상명령(至上命令)으로 알려진 마태복음 28:19-20에 잘 나타나 있다. 이를 간단히 요약하면 “제자를 삼는 것”이라고 할 수 있고, 제자를 삼는 일은 두 단계로 나누어진다. 첫째 단계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것이다.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나의 구주가 되시고, 나의 주, 나의 왕이 되심을 고백하는 사람이 받는다. [언약의 자녀로서 유아세례를 받은 이들은 신앙고백을 통해 입교(入敎)하게 된다.]

   

예수님을 믿고 입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가 주어진다. 교회사를 돌아보면 교리교육은 일차적으로 세례를 받고 성찬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시행되어졌다. 교리교육의 첫 번째 목표는 예수님이 누구시며 어떤 일을 하셨는가를 가르침으로써 수세(受洗)나 입교를 통해 성찬에 참여하는 권리를 주기 위한 것이다.

   

제자 삼는 일의 두 번째 단계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들에게 예수님이 분부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일이다. 수세자(受洗者)는 한 지역교회의 정식(full membership) 교인이 된다. 이제 그는 예수님이 분부하신 모든 것을 배우며 지키는 사명을 받게 된다. 이 사명은 이웃과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전도적 사명)과 성경적인 문화를 사회에 정착시키고 확산시키는 일(문화적 사명)을 포함한다. 주님의 분부하신 것을 내가 먼저 배우고 지키며, 나아가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지키게 하는 일이다.

   

교리교육은 단순히 한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어 구원을 얻게 하는 데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교리교육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가르치고 삶을 통한 신앙고백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데서 꽃을 피워야 한다. 이것이 교리교육의 두 번째 목표이다.


   3) 교리교육이 추구하는 변화

   교육은 배우는 사람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활동이다. 긍정적인 변화란, 결국 사람들로 하여금 입으로 그리고 행동으로 신앙고백을 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성숙하도록 하는 것이다. 가르치는 사람은 어떻게 이런 긍정적인 변화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나타나게 할 수 있겠는가?

   

첫째로, 앎(지식)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교사는 예수님이 누구시며 과거에 어떤 일을 하셨고,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시며, 또 장차 하실 일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야 한다.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성품과 사역(person and works)에 대해 알지 못하고는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또 믿음이 자랄 수도 없다. 예수님을 알게 하기 위해 부모나 교사는 가르침을 받는 이들에게 성경을 읽어주고 스스로 읽게 하며, 성경과 교리(신앙고백서 또는 요리문답)를 가르쳐주어야 한다. 교리교육은 모든 교인들이 교리의 내용 중 몰랐던 것을 알게 하고, 막연하게 아는 것을 체계적으로 알고 기억함으로써 변증(辨證)할 수 있도록 하는 데까지 변화를 추구한다.

   

둘째로, 느낌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가르치는 사람은 교리를 가르칠 때에 신앙고백서 또는 요리문답에 기록된 내용을 지식적으로 전달하는데서 그쳐서는 안 된다. 반드시 교사는 교리에 나타난 하나님의 마음과, 이 교리가 죄인들과 구원 받은 사람들에게 미치는 결과를 깊이 공감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한 감정까지도 학생들에게 전할 수 있어야 한다.

   교리교육이 이러한 감정의 변화를 가져오는데 상당한 한계(限界)가 있었음을 교회사에서 볼 수 있고, 오늘 우리의 현실에서 경험할 수 있다. 교리를 가르치는 사람은 따라서 단순히 교리의 내용을 지식적으로 전달하고 끝내려고 하는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교사는 반드시 교리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 그리고 사랑과 공의를 느낄 수 있어야 하고, 두려움과 감사, 그리고 자유와 기쁨과 희망을 경험해야 한다.

   

감정은 전염된다. 스페인 속담에 “내가 불붙지 않고서는 다른 사람을 불붙일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교사의 마음에 교리를 알아감에 근거한 감동이 있을 때에, 학생들의 마음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사람의 심금(心琴)이 울리지 않고는 진정한 의지(意志)의 변화를 가져오기는 어렵다.

