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세택 목사 두레교회 담임
필자는 지난 제61회 총회까지 꼭 네 번째로 경기노회 총대로서 천안 고려신학대학원에서 개최되는 총회에 참석하였다. 4박 5일의 일정으로 진행되는 총회는 고신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겨우 네 번 참석하고, 그것도 총회 기간에 상정된 안건이나 진행 과정만으로 교단 전체를 진단할 수 있느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오히려 짧은 경험이기 때문에 타성에 물들지 않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제대로 볼 수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아무튼, 여러 가지 한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동안의 관찰과 소회를 통해 고신의 정치적 현실을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해 보려고한다.


  우선 봄 노회 때 총대로 선출되면, 그들은 교단 언론사와 정치에 뜻을 둔 사람들에게는 관리 대상이 된다. 언론에 명단이 보도되면, 그들은 총회를 앞두고 임원이나 이사로 등록한 사람들로부터 집요한 문자 공세를 받는다. 충정과 결연한 마음으로 교단을 섬기기 위해서 출마했으니 지지를 부탁한다는 내용이다. 이 문자 공세는 임원 개선이 끝나야만 잠잠해진다. 그리고 당선사례 문자가 몇몇 당선인에게서 온다. 어떤 후보들은 직접 전화를 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를 당할 때마다 필자는 이 행위가 불법임을 주지시키고 전화를 끊었다.


한번은 노회 총대들이 총회 전에 점심이라고 같이 먹자고 해서 약속된 식당으로 갔더니 고급 음식이 제공되고 잠시 후 특정 후보가 나타나서 잘 부탁한다고 인사를 했다. 소위 향응을 제공받는 자리였다. 그때 필자는 노회 회계에게 음식비용을 지불하도록 요청하고 없었던 일로 하자고 해서 돌려보낸 일이 있다. 교단 법으로 보면 그 사람은 후보 자격이 박탈되어야 하며 세상 법으로는 구속되어야 한다. 법으로 규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향응을 제공하는 사람들이나 제공 받는 사람들 모두 문제의식이 없는 것이 교신 교회의 현실이다.


작년 회장단 기자회견장에서 임원으로 출마한 사람에게 향응을 제공한 일이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그분은 “멀리서 만나자고 온 사람들에게 어떻게 여비라도 드리지 않을 수 있겠느냐?”며 제공했다고 했다. 배석했던 선관위 위원장에게 불법인지를 물었더니 선관위 위원장은 불법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나간 일이기 때문에 다음부터 법대로 엄격히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이런 현실은 아직도 우리 교단이 정치적 정의에 있어서 일말의 의식조차 부재함을 보여준다.


  총회가 개회되기도 전에 총대들 사이에는 그동안 지루하게 끌어오던 현안들이 어떻게 처리될 것인지 아주 구체적인 정보가 떠돈다. 모교수건은 총회 앞에서 사과하는 것으로 해벌하고 목회지로 가게 한다든지 모 노회 상정건은 총회 앞에서 해당 노회들이 양해하는 것으로 종결한다든지 하는 정보들이다. 그 정보는 총회 적당한 시간에 배정되고 일사천리로 처리된다. 적당한 시간이란 총대들의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개회 직후나 아니면 총대들이 폐회를 앞두고 짐을 싼 이후 시간에 배정된다. 이렇게 몇 년씩 끌어오던 안건이 삽시간에 처리된다는 것은 교단 안에 밀실 정치가 아직도 난무한다는 뜻이다. 정치란 밀실이건 광장이건 서로에게 유리하도록 합의되고 처리되면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만큼 총대 전체의 대의를 무시하는 처사이며 자연스럽게 총대들의 질을 저하시킨다. 현안에 대한 관심과 구체적인 들여다보기가 말살된다. 밀실을 주도할 수 있는 몇몇 권력과 힘을 가진 정치가들에게 교단의 현안들을 맡겨버리고 소극적인 참여자나 들러리 정도로 스스로 전락하게 된다. 밀실 정치는 세력이나 자금을 가진 힘 있는 사람들 중심으로 계속해서 계파가 만드는 모순을 낳게 된다.


필자가 처음 총대로 참석하여 몇 마디 발언을 했다가 빈축과 웃음을 산 적이 있다. 혼란과 분노에 빠져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데 필자를 아끼는 몇몇 교단의 중진들이 다가와 교단을 위해 일해 보겠다면 세를 모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때 필자는 ‘똥개론’이라는 말 같지 않은 말로 응수했다. 우리 집은 조부 때부터 큰 똥개를 키워왔다. 밤새도록 똥개가 짖어대면 식구들이 조용히 하라면서 개를 꾸짖었다. 아무도 그 개가 왜 짖는지를 몰랐지만, 그 개가 짖어주었기에 우리 집에는 도적이 들어오지 못했다. 총대가 되는 날 동안에는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말하겠다고 했더니 ‘정치도 예술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밀실과 계파 정치는 총회 전체 회의 시간에 확연히 드러난다. 어떤 특정 사안에 대해서 계파 사람들의 집중적인 지지 발언이나 반대 발언이 이어진다. 사전 지식이 없는 무감각한 사람이 들어도 계파 간의 발언 전쟁임을 인지할 수 있다. 이렇게 회의가 진행되다 보면 한 사안에 대한 전체 총대들의 객관적인 판단이 흐려진다. 결국, 목소리가 큰 사람, 지지 세력이 많은 사람의 안으로 결정된다.


