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에 영향을 끼친 책들(2)

바르트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으므로 길게 소개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는 독일 본에서 교의학에 대한 저술을 시작했는데, 이 책이 20세기 개신교신학의 고전으로 불리는 <교회교의학>(Kirchliche Dogmatik)이었다. 이 책은 전4부(13권)의 9,000쪽이 넘는 방대한 저술로서, 역사적·철학적·교의학적 자료들로 가득 찬 역작이자 새로운 통찰력을 보여주는 20세기의 고전적 신학적 저술로 평가 받아왔다.

바르트는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많은 저술을 남겼다. 그는 나치 독일에서 고백교회를 이끌어 갔던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이었고, 1934년에는 국외로 추방당했던 일련의 사건들은 정치적인 문제에 무관심할 수 없게 만든 직접적인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당시 독일 교회의 히틀러와의 싸움에서 생산된 신앙고백문서인 ‘바르멘 선언’(Barmen Declaration)은 근본적으로 바르트 신학에 기초한 것이며, 상당부분은 바르트의 글이다. 그는 평화주의적 입장을 선호했다. 즉 동서간의 철의 장막 제거와 핵무기 사용을 반대한 점이 그의 입장을 보여준다. 위대한 교회의 신학자이자 평화를 희구했던 그는 모차르트가 즐겨 불렀던 도나 노비스 파켐(Dona nobis pacem)을 좋아했다고 한다.

20세기에 가장 큰 영향을 준 4번 째 책은 J. R. R. 톨킨(Tolkien, 1892-1973)의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이다. C. 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The Chronicles of Narnia)와 함께 20세기 판타지 문학의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반지의 제왕은 우리나라에 영화로 소개되어 낯설지 않다.

톨킨은 영국의 저명한 작가로서 천주교 신자였는데, 1892년 1월 3일 남아프리카의 블로엠폰테인에서 출생했다. 그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영국으로 돌아왔지만 그의 아버지는 남아프리카에서 그가 4살 때 사망했고, 가톨릭으로 개종한 그의 어머니는 톨킨이 12살 때 세상을 떠났다. 버밍헴 근방에서 자란 톨킨은 킹 에드워드 문법학교를 거쳐 옥스퍼드 대학에서 수학했다. 그의 나이 16세 때 그의 부인이 되는 이디스를 만났으나 후견인의 반대로 21살이 될 때까지 그녀와 헤어져 있게 된다. 그는 졸업과 동시에 결혼하였고, 곧 1차 세계 대전에 영국군으로 참전하기도 했다. 전역한 후에는 옥스퍼드 영어사전의 편찬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으나, 잠시 리즈대학의 교수로 일했다.

그러다가 1935년 옥스퍼드대학의 중세영문학 교수가 된다. 그 후 1937년에는 <호비트>(The Hobbit)을 집필했고, 그 속편으로 구상한 것이 <반지의 제왕>인데, 이 책을 완성한 때는 1948년으로 알려져 있다. 1954년 반지의 제왕 1,2권 출판되었고, 제3권은 1955년 출판되었다. 그는 이 책으로 일약 세계적인 판타지 문학 작가로 명성을 얻었는데, C. S. 루이스와는 절친한 친구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두 사람은 1926년부터 교분을 나누기 시작했다고 한다. 함께 문학을 공부한 공통점이 있지만, 소설을 먼저 쓴 사람은 루이스였다. C. S. 루이스가 먼저 <나니아의 연대기>를 썼는데, 이 책을 읽고 큰 감흥과 질투를 느낀 J. R. R. 톨킨이 <호비트>와 <반지의 제왕>을 썼다는 일화가 남아 있다.

그의 저작은 전 세계 30여 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되었고, <반지의 제왕>의 경우 전 세계적으로 대략 5억 6천만 부 판매되었고, 그 독자는 어린 아이에서 90세의 노인에게 이르기까지 다양한데, 독자는 약 10억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톨킨은 20세기 최고의 판타지 문학가로 불리기도 한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Heaven and Earth)을 창조하셨지만, 톨킨은 ‘가운데 땅’(Middle-Earth)의 창조자로서 전 세계 문학 애호가들과 예술가들의 사랑과 숭배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이쯤 되면 이 책이 20세기 기독교권에도 가장 영향을 키친 4번째 책으로 추천되었다는 점은 놀랄 일이 못된다. 톨킨은 1973년 9월 2일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20세기에 영향을 준 5번째 책은 존 하워드 요더(John Haward Yoder)의 <예수의 정치학>(Politics of Jesus)이었다. 메노나이트교회 윤리 신학자인 요더는 이 책을 통해 일약 세계적인 학자로 부상했다. 그의 책은 30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기까지 판을 거듭하며 광범위 하게 읽히고 있고, 미국의 많은 대학교 교양과정부와 신학부의 교제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는 한국을 방문한 바 있는 학자로서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낯설지 않다. 그의 이력을 보면 그의 저작이 오랜 신학적 수련과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통찰력, 그리고 교회와 사회를 동시에 굽어보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문제를 진지하게 숙고했던 학자의 산물임을 알게 된다.

존 하워드 요더는 1927년 12월 29일 태어났다. 메노나이트교 가정에서 출생한 그는 메노나이트계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그의 나이 22세가 되던 1949년 메노나이트 중앙위원회(MCC) 요원으로 프랑스로 갔다. 거기서 일하던 중 프랑스 여자를 알게 되어 1952년 파리에서 결혼했다. 1954년부터 1957년까지는 스위스 바젤로 가서 칼 바르트 휘하에서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학위 논문 주제는 재세례파와 종교개혁자들에 대한 문제였다. 미국으로 돌아 온 그는 1958년부터 1959년까지는 인디에나 주 고센의 고센대학(Goshen College)에서 교수로 일했다. 그러다가 1976년에는 인디에나 주에 있는 천주교 명문대학교인 노틀댐대학교의 신학교수가 되었다.

그는 천주교 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치게 된 최초의 개신교학자로서 1997년 12월 30일 세상을 떠나기까지 21년간 교수로 일했다. 물론 그는 메노나이트계 신학교에서 교수한 바가 있고 알젠틴의 부에로스아이레스에서 1년, 예루살렘에서 1년 가르치고 연구한 일도 있었다. 당시 북미 메노나이트교회는 WCC와 관계하지 않았으나 요더박사는 WCC에도 관여하는 등 폭넓은 활동을 전개했다.

그가 쓴 <예수의 정치학>은 산상수훈의 정신에 기초한 평화주의적 국가-교회간의 관계와 양 세계에 서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제자적 삶의 방식을 제시한 작품이다. 이 책은 1972년 에드머 출판사에서 출간되었고 그 후 판을 거듭했다. 1994년에는 제2판이 출간되었다. 요더의 윤리사상의 핵심은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사회적 삶에서도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주신 모범을 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요더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삶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모는 여정은 정치적 삶이었고, 그의 삶과 교훈은 사회 윤리적 의미를 지닌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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