   

셋째로, 의지적(意志的)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 교리를 통해 하나님을 지식적으로 알게 될 때에, 무겁던 마음이 가벼워지기도 하고, 어둡던 마음이 밝아지기도 한다. 이런 변화가 있을 때에, 사람들은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며 헌신하기도 한다. 이러한 의지적인 변화가 있기 위해서 교사는 자신의 경험이나 다른 사람의 예화(例話)를 이야기해 줄 수 있다. 교리를 개인과 공동체의 삶에 적용할 때에 의지적인 변화가 발생하게 된다. 믿음이란, 지식의 변화에서 출발하여 감정의 변화로 발전하고 의지적인 변화에서 일단 완성된다.

   

감정의 변화에서도 나타나지만, 특별히 의지적인 변화는 신앙고백을 가리킨다. 의지적인 변화는 주로 입으로 하는 신앙고백이다. 예를 들자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니 나도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예수님이 나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나를 위하여 부활하셨으니, 예수님은 나의 구주시오, 나의 주이십니다.” “하나님이 거짓을 미워하시니,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넷째로, 행동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지식과 감정과 의지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행동에서 꽃을 피우게 된다. 그러나 행동의 변화라고 하는 것은 단번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신앙적인 행함은 때로는 수십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삶에 정착되는 것이 일반적인 우리의 현실이다. 삶을 통한 신앙고백이란 예수님의 인격과 삶을 본받는 데서 드러나며, 십계명을 따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가운데 구체적으로 표현된다. 이런 신앙고백은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4. 교리교육을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까지 교리의 필요성과 교리교육의 목표와 교리교육을 통해 추구하는 변화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이제 21세기 한국교회가 교리교육을 어떻게 시행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몇 가지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제안을 한다.


   1) 칼빈의 경우, 그가 교리교육을 강조한 이유는 교리 자체가 1차적 목적이 아니었다. 칼빈이 교리교육을 강조한 이유는 교인들이 성경을 잘 알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교회는 성경을 가르치는 일을 힘써야 한다. 칼빈은 주로 설교를 통해서 성경을 가르쳤다. 칼빈이 활동하던 16세기 제네바의 많은 사람들이 문맹 상태에 있었다. 그리고 당시에 성경은 희귀했고 비쌌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성경을 소유했고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현실은 그때와는 다르다.

   

한국교회는 설립 초기부터 사경회(査經會)를 강조해왔고, 1970년대 이후에는 성경공부를 위해 힘써 모이고 있고, 개인 묵상시간(QT)도 지속적으로 강조되고 있다. 강의식 성경공부와 소그룹 성경공부, 개인 묵상시간은 계속해서 강조되고 시행되어야 한다. 성경 본문을 관찰하고 해석하고 적용하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 본문을 직접 상고(詳考)하는 것은 교리공부가 갖고 있는 한계를 넘는 특별한 은혜가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성삼위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형성은 교리공부를 통해서보다는 성경공부를 통해서 보다 효과적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성경을 강해하는 설교와 더불어 목회자는 성경을 가르치는 일에 힘써야 한다.

   

한국교회는 그러나 상대적으로 초대교회와 개혁교회가 강조해오던 교리교육을 소홀히 하였다. 교리공부는 성경의 부분을 전체적인 안목에서 볼 수 있게 하고 신앙의 뼈대를 세우게 한다. 교리공부를 소홀히 할 때에 신앙생활이 감정의 기복에 따라 요동하며, 이단사설(異端邪說)에 쉽게 넘어가는 경향이 생기게 된다. 따라서 이제 한국교회는 성경강해 중심의 설교 그리고 성경공부와 더불어, 교리교육에 관심을 갖고 힘써야 할 때이다.


