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수 교수 전인건강학회 공동회장 고신대 국제문화선교학
부시 대통령은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그 결실을 보았다. 재임 중 사담 후세인을 체포하여 사형에 처하게 했고 재임 이후 오바마 대통령에 의해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강력한 의지의 결과였다. 부시가 사담 후세인과 김정일을 ‘악의 축’이라고 표현한 것도 악에 대한 결연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학교 폭력과의 전쟁”에도 이런 결연한 의지가 이명박 대통령과 차기 대통령으로부터 절실하게 필요한 때이다.

  

이런 강력한 의지의 필요는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인간 이해에서 기원한다. 동양의 순자의 성악설, 서양의 아우구스티누스의 인간 원죄설 그리고 철학자 니체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신(神)의 죽음을 선포한 니체였지만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했다는 점에서 성경과 일치한다. 니체는 모든 실체의 어두운 심리적 기원을 누구보다도 예리하게 폭로했다. 권력에의 의지 the will of power의 뿌리도 “타인을 능가하려는 욕구와 잔인성이”, “강자에 의한 약자의 억압을 삶의 본질적인 특징”으로 보았다는 점이다.

   

문학 평론가 정미숙은 “호모 비오랑스, 그대 이름은 폭력인가”라는 글에서 “폭력은 일부 개인에 그친 속성이 아니라 우리 내부에 잠복하고 있는 일종의 본성”, “인간의 폭력성은 경계하고 차단하지 않으면 끝없이 증폭될 수 있는 인간 본질의 질병”으로 보았다. 따라서 학교폭력에 대해 어떠한 지나친 온정주의도 경계해야 한다. 이것은 통계가 잘 보여준다. 청소년 폭력예방재단이 발표한 ‘2011 전국 학교 폭력 실태조사’를 보면 작년 한 해 따돌림, 욕설, 구타, 금품갈취를 당한 적이 있다는 학생이 5명 중 1명꼴(18%)이었고 피해 학생의 31%가 한 번 이상 자살을 생각했다고 한다. 당한 쪽은 이처럼 심각한데 정작 가해 학생은 70% 이상이 ‘장난으로’(34%) ‘상대방이 잘못해서’(20%) '특별한 이유 없이'(18%) 그랬다고 응답했다. 피해 학생 비율은 재작년 12%에서 1년 새 무려 50%나 늘었고 폭력의 양상은 날로 잔인·흉포해지고 있다. 혹자가 염려하는 대로 “자라나는 아이들 사이에 장난삼아 다툼이 일어날 수도 있는데 이를 학교폭력으로 간주, 일벌백계하다가는 한 번 실수로 학생들을 영원히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우를 범”하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 안대지만 말이다.

   

둘째, 막스 베버의 표현을 빌면 “소명으로서의 정치”와 “소명으로서의 교육”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작년 12월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 이후 정부가 학교 폭력 근절 대책을 내놨지만 학교 현장은 변하지 않았고 최근의 학교폭력 사태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 2월 여성가족부, 법무부, 경찰청 등 관계 부처와 함께 학교 폭력 종합 대책을 내놓았다. 폭력 학생 처벌을 강화하고 복수(複數) 담임제를 도입하고 매학기 1회 이상 학생 면담을 의무화하고 체육 시간을 50% 늘린다는 등 85개 과제를 담고 있다. 그러나 이런 행정적 수단이 제대로 작동되기 위해서는 “소명으로서의 정치”와 “소명으로서의 교육”으로 임하는 정치가, 행정가, 교육자가 곳곳에 존재해야 한다. 오늘도 그들이 곳곳에 존재하기 때문에 학교 폭력의 거대한 벽을 넘을 수 있다고 믿는다.


시인 도종환은 그 벽을 그의 대표적 시 ‘담쟁이’에서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누군가 ‘암보다 무서운 것은 포기’라고 했던가. 학교폭력의 어두운 소식을 끊임없이 접하면서도 이런 소명을 가진 ‘담쟁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혼자 꾸면 꿈이지만 함께 꾸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는다. 학교폭력과의 전쟁을 선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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