  가슴 아팠던 기억은 첫해, 58차 총회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제주노회가 처음으로 조직이 되고 총대를 보내왔다. 어느 소회 시간이었다. 어떤 안건을 놓고 갑론을박하면서 회의가 지루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총회에 참석한 제주노회 소속 모 총대가 발언권을 얻어 발언대로 나갔다. 다소 토론 내용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진지하고 오히려 성경적인 뜻을 찾으려는 경건함이 보였다. 그때 앞자리에 앉아 지루한 토론을 독점하고 있던 몇 총대가 큰 소리로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내려오라고 고함을 쳤다. 의장도 그냥 내려가라고 발언을 저지시켰다. 그랬더니 그 총대가 당황하면서 발언을 중단하고 내려왔다. 황당한 사태 앞에 순간,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 총대를 바라보았더니 넥타이 핀이 팔딱거릴 정도로 흥분해 있었다. 저러다가 혈압이라도 터지는 것 아닌가 염려가 될 정도로 그 총대가 절망하고 있었다. 다리를 꼬고 앉아서 의장에게 고함을 친자들을 앞으로 불러내어 공개적으로 사과를 시키라고 하지 못한 점을 두고두고 후회한다. 발언의 독점과 자 노회의 합의된 의견에 대해서 반대 발언을 할 때 야유하는 폭력이 우리 교단의 정치현실이다. 실력 있는 총대에게는 무한정으로 관대하면서 힘없는 총대들에게는 발언을 제한하되 마이크를 꺼버리는 횡포를 자행하는 비민주적임과 독선적인 폭력을 모든 총대는 읽고 가슴을 쳐야 한다.


 59회 총회 때 일이다. 화란 개혁파 교단에서 사절단으로 오신 분의 인사가 인상적이었다. 지금 화란 개혁파 교회는 자본주의와 전쟁을 치르고 있으니 한국에서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의 선두주자이신 귀 교단에서도 기도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화란 개혁파 교단에서는 현대 사회 속에서 교회의 현안으로 자본주의를 지목했다는 생각에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른다. 네 번의 총회 동안 이 시대의 현안과 교회의 대안으로 제시된 의제를 보지 못했다.


어느 회기인지 모르지만, 다원화란 안건이 상정되었기에 현 사회를 이해하고 적절한 안건이 상정되었다고 반가워했는데 막상 그 안건을 들어다보니 핵심은 모슬렘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였다. 그렇다면 ‘회교저지방안’이라고 하지 언어혼란을 유발할 수 있는 ‘다원화사회연구위’란 명칭을 사용하느냐고 질문했지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시대의 현상을 읽지 못하고 적절한 성경적 대안을 찾지 못한다면 세상에 뒤질 수밖에 없다.


  이 외에도 말할 것이 많지만 이만 줄이기로 하고 발전적 대안을 하나만 제시하도록 하겠다. 정치는 하나님이 주신 은사 가운데 하나이다. 정치는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신명 나게 참여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이루어가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개선되고 실천되어야 할 것이 있다. 공식적인 담론의 장이 있어야 한다. 교단의 구체적인 현안을 놓고 교단 내외의 전문가와 행정 책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성경적으로 신학적으로 점검하고 토론하는 장이 마련되어야 한다. 예를 들자면 매 회기마다 선출하는 총회장과 부총회장을 초청해서 그들의 현안 인식과 대안 제시에 대한 토론의 장을 마련해서 각 지역별 총대들이 점검하도록 하는 것이다.


특히 금년에는 교단 사무총장을 선출하는 해이다. 교단 사무총장은 어떻게 보면 총회장보다 더 자질과 인격이 검증된 사람이 선출되어야 한다. 삼 년, 또는 육 년 동안 교단의 모든 정책을 입안하고 이끌어 갈 행정적 리더이기 때문이다. 다른 교단 임원들은 일차적인 사역이 개 교회 목회이다. 이 때문에 이들이 교단의 현안점검과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서 심혈을 기울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 역할을 교단 사무총장이 해야 한다. 그래서 사무총장의 역할론과 자격론과 같은 주제로 담론의 장을 열어야 한다. 총대라면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생각해서 영역별로 나누어 진지하게 담론의 장에 참여해야 한다. 아무 생각 없이 총회 기간 시간만 축내지 말고 책임감을 갖고 소회와 총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가장 긴급한 현안을 다루는 담론의 장에 참여해야 한다.


담론의 장이 공식적으로 마련된다면 밀실 정치는 사라질 것이다. 밀실 정치를 위한 조직과 자금을 관리하느라 쓸데없이 시간과 물질을 낭비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목사들이 갖는 시간과 물질 모두 성도들로부터 위임받은 것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를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 소중한 것이 자신과 지지 세력들의 이권이나 정치적 기득권을 위해서 사용된다면 교회와 교단은 세속주의로 가고 말 것이다. 담론의 장을 마련하기가 현재 상황으로서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뒤로 미루면 안 된다. 처음에는 부정적이고 소극적이지만 인내를 갖고 지도자들이 설득한다면 교단 정치를 순결하게 하는데 큰 몫을 담당할 것이다. 총대들뿐만 아니라 교단의 모든 성도들이 현안이 무엇인지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기도하게 될 것이며 지도자들은 연구와 토론을 통해서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합의를 도출하게 될 것이다. 이런 성과들이 쌓여서 이 교단을 시작한 선배들이 바랬던 한국교회를 복되게 하는 교단으로 성장할 것이다. 생활의 순결은 고신정신의 핵심이며, 고신이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이다. 이 생활의 순결은 고신교회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총회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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