   2) 교리는 성경의 근간이지만, 또한 시대적이고 문화적인 영향에 의해 부분적으로 강조점이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인의 심성과 문화 그리고 21세기의 상황에 적합한 한국교회의 요리문답이 신중하게 개발되어야 한다. 비록 쉬운 일이 아니고, 또 단시간에 합의에 이르기는 어렵겠지만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이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같은 비중이 있는 한국적인 교리서와 신조를 작성하기 위한 시도는 빠른 시일 내에 시작되어야 한다.

   

이러한 결과가 속히 나타나기는 어려울 것이기에, 우선은 웨스트민스터 교리표준이나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을, 오늘 한국적인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교재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교재는 교리표준 자체를 알기 쉽게 풀이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어야 할 뿐만 아니라, 21세기 한국교회와 사회가 당면한 이슈들에 대한 성경적인 해답을 제시하고 말씀을 따라 경건하게 살아가도록 돕는 것이어야 한다.


   한국적인 교리의 예를 몇 가지 들어본다.

예1.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1) 하나님은 영이시다.

  2)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며,

                  사랑이시며

                  공의로우신 분이시다.

  3) 하나님은 무한, 영원, 불변하시다.


예2.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1) 하나님의 아들(독생자, 참 하나님, 참 사람)이시다.

  2) 나를 포함한 그의 백성의

          구주(구원자)이시다.

  3)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만유의 주가 되시며,

          나의 주님이시다.


예3. 예수님은 그의 백성을 어디에서 구원하셨나?


  1) 죄에서 구원

  2) 죽음에서 구원

  3) 영원한 심판에서 구원


예4.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만유의 주,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나와 그의 백성들의 의무와

  그를 통해 우리가 누릴 은혜는?


  1) 그의 백성들은

          그에게 복종해야 한다.

  2) 그는 그의 백성들의

          이생과 내생의 일들을 책임져주신다.


예5. 구원을 받은 사람이 회개를 할 필요가 있는가?


  1) 하나님의 온전하심을 닮음             마5:48; 빌 2:12-14; 롬8:29

  2) 친밀한 교제/기쁨의 회복을 위하여     눅15:11-32

  3) 더 큰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하여        사무엘하 11장 

  4) 징계를 받기 전에 문제를 해결함       히12:4-8

  5)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기 위하여       딤후 2:20-22


   3) 교육에는 준비성(readiness)의 원칙이 있다. 학습자의 인지능력이 준비되어지고, 또 학습자가 배우려는 관심과 의욕과 동기가 있을 때에 교육은 바람직한 결실이 있게 된다. 칼빈의 경우 『제1차 신앙교육서』는 서술형식으로 기록했으나, 스트라스부르 사역을 통해 부쳐의 영향을 받아 『제2차 신앙교육서』는 문답식으로 기록했다.

   

교리교육이 필요한 것이긴 하지만, 처음으로 교회생활을 시작하는 원입교인들에게 본격적인 교리교육을 부과하는 것은 그들의 준비성을 생각할 때에 바람직하지 않다. 원입교인들을 위해서는 현재 많은 교회들이 시행하고 있는 새가족교육을 활성화시키거나, 복음서(예수님의 생애) 성경공부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후 학습교육이나 세례교육에서 성경읽기와 소교리문답을 중심으로 가르치는 것이 합당하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교리교육에 있어서 나선형구조(spiral curriculum)를 따르는 심화학습이 필요하다. 즉 초신자들에게는 가장 기초적인 교리교육을 실시하고, 신자 가정의 어린이와 청소년[입교(入敎 confirmation)준비 교육으로서] 또는 교사양성반이나 서리집사 임직의 과정에서 『소교리문답』을 가르친다. 다음으로 청년대학부 또는 안수집사와 권사 교육과정에 『대교리문답』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그리고 장로 임직 교육 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가르치는 단계학습 및 심화학습의 교과과정이 필요하다.9) (그러나 반드시 이 순서를 따라서 할 필요는 없고, 각 교회의 형편에 맞는 교과과정이 세워져야 할 것이다.)

   

종종 학습과 세례/입교 교육을 형식적으로 하는 교회가 있다. 물론 특별한 경우 당회가 이런 과정을 간소화할 수 있는 권한을 헌법적 규칙이 허락하고 있다.10) 그러나 일반적인 경우 학습과 세례/입교 교육을 강화하고, 당회가 심사하는 과정을 보다 충실하게 할 필요가 있다.

   

이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쉽지 않다고 해서 하지 않으면 신앙고백 공동체로서의 교회라고 하기가 어렵게 된다. 아울러 하나됨과 거룩성과 보편성과 사도성을 지니는 교회가 될 수 없다. 따라서 교리교육은 학습자의 형편을 고려하여 단계적으로 심화(深化)학습하는 방법으로 이뤄져야 한다.


   4) 교리교육을 위해서는 교리문답을 설명하고 암기하도록 하는 주입식 방법으로 가르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함께 오늘날 사람들의 심성을 고려하여 교수방법을 개발해야 한다. 특별히 논리적 접근에 지나치게 의존하는데서 벗어나서 실존적(학습자의 현실에서 출발하는) 접근법을 활용해야 한다. 연역적인 방법 외에는 교리교육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서 귀납적 방법을 도입해야 한다. 그리고 발견학습과 협동학습 방법을 활용함으로써 학습자의 관심과 흥미를 북돋우며 교리교육의 효과를 높일 수 있어야 한다.11)

   

특별히 교회는 어린이들을 위한 교리교육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교회는 교사를 양성하고 방법을 개발하고 시간을 확보하여 실행해야 한다.


   5) 설교자는 성경을 중심으로 강해하며 적용하는 설교의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 이와 함께 설교자의 성경해석은 교리에 어긋남이 없도록 주의해야 하며, 아울러 성경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교리를 언급해야 한다. 이로써 감정에만 근거하는 신앙생활이 아니라 신앙의 체계를 세워나가는 방법을 설교자는 시도해야 한다. 이에 대해 조성국은 아래와 같이 지적한다.12)


교리교육을 위한 프로그램이 없다고 해도 설교와 교육은 전반적으로 교리교육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일반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교리교육은 대부분의 경우 설교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자신의 공적 설교가 교회의 공적 가르침(교리)에 일치하는지 확인해야 하고, 긴 맥락에서 체계적인 공적 교리형성에 기여하는지 점검해야 하고, 성경의 전체적인 공적 가르침을 균형있게 제시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개혁교회는 매주 오후 또는 저녁 예배 시간에 교리설교를 하도록 했다. 이러한 전통을 따라 한국교회도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을 중심으로 주일 오후/저녁이나 수요기도회 시 교리설교를 하는 방법도 시도해야 한다. 매년 반복적으로 같은 교리문답을 할 필요는 없겠으나, 3-5년을 주기로 한 번씩 반복함으로써 신앙고백공동체임을 확인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교리설교가 딱딱하고 지루하고 남는 것이 없는 시간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설교자는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교리설교는 힘들고 재미가 없다는 고정관념을 벗어나서 오늘을 사는 성도들의 문제로부터 접근하는 실존적 방법을 사용한다면 유익이 있을 것이다.


   6) 교회(당회)는 유아세례 시 세례 받는 어린이의 부모에 대해, 그리고 입교나 세례를 받으려는 이들에 대해, 교리에 대한 지식과 신앙(경건의 삶)을 비교적 엄격하게 점검해야 한다. 그리고 이명(移名)오는 교인들에 대해서도 교리지식과 경건의 삶을 점검한 후 교회원의 자격을 주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찾아보기 힘든 성찬예식의 참여 여부를 장로들의 심방을 통해 심사하는 과정을 점진적으로 회복해야 한다. 이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구역장과 교구장을 중심으로 자기에게 맡겨진 식구를 돌보는 것을 통해서 가능한 일이다. 이를 통해서 교리와 경건의 삶을 점검하고, 효과적인 치리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개혁교회의 전통이 회복되어야 한다.

   

칼빈의 경우, 그는 제네바 교회의 거룩성을 유지하기 위해 성찬예식 참여자를 분별하여 허락하였다. 그리고 권징을 통하여 교회의 거룩성을 유지하며 범죄한 성도들을 진리 위에 세우는 일을 성실하게 수행했다. 한국교회도 성찬을 통해 교회의 거룩성을 지키고 권징을 통해 부도덕한 행위와 성경의 진리에서 떠난 이들을 경책해야 한다.

   

목사는 장로들과 더불어 성찬예식이 요식행위가 되지 않도록, 성도들을 돌아보며 믿음으로 성찬에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영혼을 돌보는 일에 있어서 목사와 장로의 책임 분담과 성실한 협력이 교회를 건강하게 하고 성장하게 만들 것이다.


   7) 칼빈은 신앙고백(교리)교육을 교회뿐만 아니라, 가정과 학교에서도 가르치도록 했다. 칼빈은 루터와는 달리, 신앙교육에 있어서 가정보다 교회의 역할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그러나 신앙교육의 1차적 책임이 부모에게 있음은 구약(신6:4-9)과 신약성경(엡6:4)이 분명히 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가정의 신앙교육과 관련한 역할이 많이 축소되어 있는 듯하다.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들에게 성경과 교리를 가르치는 신앙교육의 역할을 다시금 활성화 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교회는 부모들이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책임질 수 있도록 훈련시키고 가르쳐야 한다. 그리하여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들에게 성경과 교리를 가르치는 전통이 회복되어야 한다.


   8) 방과(放課)후 학교를 통해 담임목사나 부교역자가 학생들에게 교리교육을 시행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개혁교회에 있어서 목사의 주요 임무 두 가지는 설교와 교리공부를 지도하는 일이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지역성을 잃어버리고 있다. 많은 교인들이 교회당에서 반경 1 킬로미터 넘는 거리에서 살고 있다. 따라서 방과 후 학교를 할 수 있는 교회가 많지는 않겠지만, 그러나 참석 가능한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우선 시작함으로써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신앙기초를 확고하게 놓을 수 있다.


   9) 벡스터(Ricahrd Baxter)의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목사는 설교뿐만 아니라 가정 심방을 통하여 교인들의 설교에 대한 이해여부를 점검하고 성경과 교리를 확신할 수 있도록 개인적으로 지도해야 한다. 오늘날의 목회가 지나치게 프로그램과 이벤트 의존적이 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러한 방법들도 활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목회의 기초가 영혼의 돌봄(Seelsorge, soul caring)이라고 할 때에, 목회자는 반드시 일대일의 관계 또는 가족 면담을 통해 신앙을 지도할 수 있어야 한다.13)


   10) 칼빈이 16세기 제네바 교회를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우려고 노력하고 교리교육에 힘쓴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그리고 그의 설교와 저술과 편지와 교회의 행정과 심방을 통한 목회 활동은 모든 목회자가 본받아야 할 모습이다. 제네바 교회는 약 150년간 이러한 칼빈의 개혁정신을 이어갔다. 그러나 루터파의 경우, 교리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주지주의적(主知主義的) 경향은 성도들의 마음을 냉랭하게 만들었고, 기쁨을 잃어버리게 하였다. 이에 대한 반동으로 독일지방을 중심으로 17세기에 경건주의운동이 등장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개혁교회도 영향을 받게 되었다. 래토레트는 이렇게 설명한다.14)


루터파 사이에서는 점점 더 교리(敎理)를 강조하게 되었다. 바야흐로 조류(潮流)는 신앙을 신조의 규약에 지적으로 동의하는 것으로 만들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일종의 ‘개신교 스콜라철학’(Protestant Scholasticism)인 신학적 토론을 루터가 생각했던바 신앙의 자리에 대치시켰는데, 즉 루터에 의하면, 신앙은 지식(知識, intellect)의 단 한 부분이 아닌 전인(全人, the entire man)의 헌신을 의미했다... 이에 대한 반응으로서 제 17세기에 경건주의(敬虔主義, Pietism)가 일어났다. 경건주의는 감정을 강조했고, 의지의 복종과 개종(conversion)을 부각시켰다. 또한 ‘역사적 고백들’(the historic confession)에 대체로 동조하면서도 이것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이러한 역사가 주는 교훈은, 진정한 경건을 상실한, 교리에만 국한된 메마른 정통에 대한 경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성경과 교리에 철저하게 뿌리를 내리면서도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에 대한 열정-표출되거나 내재적일 수도 있는-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예배를 포함한 신앙생활에서 감정의 표현을 과장하거나 억압하는 태도를 지양(止揚)해야 한다. 아울러 언약신학에 근거하여 자녀들에게 신앙교육을 신실하게 할 뿐만 아니라, 불신 이웃에 대한 관심과 전도에 최선을 다해야 하며, 세계선교에 대한 헌신과 수고가 계속되어야 한다. 이러한 꿈과 열정과 헌신은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것이다.


   11) 교리교육의 핵심에는 목사가 있다. 담임목사가 교리교육과 교회개혁 그리고 교회의 성장과 부흥에 관심이 없다면 그 교회는 거의 희망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제네바 교회의 개혁과 부흥의 중심에는 칼빈이 있었다. 그의 하나님을 향한 겸손과 열심, 그리고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 그의 신학과 조직력,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삶을 하나님이 기뻐하셨고 기쁘게 사용하셨다. 칼빈의 언행일치와 헌신된 삶을 확인하며 제네바 주민들은 결국 그를 신뢰했고, 모범적인 개혁교회를 이루었다.


   한국교회의 개혁과 부흥을 위해 가장 중요한 변화는 목사로부터 시작한다.


   한국교회는 21세기의 사조(思潮)인 해체(解體)주의, 상대주의(相對主義), 감정(感情)주의, 그리고 종교다원주의 같은 환경 속에 존재한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교인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감을 상실하고 혼합주의적인 생각에 물들어 있는 듯하다. 그리고 신천지와 같은 이단의 침투에 많은 교인들이 혼돈스러워 하며, 교회를 떠나기도 하고, 신앙을 포기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교회는 교리교육을 등한시 했던 과거를 청산하고 초대교회와 개혁교회의 유산을 회복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자체와 그 교리를 교인들에게 성실하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교인들이 성경과 교리를 정확하게 이해하며 경건의 삶을 회복할 때에, 한국교회는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구원의 방주로서, 그리고 성도들의 학교와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근실하게 수행할 수 있다.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이 성경과 교리를 교인들에게 가르치며 경건의 삶으로 인도할 때에, 한국교회는 지속적으로 개혁되어지며 하나님의 부흥이 임할 것이고, 하나님께서 크게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9) 조성국, “이단문제에 대한 예방적 대책으로서의 교리교육”, 유사기독교상담소, 바른신앙 2006(제10호), 25-27. 

10)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고신), 헌법 (총회출판국, 2011), 263. 

11) 부록 참조

12) 조성국, 앞의 글, 23. 

13) 최병규, “리처드 백스터의 교리교육적 목회와 교회의 이단대응 능력 증진과의 상관성에 관한 소고”, 유사기독교상담소, 바른신앙 2006(제10호), 30-47.. 

14) 케니스 래토레트, 윤두혁 역, 기독교사(중) (생명의말씀사, 1980), 355.

 


<참고> 귀납적 방법을 사용한 교리공부의 예


십계명 상고--제1계명   누구를 섬길 것인가?--참 예배의 대상은?


소교리문답 

45문. 제1계명은 무엇입니까?

답. 제1계명은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말라”입니다. (출20:3, 신5:7)


46문. 제1계명에서 요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제1계명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심과

        우리의 하나님이심을 알고 인정하는 것과,

        그리고 합당하게 그를 경배하고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신26:17,  마4:10, 시95:6-7. 29:2)


47문. 제1계명이 금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제1계명이 금하는 것은

        참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

        곧 그분을 하나님으로 그리고 우리의 하나님으로 경배하지 않고 영화롭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에게만 합당한 경배와 영광을 다른 것에게 드리는 것입니다.

        (시14:1,  롬1:21,  시81:9,  롬1:25)


48문. 제1계명에 있는 “나 외에는”이라는 말씀은 우리에게 특별히 무엇을 가르칩니까?

답. 제1계명에 있는 “나 외에는”라는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만물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어떤 다른 신을 섬기는 죄를 중히 보시고

                매우 노여워하신다는 것입니다.

        (히4:13,  대상28:9, 시44:20-21, 신30:17-18)


<다니엘 3:1-13을 읽으십시오>

1. 느부갓네살 왕이 무엇을 만들었습니까?

2. 느부갓네살 왕이 만든 것을 옆에 그림으로 그려보십시오.

(한 규빗은 팔꿈치에서 손가락 끝까지의 길이로 약 45센티미터)

3. 느부갓네살 왕이 이 신상을 만든 이유가 무엇일까요?

4. 신상의 낙성예식에서, 참석한 사람들은 어떤 명령을 받았습니까?

5. 그 명령에는 어떤 처벌 조항이 붙어 있었습니까?

6.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명령에 복종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7. 누가 그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습니까? 그들이 신상에 절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8. 사람들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불복종을 왕에게 참소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9. 느부갓네살 왕이 노하고 분하여 한 까닭이 무엇일까요?

10. 왕은 그 세 사람을 어떻게 했습니까?

11. 왕의 회유에 대해 그 세 사람이 취할 수 있는 반응을 적어도 4 가지로 생각해 보십시오.

12. 그들은 그러한 상황에서 왕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했습니까?

13. 그들이 그렇게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14. <사례연구>

    

김영명 씨(가명)는 삼우항공의 정비부장입니다. 그는 입지전적인 사람으로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삼우항공에 입사하여 25년간 근무하면서 정비공에서부터 시작하여 정비부장의 위치에 올랐습니다. 그 동안 야간대학을 다니면서 기계공학과를 졸업했고, 얼마 전에는 석사학위도 받았습니다. 그는 10여 년 전 딸의 전도를 받아 교회를 출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부산 삼실교회의 서리집사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 삼우항공은 부도위기에 있었는데 이때에 한국의 10대 그룹에 속하는 태경재벌이 회사를 인수하였습니다. 회사를 새로 인수한 김동만 회장(가명)은 독실한 불교신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회사는 얼마 전 새로이 2,500만 불짜리 기계를 수입하여 공장에 들였습니다. 그 기계를 시운전하는 날 회장은 고사를 지내도록 하라고 사장에게 지시하였습니다. 오늘은 고사를 지내는 날입니다. 회장으로부터 사장과 이사들이 돼지머리 앞에서 엎드려 절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부장들의 차례가 되어 김영명 씨 차례도 다가오고 있습니다.


1) 이때에 김영명 씨가 취할 수 있는 방책들을 다 찾아 말해 보십시오. (세 사람씩)

2) 당신이 김영명 씨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15.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자기의 호의를 무시했을 때에 왕은 어떤 명령을 내렸습니까?

16. 왕의 명령은 어떤 결과를 가져왔습니까?

17. 하나님께서는 그 세사람과 느부갓네살 왕에게 어떤 교훈을 주십니까?

18.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19.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마음을 약하게 만드는 일들에 어떤 것이 있습니까?

    당신이 겪었던 실패와 성공의 경험들을 이야기해 보십시오.

20. 하나님만을 섬기기 위해 당신이 다니엘의 세 친구로부터 배워야 할 것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21. 소교리문답 45-48문답을 외우십니까?

        이 문답이 명하는 것과 금하는 것은 무엇인지 요약해서 말해 보십시오.

22. 당신은 제1계명에 비추어서 잘 하고 있는 것과 고쳐야 할 것 한 가지씩 말해 보십시오.

23.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라는 고백을 당신은 하시겠습니까?

저작권자 © 코람데오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